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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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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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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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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064

작성
18.10.2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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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신탁 5

DUMMY

‘내가 좀 더 어른스럽게 처신해야 하는데.’

필리아의 얼굴을 보자마자 세레나는 맨정신이 돌아와 후회했다. 자신은 나름대로 세라프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세라프는 그러는 것 같지 않아 상심했고, 상심은 잔인한 헐뜯기로 변했다.

“회의는 아직 진행중이래요. 공주님, 푹 쉬세요.”

욕조에 몸을 담근 공주를 마사지사들이 기다렸다. 세레나의 긴장한 근육을 푸는 손길은 따뜻하고 조금 아팠다.

‘똑같이 예쁜데.’

똑같이 세레나가 좋아하는 예쁜 얼굴인데 필리아를 보면 심신에 안정이 오고 세라프를 보면 짜증이 치솟는 건 어째서일까. 세레나와 세라프가 친남매이기에 발생하는 자연의 섭리이려나?

막말을 하고 나와도 시원하지 않고 계속 속에서 걸렸다. 계속 찜찜해하는 것과 사과하고 혼자 편해지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쓰레기인지 모르겠지만 세레나는 이전과 다르게 세라프를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이전에야 나라가 멀쩡하고 세라프 주변에 가식으로나마 그를 신경써줄 이가 많았지만 지금은 하나도 없었다. 신경써주기로 한 만큼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그러니까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상냥하게 대할 필요가 있었다.

‘나도 참.’

만만한 동생 상대로 오만 짜증은 다 부려놓고 목욕하고 마사지 받아가며 몸이 편해지니 사과할 마음이 든다니. 자기가 생각해도 참 인성 더러웠다. 세라프더러 혐성이라할 자격이 없었다.

‘아냐, 그래도 난 내가 성격 더러운 걸 알잖아.’

성격 더러운 걸 아는 새끼나 성격 더러운 걸 모르는 새끼나 똑같이 더럽다는 진실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더 악질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레나는 몸에 묻은 향유를 닦고 뻐근한 어깨를 돌렸다. 환생한 후 줄곧 공주님 옷만 입다가 미궁가느라 편한 옷 좀 입었다고 육체가 편한 옷에 길들여져 드레스가 갑갑했다.

‘좋아, 그럼 사과를 하러 가자.’

오랜만에 남매끼리 점심식사라도 하면서 생전 없었던 가족끼리의 시간을 즐겨보자 말할 참이었다. 물론 세레나의 바람은 현실에 막혔다.


세레나없이 진행되던 회의가 끝났다. 뜻밖에도 세 세력은 세레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미궁에 들어가는 당사자가 세레나이니만큼 그녀를 지킬 사람을 뽑는데 세레나의 입김이 들어가는 게 합당하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이다.

는 어디까지나 듣기 좋으라고 해주는 소리이고, 진실은 다르다. 현재 세레나는 고국인 흐지로 돌아가지 못해 비에타에 신세를 지고 있는 난민 신분이다. 그런 그녀가 쓸 수 있는 인적 자원이라봐야 흐지에서 데려온 호위 인력이 전부였다. 결국 세레나가 미궁에 들어가 안전하려면 세 세력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세레나에게 파티 구성권을 주되, 각 세력에서 추천하는 이들 중에서 뽑아가게 두자는 게 회의의 결론이었다.

비에타에겐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었다. 미궁 공략에 오랜 노하우를 지닌 제국과 대륙 전역에서 몰려온 신관이 경쟁자가 되었으니.

그래서인지 조건이 또 붙었다. 최소 한 명씩은 각 세력의 사람을 선정할 것. 미궁 공략에서 나온 보물 배분은 공략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은 공략에 사용하고 세레나, 비에타, 제국이 돌아가며 선점권을 갖는다. 보물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면 다음 차례로 미룰 수 있지만 횟수는 제한되었다.

신관들이 돈은 돈대로 쓰겠다고 하면서 보물은 받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말한 것이 놀라웠다. 세계멸망을 막기 위해서지 재물엔 욕심이 없다나 뭐라나. 신탁을 내린 신중에 재물의 신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럴 거면 보물 선점권을 나한테 주겠다고 하든가, 갖고 있다가 보물 받고서 나에게 넘기면 되잖아. 이래서 정치질도 해본 사람이 하는 거지.’

혹 모른다. 신탁을 내린 신 중에 모략의 신이라도 있어서 꿍꿍이를 품고 보물 우선권을 내줬을지도. 어쨌든 세레나는 신관, 비에타, 제국에서 반드시 한 명을 파티에 포함시켜야 하게 되었다.

‘비에타와 신관연합은 쉽지.’

비에타엔 이미 여러 차례 미궁을 함께 탐사한 기사와 마법사가 있다. 니도 여왕이 엄선한 인선이고 애국심이 강해 세레나보다 비에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성품과 실력 모두 빼어났다.

‘기사 하나가 유독 운이 나쁜 것 같긴 하지만.’

신관의 경우 미궁 탐사의 필수라 했으니 신성력이 강하고 실전 경험도 있는 신관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각 교단에서 최고의 베테랑을 추천해줄 것이다.

‘문제는 제국이구나.’

세레나가 정말 미궁을 공략할 작정으로 파티를 뽑는다면 신관과 제국에서 내주는 인물로 구성할 것이다. 나라가 크니 사람도 많고, 가장 많은 미궁과 가장 악명 높은 미궁을 모두 갖춘 미궁 공략 선진국이었다. 인적자원이야 비에타가 어찌어찌 따라잡는다쳐도 정보력의 차이가 극심했다. 비에타는 정보약자니까.

제국 출신을 반드시 한 명 파티에 집어넣어야 한다. 어떻게하면 통수를 맞지 않으면서 공략에 방해되지 않는 인물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5황자를 콕 찍어서 ‘니새끼도 나랑 같이 미궁 맛 좀 보지 않으련?’ 하면 엿 좀 먹일 수 있으려나?

제국의 황제가 리처드의 편을 먼저 들어준 이상 세레나는 제국을 적으로 간주했다. 그런 세레나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5황자는 독대를 요청했다.


“공주께선 니도 여왕 폐하와 교분이 있고.”

‘언제부터?’

“무서우신 것과 별개로 신관들을 존중하고 계시니.”

‘응, 그거 아냐. 더러워서 피하는 거야.’

“따지고 보면 제국이 제일 불리한 입장 아니겠습니까.”

5황자가 눈웃음을 치면서 독대를 청한 이유를 밝혔다.

“물론 공주님과 좀 더 사교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구요. 우리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현재 진행형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세레나와의 약혼 관계를 강조하고 싶다면 미소년 시종을 데려와선 아니 되었다. 뒤에는 선이 고운 미소년 시종을 세워놓고 세레나에게 호감이 있다 방긋방긋 웃는 것이 표정 관리 만렙이었다. 세레나는 그에 맞서 만렙 찍은 공주님 미소로 응대했다.

“호호호, 황자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셨군요. 기뻐요.”

각자 만렙 찍은 연기를 펼치는 와중 슬쩍 시종의 안색을 살피는데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무표정했다. 세레나의 시선을 알아채고서도 피하지 않고 세레나를 똑바로 보았다. 시선을 낮추는가 싶더니 바닥이 아닌 세레나의 가슴에 고정되었음을 깨달았을 땐 기가 막혀서 화조차 나지 않았다.

‘얜 뭐야?’

번식 본능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엔 너무 노골적인 시선처리였다. 공주로 살며 이런 시선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참 신경 쓰였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5황자가 본론을 꺼냈다.

“제국은 오랫동안 미궁의 신비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모험가 길드와 다른 국가들이 지닌 정보를 모두 모아도 제국을 이기지 못할 겁니다. 제국에선 미궁 탐사 전문 기사와 마법사를 육성합니다. 모험가들은 모험가야말로 미궁 탐사의 전문가라고 하지만 국가에서 육성한 전문가와 차원이 다른 걸 아실 겁니다. 공주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제국의 미궁 탐사단과 함께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공주님 한 분과 기사 넷, 마법사 둘, 힐러 둘에 길잡이가 하나. 아, 말씀드리니 떠오른 건데, 비에타의 미궁 제한 인원수가 10명이라고 전달받았습니다. 헌데 공식 기록상엔 10명을 초과한 인원의 탐사대가 꾸려진 적이 없더군요.”

5황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혹 비에타에서 공주님을 속이려는 거라면...”

“그런 건 아닙니다.”

세레나가 몸소 죽어가며 안 제한 인원수를 그런 식으로 이용해먹는 건 곤란했다.

“그렇다면 역시 공주님께서 비에타 측에 알려주셨다는 말이 맞았다는... 그런 말씀이시군요. 흐지 왕가에 미궁의 신의 피가 흐를 줄이야...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폐하께서도 보고를 받고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미궁의 신이며 제한인원수며 운운하는 꼴을 보니 세레나가 지도를 밝힌 일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저도 이번 일로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거짓말하기 귀찮다고 미궁신 짱짱맨을 외치는 게 아니었다. 세레나가 생각없이 저지른 과오가 세레나의 숨통을 콱콱 조였다.

“어쩌다 그런 고귀한 핏줄에 대한 기록이 끊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5황자가 말하다말고 갑자기 놀랐다. 세레나는 뭔가 싶어 뒤를 돌아봤지만 뒤엔 아무 것도 없었다. 옷에 차를 흘렸나 봤는데 옷도 깨끗했고. 당황한 세레나가 미리 대피시킨 필리아대신 그녀의 시중을 들어주는 비에타의 시녀를 보자 시녀 또한 짚이는 데가 없는지 고개를 저었다.

“눈동자가 참 아름다우십니다.”

‘어쩜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맞는 말을 하지.’

처맞는 말.

세레나의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은 건 만렙 찍은 공주님 미소가 다른 감정 표현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주황색 눈동자는 난생 처음 봅니다. 그 신비로운 주황색 눈동자는 분명 신성한 피가 흐르는 증거겠죠.”

특이한 눈동자색에 외눈. 눈만큼은 칭찬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눈 얘길 꺼낸 이유가 있을 터였다. 제발 그래야 했다. 아니라면 5황자는 여자에게 차이고 남자에게 차여 어린 소년을 탐하는 모자란 새끼가 되기 때문이다.

“주황색 눈을 지닌 이가 최근 제국에 머무르는데 보지 못하셨나봐요.”

“위로 형님이 네 분에 누님이 세 분 계시고 아래론 귀여운 막내 동생이 있죠. 실은 폐하께 랜드리올 백작만도 못한 황자랍니다. 하하하.”

내내 가식적인 대화만 하던 5황자가 처음으로 자신을 드러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꽤나 소탈한 황자의 웃음소리는 그가 대동한 소년 시종의 말에 끊겼다.

“귀하신 두 분. 미궁의 신께서 어째서 주황색 눈을 지녔단 소문이 도는지 아십니까?”

주인의 웃음을 끊어놓고도 시종의 태도는 대범했다. 앉아있는 둘을 내려다보는 시선과 말투가 꼭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늙은이 같았다. 세레나는 이야기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시종을 응시했다. 시종이 건방진 것과 별개로 이유가 궁금했다. 주인인 5황자는 시종을 꾸짖지 않고 침묵했다.

“어째서냐?”

“미궁에 들어가면 알게 되실 겁니다.”

시종이 방긋 웃었다. 세레나의 주먹이 울었다. 이어 들린 말에 주먹에 들어간 힘이 풀렸다.

“공주님을 혼자 보낼 수 없어 5황자 전하께서도 미궁에 들어가신다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세레나는 5황자를 보았다. 5황자도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데 세레나의 하나 남은 눈을 걸 수 있었다. 어린 시종의 철없는 농담이었다고 웃으면 그만일텐데 5황자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만렙 찍은 미소를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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