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58,265
추천수 :
3,597
글자수 :
481,064

작성
17.03.09 19:13
조회
2,219
추천
56
글자
12쪽

100만 골드의 공주님 1

DUMMY

“으음.”

세레나는 마사지사들의 손길을 음미하며 몸을 뒤집었다. 아기를 씻겨주듯 살살. 숙련된 마사지사들이 세레나의 몸 구석구석을 세세하게 주물러 뭉친 근육을 풀고 쌓인 피로를 녹였다. 하루 종일 놀고 놀고 놀기를 반복하는데 피로가 웬 말이냐 싶지만 그건 안 놀아본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이다. 노는 건 꽤 힘들고 체력이 필요했다.

“등이 좀 굳으셨어요.”

마사지사가 기름을 손에 덜어 세레나의 어깨와 등근육을 주물렀다. 어제도 다른 마사지사가 동일한 말을 했다. 세레나는 한숨을 쉬었다.

“가슴 때문에.”

“아아.”

마사지사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사지사의 가슴은 세레나보다 더 풍만했다. 마사지사가 상체를 숙일 때마다 푹신한 감촉이 머리나 몸 일부에 전해졌다. 큰 가슴을 좋아하는 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라 세레나는 은근히 푹신한 감촉을 즐겼다.

마사지사는 세레나의 요철이 분명하면서 매끈한 몸매를 보고 새삼 감탄했다. 관광지의 마사지사로서 꽤 많은 아가씨와 귀부인을 접했지만 오늘의 손님은 자신이 접한 손님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귀한 댁 아가씨들은 으레 그러하듯 길게 길러 엉덩이까지 오는 짙은 보라색 머리칼과 눈꼬리가 올라 요염해 보이는 주황색 눈동자까지. 세레나 공주는 부정하지 못할 미인이었다. 요염한 몸매와 이목구비로 인해 십대 후반의 나이치곤 지나치게 성숙해 보인다는 게 유일하게 안타까운 부분이다.

“공주님의 부군되실 분께선 행복하시겠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공주님을 아내로 맞이하신다니.”

‘그렇게 돈과 시간을 들이며 관리하는데 안 예쁘면 범죄지.’

마사지사가 하는 말은 좋은 돈줄에게 하는 립서비스일 뿐이다. 세레나는 불쑥 떠오른 본심을 숨기고 살짝 웃었다.

흐지 왕국의 국왕 키판의 장녀 세레나 공주가 왕국 비에타의 수도 비에타에 머무른지 세달이 지나간다. 세달 동안 공주가 뿌린 돈의 액수가 상당했다. 왕족이나 제국의 고위귀족이 숙박한다는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을 잡아 흥청망청 돈을 썼다. 비에타의 이름난 마사지사들의 손길을 한 번씩은 거쳤다. 팁을 후하게 준다는 소문이 퍼져 대다수의 마사지사들은 공주의 부름을 반겼다.

세레나가 돈을 뿌린 곳은 마사지뿐만이 아니었다. 비에타는 해안가 도시에 일국의 수도답게 상업 또한 발달했다. 공주는 보석상과 포목점에서도 물 뿌리듯 돈을 뿌렸다. 함께 여행 온 남동생 세레프는 도박장에 돈을 꼬라박고 있었다.

흩날려라 금화!

남매가 쌍으로 돈을 뿌리니 이 얼마나 좋은 손님이란 말인가. 마냥 흐뭇하면서도 세 달이나 그러는 건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 남매가 펑펑쓰는 돈은 모두 흐지 왕국민의 세금이니까.

“꽤 오래 계셨죠?”

슬슬 갈 때 안 됐니? 마사지사는 은근슬쩍 공주의 일정을 질문했다. 끄응, 발바닥 지압을 받던 세레나가 발가락을 움직였다.

“예정이 틀어졌지 뭐니. 본래는 한 달 정도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미궁이-.”

“어머, 아직 못 가보셨어요?”

마사지사가 깜짝 놀랐다. 비에타의 미궁은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한 번 들리는 필수 코스였다. 비에타에 세 달이나 머물렀으면 다섯 번은 넘게 가볼 기회가 있었다. 마사지사가 깜짝 놀란 만큼 세레나도 짜증이 나 투덜거렸다.

“그래. 다섯 번은 갔겠다.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내 동생 세라프 왕세자 전하가 말이야, 같이 가자고 해놓고 계속 약속을 어기지 뭐니.”

마사지사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맴돌았다. 세라프 왕세자는 비에타에 도착한 당일부터 도박장에 틀어 박혀서 나오지 않기로 유명했다.

세레나는 도박에 미친 동생에 대해 연신 투덜거리려다 말을 삼켰다. 비록 그녀의 못난 동생이지만 일국의 왕세자다. 부왕이 사망하면 군주가 될 자였다. 그런 사람에 대해 가볍게 말해선 안 된다.

세레나는 오리처럼 입술을 내밀었다.

“내일 나 혼자서 가기로 했어. 미궁만 가보면 비에타에서 볼일은 끝이지.”

“꽤 걸으실 테니까 발을 좀 더 지압해드리겠습니다.”

“그러렴.”

“미궁 주의사항은 모두 읽어보셨나요?”

“여기 도착한 첫날부터 매일매일 읽었어. 이젠 외울 지경이라니까.”

“기대가 크신가봐요.”

“애당초 비에타에 온 이유가 미궁인 걸. 그게 세자 전하 때문에 계속 미뤄지다가...”

대륙의 동쪽 끝 작은 왕국 비에타가 대륙 최고의 관광국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다와 만년설을 보면서 즐길 수 있는 온천? 풍족한 물자? 안정적인 치안? 불이 꺼지지 않는 카지노?

비에타의 시민이라면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비에타의 미궁.

세계엔 미궁이라 불리는 던전이 존재한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미궁들은 위험한 것도 있고 안전한 것도 있었다. 위험하든 안전하든 미궁의 출입은 국가에서 엄격하게 통제한다. 비에타의 미궁은 대륙에서 유일하게 관계자가 아닌 민간인이 출입할 수 있는 미궁이었다.

일단 안전한다. 비에타의 미궁은 공략이 완료되었다. 미궁은 불가사의한 힘으로 내부의 함정과 몬스터가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복원된다. 미궁의 벽을 파괴해도 사흘 뒤에 가보니 다시 막혀 있더란 얘기는 흔하다. 하지만 공략이 끝난 미궁은 몬스터와 함정의 복원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비에타의 미궁은 공략이 100년 전에 공략이 완료된 안전한 미궁이었다. 그러나 위에 적었듯 일반적인 국가에선 안전한 미궁의 출입도 통제한다. 이유는 미궁에서 나오는 각종 자원 때문이다.

미궁 내부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모든 것이 복원된다. 몬스터를 죽여도 며칠 뒤 다시 생겨나 미궁 내부를 어슬렁거린다. 약초를 채집해도 며칠 뒤 다시 채집할 수 있다. 광물도 매한가지다. 무엇보다 미궁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각종 마법 아이템은 미궁 통제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제껏 인류사에 기록된 전설급 아이템들은 모두 미궁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미궁의 보상은 층에 비례한다. 미궁의 입구이자 출구가 있는 1층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미미했다. 비에타의 미궁은 1층의 넓이만은 현재까지 발견된 미궁 중에서 가장 넓었다. 처음 미궁의 보고를 받은 비에타의 국왕은 너무 좋아서 졸도했다고 한다. 나라에서 발견된 미궁은 곧 국력향상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비에타의 미궁은 1층이 끝이었다. 공략을 완료한 1층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라봐야 한 달에 한 번 상자에 복원되는 하급 포션 정도.

엄청 큰 미궁 발견했다고 설레발 쩔더니 겨우 1층이냐.

타국의 비아냥을 견디지 못한 백년 전의 국왕은 장녀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왕이 된 장녀는 생각을 달리했다. 당시에도 비에타는 관광국가로 명성이 높았다.

여왕은 미궁을 개방했다. 비에타의 미궁은 공략이 완료된 미궁. 지도와 함정, 몬스터, 보물상자, 약초서식지, 광물을 캘 수 있는 곳 등등. 1층의 지도가 완성되었다. 공략이 완료되었기에 미궁의 복원 속도는 느렸고, 몬스터가 복원되었을 때에도 처치가 쉬웠다. 2년에 한 번 정도 미궁을 폐쇄하고 몬스터를 싹 잡고 함정을 망가트리면 끝. 남은 건 미궁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받는 일이다.

대륙의 서쪽 끝 흐지 왕국엔 미궁이 없었다. 그래서 세레나는 일부러 대륙의 동쪽 끝인 비에타까지 관광을 왔다. 아무리 생각없이 사는 그녀라도 비에타에 세달이나 머물 생각은 없었지만. 덕분에 예산을 상당히 초과했다. 이정도면 약쟁이인 부왕도 세레나의 머리채를 잡아 뽑을지 모른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어쨌든 내일 미궁을 관광하면 비에타의 일정이 모두 끝난다. 도박에 미친 동생을 버리고 가든 끌고 가든 세레나는 그녀의 왕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공주님!”

“꺄아악!”

느닷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마자지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왕녀의 알몸을 가렸다. 세레나는 수건에 가려 보이지 않는 불청객에게 호통쳤다.

“무엄하다!”

“공주님! 공, 공주님, 큰일 났어요!”

익숙한 목소리에 세레나가 시야를 가리는 수건을 치웠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세레나가 데려온 시녀 필리아였다. 본래 몸의 색조가 옅은 필리아가 시체같은 낯짝을 하고 세레나 앞에 무릎 꿇었다.

“크, 크, 큰일났어요, 공주님.”

“필리아. 무슨 일이니. 진정해.”

“공주님 큰일났어요. 어떡해요.”

세레나는 마사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신에 바른 기름을 대충 닦아내고 가운을 입고 마사지사들을 내보내려는데 필리아가 입을 여는 게 빨랐다.

“국왕 폐하께서 서거하셨대요. 리처드 공이 반란을, 반란을! 성도가 함락되고 폐하께서...!”

풉. 엄청난 말을 들어버린 마사지사 한 명이 숨을 뿜었다. 마사지사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생판 남인 마사지사들이 그러한데 당사자는 어떻겠나. 세레나는 현기증이 일어 이마를 짚었다.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언젠가 터지지는 않을까. 세레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었다. 설마 그녀가 여행 온 동안 벌어질 줄은 몰랐을 뿐. 약쟁이인 부왕에 대한 국민과 귀족들의 반감은 오랜 세월 쌓여왔다. 아주 뜻빡의 일이 아니었다. 여행 중에 터져서 놀랐을 뿐이다.

“일단, 세라프를 데려와.”

“했어요, 부탁했어요.”

필리아가 절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벌벌 떨고 있었다. 세레나는 필리아의 손을 토닥였다.

“그래. 잘했어. 일단 세라프와 의논을 해보고...”

어차피 타국에 있는 몸. 도망치기도 쉽다. 망명을 하든 다른 왕가에 의탁을 하든 내전을 벌이든 경우의 수는 많았다. 세레나 개인적으론 그냥 가진 재물을 들고 비에타에 망명을 신청하고 싶었다. 비에타 왕국과 흐지 왕국은 대륙의 동쪽 끝과 서쪽 끝으로 거리가 멀다. 또한 비에타 왕국의 치안은 안정적이기로 유명했다.

‘아버지가 죽었단 말이지...’

부친의 사망소식에도 세레나는 크게 슬퍼하지 않았다. 부친과 이렇다 할 추억이 없고 솔직히 죽어도 싼 인간이었다. 왕의 딸로 태어나 세금을 펑펑 쓰며 이런 말하기 뭣하지만, 진짜 죽어도 쌌다.

“그게 아니에요, 공주님! 정말 큰일났어요!”

사촌 오라비가 아버지 목을 뎅강 잘랐다는 얘기는 이미 들었다. 세레나는 의아했다. 큰일은 이미 들었는데 다른 큰일이 남아있나?

“리처드 공이! 반역자가 공주님께 현상금 100만 골드를 걸었어요!”

“뭐어?”

평민 4인가구가 1년 동안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 1골드다. 국가급 예산을 초과하는 현상금 소식에 세레나가 뒷목을 잡았다. 세금 펑펑 쓰는 입장에서 이런 생각하기 뭣하지만 너무 과한 지출 아닌가? 반역한 김에 나라 기둥뿌리를 뽑으려고?

“세라프는? 세라프에겐 1000만 골드라도 걸었다니?”

필리아가 말을 더듬었다.

“세자 전하는 1만 골드...”

“왜, 왜 내가 100배나 높아?”

사치하는 것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 공주와 세자의 현상금에 차이가 컸다. 세레나는 기절하고 싶었다. 너무 당황해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금액의 차이가 있다는 말은 즉.

“생포니? 생포만 100만 골드지?”

“흐윽.”

필리아가 고개를 숙이고 구슬프게 울었다. 방울진 눈물이 세레나의 맨 발등으로 뚝뚝 떨어졌다.

“반드시 죽여야 100만이라고...”

세레나의 희망은 그렇게 짓밟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9 신탁 8 +31 18.12.25 1,515 76 12쪽
88 신탁 7 +4 18.10.31 501 34 11쪽
87 신탁 6 +5 18.10.26 474 36 10쪽
86 신탁 5 +4 18.10.25 445 32 11쪽
85 신탁 4 +3 18.10.24 455 36 10쪽
84 신탁 3 +2 18.10.24 435 38 16쪽
83 신탁 2 +4 18.10.23 429 33 11쪽
82 신탁 1 +3 18.10.21 471 38 15쪽
81 구명 11 +4 18.10.20 503 34 13쪽
80 구명 10 +7 18.10.20 484 37 11쪽
79 구명 9 +5 18.03.12 510 42 15쪽
78 구명 8 +8 18.03.03 490 37 21쪽
77 구명 7 +4 18.03.02 475 37 18쪽
76 구명 6 +3 17.04.30 639 38 16쪽
75 구명 5 +1 17.04.28 566 38 11쪽
74 구명 4 +4 17.04.28 585 39 7쪽
73 구명 3 +5 17.04.28 527 35 9쪽
72 구명 2 +2 17.04.26 540 34 7쪽
71 구명 1 +2 17.04.26 537 35 12쪽
70 비에타의 미궁 4층 6 +2 17.04.25 583 32 10쪽
69 비에타의 미궁 4층 5 17.04.25 524 41 10쪽
68 비에타의 미궁 4층 4 17.04.25 521 41 14쪽
67 비에타의 미궁 4층 3 +1 17.04.24 559 33 10쪽
66 비에타의 미궁 4층 2 +1 17.04.24 552 38 9쪽
65 비에타의 미궁 4층 1 +2 17.04.24 592 40 10쪽
64 비에타의 미궁 3층 2 +1 17.04.23 558 40 12쪽
63 비에타의 미궁 3층 1 +3 17.04.23 600 38 12쪽
62 최종보스의 의무 2 +4 17.04.22 604 37 17쪽
61 최종보스의 의무 1 17.04.22 590 42 11쪽
60 복습 3 +5 17.04.19 619 38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