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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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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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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81,064

작성
18.10.2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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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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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글자
11쪽

신탁 2

DUMMY

마음 같아선 보름 동안 욕조와 침대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더러운 현실이 세레나를 침대에서 일으켰다. 랜디 백작이 도착하면 가능한 빨리 만나고 싶단 의사를 전했더니 필리아가 새벽 5시에 세레나를 깨웠다.

세레나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랜디 백작은 몇 시에 돌아왔니?”

“방금 전에요.”

제국 사람에게 새벽까지 붙들려 있던 남편을 쉴 틈도 주지 않고 상전에게 대령하는 그 마음. 충성심인가 눈치가 없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아내의 말에 그대로 따르는 랜디 백작은 등신인가 애처가인가.

새벽부터 자신이 이어준 잉꼬부부를 보고 있자니 피곤해도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물론 물대신 마신 체력회복과 피로회복용 포션이 한몫했을 테고.

랜디 백작의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랜디 백작은 세레나를 보자마자 무릎 꿇었다.

“생환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대로 뒀다간 세레나가 돌아오지 않았을 경우 필리아가 자살이라도 했을 거라며 공주님의 안전이 곧 필리아의 안전이라 눈물을 흩뿌릴 게 분명했기 때문에 세레나는 랜디 백작의 입을 막았다.

“그만. 알다시피 난 어제 미궁에서 돌아와 바로 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아는 게 없어. 가능한 상세하고 간략하게 보고해줬으면 해.”

상세와 간략이 동거할 수 있는 위치인가 말하면서도 의심이 들었지만 랜디 백작은 곤란해하는 기색 없이 문서를 꺼냈다. 세레나가 미궁에 들어간 이후 벌어진 일들이 시간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호오, 준비성이 좋구나.”

“모험가 길드의 보고서를 참고했습니다. 길드에선 미궁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은 모험가들을 위해 소식지를 매일매일 제작하고 있기에 공주님께 도움이 될까 싶어...”

“큰 도움이 된다. 고맙다, 랜디 백작.”

신탁 보고서에 이어 읽을 게 또 늘었다. 하지만 세레나는 자신의 기억력을 불신하기 때문에 이렇게 문서화한 보고서가 좋았다. 보고서를 넘긴다고 직접 보고를 거르는 것도 아니니까.

“어쩜, 당신은!”

제 남편의 섬세함에 다시 반한 필리아가 랜디 백작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필리아에게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랜디 백작의 인생 목적이었기에 랜디 백작의 광대가 치솟았다. 부부는 1분 정도 꽁냥거린 다음 기다리고 있는 공주를 위해 떨어졌다.

“먼저 제국에서 5황자 전하를 보냈습니다. 5황자 전하는 공주님의 신병 이전을 요청했고 니도 여왕은 거부했으나 국경에서 군대가 움직여, 실로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국의 일방적인 정복 전쟁이 벌어질 뻔 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공주님이 비에타의 미궁 공략에 나섰다고 밝힐 수도 없었습니다. 제국에선 어디까지나 공주님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니, 만일 공주님께서 위험한 미궁 1층이 아닌 아랫층에 계시다고 밝히면 미궁까지 제국군이 돌입할 구실을 주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신탁이 아니었다면 비에타는 제국에 무릎 꿇었을 것입니다.”

만약 세레나가 미궁 아랫층으로 내려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한들, 제국은 믿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자란 십대 왕족이 타국의 미궁에 자진해 들어간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게 분명했다. 결국 제국은 비에타가 세레나를 숨겨놓고 내놓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실력행사에 돌입하려고 했다. 신탁은 비에타가 가장 궁지에 몰렸을 때를 맞춰 내려왔다.

‘신의 자비라기 보단... 대놓고 노린 타이밍인데.’

인간에게 무관심한 신들이 국가별 세력 다툼에까지 관심을 둘 리 만무하건만 타이밍이 워낙 좋다보니 신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이전엔 비에타가 실제로 제국의 실력행사에 당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땐 신탁이 내리지 않았던 것이겠지. 흘러간 일은 지금과 비슷할 거야. 그런데 그땐 신탁을 내리지 않고 지금은 내렸다... 무슨 차이지?’

차이라고 해보아야 자신이 개복치처럼 동생을 보다 못해 미궁으로 끌어들인 것이 전부였다.

‘나비효과인가?’

세라프는 제국의 5황자에게 개기다 죽었다. 니도 여왕이 손님으로 맞아들인 타국의 왕족을 죽인 사건이니 전쟁이 앞당겨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신들이 인간의 세력 다툼에 신경 쓰지 않고 동일한 시점에 신탁을 내린다고 가정할 경우, 세라프의 사망으로 인해 침략이 앞당겨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지나간 일이야,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지.’

세레나는 머리를 휘젓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제국은 신탁을 어떻게 생각하지?”

“제국 내에서도 여론이 반반이지만 폐하의 의견은 변함이 없습니다.”

신탁이 사실이든 아니든 흐지의 공주를 데려오라는 것이 황제의 의견이라니.

“비에타의 미궁이 비에타의 숙업이었듯, 마굴은 제국의 눈엣가시였습니다. 그걸 공략할 수 있다면 황제 폐하는 무엇이든 하실 겁니다. 그 덕에 저와 같은 자들이 총애를 누리기도 했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오늘 회의에서 제국측은 공주님을 요구할 겁니다. 공주님을 회유하려 들 수 있지만 믿지는 마십시오. 혹하는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속으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랜디 백작이 멋쩍어하며 필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저는 제국측에 서야할 것 같습니다.”

“여보!”

필리아가 새된 목소리로 랜디 백작의 이름을 불렀다. 랜디 백작은 안절부절 못하며 두 여성에게 동시에 변명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고, 그것이 공주님을 모시는데 도움이 됩니다. 제국을 배신하지 않은 척해야 앞으로도 공주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부인, 그리고 공주님! 제가 살아생전 부인을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부인께서 공주님을 배신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세라프와는 다른 의미에서 맞는 말이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 랜디 백작이 필리아를 위해 자신을 배신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세레나였기에 그녀는 백작을 더 추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작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믿어주셔야 한다며 애원했다.

“나야 응당 백작을 신뢰하지. 그나저나 곤란하군. 더는 미궁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세계멸망. 그게 뭐라고 답지 않게 신탁 대출혈 서비스를 해주고 지랄이냐 이 말이다. 도망쳤다간 제국군은 물론이고 대륙 각지에 분포된 신관과 신자들에게도 쫓길 판이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나...”

아무렴 공주가 들어가기 무섭다고 엉엉 우는데 억지로 끌고 들어갈까. 신탁의 주인공이 세레나였으니 협박을 하기보단 살살 달래 회유하려들 것이다. 혹시나 싶어 세레나는 거울을 보고 표정 연기를 해보았다. 눈물은 잘 나왔다.

“오늘도 회의는 나 혼자 들어가야겠구나...”

리처드가 반란한 이후 처음으로 나라 뺏긴 서글픔이 세레나의 가슴을 잠식했다. 랜디 백작이 제국측에 선다고 말했는데 아내인 필리아를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왕세자 전하와 함께 가시는 건 어떠십니까?”

그런 동생이라도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며 랜디 백작이 넌지시 권했지만 세레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놈의 꽃쓰레기가 회의장에서 입을 다물고 있다면 모를까 입을 열 게 뻔한데 데리고 갈 순 없었다.

‘걜 데려갈 순 없지. 안 그래도 황자에게 개기다 죽...’

세레나는 하나 있는 눈을 번쩍 떴다. 세레나가 일어났다는 건 세라프도 일어났다는 소리다. 세라프는 어제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내리 잤으니 세레나보다 먼저 일어나 그간 있던 일을 보고 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질문.

우리의 꽃쓰레기 트롤러가 누나를 요구하는 제국 황자가 근처에 있다고 들었을 때 보일 반응은?

1. 누나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얌전히 있는다.

2. 찾아가서 따진다.

주제를 모르고 분수를 모르고 얼굴만 예쁜 꽃쓰레기를 미궁으로 끌고 들어간 이유가 무엇이었나. 그래도 하나뿐인 혈육이라고 살리려고 한 것이다. 꽃쓰레기의 인성을 잘 알고 있는 랜디 백작이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고 꽃쓰레기를 추천한 이유가 무엇이겠나. 그래도 하나뿐인 혈육이라고 추천한 것이다.

그 하나뿐인 혈육이 고새 사고를 쳤을리 없겠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세레나는 다급히 물었다.

“세자 전하는 무얼하고 계시지?”

“전하시라면 새벽 중에 기침하시어 근황을 들으시고 분노해 제국 대사관에 찾아가겠다고 하시다가.”

“그 새끼가!”

“전신 근육통에 쓰러지셔서 와병 중이세요.”

천만다행인 소식에 세레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히려 랜디 백작이 의아해했다.

“세자 전하께도 근육과 피로 회복에 좋은 포션을 보내드렸는데?”

“......”

필리아는 갑자기 남편 눈치를 살피더니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정말 미안해요, 여보. 그렇지만, 그렇지만 공주님이 너무 피곤해보이셔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정말 미안해요!”

세라프 몫의 포션을 빼돌려 세레나에게 올인했다는 필리아의 고백에 랜디 백작이 가슴을 쳤다.

“부인께서 죄송할 일이 아닙니다! 공주님의 피로를 예상하지 못하고 포션을 부족하게 준비한 제 잘못이에요!”

부부는 서로 제 탓이라 우기며 아낌없이 금슬을 자랑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포션을 빼돌렸기에 세레나는 마음에도 없는 꾸중을 하고 풀 죽은 필리아에게 앞으론 그러지 말라 엄중이 경고했다. 마음 같아선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고 싶었지만 만약 이게 피로회복 포션이 아니라 회복 포션이었다면? 필리아가 주인인 세레나를 우선시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세라프를 세자 전하라고 꼬박꼬박 불러주는 입장에서 그러면 안 되었다.

대략적인 보고가 끝나고 회의 시간이 가까워지자 필리아는 세레나의 치장 준비를 시작했다. 랜디 백작이 인사하고 나가려는 때, 세레나는 그를 불러 명령했다.

“가능하면 세자 전하가 5황자 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다오. 아예 봉쇄해버려.”

“만약 황자 저하가 만나 뵙겠다 하시면...”

“거짓말을 해도 좋으니 못 만나게 해.”

랜디 백작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결연한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 전하의 미모라면 걱정되긴 하시겠죠. 전하 얼굴도 못 보게 하겠습니다.”

‘뭔 소리야?’

“그나저나 공주님 대단하십니다. 5황자 저하께서 양성애자인 건 제국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인데. 특히 남자 쪽 취향이 선이 가는 미소년이라는 사실은 저도 이번에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미 알고 계셨다니. 아, 약혼 얘기가 있어서 귀띔 들으신 건가요?”

‘아냐, 지금 처음 들어.’

세라프가 5황자에게 개기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추가되었다. 어쨌든 기분이 찜찜하기 때문에 세레나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둘이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해줘. 꼭.”


작가의말

전하와 저하가 혼용되어 있는데 이건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8.10.23 22:29
    No. 1

    잘못했다가 우리 계획이 틀어지는 수가 있으니.. 라고 하면 될거같긴 한데.
    최악의 경우 죽을수도 있으니 라고도 가능하고.
    어쨌건 고생이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공냥이공공
    작성일
    19.03.13 18:59
    No. 2

    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쪽이었어ㅋㅋㅋㅋㅋㅋ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8 sw******
    작성일
    19.04.05 14:07
    No. 3

    10층 가면 회귀해서 다 안죽고 행복하게 바꿀 수 있는걸까? 글고 리처드가 7년? 미궁을 그리 파티를 짜며 들락거렸는데 왜 아무도 모른건지? 제국의 술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Magpie
    작성일
    19.04.30 23:14
    No. 4

    리처드가 7년만에 깬 미궁은 흐지 왕국에 있고 지금 파티와 함께 공략하는 미궁은 제국에 있는 다른 미궁이니까요. 즉 리처드는 솔플로 10레벨 미궁을 공략한 괴물이라는 거죠; 역시 이귀한 모델인거 같...(퍽)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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