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58,262
추천수 :
3,597
글자수 :
481,064

작성
17.04.19 23:23
조회
618
추천
38
글자
11쪽

복습 3

DUMMY

움직이면서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법사는 마법사라 말할 자격이 없다. 세레나에게 부족한 건 이론 공부보다 실전(?) 연습이었다. 시작은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기초 빛마법이었다. 세레나는 의자에 앉은 채 광구를 만들었다.

“이제 일어나보세요.”

“......”

“공주님. 집중력이 깨지시면 안 됩니다.”

세레나가 의자를 밀고 일어나자 광구가 공중에 흩어졌다. 세레나는 급하게 주문을 완성했다. 선 채로 마법을 성공시켰지만 랜디 백작은 여전히 나무토막처럼 움직일 줄 모르는 공주의 신체를 지적했다.

“주문이 완성되었으니 유지하는 건 약간의 인식과 마력 공급이면 됩니다. 결국 공주님의 마법이 실패하는 건 마력 공급에 집중하지 못하셔서 그렇습니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랜디 백작은 망토 안쪽에서 작은 약병 세 개를 꺼내더니 저글링을 시작했다. 그는 저글링을 힘겹게하며 수월하게 광구를 만들어 유지시켰다.

“전력질주를 하거나 몬스터를 상대할 때, 이런 식의 잔재주를 부리고 있을 때에도 마법 주문을 완성하고 성공하는 것이 바로 그 주문의 숙련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공주님께선 3위계 마법 주문을 모두 터득하셨지만 1위계 기초 주문의 숙련자도 되시지 못하는 거죠.”

개당 1만 골드짜리 포션으로 힘겹게 저글링을 끝낸 랜디 백작이 약병을 집어 넣었다. 병이 깨질지 몰라 조마조마해하던 세레나는 그제야 박수를 쳤다.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필리아도 좋아했다.

“그런 건 언제 배웠어요, 여보?”

“연금술사 길드에 들어갈 때 신입 환영회를 도망치지 못했거든요.”

선배와 스승들 앞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용이었단 소리다. 겨우 3개를 아슬아슬하게 해내는 모습에서 천재 연금술사의 손재주 스탯이 저글링엔 반영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앉았다 일어서는 것이 일어선 상태에서 걷는 것보다 신경이 분산되기 때문에 세레나는 마법을 유지하면서 걷는 것부터 연습했다. 덕분에 공주님의 산책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엔 침실이었고 나중엔 공터, 이후엔 비에타의 미궁 1층 전역으로 산책 구역이 확장되었다. 공주님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것에 신경 쓰던 경비병들은 달팽이 마냥 느릿느릿 걷는 세레나에게 금방 익숙해졌다.

비에타의 미궁 1층 경비병은 본래 관광객들을 상대해서 그런지 붙임성이 좋았다. 그들은 타국의 가엾은(?) 공주님이 열심히 마법 수련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그래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공주님, 안녕하세요!”

큰 목소리로 인사해서 집중력 분산시키기.

“공주님! 거기 미궁쥐!”

거짓말로 놀래켜서 마법 실패하게 만들기.

“공주님, 미궁 2층은 어떠셨습니까? 혹시 저희에게 미궁 2층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금이라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억울한 게, 2번대 한스는 2층 담당이 되었는데 저희 1분대는 공주님 호위를 맡게 되었다구요. 공주님 호위같은 명예로운 일이 싫다는 게 아니라 제가 이 비에타의 미궁 경비를 선 게 자그마치 8년 입니다! 그 8년 동안 미궁 1층은 벽의 곰팡이만 봐도 어느 구역인지 알 정도로 지긋지긋한데 2층이 뚫렸고 동료들이 거기서 근무하니 제가 얼마나 궁금하겠습니까!”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수다 폭탄을 떨어트려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자도 있었다.

경비대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세레나는 걸으면서 1위계 기초 마법의 숙련도를 충분하게 높였다. 그녀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하면서 주문을 완성하고 복수의 주문을 동시에 성공하는 등의 쾌거를 이뤘다.

“이제 남은 게 뭐가 있지?”

“전력질주하면서 마법 쓰기랑 저글링이요. 그런데 공주님, 저글링이 꼭 필요할까요?”

“앞구르기를 하면서 마법을 연습하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서 넣었지. 필리아 너는 어떠니, 진척은 있었고?”

필리아의 진도는 마력을 느끼는 부분에서 그쳤다. 정령 소환이 쉽다는 미궁인데 이렇다할 자연물이 없어서인지 필리아는 정령 소환을 성공하지 못했다.

“죄송해요, 공주님.”

세레나가 노력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 만큼 필리아도 뭔가 이룩하기 위해 열심히 애썼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보니 재능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상태였다. 세레나는 그런 필리아를 위로했다.

“정령들은 순수한 사람을 좋아하니까 너는 금방 소환할 수 있을 거야. 나도 어릴 때는 소환이 꽤 잘 되었었는데... 요즘은 안 되더라. 너무 순수와 멀어졌나봐.”

세레나는 그 부분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태해지기 전이나 지금이나 속은 여전히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는 타락한 어른의 영혼인데? 울어서 순수를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령이 원하는 순수란 도대체 무엇인지.

전력질주와 저글링에서 세레나의 수월했던 진도도 거대한 벽을 맞이했다.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노력했지만 얻은 소득이라곤 지구력 향상과 5개 저글링에 성공한 것이 전부다. 오늘도 미궁 내부를 전력 질주해야 하는 것인가, 세레나가 익숙해진 근육통과 함께 아침을 맞이한 어느 날.

비에타의 미궁 1층이 소란스러워졌다.


비에타의 미궁 1층 곳곳에서 경비를 서던 경비병들이 최소한의 인원을 남기고 한 곳으로 움직였다. 세레나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눈치 채고 하녀를 시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고 오도록 명령했다. 돌아온 하녀의 얼굴은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3층 탐사대가 귀환했다고 합니다.”

“사상자는 있다더냐?”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소인이 미처... 탐사대장인 오네 경은 무사한 걸 확인했습니다.”

“아니다. 자세하게 알아오라하지 않았으니까.”

세레나가 미궁 1층에서 착실하게 마법 수련을 하는 동안 비에타의 미궁 공략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 영과 올리브는 니도 여왕과 추가 계약을 하고 탐사대에 껴서 착실하게 3층을 공략하고 있었다. 세레나는 대충 소요된 시간을 확인했다. 그녀가 탐사대와 함께 2층을 공략하는데 걸린 시일보다 1주일이 더 걸렸다.

‘공략을 한 건가?’

이제는 그녀의 일이 아니다. 세레나는 관계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3주, 세레나 입장에서 보자면 거의 2달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했던 파티였다. 부상자나 사망자는 없는지, 미궁 3층도 세레나가 죽음으로 캐리한 미궁 2층처럼 꿀을 빨았는지 이것저것 궁금증이 치솟았다.

오네 경이 3층의 초심자였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을 것 같지만 최초의 2층 탐사가 생각나니 오네 경만 제외하고 전멸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세레나는 친히 나가 상황을 살폈다.

비에타의 미궁 1층 입구 쪽으로 가니 익숙한 얼굴들이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세레나를 발견한 3층 탐사대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세레나는 얼른 그들에게 편히 쉬라고 말했다.

“다들 무사한 것 같으니 다행이네.”

초심자의 가호 덕분인지 비에타의 3층 미궁 탐사대는 큰 부상자 없이 전원 귀환에 성공했다. 어찌된 이유에선지 전원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바닥을 긁고 있긴 했다. 영을 제외한 모두가 몹시 피곤해보였다.

“빛... 빛이 필요해...”

“일광욕...”

“햇빛이 보고 싶어요.”

“내 누운!”

“다들 참아라. 여기서 바로 나가면 시력에 안 좋아.”

미궁 밖으로 나가 휴식을 취해야할 탐사대가 세레나가 뒷북칠 때까지 미궁 안에 버티고 있던 데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세레나가 의문을 표하자 기운 넘치는 영이 오네 대신 대답했다.

“3층은 전체가 완벽하게 어둡습니다. 태초의 모습이 그러했을까요? 크큭, 신의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했죠.”

“저런.”

세레나는 바로 탐사대가 딱해져 말을 잇지 못했다. 제대로 된 광원이라곤 미궁에서 발견한 랜턴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돌아다니고 몬스터를 상대하자니 참으로 고역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어둠 속에 너무 오래 있으면 미친다는데 탐사대가 태양을 외치는 이유가 명백했다.

“4층 계단은 찾았소?”

세레나는 다음으로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사실은 이 질문이 가장 앞에 왔어야 했는데 탐사대 모습이 하도 수상해서 질문이 뒤로 미뤄졌다. 탐사대는 전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흐지의 공주 세레나는 관계자가 아니지만 2층을 함께 돌았던 정이 있어서일까. 탐사대는 세레나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2층이 단순한 갈림길 구조였다면 3층은 미로입니다. 길이 복잡하고 동선이 꼬여있어서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했습니다. 귀환을 결정한 건 파티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입니다.”

“나라에서 주도하는 탐사는 이래서 귀찮다니까... 느려 터져선...”

나라에서 주도하는 탐사는 느리더라도 안정지향적이다. 소중한 인재를 미궁에서 잃는 건 큰 낭비이니까. 이런 소극적인 공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올리브는 연신 투덜거렸다.

“이 정도 페이스면 5층까지도 갈 수 있었는데... 물자도 넉넉했고 무기도 괜찮고. 영, 너도 동의하지?”

“금방 나온 건 나도 아쉬워. 하지만 가끔은 고리타분한 국가의 룰에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직 미궁 초입이라 바깥 공기를 자주 쐴 수 있는 것은 이런 때 느낄 수 있는 호사다. 10층을 넘기면 그때부턴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니. 크큭.”

오랜만에 듣는 영 특유의 웃는 소리가 참 정겨웠다. 영이 발동걸린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큭, 크크큭하고 웃었다. 3층 전체가 어둡다고 하더니 계속 어두운 곳에 있는 바람에 기분이 들뜬 모양이었다. 물론 영의 어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땐 그냥 미친 사람이었다. 아니면 좀 모자라거나.

“그나저나 기사님 초심자 맞아요? 어떻게 가자는 길마다 다 막다른 길이야! 우리 공주님은 찍어주시는 길이 다 맞는 길이었는데!”

“그건 면목이 없군.”

올리브는 몬스터도 허접하고 함정도 없는 허접한 3층을 공략 못한 것이 전부 오네가 찍기를 잘못해서라며 마구마구 타박했다. 내내 잘못 찍은 건 사실인지 다른 기사들이나 마법사들도 올리브를 말리지 않았다. 올리브가 은근슬쩍 세레나의 손을 잡았다.

“아아~ 공주님이 길 찍어주실 때가 그리워요~. 그때 진짜 편했는데~. 미궁 신의 후손님~ 가호 좀 주세요.”

“무례하다!”

필리아가 기겁하여 세레나의 손을 빼냈다. 올리브는 필리아를 보더니 눈을 가리고 바닥을 굴렀다.

“아악! 너무 눈부셔! 내 눈!”

세레나는 탐사대의 편한 휴식과 안구 건강을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미인을 데리고 퇴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9 신탁 8 +31 18.12.25 1,515 76 12쪽
88 신탁 7 +4 18.10.31 501 34 11쪽
87 신탁 6 +5 18.10.26 474 36 10쪽
86 신탁 5 +4 18.10.25 445 32 11쪽
85 신탁 4 +3 18.10.24 455 36 10쪽
84 신탁 3 +2 18.10.24 435 38 16쪽
83 신탁 2 +4 18.10.23 429 33 11쪽
82 신탁 1 +3 18.10.21 471 38 15쪽
81 구명 11 +4 18.10.20 503 34 13쪽
80 구명 10 +7 18.10.20 484 37 11쪽
79 구명 9 +5 18.03.12 510 42 15쪽
78 구명 8 +8 18.03.03 490 37 21쪽
77 구명 7 +4 18.03.02 474 37 18쪽
76 구명 6 +3 17.04.30 639 38 16쪽
75 구명 5 +1 17.04.28 566 38 11쪽
74 구명 4 +4 17.04.28 585 39 7쪽
73 구명 3 +5 17.04.28 526 35 9쪽
72 구명 2 +2 17.04.26 540 34 7쪽
71 구명 1 +2 17.04.26 537 35 12쪽
70 비에타의 미궁 4층 6 +2 17.04.25 583 32 10쪽
69 비에타의 미궁 4층 5 17.04.25 524 41 10쪽
68 비에타의 미궁 4층 4 17.04.25 521 41 14쪽
67 비에타의 미궁 4층 3 +1 17.04.24 559 33 10쪽
66 비에타의 미궁 4층 2 +1 17.04.24 552 38 9쪽
65 비에타의 미궁 4층 1 +2 17.04.24 592 40 10쪽
64 비에타의 미궁 3층 2 +1 17.04.23 558 40 12쪽
63 비에타의 미궁 3층 1 +3 17.04.23 600 38 12쪽
62 최종보스의 의무 2 +4 17.04.22 604 37 17쪽
61 최종보스의 의무 1 17.04.22 590 42 11쪽
» 복습 3 +5 17.04.19 619 38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