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58,292
추천수 :
3,597
글자수 :
481,064

작성
18.10.31 00:13
조회
501
추천
34
글자
11쪽

신탁 7

DUMMY

‘그야 그렇겠지.’

너무 뜨거워 세레나가 화상 입을 것 같은 사명의식과 별개로 캐서린은 상당히 강해보였다. 세레나는 추천인 명단에서 캐서린을 찾았다. 겉보기에 걸맞게 경력이 참 화려했으나 딱 하나 그녀의 발언과 모순되는 부분이 있었다.

“미궁을 탐험한 경력은 없구려.”

“대지에 발붙여 사는 이들은 모두 우리의 벗.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미궁이라고 다르진 않을 겁니다.”

“글쎄, 어떨까 싶소. 미궁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은 불가사의한 곳이니. 비에타의 미궁 2층에서 리치가 나왔단 이야기는 들었소?”

“들었습니다.”

세레나에게 호된 미궁 신고식을 치러준 리치는 여전히 2층 보스룸에 석상처럼 서 있었다. 그런 강력한 몬스터가 다시 나오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2층 같은 초반에 등장했으니 반드시 다시 등장할 것이다. 세레나가 전생에 플레이한 모든 게임의 세이브 파일을 걸고 맹세할 수 있었다.

“미궁과 밖은 많이 다르다오. 전투에 끼지 않은 나도 느낄 수 있었소.”

“그래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야 당연하겠지.’

뭘 모르는 세레나가 보기에도 전사로서 상당히 강해 보이는데 신관이라 신성력도 쓸 수 있다. 캐서린이 휘두르는 신성한 망치 앞에 몬스터들 뚝배기가 모조리 깨질 것이다.

“그래도... 미궁 경력자가 이렇게 많은데 굳이 캐서린 신관을 고집할 필요는...”

“편하게 카렌으로 괜찮습니다.”

‘오네보다 기사같네.’

캐서린은 어지간한 기사보다 더 진중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레나는 그녀를 파티에 넣기 싫었다. 진지진지 열매를 먹은 파티원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솔직히 영 빼고 모두 진지진지 열매를 한 바구니 잡쉈지.’

비에타 출신들이야 가끔 세레나의 기백에 휘말려 그녀 말하는 대로 따르긴 했지만 이제부턴 파티원에 타국인이 낀다. 정신을 바짝 차리려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레나는 운신이 힘들어졌다.

세레나는 미궁에서 사망할 경우 무조건 미궁에 입장한 직후로 회귀한다. 자연스럽게 미궁 공략 작전은 그녀가 짜게 될 것이다. 하기 싫어도 같은 데서 계속 죽으면 갑갑해 끼어들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때 세레나가 핑계댈 것은 미궁의 신이 내려주신 은총 하나뿐이다.

그 동안은 편했다. 파티에 신관이 없고 본인이 성녀라고 주장하는 컨셉 중2병 환자는 세레나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파티에 제정신 멀쩡하게 박힌 진지진지 열매먹은 신관님이 들어온다면?

세레나가 하는 개소리가 전부 거짓말인 게 탄로난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미궁에서 가장 먼저 보호해야할 대상인 공주님이 사실 미궁에서 죽으면 과거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물론 세레나를 보호하긴 하겠지만 또 모른다. 이번 공략은 텄으니 과거로 가 제대로 공략해달라며 세레나를 죽일지도. 동료가 죽었으니 살려달란 의미에서 그녀를 죽이려 들지도.

세레나가 미궁에서 죽는 방법은 하나라는 신탁이 이미 나와버렸으나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끽해야 미궁 내에서 공주에게 크나큰 불행이 닥치지 않으리라고 해석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정말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렇게치면 신관은 모두 위험하지만.’

결론은 캐서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세레나가 미궁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당연 캐서린을 1픽으로 꼽았을 터다. 하지만 세레나는 미궁에 들어가게 되었고, 기왕 들어간다면 미궁 공략 외의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캐서린을 데려가면 스트레스 받을 게 불보듯 뻔했다.

“미궁은 역시 경험자가.”

“공주님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댁이 이럴 것 같았으니까 파티에 안 넣으려는 거야.’

세레나가 슬쩍 넘기려는 것을 굳이 말해 분위기가 싸해졌다. 분위기가 싸하다고 생각한 건 세레나 혼자 생각이었는지 캐서린은 태연했다.

“제가 공주님의 안위를 무시하고 대의를 중시했다여겨 서운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캐서린, 대지의 뜻을 받들어 공주님을 모시고 미궁에 들어간 순간부터 제 목숨보다 공주님을 더 위할 것이라 맹세드립니다.”

“음... 어...”

“필요하시다면 신께 맹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싫은 건데.’

캐서린처럼 대의명분이 확실하고 올곧게 사는 사람은 좋으면서 싫었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 환생하고 인생 막 산 세레나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회개해 환생물 주인공임을 자각하고 세계를 구하렴^^.

대지의 신이 이런 전언이라도 보내는 느낌이었다. 세레나는 억울했다. 그녀의 전생에선 세계 구하는 환생물보단 하렘이나 차리면서 띵까띵까 놀고먹는 이세계 환생물이 붐이었는데! 정작 세레나는 하렘은 커녕 양손에 꽃이라고 쥔 게 유부녀와 꽃쓰레기였다. 이게 진짜 환생물이면 이런 법은 없는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내게 필요한 건 실력보다 내 안전을 우선시해줄 사람이오.”

“마땅히 공주님을 수호하겠습니다.”

“심지가 굳은 사람보다 가는 사람. 융통성이 있고 파티원 모두의 안전보다 내 안전을 우선시해줄 사람. 세계 평화를 위해 마땅히 공주 한 명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이보다 공주 편에 서서 화내줄 수 있는, 내 사람.”

캐서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공주님의 뜻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되면 미궁을 공략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겁니다. 언제 세계가 망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시간을 낭비할 순 없습니다.”

“바로 그게 문제라오. 언제 어떻게 세계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것. 도대체 신들께서 말씀하시는 세계 멸망이 무엇이오? 우리가 사는 이 대지가 쪼개져 산산조각나기라도 하오? 아니면 지상 위 생물이 모두 불에 타 죽기라도 할까?”

미궁의 신은 리처드를 막지 않으면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들은 리처드에 대한 언급 없이 세계 멸망을 말한다. 둘이 같은 멸망인지 다른 멸망인지 모르겠는데 세레나가 막아야 한단다.

무슨 수로?

치트 능력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세레나에겐 그런 게 없다. 개고생하느니 그냥 확 다 같이 망해버리고 환생이나 하는 게 낫다 싶을 정도다.

그런 세레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캐서린이 안 그래도 진지한 목소리를 더 진지하게 깔았다.

“멸망에 대해선 신관마다 해석이 분분합니다. 공주님의 결정을 돕기 위해 제가 생각하는 멸망을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생명체가 모두 죽는단 소리오?”

“제가 죽으면 세계가 사라집니다.”

“무슨?”

“말그대로입니다. 제가 죽어도 세계가 멸망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으면 저의 세계는 멸망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라 캐서린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세레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캐서린은 계속 말을 이었다.

“회의 때도 말했듯 신성한 분들께선 인간에게 큰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건 알고 있소.”

“그런 분들께서 세계 멸망을 막으라 하셨습니다. 저는 이걸 그분들의 세계가 멸망하기 때문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은 내 세계의 멸망이다. 죽은 이후 새 세계를 살게 된 세레나에겐 와닿지 않는 말이었지만 적어도 캐서린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이해했다.

“신이 죽는다는 것이오?”

“신성하고 고귀한 분들께서 달리 무엇을 멸망이라 하겠습니까.”

신이 죽는 게 가능한가? 만일 가능하다면 신이 죽었을 때 이 세계에 미치는 여파는 어떠할까? 세레나는 캐서린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리를 굴렸다. 일하지 않는 머리가 과부하를 일으켜 짜증이 치솟았다.

“위대한 대지를 모시는 미천한 종의 독자적인 해석입니다. 동료들에게도 너무 과격한 해석이라 질타받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어디까지나 공주님의 결정을 돕기 위해 제 멸망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공주님. 캐서린이 세레나를 직시했다. 지나치게 올곧은 눈이라 세레나는 그 눈을 보기 싫었다. 굳은 심지가 세레나를 채찍질했다.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제 멸망은 죽음입니다. 공주님의 멸망은 무엇입니까?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이에게 공주님이 생각하는 멸망이 닥쳐온다면, 그 멸망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제 각오를 받아들여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세레나는 캐서린이 나갈 때까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세레나에겐 멸망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멸망으로 생각할 죽음이 그녀에겐 여러 번 찾아왔기 때문이다. 미궁에서 죽은 것을 죽음으로 치지 않더라도 세레나는 이미 한 번 죽었다. 환생이 실재하는 걸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처럼 죽으면 모두 끝이라는 절박감이 부족했다.

암살자들에게 쫓기며 절박감이 부활하는 듯 했으나 미궁에서 여러 번 죽고 되살아나며 도로 뭉개졌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에 집착하려면 미궁에 들어가선 안 된다. 미궁은 세레나에게 셀 수 없는 죽음을 선사하고 그와 같은 횟수의 부활을 약속했다.


“......”

세레나는 세라프를 위해 단검을 찔러 넣었던 목을 매만졌다. 필리아는 그녀가 대화를 많이 해 목이 아파 그러는 줄 알고 차를 타왔다.

“필리아, 네가 생각하는 세계 멸망은 뭐니?”

“공주님께 큰일나는 거요. 공주님이 제 세계예요. 그러니까 미궁 들어가시면 안 돼요.”

필리아는 이때다 싶었는지 세레나 앞에서 은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세레나는 내친 김에 랜디 백작도 찾아가 물었다. 랜디 백작의 세계 멸망은 필리아의 죽음 또는 필리아와 헤어지는 것이었다. 필리아와 만나기 전엔 연금술사답게 진리가 세계였다고 한다. 그 시절의 세계 멸망이 무엇이냐 물으니 답하기를.

“죽음... 이었을 겁니다. 죽는 순간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 막히니까요.”

진리보다 사랑을 선택한 연금술사는 숙취에 좋은 약을 제조 중이었다. 세레나가 그건 왜 만드냐 묻자 필리아가 즉각 고했다.

“전하께서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쓰러지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부탁했어요.”

‘이 새끼가?’

세레나는 눈을 부릅떴다. 세라프의 사망 원인 중엔 급성 알콜 중독이 있었다. 지금 죽으면 되살리지도 못하고 그간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간다. 약이 완성되자마자 세레나는 약을 받아 직접 세라프를 찾아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35 카르니보레
    작성일
    18.10.31 05:41
    No. 1

    솔직히 아무리 막장가정환경이라도 세레나 같은 막장은 아무 변명이 안됩니다. 역시 갱생메테오가 시급하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8.11.19 11:27
    No. 2

    또 언제 오시려나... (눈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선예나
    작성일
    19.03.30 16:19
    No. 3

    그러고보니 미궁에서 죽는 한가지 방법이 뭔지?
    미궁에서는 죽어도 회귀하고 죽으려면 미궁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나가서 죽으면 미궁에서 죽는게 아니니...
    저 세상이 애초에 미궁이라는것도 아닐거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4 lliliill
    작성일
    19.08.12 16:25
    No. 4

    미궁에서 죽는방법은 99층에서 소원으로 죽여달라고 한다고 비는거 아닐까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9 신탁 8 +31 18.12.25 1,517 76 12쪽
» 신탁 7 +4 18.10.31 501 34 11쪽
87 신탁 6 +5 18.10.26 474 36 10쪽
86 신탁 5 +4 18.10.25 445 32 11쪽
85 신탁 4 +3 18.10.24 456 36 10쪽
84 신탁 3 +2 18.10.24 437 38 16쪽
83 신탁 2 +4 18.10.23 430 33 11쪽
82 신탁 1 +3 18.10.21 472 38 15쪽
81 구명 11 +4 18.10.20 504 34 13쪽
80 구명 10 +7 18.10.20 484 37 11쪽
79 구명 9 +5 18.03.12 511 42 15쪽
78 구명 8 +8 18.03.03 491 37 21쪽
77 구명 7 +4 18.03.02 475 37 18쪽
76 구명 6 +3 17.04.30 639 38 16쪽
75 구명 5 +1 17.04.28 570 38 11쪽
74 구명 4 +4 17.04.28 585 39 7쪽
73 구명 3 +5 17.04.28 527 35 9쪽
72 구명 2 +2 17.04.26 540 34 7쪽
71 구명 1 +2 17.04.26 538 35 12쪽
70 비에타의 미궁 4층 6 +2 17.04.25 584 32 10쪽
69 비에타의 미궁 4층 5 17.04.25 524 41 10쪽
68 비에타의 미궁 4층 4 17.04.25 521 41 14쪽
67 비에타의 미궁 4층 3 +1 17.04.24 559 33 10쪽
66 비에타의 미궁 4층 2 +1 17.04.24 552 38 9쪽
65 비에타의 미궁 4층 1 +2 17.04.24 595 40 10쪽
64 비에타의 미궁 3층 2 +1 17.04.23 559 40 12쪽
63 비에타의 미궁 3층 1 +3 17.04.23 600 38 12쪽
62 최종보스의 의무 2 +4 17.04.22 605 37 17쪽
61 최종보스의 의무 1 17.04.22 591 42 11쪽
60 복습 3 +5 17.04.19 619 38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