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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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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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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81,064

작성
18.10.2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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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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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
10쪽

신탁 4

DUMMY

‘더럽고 치사한 인간들.’

조금만 달라던 시간이 길어져서 아예 세레나만 빼놓은 회의가 잡혔다.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 세레나가 미궁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면 파티원 선정은 세레나가 선정해야하는 게 맞을 텐데 참 더럽고 치사했다.

제국과 비에타 왕국, 신관들이 추가 회의에 돌입한 동안 세레나는 회의에 참가하겠다 우기는 대신 신탁 보고서를 펼쳤다. 다행히 5황자가 랜디 백작을 회의에 참석시켰기 때문에 회의에 대한 내용은 랜디 백작에게 추후 들을 수 있었다.

세레나는 조급한 마음을 숨기고 보고서를 펼쳤다. 각 신의 이름과 신탁을 받은 신관의 이름, 신탁 내용이 종이 한 장에 하나씩 적혀 있었다. 미궁에서 사망하면 회귀하는 사건에 대한 또다른 언급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몇 장을 넘겨도 뜬구름 잡는 얘기만 이어졌다.

‘이건 뭐야. 공주한테 도와달라고 해? 대놓고 부려먹으라고 하네.’

회의하고 있는 인간들이나 속내 모를 신들이나 도긴개긴이었다. 인성과 신성이 더럽고 치사하단 사실을 되새기는 귀중한 순간이었다.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넘긴 세레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혹시나 했는데 대지의 신과 부패의 신 외엔 의미심장해보이는 신탁이 없었다. 신들 수준도 고만고만한 잡신이 대부분이었고 뜬구름 잡는 문장부터 도움!까지 쓸데없는 내용만 가득했다.

‘신탁 받고 무슨 소린지 몰라서 헛다리짚다가 다른 신관들 얘기하는 거 듣고 따라온 신관 있다에 내 남은 눈을 건다.’


보고서를 모두 읽은 세레나는 세라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5황자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해줄 겸 세라프의 호위를 서고 있는 루카스 경을 만나기 위해서다.

‘남은 기사가 몇이나 있지?’

대부분의 호위와 시중인은 반란 소식을 들은 직후 세레나가 쫓아내거나 알아서 도망갔다. 하지만 갈곳이 없거나 정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남매 곁에 남은 자들이 있었다. 미궁에 가려면 세레나의 사람이 필요하다. 타국의 기사는 믿을 수 없고 신의 뜻이 우선인 신관도 믿을 수 없다. 돈으로 고용하는 용병이나 모험가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결국 세레나가 믿을 구석은 갈 곳 없어 떠나지 못했거나 어설픈 잔정으로 남매 곁에 머무르고 있는 소수의 기사가 전부였다.

‘루카스 경은 괜찮았지.’

미궁 2층에서 개고생할 때 루카스는 꽤 괜찮은 충성심을 보였다. 동시에 그것이 그를 미궁으로 데려가기 곤란한 이유였다.

‘루카스 경까지 사라지면 세라프를 지킬 사람이 없어져.’

세라프가 누군가. 후천적 혐성을 습득해 길 가다가 눈 있는 칼과 화살에 맞아 죽기 딱 좋은 업보를 쌓아온 꽃쓰레기 아닌가. 게다가 있는 줄 몰랐던 개복치성도 획득했다. 루카스가 곁에 있을 때도 그렇게 잘 죽었는데 루카스도 곁에 없으면 훅 갈지 누가 아나.

‘기사야 그렇다쳐도 마법사... 힐러는 신관에게 모두 맡기고... 길잡이는 누굴 시키지? 결국 모험가를 고용해야 하나?’

미궁을 드나들며 얄팍하게 얻은 지식과 전생에 게임을 할 때 구성을 조합해보면 파티 구성은 중요했다. 일단 이벤트 아이템. 아니지, 키 퍼슨인 세레나 자신은 필수 인물이다. 10명 제한에서 1명이 짐짝이라니 피해가 막심했다.

‘전위는 반드시 필요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마법사도 필수고. 길잡이는 말할 것도 없지. 길잡이가 함정 탐지와 해체도 가능하면 좋지만 그게 불가능할 수도 있어.’

올리브는 길잡이와 함정 탐지를 모두 해냈지만 모든 모험가가 그게 가능하리란 법이 없다. 올리브는 스스로 주장하고 타인이 인정해주길 이름난 모험가였으니까.

‘원거리 물리 공격수도 필수... 영은 그대로 고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영 자체는 믿음직스럽지 않지만 그녀가 가진 힘은 진짜다. 그 힘을 써주지 않는 게 문제지만 궁수로서도 유능하고 미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니 고용을 이어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영이 동종 직업군에 보이는 호감을 생각했을 때 신관이 파티에 참가하면 그쪽에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지만 새 모험가를 고용하는 것보단 영을 고용하는 게 나을 듯 했다.

‘그럼 나와 영은 확정. 루카스 경은 그냥 데려갈까? 남은 기사가 몇이지?’

순서대로 짐짝(이벤트 아이템), 물리 원딜, 물방 겸 물딜이다. 미궁에서 마법사들의 활약이 미미했기 때문에 마법사를 아예 제외할까 싶었지만 그건 비에타 왕실 마법사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마법을 아꼈기 때문이지 마법이 필요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역시 마법사는 필수야. 하지만 흐지의 왕실 마법사를 데려올 수도 없고 결국 외부 마법사에 의존해야 하는데...’

3자리가 확정되었으니 7명이 더 필요하다. 세라프의 처소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세레나는 남은 호위의 수를 확인한 후 생각해보기로 했다.

세레나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동생은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었다. 비에타 왕실 시종이 시중을 들었고 루카스 경이 호위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얘 시종은 어디갔어?’

세레나가 백작 부인인 필리아를 시녀로 데리고 다니듯 세라프에게도 시종으로 다이크 백작이 붙어 있어야 했다. 성질 더러운 꽃쓰레기에게 아부를 퍼부으며 손을 비비고 가끔 부추기기까지 하는 전형적인 간신이었다. 세레나는 꽃쓰레기를 더욱 진화한 쓰레기로 만드는 다이크 백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세라프가 마음에 들어하는데다 세자의 성질머리를 버틸 시종이 몇 없다는 점에서 묵인했다.

‘그리고 잘생겼지.’

퇴폐미를 한창 풀풀 날릴 때의 세라프 옆에서도 기죽지 않는 미남이었다.

“저하의 시종이 안 보이네요?”

“퍽이나 빨리 묻는군. 하기야, 네가 나한테 신경 쓴 적이 있나.”

“다이크 백작은 반란 소식이 알려진 직후 도주했습니다.”

“저런.”

세레나는 예의상 탄식했다. 얼굴을 빼면 간신의 본보기였던 자라 놀랄 구석이 없었다.

“은혜도 모르는 놈. 흐지 왕가가 백작가에 내린 은혜를 잊고 주인을 버리고 도망가다니. 내 반드시 뒤쫓아 사지를 자르고 목을 칠! 으윽.”

세라프의 성질머리가 근육통에 꺾였다. 세레나는 루카스와 시종을 내보낸 후 뜨거운 물에 수건을 적셔 세라프의 몸에 얹었다.

세라프는 눈을 부라렸다.

“무슨 꿍꿍이야?”

타인의 호의를 의심하는 것만큼 쓰레기도 없다더라. 세레나는 해줘도 지랄인 동생에게 물을 뿌릴까하다 참았다.

“제국에서 널 달라고 하고 신탁이니 뭐니 네가 연관된 게 분명한데 나한텐 제대로 말해주는 놈이 없고. 무슨 꿍꿍이야?”

세레나는 둘러댈까 하다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놀라지 마. 내가... 세상을 구해야 한대.”

“너 진짜 미쳤냐?”

세레나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의 정신상태를 걱정하는 말투라 어쩐지 슬프게 들렸다.

“머릿속에서 누가 뭐라고 떠들어? 주위 사람들이 다 너더러 영웅이라고 떠받드는 거 같아? 그거 병인 건 알지?”

“남들도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걸 보니 미치지 않았어.”

“그래서? 미궁에 또 들어가겠다고?”

세라프는 기가 찬 듯 혀를 찼다. 세레나처럼 눈꼬리가 올라간 눈이 그녀를 향했다.

“정신 차려. 네가 뭐라고 미궁에 들어가.”

‘들어가기 싫은데 들어가라잖아.’

세레나는 이 부분에선 입을 다물었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세라프가 세레나에게만 지랄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세라프는 전방위에 지랄을 떨 것이다. 광역 지랄 트롤을 막으려면 숙련된 전문가가 어그로를 끌어야 했고 그건 세라프 한정 세레나 전문이었다.

“왜, 흐지의 왕권 복귀도 도와준다고 하고.”

“빈말이겠지. 그걸 믿냐?”

“미궁에서 나오는 보물은 내게 우선권을 준대.”

“뭐가 나오면 그게 어디에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는 알고?”

“영웅으로 모시겠다던데.”

“교사들이 수업 들어와서 제일 처음 가르쳤던게 뭔지 기억하지? 토사구팽이야.”

“리처드한테 복수하는 것도 도와준대.”

말하는 세레나도, 듣는 세라프도 신관들이 내건 조건이 이뤄질 확률 낮은 빈말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티격태격 말싸움을 이어갔는데 리처드 얘기가 나오자 세라프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 증오가 얼룩졌다.

“정말?”

사람은 아닌 걸 알면서도 속을 때가 있다. 너무나 절박하여, 눈이 멀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세레나는 세라프가 반박하지 않자 참으로 이기적이게도 상처 받았다. 이기적인 걸 아는데 그랬다.

“우와, 누나 목숨 팔아서 살긴 싫어도 누나 목숨 팔아 복수는 하고 싶은가봐?”

그래서 세레나는 떠오르는 대로 입에 담았고 말해놓고서 상처 받았다. 말한 세레나가 이랬으니 들은 세라프는 더 많이 아팠을 것이다.

채 스무해도 살지 못한 소년의 눈에 증오가 가득찼다.

“네가 미궁에서 뒈졌으면 좋겠어.”

동생이 종종 입에 담는 장수의 축문이 오늘따라 진짜 저주처럼 느껴졌다. 세레나는 미안한 마음에 진실을 밝혔다.

“미안. 나 미궁에선 안 죽어.”

“꺼져!”

세레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침실을 나갔다. 세라프는 제 성을 견디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물건을 모두 집어던지며 식식거렸다.


이와 비슷한 대화를 미궁에 들어가기 전 나누었다. 그러자 세라프는 저도 모르게 문을 보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세레나가 헛소리를 지껄이며 세라프의 멱살을 잡고 침실 밖으로 이끌 것 같았다.

“......”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세라프는 침실 밖으로 나가 누나의 멱살을 잡는 대신 술병을 쥐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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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경 오류 부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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