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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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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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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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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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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99화

DUMMY

히로요시가 하산한 지 약 24시간 후의 경성역 대합실은 한산했다. 승객 몇과, 그리고 밤의 추위를 피해 들어온 것 같은 거지 몇 명만 있다. 거지들은 동냥용 깡통을 내놓고 벙거지를 깊이 눌러쓴 채 처량히 앉아 있다. 어찌나 추운지 거적데기를 몸에 꽁꽁 둘렀다.


이른 아침부터 봉천행 열차를 타야 하는 후지무라 토비자루 중위는 초조한 얼굴로 대합실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의 복장은 평소의 황갈색 육군 군복이 아닌, 말쑥한 양복에 중산모를 눌러쓰고 구두를 신은 전형적인 신사의 복장이었다. 혹시 헌병대에 추적을 당하더라도 군인 신분을 노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임무는 쉬웠다. 부산발 경성행 새벽차를 타고 도착한 국주회 신도들에게 현금이 든 가방을 넘겨받는다. 그걸 가지고 봉천행 열차에 타서 봉천으로 간다. 봉천에서 자금은 그들의 친애하는 후배이자 사령부 비서실의 미나모토 신이치 중위가 특무기관 소속 인사들과 함께 직접 수령하게 되어 있다. 그 길로 이시와라 중좌에게 전화로 보고하면 임무는 완료된다. 정말 간단한 임무였다.


그러나 강한 불안감이 계속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다른 곳도 아닌 거금을 봉천 특무기관에 전달하는 일이다. 그것도 그냥 거금이 아니다. 제국해군의 건함예산에서 빼돌려온 것이다. 소련이나 중국, 미국 같은 적성국이나 잠재적성국의 자금도 아니다. 아무리 국방예산을 가지고 더 많이 확보하겠다고 싸우고, 병사들이 길거리에서 만나면 으르렁댄다 할지라도, 해군은 제국의 국방을 책임지는 두 기둥 중 하나다. 그것도 다른 예산도 아니다. 해군의 핵심 전력을 양성하는데 극히 필수적인 건함예산이다. 제국은 지상에서 소련과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동시에, 해상에서는 미국과 영국을 상대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육군과 해군 중 중요하지 않은 쪽이 없다. 그런데 그 해군의 전력에 어느 정도라도 손상을 입할 일을,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후지무라 중위의 머릿 속에는 네 글자로 된 단어 하나가 맴돈다.


이적행위.


이건 이적행위다. 분명 이적행위다. 평소 고까운 아군이라도, 아군은 아군이다. 그런 아군의 돈을 빼돌려 우리 예산으로 삼는 것은, 절대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다.


평소의 그였다면 이건 말도 안된다고 뿌리쳤을 것이다. 그런 걸 하기 전에 육군성에서 정식으로 예산을 편성받을 수 있도록 최고위직 사람들을 설득할 방안을 찾아보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자신이 단독으로 맡은 임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임무를 맡은 친구들의 태도였다.


“테츠. 다시 생각해 보자.”


후지무라 중위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은인이자 친우, 아오야기 테츠오 중위에게 간절히 말했다.


“이건 심각한 이적행위야. 아무리 해군 예산이라지만 남의 예산을 도둑질하는 작업에 가담하는 거라고! 그것도 전력획득 비용을! 분명 이런 방법을 쓰지 않고도 공작금을 마련할 방법이 있을 거야!”


아오야기 중위는 여전히 혼란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들 중 누구보다 이시와라 간지 중좌를 숭배하다시피 존경하고, 작전과의 장교로서 중좌를 직접 모시는 그였다. 그런 이시와라 중좌가 중국 폭력집단들을 규합해 오족협화의 적으로 지목한 자들을 처리하려 하고, 이들에게 쓸 자금을 위해 해군 예산을 빼돌려 송금하는 임무를 내렸다는 것은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일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은, 시간이 흐르며 가시고 있었다.


“모르겠어, 토비? 이건 중좌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대단한 임무야!”


아오야기 중위의 얼굴은, 혼란에서 황홀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흡사 검술에 자신 있는 막부 말기 유신지사가 계속 별것 아닌 임무만 맡아 초조해 하고 있다가, 신선조의 곤도 이사미나 히지다카 토시조를 살해하는 작전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우리는 협화의 적들을, 동아세아의 다섯 민족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막는 적들을 없애는 역사적 임무에 참여하는 거라고! 독립운동을 한다며 일본과 조선의 사이를 분열시키려는 조선의 정치꾼들, 배일감정을 부추겨 자기 입지를 다지려는 중화민국의 정치꾼들, 그리고 그것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려 드는 소련 공산주의자들! 이놈들을 사전에 처리해야만 우린 세계최종전쟁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거라고! 동양의 왕도가 서양의 패도를 꺾고 세계가 팔굉일우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날을!”


후지무라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그렇게 열변을 토하는 아오야기 중위의 표정이 너무나도 열렬했기에, 그리고 너무나도 순수했기에.


“하지만 이건 예산 도둑질······.”이라고 반박을 시도하긴 했으나, 아오야기 중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해군 따위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 중좌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어! 세계최종전쟁에 쓰일 결전병기가 개발되면, 해군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라고! 쓸데없이 예산과 인력을 잡아먹는 존재가 될 거라고 말이야! 게다가 군축조약으로 묶여 있는 지금의 해군에, 그렇게 예산이 많이 필요하기는 할까? 그저 해군 제독들의 주머니 속에나 들어갈 예산이라고! 헛되이 쓰이게 될 예산, 우리가 더 값지게 쓸 수 있는 거잖아!”


후지무라 중위는 그날 만큼 엄청난 후회를 느낀 적이 없었다. 사관학교 내내 같은 방을 쓰며, 그가 부라쿠민인 세츠코와 연애한다는 이유만으로 퇴학당할 뻔한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친구가, 이시와라 간지 중좌의 이상에 감동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그 자신도 이시와라 중좌의 휘황찬란한 환영에 넘어간 것도 후회스러웠다.


그는 말했다. 사관학교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다 알고 있다고. 그래서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열등생만 가는 군수참모 보직만 맴도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 사회에서 여전히 부라쿠민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는 말했다. 묘법연화경의 가르침,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은 그 어떠한 존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 명시하고 있다 하였다. 그 누구도 신분 때문에 능력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쳐 근대화가 진행되었으나 여전히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하였다. 자신처럼 능력 있는 자들이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였다.


이때 이시와라 중좌의 태도는 강렬하였다. 지금의 일본은 썩어빠진 예토(穢土)라고 열변을 토했다. 다들 천황 폐하를 현인신이라고 하면서도, 정치권이건 군부건 진정 폐하를 현인신이라고 믿으며 따르는 자들은 극히 적다. 다들 나라가 아니라 자신만 생각하여 그러는 것이다. 이러면 장차 다가올 전쟁에서 이 상태로라면 서구를 이길 수 없다. 다가올 세계최종전쟁에서 패할 뿐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썩은내 나는 예토를 맑고 아름다운 정토로 바꾸어야 한다. 그 누구도 출신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을 인정받는 세상, 누구도 천한 태생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일본의 모두가 현인신이신 천황 폐하 아래 동등한 신민으로써 권리를 누리며 니치렌 대성인의 진정한 가르침을 따르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자, 본관과 함께 갈 지어다. 본관과 함께 예토를 정토로 바꿀 지어다! 이 드넓은 만주가 그 대업의 첫걸음이 될지니, 대성인의 가르침이 우리와 함께 하노라!


그때의 후지무라 소위는 가슴이 불타올랐었다. 평소 대범한 척 하는 그도, 친구들과 부인 앞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굴며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어제 누가 어딜 갔는지 추리해 내던 그도 장교요, 사내였다.


그가 부인과의 일 때문에 퇴학 위기에 처하고 한직만 맴돌게 된 것이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을 리가 없었고, 가끔 자다 일어났을 때 울분이 가슴 속에서 치고 올라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퇴근하면 항상 밝은 미소로 그를 맞아주는 세츠코를 볼 때마다, 그런 그녀를 부라쿠민이란 이유로 백안시하는 세상을 활활 불태워버리고픈 충동을 느꼈었다. 그런 그에게 이시와라 간지의 주장은 복음과 다름이 없었다. 그가 말한 대로 세계최종전쟁 이후 팔굉일우의 세상이 오면, 아니 그 전에 세계최종전쟁을 위해 일본이 하나가 되는 세상이 오면 일반인과 부라쿠민의 구분은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 없어질 터였다. 모두가 다 폐하의 신민으로써 하나가 될 것이니.



그러나 만주사변 이후, 흥분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의구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연대 군수과에서 참모부 군수과로 가며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직접 처리할 수 있었다. 만주의 중국인과 만주인, 그리고 조선인들은 오족협화라는 만주국의 정신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게릴라가 들불처럼 일어났고, 사방팔방에서 게릴라에 대응하는 부대들이 군수품 소요가 쏟아졌다. 중국 국민정부와 소련의 사주로 일어난 일이라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후지무라 중위는 각종 사고사례들을 보며 알만 하다고 생각했다. 헌병대는 물론이고 일반 병사들은 만주에서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좋았다. 이들은 총칼을 들이대며 아무 집이나 들어가 고기와 여자를 내놓으라고 하고 있었다. 게릴라 근거지로 파악된 마을을 초토화시켜 버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이 만주 땅에서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계속해서 출몰했다. 후지무라 중위는 자신이 참여한 지난 사변의 명분이 대체 무엇인지 의문에 빠졌다. 정말로 이시와라 중좌가 말한 대로 만주에 만주인의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인가? 오족협화가 실현된 정토를 만들기 위해서가 맞는가? 그게 맞다면, 우리 관동군은 대체 이 만주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친구들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만 말했다. 아직 만주에서 제대로 관동군이 질서를 잡지 못해서 생기는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라고. 그런데 정말로 그렇다면, 현상은 미리 대비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사전에 만주 점령의 목적이 무엇인지 사령부부터 일개 병사들까지 모두 숙지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만주 점령 직후 현지인에게 무서운 적군이 아닌 친구로 다가갔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관동군의 지금이 이런데, 누가 오족협화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마당에 이시와라 중좌의 임무지시는, 마음 속에 쌓이고 있던 회의감을 전면으로 부상시키기에 충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친우 아오야기 중위가 저렇게 열렬한 국주회 신도가 되어 니치렌 대성인 말씀, 다나카 선생님 말씀을 되뇌이는 것도 서서히 곤란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후지무라는 그래서 이번에는 우에스기 중위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에스기는 지금의 아오야기 만큼은 열렬하지 않다.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도 그저 중좌에다가 그의 능력을 존중하는 상관이 받들라 해서 받드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타산적이고 계산적인 그의 성격 때문일 것이었다.


“사부로. 너도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 건 알고 있지? 만약 잘못된다면······.”


그러나 우에스기 중위는 망설이는 얼굴이면서도, “잘못되지 않으면 더 좋잖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알잖아. 이시와라 중좌님이 대좌로 진급하셔서 중앙으로 가시는 거. 저번 사변의 영웅이신데, 대좌에 머물러 계시겠어? 더 영향력 있는 자리에 가실 것이 뻔하잖아. 이번 일이 성공하면, 우리에게 한 자리씩 안 내려 주시겠어? 대위 진급과 육대 입학 정도는 무리 없이 보장될 거라고. 그냥 서류가방 속에 든 돈만 옮기면 다 끝나는 거잖아.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그냥 기차에 타고 복귀해서 신이치에게 전해주면 다 끝나.”


후지무라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오야기 중위가 중좌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영광에 흠뻑 빠져 있다면, 우에스기 중위는 이 돈을 옮겨서 받을 대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진급과 출세를. 쿠스노기 중위에게는 구태여 묻지 않으려 했으나, 혹시라도 하는 생각에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하였다.


그러나 역시 기대한 만큼의 대답이 나왔다.


“젠장! 난 우리 중대 애들에게 군인은 X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라는 거라고 늘 말한다고! 내가 내 말을 어길 수는 없잖아!”


그래. 너 답다, 모토스케. 후지무라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던지라, 자기를 부리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야. 돈 왔다니깐.”


우에스기가 채근하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눈 앞에는 국주회 신도로 추정되는 각양각색의 차림을 한 사내들이 와 있었다. 아오야기는 이들에게서 돈가방을 받고 있었다.


“수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 여기서 현금을 확인하진 마십시오. 최종 금액은 도착한 후에 알게 되실 겁니다.”


이들을 이끌고 온 사람으로 보이는 자가 속삭였다.


“아무래도 우리는 빨리 가봐야 겠습니다. 미행이라도 당하면 곤란하니까요.”


“알겠습니다. 대성인께서 그대들을 축복하시길.”


이 신도들은 말이 끝나자마자 서둘러서 대합실을 벗어났다. 마침 플랫폼에 그들이 사둔 봉선행 열차가 들어오기 얼마 전의 시간이었다. 후지무라 중위는 텁텁한 마음을 안고 자기 몫의 돈가방을 챙겨 들어 플랫폼으로 향한다.


그때 그가 눈치채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대합실 벽에 앉아 있던 거지들이, 그들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오고 있던 것이었다. 후지무라 중위는 머릿속이 복잡하여, 이 거지들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 거지들이 날카롭게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있음도 알지 못하였다.


4인용 2등객차에 탄 그들은 무거운 침묵을 유지하였다. 어느 정도인지 모를 막대한 자금이 그들 손에 있었다. 3등객차도 아닌 2등객차에 탄 이상 분실할 위험은 일절 없겠지만, 그래도 이 돈을 가지고 있다는 책임감이 상당했다.


우에스기는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은 건 어색하다고 생각했는지, “도둑잡기라도 할래? 나 카드 있어.”라고 하지만, 다들 침묵으로 거부한다.


그런데 열차가 20여분 쯤 달렸을 때, 갑자기 열차가 느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들었다. 그 직후 안내방송이 나온다.


-승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대단히 죄송하옵게도 본 열차는 피치 못하게 서행으로 운행하게 되었습니다. 개성 도착 시간이 늦어질 예정이오니 승객 여러분께 양해 말씀 거듭 드리겠습니다.


“저게 뭔 소리야!”


쿠스노기 중위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아오야기 중위도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서행 운행이라니, 이건 뭔 소린가? 이럼 열차가 늦어진다는 것이 아닌가!


“뭐 때문에 저러지?”


“역무원이라도 잡아 물어볼까?”


아오야기 중위가 지나가던 검표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검표원도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다른 손님들도 영문을 알 수 없이 열차가 서행하게 되어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항의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나 돌겠네. 지금 봉천에 연락해야 하나.”


우에스기 중위가 투덜거렸다. 열차가 그들은 열차에 구비된 민간용 무선전신이 어디 있는지 미리 파악해 놓지 않은 관계로 그걸 찾으려 일어나려 한다.


누군가 갑자기 차앙을 걷고 확 나타난 건 그때였다.


“실례하겠네.”


갑작스런 예기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장교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난빛이 스쳐 지나간다. 이 사람도 양복에 중절모 차림인데, 인상은 범상치 않았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얼굴에 주름이 잡힌 중년 이상의 연배로 보이는 자였다. 전반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얼굴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맹수와 같은 눈빛이었다. 보는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졸아들게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때 후지무라 중위는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저 얼굴을 본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저 눈이 자신을 주시하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저 눈에 관찰당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소름끼쳤다. 분명 어디서 느꼈었다. 저 느낌을 어디에선가 받았었다. 어디였었지?


“그쪽은 누구시오?”


쿠스노기 중위가 먼저 물어보았다. 웬 중년 신사가 초면에 반말을 쓰니, 어쩐지 불쾌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다음 말에, 그 자리에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헌병사령부에서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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