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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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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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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064

작성
17.04.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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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최종보스의 의무 2

DUMMY

간밤의 잠자리는 최악이었다. 오랜만에 왕성의 편안한 잠자리였기에 꿈을 꾸지 않는 숙면을 기대한 세레나 앞에 등장한 건 미친놈이 나오는 꿈이었다. 미친놈의 정체가 부모를 살해한 불구대천의 원수임을 감안하면 한없이 악몽에 가까웠다. 세레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신랄하게 말했다.

“미친 새끼.”

동시에 세레나는 괜히 몰려오는 불안감에 몸을 움츠렸다. 이불 속은 따뜻했지만 악몽에 시달린 세레나의 손과 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손을 녹이려 다리 사이에 집어 넣어도 역으로 차가운 손이 그녀의 온기를 앗아갔다.

‘어째서...’

세레나는 그리 머리가 좋지 않지만 아예 바보는 아니다. 리처드의 태도와 그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 속에는 상당한 힌트가 숨어 있었다. 리처드는 미궁에서 타인과 대화하는 것이 낯설다고 말했고 대화를 하고 싶어서 죽음을 택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셀 수 없이 많이 죽은 리처드. 그가 처음부터 소드마스터이지는 않았을 것이 자명하다. 쉽게 소드마스터가 되었다면 죽음을 헤아리는 일을 그만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죽은 이후 신과 나누는 짧은 대화가 하고 싶어서 죽음을 택하고, 미궁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던 그의 말투에서 세레나는 한가지 사실을 알았다.

리처드는 죽음을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미친놈답게 타인의 죽음 또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숙부와 숙모를 죽여 놓고서 세레나와 세라프를 친동생처럼 아낀다는 개소리를 할 때부터 알아봐야했다.

‘그리고...’

지진에 휘말려 실종되었던 7년 동안 리처드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가 그 기간 동안 미궁을 공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세레나는 전생에 읽은 무협지 주인공을 떠올렸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수백년 전 동굴에서 고독사 해놓고 언젠가 찾아올 연자를 기다린 백골 하나와 함께 십 몇 년을 수련하면서도 멀쩡했다. 세레나가 생각한 리처드는 언제나 먼치킨같이 재수 없는 새끼였기에 그 또한 비슷하리라 여겼다.

이후 미친놈인 걸 알고나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원인으로 여겼고.

그러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어쩌면 리처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능가하는 두려움의 대상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죽음보다 두려운 것. 사람마다 달랐다.

필리아는 세레나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보다 두려워했다. 마찬가지로 랜디 백작은 필리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보다 두려워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라프처럼 자신의 명예와 자긍심이 실추되는 걸 죽는 것보다 꺼리는 사람도 존재한다.

리처드가 죽음보다 두려워한 건 무엇이었을까? 어렴풋이 짐작가는 게 있었지만 세레나는 일부러 가능성을 닫았다.

‘미친놈이 하는 말을 다 믿을 수도 없고. 만약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 어쩔 거야... 그 새낀 부모님을 죽였고 나도 죽이려고 하는데.’

실종 당시 리처드의 나이는 14세로 지금의 세라프보다 어렸다. 7년에 더해지는 미지의 시간 동안 그가 겪은 불운과 비극을 세레나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일단 대륙의 모두가 인정하는 비극적인 사건 흐지의 비극부터 세레나에겐 태어나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리처드는 비극의 당사자였고 피해자였으며 유일한 생존자이고 그 모든 일을 옆에서 지켜본 목격자일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소년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런지도 모르는 일.

“내가 왜!”

세레나는 신경질이 나서 베개를 집어 던졌다. 푹신한 베개는 소리 없이 벽에 부딪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왜 그 미친 새끼를 동정해야 하는데!”

필리아와 세라프의 미모를 걸고 맹세하는데 선빵은 리처드가 쳤다.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왕이 되었는지 모르겠고,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면서 도대체 어째서 자신을 먼저 죽이겠다는 건지 모른다. 확실한 건 리처드가 미쳤고 세레나의 부모를 죽였으며 이제는 세레나도 죽이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다. 그가 과거에 얼마나 불행했든 목숨을 위협당하는 세레나 입장에선 무의미했다. 가슴 찢어질 정도로 불쌍한 과거가 있었다 한들 아, 너무 가슴이 아파요, 여기 제 목입니다. 거둬주세요 할 수 없지 않은가.

니도 여왕이 며칠 왕성에 머무르고 가라고 했기에 세레나는 한가했다. 그녀는 기분 전환을 위해 사랑하는 꽃쓰레기의 얼굴을 보러 갔다. 세레나가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꽃쓰레기는 변함없이 시종들을 데리고 도박판을 벌여 왕족의 행운 수치 보정을 뽐내고 있었다. 세레나는 그 모습을 뜨뜻미지근한 시선으로 봐준 후 랜디 백작 부부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야심한 시각, 시녀가 세레나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랜디 백작이 급하게 찾아온 것이다. 세레나는 필리아의 도움을 받아 옷을 걸친 뒤 랜디 백작을 맞이했다.

“늦은 시각에 송구합니다, 공주님. 급하게 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랜디 백작이 니도 여왕에겐 이미 말했다며 설명을 덧붙였다. 세레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의아해하다가 짐작가는 게 떠올라 물었다.

“혹시 리처드의 일인가?”

“그...렇습니다.”

사실을 말하기 어려운지 랜디 백작이 시선을 피했다. 세레나는 리처드 그 미친 새끼가 제국에 가기라도 했냐는 말을 공주답게 고상하게 돌려 말했다. 세레나가 꿈에서 미친놈과 대화한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랜디 백작은 공주의 혜안에 깜짝 놀랐다.

“어찌 아셨습니까?”

“그냥 짐작이다.”

“과연. 마법에 재능이 있으실 때부터 알아보았습니다만 공주님은 지혜가 깊으십니다.”

‘그런 거 없어.’

어쨌든 나라에서 엉덩이가 제일 무거워야하는 사람인 군주가 직접 타국을 방문했다. 리처드가 제국과 함께 세레나의 신병을 요청하고 있는 이상 세레나의 안전을 신경 쓰는 랜디 백작 입장에선 무슨 일인지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상황이 좋아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발 빠르게 대처해 세레나를 피난시켜야하기 때문이다.

랜디 백작은 급히 전해야하는 소식이 있으면 통신구를 통해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필리아가 흐지에서 비에타로 올 때 백작이 선물한 마법 통신구는 횟수가 다해 이제 딱 1회만 남은 상태였다. 백작이 급하게 주문을 넣었지만 워낙 고급품을 요구하는지라 생산에 시간이 걸려 완성품을 받으려면 한 달이나 남았다. 고급품이나 일반 통신구나 주문으로부터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 차이가 2주 정도라 고급품을 주문 제작하려한 것이 화근이었다.

필리아는 세레나의 잠자리를 봐주려 했다. 세레나는 얼른 남편 배웅이나 하라고 그녀를 내쫓았다.

세레나는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리처드의 미궁 입장에 제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봤다. 메사의 미궁은 비에타의 왕가에서 비에타의 미궁에 혈안이 되었듯이 대대로 제국 황제의 혈압을 치솟게한 골칫덩이 무저갱이었다. 제국의 역사에 소드마스터가 몇 등장했고 그들조차 공략하지 못한 지상에 뚫린 지옥의 입구.

하지만 리처드는 다르다. 미궁에서 죽으면 끝인 다른 소드마스터들과 다르게 리처드는 죽으면 미궁 입구에서 재시작했다. 세레나가 그러했듯 정보를 쌓아가며 꾸준히 공략을 시도하면 미궁 공략에 성공할 것이다. 공략하는 리처드는 그 과정과 죽음을 모두 기억하겠지만 지켜보는 제국 입장에선 혜성과 같이 등장한 천재 먼치킨 미청년 카리스마 애꾸눈도 멋진 소드마스터님께서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쉽게 재밌게 아무도 공략하지 못한 미궁을 공략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과연 황제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에휴.”

세레나는 몸을 뒤척이며 한숨을 쉬었다. 제국 황제는 리처드보다 아는 것이 없었다. 아는 것은 성별과 연령, 아들과 딸의 숫자 정도다. 거대한 제국을 큰 잡음 없이 매끈하게 이끌어가는 군주라는 평은 들은 바 있다.

‘누가 미쳤다고 황제 욕을 남들 듣는 곳에서 하겠어.’

그러니까 세레나는 그러한 말들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모르는 아저씨 생각을 침대에서 하는 것도 좀 이상했다.

‘아저씨도 아니고 할아버지 급인가?’

오늘도 잠들면 리처드가 꿈에 나올까 무서워 세레나는 계속 몸을 뒤척였다. 제국의 황제 말고 다른 걸 생각해보자고 마음먹은 그녀는 금방 새로운 생각거리를 찾아냈다.

‘멸망이란 무엇일까.’

세계 멸망. 아주 거창하다. 신화나 전설, 영웅담에서 자주 나오는 용어였다. 하지만 그 방식은 세계를 멸망을 이끌어가려는 악의 축, 즉 마왕마다 달랐다.

영이 주장하는 흑염룡을 보자. 영의 주장대로라면 흑염룡은 세계를 모두 불태우고 어둠으로 집어삼키려했다고 한다. 이 경우 살아있는 생명체의 죽음과 별이 어둠에 묻히는 것이 흑염룡이 말하는 세계 멸망이었다.

세계 멸망에도 급이 있다. 단순히 이성과 지능을 가진 별의 생명체를 몰살하는 것부터 시작해 별을 무엇도 살 수 없는 불모의 대지로 만든다든지, 아예 괴물만 가득찬 세계로 만들어버린다든지, 그도 아니면 별 자체를 파괴해 부순다든가, 세계를 화염이나 물로 집어 삼킨다든가, 하여간 많고 많았다. 그러니까 세레나는 리처드와 미궁의 신이 말하는 세계 멸망이 궁금했다.

일단 리처드가 세계를 멸망시키려하는 것은 사실이다. 신이 말했고 리처드가 긍정했다.

그렇다면 리처드는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멸망시킬까?

리처드는 인류 검사의 정점인 소드마스터지만 결국엔 인간이다. 그가 검기와 검강을 내뿜으며 생명체를 닥치는 대로 죽여도 다 죽이기 전에 리처드가 먼저 늙어 죽었다.

세레나는 검이 향하는 방향을 바꿨다. 땅을 파고 파고 또 파서 지각과 맨틀을 지나 핵을 건드리면 이 별이 터지니까 세계 멸망...

‘이건 아니지.’

너무 어이가 없는 발상이었다. 세레나는 즉각 반성했다. 어쨌든 그녀가 내린 결론은 리처드 혼자 힘으론 세계 멸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미궁에서 어떤 마법 도구를 얻었든 리처드는 인간에 불과하며 인간 혼자서 할 수 있는 파괴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세레나는 쉽게 미친놈의 망상이라 비웃지 못했다.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는 미친놈에 불과하다면 미궁의 신이 그녀에게 말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궁의 신은 무슨 속셈이지.’

리처드는 미궁의 신을 미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즐기는 악신처럼 묘사했다. 다분히 악감정이 가득한 평가였다. 세레나가 직접 마주한 미궁의 신은 그녀나 다른 인간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세레나의 제물을 받고 그녀를 살려준 건 어디까지나 피가 통하는 후손에 대한 최소한의 특별대우처럼 느껴졌다.

리처드는 자신과 세레나가 만나는 꿈을 꾸는 건 미궁의 신이 세레나가 자신을 막아주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 또한 미지수다. 어쨌든 리처드는 미궁을 싫어하고 미궁의 신을 싫어했다.

그리고 미친놈의 얘기는 귀담아 듣는 게 아니다. 이건 아주 중요하다. 밑줄 쫙.

이리저리 뒤척이던 세레나는 결국 새벽이 가까워지고 나서야 잠들었다. 다행히 꿈에 리처드는 나오지 않았다. 늦게 잔 걸 제외하면 꿈도 꾸지 않는 편안한 잠자리였다. 이틑날도, 그 다음날도 리처드는 그녀의 꿈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세레나가 왕성에서의 편한 며칠을 끝마치고 미궁의 공터로 돌아가기로한 전날 밤.

악몽이 돌아왔다.

이제는 슬슬 익숙해진 꿈속이지만 세레나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게 도대체 어떤 느낌인지 알아채기 전에 세레나는 리처드를 발견했다. 그의 모습은 며칠 전 꿈속과 별 차이가 없었다. 미궁에 들어간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운 간소한 차림새에 무기라곤 허리에 달린 흐지 왕가의 보검 한 자루.

차림새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리처드의 분위기가 며칠 전과 확연하게 달랐다. 어딘지 피곤해보였던 사흘 전과 다르게 아주 약간.

‘즐거워 보여?’

세레나는 위화감의 정체를 궁리하다 대뜸 질문했다.

“몇 번째야?”

“의미 없는 질문이구나, 세레나. 내가 몇 번 째든 네겐 처음이잖니.”

“몇 번째냐고!”

“이 꿈에 대해 알아낸 사실이 있으니 그걸 알려주마. 이 꿈은 너와 나, 둘 중 한 명이 미궁의 공략되지 않은 층에서 잠들 때 한 번 꿀 수 있단다.”

부모님 죽인 살인마를 꿈속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 따위 알아서 뭐할까 싶지만 바꿔 생각하면 공략되지 않은 층에서 잠드는 걸 피할 경우 리처드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말이 쉽지. 공략되지 않은 층에서 공략한 층으로 이동하느니 미친 새끼를 꿈에서 패주는 게 백배 쉬웠다.

생각난 김에 행동하자. 어차피 꿈속에선 죽지도 않으니.

세레나가 리처드에게 다가가도 그는 피하지 않았다. 뺨을 올려붙이려하자 한발짝 물러나 이렇게 말했다.

“최종보스면 최종보스답게 왕좌에서 기다리라고!”

“뭐?”

뜬금없는 헛소리에 세레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리처드는 여상하게 말했다.

“널 죽이러 갔더니 외친 말이란다.”

허공에 멈췄던 세레나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세레나는 자신의 목이 붙어있는 걸 확인하다가 발작하듯 외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최종보스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세계를 없애려는 마왕다운 행동을 하라는 것이라면 꽤나 타당한 주장이라 생각했지. 그래서 네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고...”

언제는 자신을 죽이려 들더니 이제는 죽이려고 했다가 기회를 주겠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리처드가 한 말이 의미심장했다. 그는 세레나와 현실에서 만난 것처럼 말하고 있었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리처드는 세레나와 현실에서 만나놓고 죽음을 택했다. 죽음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미친놈이니 자살이야 이상하지 않지만 세레나가 지적하고 싶은 건 한가지였다.

“안 믿어, 거짓말이야. 네가 미궁을 나와 날 죽이러 왔다면 이 시간대로의 회귀는 불가능해.”

리처드가 세레나를 만나려면 메사의 미궁을 나와 비에타의 미궁으로 들어가야한다. 그가 비에타의 미궁에 입장할 때, 리처드의 회귀 시점은 갱신되었다. 혹시 갱신 시점을 오해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세레나가 불안해하던 찰나 리처드가 말했다.

“난 미궁을 나간 적이 없어.”

“불가능하잖아! 왜 그런 이상한 거짓말을 하는 거지?”

“믿고 믿지 않고는 너의 자유겠지. 어쨌든 세레나. 친애하는 사촌 동생. 난 네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네 말대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자의 의무를 다하기로 했어.”

리처드가 웃었다. 세레나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그는 즐거워 보였다.

“흐지의 미궁 99층. 그곳에서 널 기다릴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렴. 나는 인내심이 없거든. 네가 오지 않으면 난 언제고 너를 죽이고 이 세계를 없애겠지.”

“헛소리 작작해! 멸망시키고 싶으면 멸망시키지 왜 자꾸 나를 끌어 들이냐고!”

세레나는 리처드의 멱살을 잡았다. 리처드는 피하지 않고 순순히 잡혀줬다. 침 튀길 기세로 버럭버럭 소리지르는 세레나를 리처드는 마냥 귀엽다는 듯 쳐다보다가 세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레나가 더러운 벌레라도 되는 듯 그 손을 떨쳐낸 건 당연지사다.

“태어나지 않은 사촌 동생이 어떤 사람이 될까 상상하는 건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지.”

태어나지 않아 성별을 모른다. 머리색과 눈색도 짐작가는 것이 없다. 때로는 라일라를 닮은 여자아이가, 때로는 프레드를 닮은 남자아이가. 바깥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기에 아이의 성장속도는 리처드 자신의 성장속도에 비례했다. 몇 십년, 몇 백년이 지난 후엔 늙어죽는 아이를 상상하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 가정이 꾸리는 아이를 상상하기도 했다. 아이는 훌륭한 왕이 되기도 하고 나라를 패망케하는 폭군이 되기도 했으며 꽃도 봉오리를 다물 미녀가 되어 무수한 구혼자를 거느린 공주가 되기도 했다. 그건 정말 리처드가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유이자 즐거움이었기에 리처드는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동원했으나.

“설마 주황색 눈일 줄이야.”

사촌 누이라기보단 조카 같은, 조카라기보단 일방적으로 자식처럼 생각했던 사촌 동생이 부당하다 외쳤기에 리처드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꿈에서 깨어난 세레나가 미친 사촌 새끼에 대한 욕을 브레스 뿜듯 뿜어낸 건 당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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