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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58,295
추천수 :
3,597
글자수 :
481,064

작성
17.04.28 15:15
조회
585
추천
39
글자
7쪽

구명 4

DUMMY

‘이 꿈 좀 안 꾸면 안 되나.’

세레나는 일부러 생리가 아닌 날로 휴가 일정을 잡았는데 1주일 빠르게 생리가 터진 회사원의 마음으로 눈을 떴다.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 미남 미녀들이 어서 오십셔, 공주님하고 반겨줘도 온갖 패악을 버릴 판국에 눈깔 하나 없는 지긋지긋한 면상이 심드렁한 얼굴로, 어서와, 이번 층은 처음이지, 이 지랄을 하고 있으니 꿈속인데도 혈압이 올라 죽을 것 같았다.

지긋지긋한 면상, 리처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른줄의 남성이 고개를 갸웃거려봐야 하나도 안 귀여웠다.

“의외로구나, 세레나. 난 네가 미궁에 더 들어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번이 마지막이야.”

“미궁에 들어 가야하는 이유가 있었나 보구나.”

“사람을 구해야 했거든!”

세레나는 대답하지 않으려다 리처드의 생명 경시, 죽음 경시 사상을 비꼬자는 의미에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세레나를 구하느라 미궁에 갇힌 정의로운 기사와, 기사를 구하기 위해 몸소 나선 생명을 소중히 대하는 공주.

리처드는 의외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추임새도 넣어가며 세레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야기가 끝난 뒤 그가 말했다.

“파티플의 치명적 단점이지. 나도 그래서 많이 죽었단다. 처음엔 죽자마자 죽어서 돌아갔는데 너무 잘 죽어서 곤란하더구나. 결국엔 혼자서 미궁의 마지막까지 공략한 후 나름의 작전을 짜서 파티를 이끌었지. 그래도 얼마나 잘 죽는지...”

솔로로 10등급 미궁을 클리어한 리처드지만 파티플은 그 또한 초심자였고 파티는 개복치도 아닌 것이 너무 잘 죽었다. 발목잡는 파티원들을 보며 리처드는 솔플이 낫겠다 생각했지만 제국의 보는 눈이 있으니 파티원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리처드는 파티원을 챙기며 메사의 미궁을 공략하느라 솔플에 맞먹는 고생을 했다. 다행히 솔플 경험이 있어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릴 때보단 쉬웠지만 그래도 꽤 어려웠다.

어조는 단조로우나 리처드는 자기가 고생했다는 하소연을 14살 어린 동생에게 하고 있었다. 말하는 리처드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듣는 세레나는 눈치 챘다. 덕분에 세레나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뭐 어쩌라는 거지. 너 힘들고 고생해서 대견하다고 말해야 돼? 장난해?’

리처드는 아예 무시하고 있는 듯 굴지만 그는 세레나의 부모를 죽였다. 세레나가 부모에게 정이 없다고 해도, 세레나가 그들을 범죄자로 보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사망 원인은 바뀌지 않는다. 세간에서 보기에 둘은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요, 리처드는 세레나 앞에 저리 뻔뻔한 얼굴로 등장하면 안 되는 신분이었다.

‘이래서 미친놈이랑은 상종을 말아야 하는데.’

“시끄러워. 아마 우리가 이렇게 꿈속에서 만나는 건 이게 마지막이 될 거야. 네가 미궁을 공략하면서 꾸는 꿈이면 몰라도 내가 미궁에 들어가는 건 이번인 마지막이겠지.”

“호오.”

“넌 내가 네 이해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지. 이해? 이해애? 이해를 바라는 사람의 부모를 죽여놓고 이해?”

“숙부와 숙모님이 그렇게 된 건 나도 유감이란다, 세레나.”

“유감 같은 소리 하지 마! 네가 죽였어!”

리처드는 대단히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미친놈이라 뚫린 귀로 사람 말을 듣지 않았다.

“난 너희들을 소중하고 안쓰럽게 여긴단다. 숙부님은 좀 더 빨리 중독 치료를 받아야 했어. 숙모님도 마찬가지야. 그럼 너희는 사랑받으며 클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부모님 죽여놓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세레나는 허리를 숙이고 미친년처럼 외쳤다. 미친 소리엔 마찬가지로 미친 것처럼 구는 게 정답이었다.

“닥쳐! 닥쳐! 닥치라구! 난 네 이해자 같은 거 안 될 거야! 널 이해하기도 싫어! 난 미궁에 들어가지 않을 거고! 너한테 죽지도 않을 거고! 세계 멸망 따위 내가 알바 아냐!”

“10년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단다. 네 공략 속도를 봐서 기간이 늘어날 수도, 짧아질 수도 있지.”

“만약에 내가 미궁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세레나는 리처드에게 삿대질했다. 이의 있음!

“너처럼 죽음을 도구로 쓰진 않을 거야!”

미궁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 리처드가 세레나에게 했던 말이다. 리처드와 세레나는 미궁에서 사망하면 미궁에 입장한 시점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은 미궁의 신이 멋대로 제물을 받고 둘에게 부여한 축복 아닌 축복, 저주 아닌 저주의 힘. 둘의 의견은 적용되지 않지만 일단 미궁을 공략하는 입장에선 꽤 유용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되살아난다고 해서 계속 죽으면 어떻게 될까? 리처드처럼 파티원이 죽었다고 곧장 죽는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 평범한 사람이 할 만한 사고방식이 아니었다.

리처드가 갖고 있는 일반인들과의 괴리는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균열의 발생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리처드는 자신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면서 타인의 생명 또한 경시하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숙부와 숙모를 죽이고, 그에 대한 죄책감이나 다른 감정 없이 사촌 동생을 대한다. 차라리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으면 세레나는 이렇게 기가 차지 않을 것이다. 리처드는 화를 내지 않았다. 뻔뻔하게 세레나를 대했지만 정말 뻔뻔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두 명의 죽음이 그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세레나는 옛날부터 사람 목숨을 도구 취급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사람 하나가 태어나서 사람구실하는데 필요한 노력과 시간, 그에 쏟아지는 교류와 감정을 무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분제가 살아있는 판타지 세계에 환생하면서 아랫사람 생명을 경시하는 자들을 보긴 했지만 그런 이들도 최소한의 생명은 존중한다.

리처드는 달랐다. 그의 눈에 타인과 본인의 죽음은 무게가 동일했다. 본인의 생명만큼 타인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리처드에게 있어 본인의 생명의 무게는 병아리 솜털보다 가볍다.

리처드는 그런 의미에서 세레나와 상극이었고 세레나는 리처드가 끔찍했다.

“역시 아직 초반이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이해 안 할 거야!”

미친놈 이해해봐야 미친년말고 더 되나.

리처드의 손이 허리에 찬 검으로 이동했다. 꿈속이라 베여도 다치지 않지만 세레나는 흠칫 놀랐다. 삼촌과 숙모도 벤 미친놈이 사촌 동생이라고 베지 않을 리가 없으니.

리처드는 세레나가 아닌 검에 집중했다.

“이 검이 부러질 때마다 죽었단다. 괜한 고집인 걸 알면서도 그래야 했지.”

그가 비죽이 웃었다.

“미궁에 계속 들어간다면, 세레나. 너는 날 이해하게 될 거야.”

세레나는 양 손으로 쌍뻐큐를 날렸다. 미친 소리는 무시가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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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35 카르니보레
    작성일
    18.10.25 15:18
    No. 1

    몰이해로 나가려는 눈과 귀를 막는 주인공 극혐...

    찬성: 1 | 반대: 6

  • 작성자
    Lv.46 밤비부
    작성일
    19.03.31 10:37
    No. 2

    난 이해 가는데.. 누가 내 가족 죽였으면 아무리 타당하고 이해가능한 사정이 있어도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지 않음. 그냥 개새끼고 뒤졌으면 싶지.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48 sw******
    작성일
    19.04.05 13:35
    No. 3

    중2병들 모임 같은데 에효 환생자는 어른이었을텐데 이해가 안간다는 그렇다쳐도 대응은 초딩보다 미숙하네 싸이코패스 잡는 형사 수준까진 안바래도 이건 좀 너무 어린애 같네요 이해를 못하는 것까지 그렇다쳐도 저런 대응은 그냥 둘다 유치한 수준으로 똑같아보임 그래서 가족인가?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9 k3******..
    작성일
    19.04.29 14:32
    No. 4

    난 세레나 이해 감 쟨 지금 정신 피폐해지고 있는 단계라고...그리고 누가 죽음을 수단으로 하고 싶겠음? 정상적인 사람이면 그런거 못함 리처드처럼 미쳐야지 가능하지...독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니까 그러는거구 쟤 입장에선 미워도 부모 죽이고 자기 죽일 새끼자너...
    난 필리아랑 쟤 동생만 극혐임 그건 걍 정상적인 사람도 고개를 젓는다고 상식적으로 친한 사람이 간다 그러면 막는건 알겠는데 뗑깡 부려서 들어가...존나 민폐 끼쳐...아오...트롤새끼들

    찬성: 6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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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비에타의 미궁 4층 2 +1 17.04.24 552 3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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