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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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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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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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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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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11화

DUMMY

경무국장이 해군 자금 횡령과 운송 사건과 열차에서 돈가방을 가지고 트럭에 올라탄 강도들의 연관성을 직감하고 즉시 긴급 수사를 지시한지 2시간여 후였다.


경성지부 대원들이 회의실로 쓰는 귀빈실 식탁 위에 돈가방들이 올려진다. 마침 견성암에서 돌아온 정우와 주리도 들어온 차였다. 다들 얼마나 들어있을지 기대하고 가방을 열어젖힌 순간이었다.


“뭐야 이거!”


“이게 다 뭐다냐!”


다들 놀람과 경탄, 그리고 당혹감이 뒤섞인 말들로 한 마디씩 한다.


“이거 다 달러잖아!”


재호의 손에 잡힌 파릇파릇한 종이뭉치는, 앞에 벤저민 프랭클린의 얼굴이 떡하니 그려진 100달러 지폐가 한두름 묶여 있는 것이었다. 가방 속 모든 지폐가 다 100달러 지폐였다. 엔화가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달러가 가득 튀어나오니 청년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진다.


“돈세탁이군.”


천 지부장이 눈썹을 찌푸렸다.


“아니면 달러로 결재하는게 더 편하다던가.”


“야, 이거 환전하려면 시간 꽤나 걸릴 것 같습니다.”


명수가 고개를 흔든다. 지폐를 전부 세어본 후 달러와 중국 원의 환율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한 후에 환전하는 것도 큭일이 될 것 같았다.


“이놈들 하여간 해처먹어도 참 징글징글하게 해처먹습니다. 제놈들이 멋대로 쓸 수 있는 쌈짓돈 만들려고 애 참 많이 썼어요.”


민호가 달러 뭉치를 들어보며 이죽거린다. 육군성에서 편성된 정식 예산도 아니고 해군 건함예산을 횡령해서 쓴 돈이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여하튼 그들은 한 참의를 속여서 손에넣은 돈보다 훨씬 많은 금전을 손에 넣게 되었다. 대단한 경사였지만, 이번에는 기쁨과 함께 불안감이 병존한다.


천 지부장이 엄격히 선언한다.


“우리는 적군의 비자금을 훔쳤다. 관동군은 물론이고 조선군도, 더 크면 육군참모본부나 육군성 수준에서 움직이며 이 돈을 회수하려 들 것이다. 아마 놈들이 개성에 도착하자마자, 또는 열차 안에서 민간용 전신을 통해 상부에 보고했을 것이니, 헌병의 검문이 심해지는 것도 시간 문제다.”


“더군다나 해군 또한 예산 횡령을 눈치챘다면 역시 예산을 되찾으려 들 겝니다.”


혜월 스님의 말이다.


“게다가 달러입니다. 이 나라에서 달러를 보는게 흔한 일이 아닌 이상, 섵불리 환전을 시도한다거나 그런다면 꼬리를 밟히게 될 수 있음입니다.”


조선에 들어온 외국인 중 미국인들이 달러를 환전소에서 교환하긴 하지만, 그 수가 절대적으로 많지는 않았다. 헌병은 분명 달러의 유통에 수사 초점을 맞출게 분명하다. 갑자기 환전소에서 대량의 달러를 교환하고, 그 정보가 흘러나온다면 헌병대가 추적해 올게 분명하였다.


“그렇다면 이거, 잘못하다 그림의 떡이 되는 거 아닙니까?”


대석이 투덜거린다. 다들 막대한 달러의 양을 보고 황홀해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감당하지 못할 너무 큰 금액이 그들 손에 들어온 것 같았다.


달러 뭉치들을 본 왕 채주도 눈이 커지며 기겁한다.


“대협. 대인께 우선 보고드리고 결정을 받아야 합니다만,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우리 쪽에서 환전하거나 송금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정도의 달러를 확보했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헌병 놈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사태가 잠잠해지고 나서야 조금씩 환전하거나 송금한다면 모를까, 지금 달러 채로 송금하다가 검문에 걸려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겉잡을 수 없게 됩니다.”


“알겠소. 옥룡회에 폐를 끼칠 수는 없지. 이 돈은 어떻게 할지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사실 다들 이 돈을 환전하여 임시정부의 예산으로 쓰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하필 거금이라도 달러로 입수하는 바람에 송금도, 환전도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옥룡회에 맡기고 이후 차차 송금을 한다 하더라도, 언제 헌병대가 검문을 완화할지 미지수이며 또 임정이 계속 상하이에 머물고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당장 보낼 수 없는 달러는 사실상 쓸모가 없었다.


“아깝게 저걸 그냥 보고만 있어 한다냐.”


명수가 팔을 괴고 한숨이다. 이 엄청난 돈을 얻었는데 쓰지도 못한다니!


그런데 그때, 목소리 하나가 올라온다.


“저, 제게 생각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주리의 목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주리에게 집중된다. 주리는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고 정우를 바라본다. 정우는 주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는 눈치다. 괜찮다고 눈으로 말해 준다. 그 태도에 용기를 얻었는지 작은 입술이 열린다.


“이 달러로, 최필성 사장님이 아버지 회사를 인수하게 하는 게 어떨까요?”


이 생각은 정우와 함께 야생화 밭에서 뒹굴던 그때부터 떠오른 것이었다. 황홀감에 휩싸여 일을 치르고는 정우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누워있을 때, 갑자기 불안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아버지 회사가 망하면, 거기서 일하던 직원들과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어요?”


자기 품 속에서 애교부리던 주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정우는, 그 말에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한 참의가 몰락하고 그의 회사가 부도가 나 공중분해될 시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될 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한 참의같은 악덕 기업주에게서 벗어나 다른 일을 찾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던 터였다.


“분명 아버지가 비인간적일 정도로 그 사람들을 부려먹는다 해도, 다들 거기 생계가 달려 있잖아요?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면 어디서 일할 곳을 다시 구해요?”


정우는 주리의 걱정 가득한 질문에 구체적인 대답을 해 주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었다. 정우는 생각을 최대한 짜내서 대답해 주었다.


“너희 아버지 회사는 그래도 규모가 있고 또 수익성도 있는 회사니 다른 회사에서 인수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러나 주리가 걱정하는 깊이는 정우보다 더 깊었다.


“그 회사도 아버지처럼 여공들을 그렇게 마구 다룬다면요? 그리고 또 인수한 이후에 원래 공장에 있던 사람들 자리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면요?”


그 말에 정우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14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키면서도 주급 1원도 주길 아까워 하며 별별 핑계로 임금을 삭감하려는 자들, 그런 자들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자 조직한 노동조합을 원수로 보고, 사회주의 조직으로만 보고 없애려 하는 기업주가 한 둘이던가? 한 참의는 그러한 자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한 참의가 사라지더라도, 그 자리에 또 다른 한 참의가 앉으면 같은 비극만 반복될 뿐이다.


그때 주리가 손바닥을 딱 치며, 얼굴에 웃음을 짓는다. 뭔가 좋은 생각이 난 것 같았다.


“그러면요! 최필성 사장님에게 아버지 회사를 인수해달라고 해요!”


“뭐? 최 사장님에게?”


“그래요! 최 사장님은 금광 터트려서 돈도 많이 버셨고, 옥룡회 통해 금괴도 밀수해서 더 버실 거잖아요! 아버지 회사 망하면 회사 주식이 말 그대로 똥값이 될 건데, 최 사장님 재력으로는 망한 회사 정도 인수하는 거 간단하잖아요!”


정우도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필성 사장은 광부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 대표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노조와 함께 노동조건과 임금인상에 대해 직접 만나서 협상하는 사람이다. 그런 기업주가 한 참의의 방직회사를 인수한다면, 적어도 최악의 노동조건에서 혹사당하는 여공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정우는 걱정되는 바가 있다.


“하지만 최필성 사장님도 하시는 사업이 있어. 아무리 돈이 많으시더라도 이제까지 경영해보지 않은 방직사업에 손을 대시는 건데, 무리 없이 받아들이실까?”


주리도 그것은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잠깐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녀의 입에서 결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래도요. 제가 오빠 따라 독립운동하게 된 계기도, 고모님이 제가 어째서 이렇게 편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를 아버지 공장에서 보여주셨기 때문이예요. 전 아직도 그 애들의 증오 가득한 눈이 떠올라요. 그 애들이 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손이 기계에 씹혀 다쳐도 치료는 커녕 따귀나 얻어맞는 삶을 살때 전 뭐했냐는 그 눈빛이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살게 두고 싶지 않아요. 당장 직접 걔네들을 직접 도와줄 수는 없어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단 말예요.”


그 말을 하며 주리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본 정우는, 주리 손을 꼭 잡아준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최 사장님께 부탁드려보자. 인정이 있으신 분이니, 네 부탁을 외면하지 않을 거야.”


그 대답에 주리는 코를 훌쩍이면서도 정우 입술에 다시금 열정적으로 입을 맞췄다.


그런데 대백루에 내려와 보니, 막대한 양의 달러 뭉치를 보게 되었다. 이는 실로 하늘이 내린 기회 같았다. 이 돈은 본디 정부를 위해 써야 한다는 생각에 잠깐 참았지만, 달러를 당장 송금하지도, 환전하지도 못함이 확실해지자 입을 연 것이었다.


최 사장님에게 아버지 회사를 인수해 달라고 하자. 회사의 직원들과 노동자들의 고용을 그대로 유지해 주고 노동조건을 대거 향상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그리고 그 조건을 달성하는 대가로, 이 달러를 최 사장에게 주자.


“게다가 최 사장님 아드님은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달러를 환전해서 헌병의 의심을 받아 아들에게 받았다고 둘러댈 구석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차츰차츰 환전한다면

사장님도 별 탈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리의 말을 들은 청년들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이야. 이걸 그렇게 쓸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재호의 말이었다.


“어차피 우리가 못쓸 거, 더 값지게 쓰는 게 낫지!”


민호가 신을 내며 말한다. 대석은 거세게 고개를 끄덕이고, 종팔도 “아껴 봤자 똥된다.”라며 동의한다. 다만 명수는 그래도 아깝다는 표정이었다. 이 돈은 현재 정부 예산규모에서 몇 년치 예산을 넘어서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있어 봤자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또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라 수긍하고 만다.


혜월 스님은 주리가 이런 생각을 고안한 데에 매우 기뻐하며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선여인이여. 관세음보살의 자비로다.”라며 주리를 급구 칭찬하니, 주리가 헤헤 웃으며 몸둘바를 모른다.


“지부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우가 주리를 대신해서 묻는다. 천 지부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제자들이 한 마디씩 할 동안 지긋이 달러 다발을 보고 있었다. 주리가 그걸 보고 침을 다시 삼킨다.


다행스럽게도 지부장의 말은, 주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하였다.


“최 사장을 불러 오거라. 그 조건에 대해 이야기해 봐야겠다.”


주리는 그 말에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만세!”라고 소리지를 뻔했다.


그로부터 30여분 후, 업무 중이다가 난데없이 호출당한 최 사장이 들어왔다.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업무 중이었는데요.”


그러며 투덜거린 최 사장은 식탁 위에 올려진 달러 다발들을 보고 “아니, 저게 뭡니까!”라고 기함을 토했다. 그의 눈에 이 달러들이 참으로 휘황찬란하게 보인다.


“방금 전 작업으로 얻은 것이오. 그리고 사장의 사업자금이 될 수도 있는 돈이요.”


“뭐, 뭐라고요?”


최 사장이 눈을 번쩍 뜨고 입을 쫙 벌리는데 콧구멍까지 벌어진다. 그리고 입에서 나온 소리는 이리하였다.


“우리 정부가 이런 대단한 환급 제도를 가지고 있었단 겁니까?”


“그런건 없소. 납부한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환급받는 제도가 세상에 어디 있소?”


지부장이 딱 잘라 말한다.


“이 달러는 사장이 우리의 조건을 지켜야 받을 수 있소. 그 동안 돈은 왕 채주가 맡아둘 것이오.”


“어, 어떤 조건입니까?”


“사장이 한 참의의 방직회사를 인수하는 것이오. 인수가 공표되는 날 달러를 받을 수 있을 것이오.”


최 사장은 왜 자신이 한 참의의 회사를 인수해야 하는지 당장 알 수는 없었지만, 머리는 계산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어차피 그 회사는 한 참의가 사기당했다는 게 드러나면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을 것이었다. 투자자들은 일제히 발을 뺄 것이고 그럼 주가는 바닥을 뚫고 내려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자신의 재력으로는 일도 아니다. 이후의 운영은 방직업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이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긴 했지만, 눈 앞에 저 어마어마한 달러를 보니 그건 아주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한 참의 회사가 망하면, 그 회사를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좋소. 하지만 세부조건들이 더 있소. 그것까지 다 확인하셔야겠소.”


“알겠습니다. 그 조건을 지금 보고 싶습니다!”


“기다리시오. 아직 작성 중이니. 차라도 한잔 하시오.”



최 사장은 지부장의 권유에 별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들었다. 차를 홀짝이며 이 달러가 횡령된 해군 예산이자 관동군의 비자금으로 쓰일 돈이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말에 최 사장은 “이거 제가 폭탄을 떠맞게 된 느낌인데요?”라고 한다. 군부의 자금을 자기가 가지게 된다는 것이 영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미국 기업에서 중장비를 구매하느라 달러를 쓸 일이 있었으니, 제가 의심받은 일은 없을 겁니다.”라며 호탕하게 군다.


그렇게 차 한잔 마실 시간이 다 지났을 때, 귀빈실 문을 활짝 열고 청년들이 주리를 앞세우고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지부장님에게 먼저 들으셨죠?”


주리는 그러며 최 사장 앞에 서류 하나를 들이민다. 지하실에서 타자기를 가지고 청년들과 함께 상의하며 써낸 조건이었다.


“저 애가 직접 작성하겠다고 한 거요. 검토를 부탁드리겠소.”


최 사장은 “어디 봅시다.”라며 서류를 집어들고 꼼꼼히 검토한다. 그는 첫 줄부터 보고 놀라 한다.


“직원 전체의 재고용? 허어!”


“사장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리가 최 사장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애꿏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할 수는 없어요! 사장님께서 부디 덕을 베푸시어 이 사람들도 고용해 주세요!”


“어음.······ 이거 참······.”


최 사장은 선뜻 대답하지를 못한다.


“회사 상태에 따라서 인수한 후 구조조정을 결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말했을 때, 최 사장은 주리가 양 볼을 최대한 부풀리고 그를 지긋이 쳐다보는 것을 보아야 했다. 동시에 천 지부장이 손가락으로 달러 뭉치를 툭툭 건드리는 것도 보았다.


결국 최 사장은 “뭐, 괜찮겠지.”라며 다음 단락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는 기겁한다.


“아, 아니! 주급 500퍼센트 인상?”


“사장님! 열에 괄호 친 것도 봐 주셔야죠!”


주리가 딴죽을 걸자 최 사장은 그제야 (원 주급은 70전이었음) 이라고 쓰인 부분을 본다.


“아 그렇군. 그나저나 한 참의도 사람을 이렇게 부려먹다니······.”


500퍼센트 인상이라는 조건에 놀랐지만, 원 주급이 너무나도 적은 까닭에 다시 보니 큰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 다음 조항들로 시선이 옮겨간다.


“노동조합 조직 인정···... . 음. 이건 당연한 거고. 고용보험, 상해보험, 건강보험 가입···... 역시 당연한 거지. 1일 노동시간 8시간 제한에 특근 또는 잔업 발생시 상여금 지급······. 근무시간이야 그렇다 치고 한 참의가 상여금도 안해 줬나?”


“우리 아버지 그런 사람이에요.”


주리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최 사장이 혀를 쯧쯧 찬다.


“공장에 의무실 설치······ 채광창 설치······. 환기구 설치······ 관리자가 노동자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할 시 해고 및 고발사유가 될 수 있음······. 직원의 정기 건강검진······. 연중 12일의 유급휴가······”


사실 속으로는 이래도 수익이 나오긴 하냐고 의문을 가지는 최 사장이었다. 한 참의가 일본 의류회사에 원단을 최저가로 납품하는 경로를 뚫어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은 들어 알았기에, 이 정도의 인건비 인상을 하면 거래처가 다 끊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들었다. 그럼에도 눈 앞의 달러가 너무 눈이 부셨기에 거부할 수가 없었다.


진지하게 조항을 읽던 최 사장은, 마지막에 가서 허허 웃고 말았다.


“아니 공장에 야학까지 열라는 것은 조금 심하지 않은가?”


주리가 그 말에 종알댄다.


“사장님! 그 애들은 집안 생계를 위해 몸바쳐 일하며 배우고 싶은 건 하나도 배우지 못하고 있어요! 한참 꿈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애들인데 방적기계 앞에만 있으라는 건 너무 가혹해요! 부디 덕을 베푸셔서······.”


“알았네. 알았어. 내가 자선사업 한번 한다고 치지.”


최 사장은 껄껄 웃더니 “이거 주리 양이 우리 회사 노조 대표라면 아주 대하기 껄끄러웠겠어.”라며 농담을 던진다. 이에 민호가 “얘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읽기 전에 『공산당선언』 읽었다면 아주 빨간 물이 들었을 걸요!”라고 하자 천 지부장을 제외하고 다들 웃음을 터트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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