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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58,264
추천수 :
3,597
글자수 :
481,064

작성
17.04.28 15:15
조회
526
추천
35
글자
9쪽

구명 3

DUMMY

투위블은 마법 지도를 보며 새삼 감탄했다.

“제가 이렇게나 많이 돌아다녔군요.”

“그러게 말이오.”

“지도를 그리면서 꽤 돌아다녔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면 5층을 거의 다 훑어본 게 아닐지.”

“이 수정말고 다른 건 발견하지 않았어? 기사나리?”

“안타깝지만 그다지. 보물 상자는 몇 개 발견했지만 보물 상자 모양을 한 몬스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건드리지 않았다.”

“잘했어!”

올리브가 잘했다는 의미로 투위블을 몇 번 두드렸다. 투위블은 어깨를 으쓱였다. 3층에서 4층 계단을 찾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염두에 뒀던 생각보다 이르게 투위블을 찾고 나니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파티의 사기가 흩어졌다. 오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음... 그럼. 투위블의 무사도 확인했으니 돌아가도록... 하겠다.”

“좀 허망하긴 하네요.”

“대장님, 스라이 경 반응이 너무하네요. 제가 큰 위기에 처해 있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너무 쉽게 찾고 무사한 걸 확인하니까 뭔가 허탈해서...”

투위블과 쉽게 조우하고 그가 무사했던 건 탐사대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다. 그러니 투위블이 다치길 바라지는 않았다. 그냥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각오를 다졌는데 너무 쉽게 풀려서 맥이 빠졌을 뿐이다. 투위블은 그런 일행에게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혹시 다들 괜찮다면, 이 층을 좀 더 탐사해 계단을 찾지 않겠습니까?”

“꽤 피곤하지 않은가, 투위블 경?”

“이렇게 마법 지도를 보니 내가 꽤 돌아다녔는데 계단을 발견 못 한 게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제가 확인하지 않은 길만 돌아보면 계단을 금방 찾을 것 같은데, 기왕 여기까지 내려온 것 계단만 찾고 올라가는 건 어떨까요? 전 괜찮습니다.”

미궁을 오르내리는데 들이는 수고와 체력, 시간을 생각하면 타당한 의견이었다. 올리브는 당연히 대환영이라는 말을 꺼내려다 탐사대에 속한 동 떨어진 존재를 떠올리고 세레나의 눈치를 살폈다.

“공주님... 은 힘들 걸?”

“체력적으로 한계가 다했지.”

“그러고보니 이 층의 초심자 공주님이었지 않아?”

초심자가 있을 때 계단을 발견하는 게 낫지 않을까. 탐사대는 모두 동일한 생각을 했다. 세레나는 투위블이 무사한 걸 확인하자 참고 있던 피로가 몰려왔기 때문에 미궁 탐사에서 빠지고 싶었지만 매몰 비용을 생각하니 자기 돈도 아니고 남의 돈인데 아까워졌다.

세레나는 투위블의 손에 들린 지도를 확인했다. 투위블이 혼자서도 용감무쌍하게 층을 돌아다닌 덕분에 밝혀진 부분이 꽤 많았다. 계단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니 그가 돌아보지 않은 곳만 탐색하면 금방 계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여 괜찮음을 표현했다.

“와아! 역시 공주님은 뭘 안다니까.”

“그래도 좀 쉬고 싶구나. 내겐 강행군이었다.”

“그럼 오늘 탐사는 여기에서 끝내겠습니다.”

세레나는 긴 한숨과 함께 벽에 기대 털썩 주저 앉았다. 가방을 어깨에서 내리니 끔찍할 정도로 아팠다. 쉬는 건 그녀 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투위블이 미궁 5층에 대해 알아낸 것을 경청하며 휴식 후 가볼 곳을 의논했다. 투위블은 미궁 5층에서 출몰하는 몬스터와 자신이 발견한 함정, 보물 상자의 위치 등을 이야기했다.

올리브와 브브는 투위블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는 한편 마법 지도를 베껴 그리느라 귀, 손, 눈이 동시에 바빴다. 투위블의 말에 따르면 밝을 때 등장하는 몬스터는 미궁 돼지였다. 참으로 저렴한 몬스터 패턴에 세레나는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근처에 출몰한 미궁 돼지는 투위블이 단신으로 때려잡았기 때문에 리젠이 되지 않는 이상 안전했다. 세레나는 신발을 벗고 발가락과 발바닥을 주물렀다. 물집이 잡히고 진물이 터진 발에 붕대를 감았었는데 붕대 밖으로 진물이 흘러나와 붕대를 갈아야 했다. 붕대를 줄줄 풀고 있자니 얘기를 끝마친 투위블이 재차 사죄하러 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공주님.”

“나는 내 발의 물집 때문에 인명을 경시하는 그런 악덕 왕족이 아니라네.”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세레나는 그만 사과하란 의미로 괜찮음을 돌려 말했는데 투위블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자신은 세레나를 악덕 왕족으로 여기지 않았다며 열성적으로 사과했다. 세레나는 순간 의심이 들었다.

‘나 설마 나쁜 사람으로 보이나?’

노안이 좀 있긴 해도 그렇지 않을 텐데? 세레나가 타인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이미지에 의심을 품는데 올리브는 투위블을 더욱 놀렸다.

“맞아! 기사 나리는 공주님에게 더 사과하고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해! 당신 구하느라 공주님이 왕자님에게 험한 말도 들었다고!”

원래 남매 사이엔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축문 같은 걸 자주 주고 받는 법이다. 부끄럽게도 세라프가 세레나에게 한 말을 탐사대 모두가 들은 모양이었다.

‘하긴. 귀가 달려있으니 들렸겠지.’

“공주님은 왕자님이랑 몇 살 차이에요?”

“세 살.”

“와, 근데 그걸 봐줘? 나 같으면 그냥.”

올리브가 두 손을 들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자기 동생이었으면 목을 졸라 버렸을 거란 제스처였다. 치고 박고 싸우는 남매 사이에 멱살 잡기나 가벼운 목 조르기를 가볍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세레나는 결코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었다.

“남매만 남았는데, 다퉈서야 쓰나. 그리고 이번 일은 내가 빌미를 제공했다.”

“아... 죄송합니다.”

세레나의 부모는 조카의 손에 목이 잘렸다. 부모가 죽은 일은 큰일이고 살해당했으니 더 큰일지만 당사자가 아니고 위험이 멀리 있으면 쉽게 잊히는 법이다. 올리브가 투위블 옆에 앉아 같이 석고대죄했다.

세레나는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죽어버리라니, 세라프의 말이 참 험하긴 했다. 세레나 자신도 욱해서 받아쳤고.

요즘엔 너무 오냐오냐 받아줬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바라는 애정은 주지 않으면서 엉뚱한 방향의 응석만 받아준 게 인성에 참 나빴나, 그렇게 후회를 한다. 세레나는 말없이 미소만 띄우고 붕대를 마저 갈았다.

피곤하다고 말했고 침낭도 펼치니 공주의 휴식을 방해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세레나는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침낭으로 얼굴을 가려도 미궁의 밝은 빛은 그다지 가려지지 않았다. 세레나는 조심스럽게 두 손을 모아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바로 풀었다.

부모님 얘길 꺼내 탐사대의 분위기를 어둡게 만든 것과 별개로 세레나는 부모의 죽음을 그리 슬퍼하지 않는다. 슬퍼하고 비통해하고 분노하는 건 모두 세라프였다. 세레나는 아니다. 세라프는 그 약쟁이와 광인에게도 애정을 갈구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세레나는 아니었다.

‘우울증도 무서워.’

약쟁이 살인마가 대놓고 위험하다면 우울증이 깊어 다른 병세까지 보이기 시작한 광인은 또 얼마나 무서운가. 세레나가 7살, 세라프가 4살이 되었을 때 리처드가 돌아왔다. 잠시 호전되었던 왕세자비의 광증은 시간이 지나자 더욱 심해졌으며 우울증 환자가 할 수 있는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우울증 환자가 자녀를 죽이고 자살하려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세레나만 해도 전생에서 신문기사나 인터넷 뉴스로 많이 보았다. 그러니까 광인인 모친이 천사처럼 예뻤던 4살 세라프의 목을 조른 것도, 살인과 자살이 모두 미수에 그친 것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살해당할 뻔 한 충격으로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딱 그 날을 기점으로 성격이 개차반이 된 것도 모두 있을 수 있는 일.

그 날 세레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단순한 환생자일 뿐, 주인공이 아님을. 그녀는 환생을 했지만 그 세계는 약쟁이 아버지와 정신병 환자인 어머니, 예쁜 동생을 행복으로 이끄는 휴먼 드라마 속 세계가 아니었다. 마왕이 있고 용사가 되어 세계를 지키는 모험물의 세계도 아니었다. 잘생기고 성격 좋은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는 로맨스의 세계도 아니었으며 추리물도, 정치물도 아니었다.

그냥 현실이었다. 전생과 조금 다른 현실.

마법과 정령술에 재능 있음을 기뻐하며 장차 세계를 구해야할지 모른다는 사명을 품고 있던 세레나의 중2는 그때 죽었다.

‘잘 된 일이야.’

세레나는 눈을 감았다. 몸이 너무 지쳐서 잠이 오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자야 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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