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KKA 님의 서재입니다.

경성활극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로맨스

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최근연재일 :
2023.08.15 19:04
연재수 :
332 회
조회수 :
107,934
추천수 :
3,801
글자수 :
2,778,318

작성
20.08.27 23:55
조회
280
추천
10
글자
17쪽

190화

DUMMY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작년 이맘때쯤, 윤치호의 자택에서 작업하고 도주하는 중 밤새 순사들에게 쫓겨 다녔던 것보다 더 졸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눈 부신 햇살이 얼굴로 쏟아지고 있으니.


정우는 눈을 뜨자마자 시계부터 봤다. 벌써 오전 9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웬만하면 새벽예불에 참석하던 정우였기에, 이렇게 늦잠을 자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지난밤 몇 시에 잤는기억을 되집어 보니, 시곗바늘이 오전 4시에 가까워졌던 것 이후로는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으응······. 오빠······.”


바로 옆에서, 어제 그 시간까지 자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 한껏 졸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눈을 꿈적꿈적 뜨기 시작한 주리였다. 이불 속에 알몸을 가린 채.


정우는 온몸이 노곤한 가운데서도, 어젯밤을 생각하니 몸이 후끈해지는 느낌이었다. 엄청났었다. 해변에서 쏟아지는 별빛 아래 한번 일을 치른 후, 호텔로 돌아와 욕탕에서 씼었다. 그 이후 둘은 침대 위로 올라갔다.


주리는 그의 양기란 양기는 모두 빨아먹을 기세로 그에게 달려들었었다. 정우는 그런 연인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힘을 다했었다. 방 안에서 풍겨오는 기묘한 향냄새에, 참을 수 없이 솟구쳐 나오는 흥분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둘은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채 서로의 젊은 육체를 굶주린 듯 탐닉하였다.


주리는 졸음이 다 가시지 않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늘어지라 하품을 하다가, 정우와 눈이 마주친다. 얼굴을 새초롬하게 붉히고 계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속삭인다.


“어제 굉장했어요.”


그 말이 나오지 다소 멋쩍었던 주리의 얼굴이 바로 히히 웃는 상이 되었다. 지칠 때까지 흥분과 쾌락 속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생생히 떠오르니, 계속해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주리는 기지개를 쭉 켜고 일어나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전날의 정사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을 때, 정우는 어제의 그 격렬한 밤을 보냈음에도 다시 몸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주리가 드러낸 하얀 목덜미의 곡선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밤새도록 불태웠다가 피곤해서 식은 몸이 다시 뜨거워졌다.


“뭘 또 계속 봐요?”


주리가 정우의 시선에 장난스러운 타박을 준다. 정우는 “네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떡하니?”라고 하고는 돌아누워 싱긋 웃는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그럼 당연히 행복해야죠.”


주릭 시원하게 대답한다.


“이제까지 계속 고생만 했는데. 앞으로도 고생할 건데 조금이라도 즐겁지 않으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그래. 그렇지.”


정우는 이 와중에 놀라움과 나름의 자부심을 동시에 느꼈다. 전날 다 소모한 줄 알았던 기운이 아침햇살에 비친 주리의 자태를 보자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상반신만 일으킨 정우는 자신의 맨몸에 이불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주리를 붙잡았다.


그 매력적인 목덜미에 정우의 입이 닿았다..


“그렇다면 더 행복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 참! 오빠도!”


주리는 살짝 뻣팅기나 했으나, 결국 까르르 웃었다. 그녀는 정우가 살짝만 잡아끌었음에도 침대 위로 쓰러졌다.


이후 1시간쯤 시간이 흐른 후, 웨이샤오바오가 방문을 두드렸다. 침대 위에서 황홀경에 젖어 있는 주리를 쉬게 하고 장포를 먼저 갖춰 입은 정우가 문을 살짝 열었다. 웨이샤오바오는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형님. 어젯밤은 즐거우셨습니까요? 서비스로 넣어 드린 향, 효과 좋았습죠?”


“쓸데없는 소리 말아.”


샤오바오의 낄낄대는 소리에 딱 자르는 정우였다.


“대인께서 점심 같이 하자고 하십니다요. 12시에 늦지 않게 내려와 주십쇼.”


그러며 샤오바오는 또 낄낄댄다.


“형수님하고 시간 더 보내다가 늦으면 곤란합니다요.”


“알았으니까 가 봐.”


정우는 피곤한 마당에 샤오바오의 장난질을 더 들어주고 싶지 않아서 일단 내보내려 했다. 그런데 샤오바오가 급하게 말을 꺼낸다.


“아차차! 내 정신 좀 보게! 정부에서 천 대협께 보내는 전문이 있는데, 먼저 보시겠습니까요?”


정부에서? 정우는 흥미가 생겨 일단 보겠다고 하였다. 전문을 손에 쥐고 샤오바오가 주리 듣기에 부끄러운 소리를 할까 봐 빨리 내보내고 돌아왔다. 주리는 전날 벗어 옷장 속에 넣어 둔 에이프런 드레스를 입고 양말을 당겨 신고 있었다. 누가 문을 두드리니 알몸으로 누워 있기는 역시 민망했던 모양이었다.


“누구에요? 샤오바오 씨?”


“그래.”


그 대답에 주리가 바로 입을 삐죽인다.


“그 사람은 참 남들 상열지사에 참 관심 많은 거 같더라고요.”


“좀 그런 친구야. 여자가 벌써 일곱이나 있는데, 여전히 만족을 못하는 것 같더라고.”


“에에엑? 일곱이나요?”


주리는 저 장난만 잘 치게 생긴 웨이샤오바오가 미녀 일곱을 동시에 끼고 놀고 있는 것이 영 상상이 되지 아니한다.


둘은 웨이샤오바오가 건네준 전문을 같이 읽어본다. 전문은 백범 선생이 발송한 것이 아닌, 현재 백범 선생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며 청년들이 형님으로 모시는 일파 엄항섭이 대리로 발송한 것이었다. 엄항섭은 청년들이 벌어온 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서 교분이 깊은 사람이었다. 모두 경성으로 떠나기 전 상하이에서 참석한 행사도, 엄항섭의 결혼식이었다.


남건 형에게.


아우가 별래무양하신 지 인사 여쭙니다. 현재 선생님께서 청사와 거처를 비우시고 적의 추적을 피할 준비를 하시느라 바쁘신 중이라 제가 선생님을 대리해 이쪽 상황을 전달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일전에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윤봉길 동지가 수행할 계획은 이봉창 동지의 의거 만큼 적을 들끓게 만들 계획입니다. 최악의 경우 프랑스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니 미리 도피 준비를 해두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백범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요인분은 남건 형이 적의 간교한 음모를 밝혀내었다며 크게 상찬하셨습니다. 저 또한 남건 형이 아니었으면 가만히 있다가 손 놓고 적에게 당할 뻔했음을 생각해보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모두가 형의 공이고, 또 정우 등 제자들의 공입니다. 물론 형께서 일전에 보고한 한주리 양이 누구보다 값진 도움을 주었음에 크나큰 기쁨을 느낍니다. 선생님들께서 이 애국적인 여학생에게 큰 빚을 졌다며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고 전달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간에 포상이 있을 것입니다.


정우의 가슴에 기쁨이 넘쳐흘렀다. 백범 선생을 비롯한 임정 사람들이 주리의 공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주리 또한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자신이 큰 것을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가득해 함박웃음을 짓는다.


우리 의경대는 경보상태를 최고조로 올렸고, 프랑스 조계지 경찰에도 관련 사항을 통보하였습니다. 정부 청사는 의경대와 프랑스 경찰이 번갈아 가며 경비하고 있습니다. CC단과 중국 경찰 또한 협조를 약속하며 이 사건에 관련된 상하이 소재 범죄조직들을 소탕하겠다고 장담하였습니다. 청방의 두 방주 또한 지난번 일에 사과를 표하며 정부청사 보호에 조직원들을 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장 정부청사가 적의 무리에 습격당할 일은 없으니 형께서는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군무부에서는 보내주신 경보를 조선혁명군에 발송하였습니다. 정보 전파까지는 시간이 적잖이 걸리겠지만, 적의 예상 공격시기보다는 앞서서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덕에 조선혁명군이 방어에 필요한 시간을 벌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대목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사전경보가 전해진 이상 임정 청사도 조선의용군도 적의 기습공격에 대비할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이시와라 간지가 해군 건함예산을 빼돌려 마련한 자금을 받고 청사를 기습할 조직들도 사전에 소탕될 것이니 더더욱 안심이었다. 이것으로 임정에 가해질 가장 큰 위협은 순식간에 제거되리라.


선생님들께서는 경성지부의 해산과 합류가 늦어지더라도 적의 계획 실행에 필요한 자금을 탈취하는 계획을 승인하셨으며, 큰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하셨습니다. 늘 형에게 감탄하는 것이지만, 계획안의 기상천외함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리가 표정이 약간이나마 굳어졌다.


“제가 무공만 할 수 있었어도······.”


주리는 자금탈취 계획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여전히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천 지부장은 계획수립 과정에서 정보 전달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었다고 말하긴 했지만, 주리는 정우 오빠와 오라버니들과 한 자리에서 같이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무공을 배우지도 않고, 몸이 딱히 날래지도 않은 자신이 이 작업에 끼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이 야속하였다.


“그런 생각 말래도.”


정우는 어떻게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끙끙대는 연인을 격려한다.


“나중에 네가 우리와 할 일이 정말 많아질 거야. 지금은 일단 그때를 위해 기다린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 지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자.”


그러며 정우가 그 뜨거운 손으로 손을 감싸 주니, 주리도 아쉬운 마음이 풀리며 다시 웃음짓는다.


엄항섭의 전문 다음 단락은 바로 둘의 흥미를 끌었다.


한편 관동군이 그렇게 나온 이상,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현재 만주에는 백범 선생님의 지시를 받은 최흥식 동지, 김긍호 동지가 파견되어 현지의 이성원, 이발원 동지의 협조 아래 관동군 주요 인사들을 처단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원래 일본으로 파견될 예정이었던 유상근 동지도 최흥식 동지와 함께 행동하기 위해 다렌으로 파견될 예정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번 국제연맹 조사단이 만주로 들어온다면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관동군의 주요 인사들이 일제히 집결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거사의 적기로, 관동군이 대가를 치르게 하는 동시에 국제연맹 조사단의 눈 아에서 대한독립의 의지를 알리기에 최적의 시기입니다. 김긍호 동지가 안둥에서 선생님과의 연락을 맡으며, 유, 최 두 동지가 거사를 행할 예정입니다. 이것으로 저들이 감히 우리의 목을 노린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상하이로 돌아오실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관동군사령관 같은 자들을 없앤다는 건가요? 국제연맹 조사단의 눈앞에서?”


주리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정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거사가 성공한다면 이봉창 동지의 쇼와 천황 폭살 시도와 같은 강한 파급력을 가진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때 주리의 얼굴은 퍽 걱정스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혼조 사령관 같은 자를 없애는 건 좋지만, 그래도 국제연맹 조사단 앞에서 그런다면 잘못하다가 적이 우리를 테러집단으로 선전하는 건 아닐까요? 국제연맹에서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기회기도 해. 우리가 적이 선전하는 대로, 일본의 통치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국제연맹에게 남길 기회지. 비록 방법이 과격하긴 하지만, 최소한 오죽해면 이랬겠냐는 여론을 만들 수는 있을 거야. 그리고 9.18 만주사변의 주역인 관동군사령관을 제거한다면, 중국의 환호를 더 이끌어내겠지.”


“오빠 말 들으니 그렇긴 한데······.”


주리는 그래도 존 리튼 경을 비롯한 국제연맹 사람들에게 나쁜 인상을 남기는 게 아닌가 여전히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그리할지라도 선생님들의 목숨을 노린 관동군에게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게 해 준다면 참 속이 시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 크긴 하다.


둘은 이 새로운 거사가 성공하길 바라며, 호텔 방안을 최소한으로 정리한 후 식당으로 향했다.


장 대인은 보자마자 농짓거리였다.


“어이쿠, 조카! 얼굴이 아주 초췌해졌구먼! 그런데 우리 조카며느리는 아주 피부가 탱탱해졌어?”


주리는 살짝 부끄러운 티를 내면서도 “다 대인 덕이지요.”라고 웃어넘긴다. 정우는 면도하며 거울을 볼 때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었던지라 피식 웃고 만다.


장 대인은 식사 와중에 곤란하게 느껴질 말을 했다.


“자네들이 떠나고자 하는 날짜에 배편을 구하기는 힘들 걸세. 인천에서 출항하는 우리 소유 배들이 다 꽉 찬 상태여서 말일세. 물론 얼마 있지 않아 여유가 나는 선박들도 생길 것이니 너무 걱정하진 말게나. 자네도 알잖는가? 인천 바닥은 우리가 꽉 잡고 있는 거. 구이쯔 경찰이 뭔 수를 써도 출항 전까지 여기서 여유롭게 보내도록 해 줄 터이니, 자네는 이 큰아버지만 믿고 있으면 된다네.”


빠른 시일 내에 임정 요인들을 호위하긴 힘들다는 것이 난감하게 다가오긴 했지만, 장 대인이 부리는 밀수선 상황이 그렇다니 방법이 없긴 하였다. 합법적으로 오고가는 배를 탔다가는 검문에 걸리기 십상이니.


“항상 감사드립니다, 대인. 최대한 빠른 시일에 출발하는 배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후 정우는 다소 불편하지만, 꼭 해야 하는 질문을 하였다.


“하온데, 우딩웨이를 혹시 잡으셨습니까?”


그 질문에 장 대인은 기분이 팍 상했다는 얼굴을 하였다.


“그 망할 자라새끼는 정말 쥐새끼 같은 놈일세. 여전히 못 잡고 있다네. 이놈이 인천을 떠서 우리 애들이 잡으러 다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닐세.”


이때 장 대인의 눈빛이 섬짓해진다.


“하지만 난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네. 그 망할 자라새끼가 살아 있을 때 생간을 꺼내어 회쳐서 자네들이 씹을 수 있도록 해 줌세. 그 전에 자네들이 상하이로 떠나면, 상하지 않도록 젓갈로 담아서 보내주도록 하겠네.”


다행스럽게도 주리는 지 잔인한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장 대인은 이 대화만큼은 주리가 이해하지 못하도록 중국말로 한 것이었다. “무슨 얘기에요?”라는 주리의 질문에, 정우는 “이건 몰라도 괜찮을거야.”라고 조용히 대답하였다.


점심이 끝난 뒤 둘은 장 대인에게 작별을 고했다. 장 대인은 퍽 섭섭하다는 표정이다.


“자네들이 고국에 온지도 벌써 4년, 이제 좀 익숙해질려 하는데 떠나게 되는구먼. 떠나기 전에 송별회를 거나하게 열어줌세.”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대인의 만수무강을 빕니다.”


둘은 그렇게 호텔을 떠나, 차오펑 및 량궈와도 작별을 나누었다.


“이번에는 자네들이 춤을 즐기느라 나와 술자리를 가질 시간이 없었네. 인천을 떠나기 전, 거나하게 마셨으면 하는군.”


그 말에 정우는 기대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차오펑처럼 독한 백주를 술동이 채로 들이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량궈는 웨이샤오바오가 운전하는 차에 동승하여 인천역까지 그들을 배웅하였다.


주리는 정우에게 량궈의 사연을 들었던지라 그에게 안타까운 감정이 솟아났다. 16년 동안 사랑하는 이들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자신이라면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다.


“량 오라버니. 제가 주제넘게 말씀드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부인께서 쾌차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부인 분과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주리의 말에 량궈는 살짝 웃음지었다.


“고맙소. 부인께 주리 양에 대해 말해 주리다.”


그것이 열차에 타기 전 량궈가 말한 마지막 말이었다. 웨이샤오바오는 이 와중에도 “형님! 형님!”하며 호들갑을 떨며 뭔가 경박한 수다를 떨려 했지만, 정우는 “자네는 항상 입을 잘 건사해야 할 걸세.”라고 딱 못을 박았다.


경성으로 돌아오는 이등객차에 좌석에 앉자마자, 부족한 잠의 보충이 밀려왔다. 주리는 정우 어깨에 자연스럽게 기대더니, 금세 고개를 꾸벅꾸벅 거린다. 그 와중에도 “신혼여행 갔다 온 기분이에요.”라고 속삭인다. 정우는 “수고 많았어.”하며 주리가 더 편안히 기댈 수 있도록 자세를 고치면서도, “저번처럼 침 흘리지 않게 조심하고.”라고 장난스런 말을 했다. 주리는 “아이 차암!” 하고 도리질을 하면서도, 금세 미소를 지은 채 단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우도 몰려오는 졸음 속에서 눈을 붙이려고 한다. 이번이 아마 당분간 기대하지 못할 평온일 터이니, 마지막으로 누려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인천발 경성행 열차는 둘을 태운 채 달려간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경성활극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4 214화 +8 20.10.18 269 8 17쪽
213 213화 +10 20.10.17 271 10 14쪽
212 212화 +4 20.10.14 264 10 15쪽
211 211화 +10 20.10.11 266 11 17쪽
210 210화 +4 20.10.10 268 10 13쪽
209 209화 +2 20.10.09 262 8 20쪽
208 208화 +6 20.10.07 262 9 16쪽
207 207화 +4 20.10.04 263 9 15쪽
206 206화 +6 20.10.02 265 9 17쪽
205 205화 +7 20.09.28 264 10 17쪽
204 204화 +8 20.09.26 265 9 16쪽
203 203화 +8 20.09.23 274 9 13쪽
202 202화 +8 20.09.20 278 11 12쪽
201 201화 +14 20.09.19 266 10 13쪽
200 200화 +8 20.09.16 272 10 16쪽
199 199화 +8 20.09.13 279 10 17쪽
198 198화 +6 20.09.12 269 10 16쪽
197 197화 +8 20.09.11 265 11 17쪽
196 196화 +6 20.09.07 285 9 16쪽
195 195화 +10 20.09.04 267 10 15쪽
194 194화 +10 20.09.03 264 10 20쪽
193 193화 +10 20.09.01 271 9 15쪽
192 192화 +10 20.08.31 278 10 22쪽
191 191화 +8 20.08.30 270 13 20쪽
» 190화 +12 20.08.27 281 10 17쪽
189 189화 +8 20.08.23 275 12 18쪽
188 188화 +8 20.08.20 271 9 19쪽
187 187화 +12 20.08.17 276 11 21쪽
186 186화 +8 20.08.16 289 10 15쪽
185 185화 +10 20.08.15 285 10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