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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님의 서재입니다.

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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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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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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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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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208화

DUMMY

주 선생의 입이 딱 벌어진다. 어떻게 이들이 오궁섭 교수를 알고 있단 말인가? 그때 민호가 순간 심장이 박동을 정지할 소리를 한다.


“우린 왜놈 경찰이 오궁섭 교수를, 다른 곳에서는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으로 행세하고 있는 그자를 수사하고 있는 걸 알고 있소. 그리고 선생이 경찰에 협조하여 오궁섭 교수를 찾거나, 아니면 그와 한 자리에 있었던 자에 대해 보고해 주기로 한 것도 알고 있소.”


방금 전까지 의열단의 애국지사들을 만났다고 기뻐하던 선생의 가슴은, 순식간에 덜덜 떨리는 공포감으로 물들었다.


“아, 아닙니다!”


주 선생은 빠르게 부인하지만, 민호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소. 우리도 정보망이 있으니 말이오. 그것도 경찰서 안에. 하는 짓은 왜놈 끄나풀이어도 속으로는 딴 마음을 품고 있는 우리 동포 순사에게서 얻은 정보요.”


주 선생의 입술이 파랗게 물든다. 경위야 어찌되었던 자신은 종로경찰서 고등계의 밀정노릇을 하게 되었다. 의열단의 투사들이 그런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것인가? 본인을 애국자라고 칭찬해 준 것도 사실 그저 빈말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주 선생은 빠르게 자기변호를 시작하려 한다. 먼저 생각난 것은 경찰이 자신을 협박하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빌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심각히 궁색하게 느껴지는 변명이어서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선생은 자신의 공포감과 죄책감을 더는 동시에 자존심도 지킬 수 있는 논변을 전개한다.


“그······. 그 오궁섭이라는 자야말로 실질적인 부일 매국노입니다! 그자는 500년 동안 이 나라를 망쳐놓고 다른 나라에 머리를 조아려 노예로 만든 유교 성리학을 옹호한 봉건세력이란 말입니다! 그런 자가 독립운동을 한다 하더라도 오직 독립운동 진영에 해악만 될 자입니다! 그런 자가 독립운동의 주류가 된다면, 이 나라는 독립을 이루더라도 다시 반상의 법도 운운하며 사농공상을 따지는 끔찍한 신분질서와 개개인의 자유를 예라는 이름으로 옭아매는 전근대 봉건시대로 후퇴하게 될 것입니다! 당파싸움만 하여 나라를 망쳐놓은 양반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그런 자는 이 나라의 진정한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사라져야 할 자란 말입니다!”


그 말에 청년들은 다 하고싶은 말이 생각난다. 이런 식의 말들은 개화되었다고 자처하는 자들이나 고려공산당원들이나 여타 아나키스트 운동가들로부터 귀에 못이 밖힐 정도로 들은 말이었지만, 그래도 늘 짜증나는 소리였다.


‘지난 시대가 유럽식의 쌍무적 계약관계로 이루어진 퓨덜리즘 사회도 아닌데 무슨 망할놈의 봉건 타령이야?’


이건 명수가 꼬집고 싶은 말이었다.


‘예를 그딴 식으로 보면서 지 학생들에게는 예의 지키라 하겠지.’


이건 재호가 비꼬고 싶은 말이었다.


‘저 선생은 우암께서 말씀하신 여군자론에 대해 들어 봤는지는 모르겠네?’


이건 종팔이 속삭이고 싶은 말이었다.


대석은 딱히 할 말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손가락을 위협적으로 우두둑 꺾은 뒤 대번에 주먹을 날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자제력과 연기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임무를 위해서라면 저 선생을 지극히 초라한 존재로 깔아뭉개주고 싶은 심정 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압니다. 알아요. 우리는 선생 마음 잘 압니다.”


민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움도, 서늘함도 없이 그저 부드러움만 있다. 그 어조가 주 선생을 안심시킨다.


“우리는 선생이 경찰에 협조했다고 심판을 내리거나 그러려고 모셔온 게 아니오. 그럴 생각이었다면 벌써 선생 목숨은 없어졌겠지.”


그 말에 선생은 다시 오싹함을 느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오궁섭이를 잡는 것이오. 정확히는, 놈이 경찰에 잡히는 것이오.”


“예? 어째서 그렇습니까?”


주 선생은 다시 입을 딱 벌렸다. 의열단 사람들이 오궁섭이가 경찰에 잡히길 바란다니,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자는 일단 총독부에 협력하는 자는 아니요. 하지만 실질적인 협력자이기도 하지. 선생께서 말씀하신 대로요. 그자는 구제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봉건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소. 신분차별과 여성차별을 합리화하고, 중세적인 화이론과 사대주의적 질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매사에 쓰잘데기없는 군자의 도를 따지고 들며 사람들을 억압하려 들지. 그런데도 그자는 화술이 워낙 교활하여 여러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소. 그리하여 신분질서 타파와 국민계몽에 뜻을 품을 자들까지 그의 세치 혀에 농락당해 성리학을 옹호하게 되고 있소.”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선생이 자신이 겪은 것을 민호가 정확히 확인시켜주자 기뻐서 펄쩍 뛴다. 창덕궁에서 굴욕을 당한 이후, 그를 따르던 학생들 중 여럿이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오궁섭 교수가 지적했던 것이 궁금하다며 다시 물어보는 학생도 있었다. 이때 그는 선생에게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 너도 봉건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냐, 네가 그러고도 애국자냐며 체벌을 가했었다.


물론 스스로를 애국자라 생각하는 주 선생은 조선 성리학의 역사를 주기론과 주리론의 대립으로 규정하고, 그들이 형이상학적이고 실생활에 쓸모없는 것 가지고 목숨까지 걸며 싸워 온 어리석음의 역사로 규정하여 일본의 조선 지배를 정당한 것으로 만드려는 다카하시 도오루 박사가 그를 어둠 속에서 도와주고 있기에 교단에 서 있을 수 있음을 전혀 모른다.


“우리 의열단이 투쟁하는 대상은 우선은 저 왜놈 총독부지만, 이 나라의 뿌리깊은 봉건세력도 투쟁 대상이오. 그자들은 실질적인 부일배 무리요. 그들이 합병 직후 의병을 일으켰다지만, 결국 전근대적 신분질서를 옹위하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소. 이후에는 알량한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이 나라의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총독부와 결탁하고 있지. 레닌이 말했잖소? 식민지 국가의 기득권세력은 식민지의 근대화를 막으려는 제국주의 세력을 협력자로 삼는다고.”


주 선생은 레닌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처음 알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그 때문에 오궁섭은 필히 제거되어야 할 자란 것이오. 그자는 사대적이고 매국적인 봉건 지주세력의 주구요.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마땅히 사라져야 하오!”


주 선생은 그 말에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위대한 의열단의 지사들과 자신이 뜻이 일치한다는 게 가슴을 그렇게 벅차게 만들 수 없었다.


“우리는 오궁섭이 어디에 사는지 파악해 두었소. 그리고 그자를 안심시키고 꾀어내기 위해, 또 그자가 모은 돈을 우리의 군자금으로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해 친분을 쌓았소. 이제 때가 무르익었으니, 그 구시대적 신분질서의 찌꺼기를 없애버릴 날이 온 것이오!”


“아아, 그렇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런데 환호하는 와중에 의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자를 직접 처단하시지 않고, 왜놈 경찰에 체포되게 하려는 것입니까?”


“간단하오.”


명수가 나서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우리는 오궁섭이와 왜놈 경찰들을 죄다 날려버릴 비책을 준비했소..”


주 선생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직 몰라 눈을 꿈쩍댄다. 이때 대석이 품 속에서 시커멓고 둥근 물체를 꺼내 보인다. 선생은 그것을 확인하고 놀라 기겁한다. 그것은 분명 폭탄이었다. 옥룡회가 사설 병기창에서 비밀리에 제작하였으며 본디 우가키 총독을 암살했어야 할 이덕주, 유진만의 손에 들려야 했던 그 폭탄이었다. 그게 지금 이런 용도로 쓰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오궁섭이를 잡은 뒤 꽁꽁 묶어놓은 후 방에 가둔 뒤 그곳에 이 폭탄을 설치할 것이오. 경찰들이 신고를 받고 오궁섭이를 체포하러 들어온 그 순간······.”


민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그 순간, 대석이 폭탄을 앞으로 들이밀며 “쾅!”하고 외친다. 주 선생은 놀라서 말 그대로 자빠질 뻔한다. 그러나 놀람도 잠시, 그의 얼굴에 환희의 빛이 돈다. 그 극악한 봉건체제 옹호자와 자신을 괴롭힌 왜놈 경찰들이 모두 일거에 쓸려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선생께서 해주셔야 하는 일이 막중하오. 선생은 우리가 알려준 주소에 오궁섭이가 있다고 경찰에 제보하시오. 그 주소는······”


주 선생은 민호가 말해준 주소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따로 연락을 넣어야 하니 집 전화번호나 교무실 전화번호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소. 당장 경찰에 제보하지 말고, 우리가 연락하면 그때 제보하시오.”


“알겠습니다. 여러분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기쁨에 겨워 대답한 주 선생이었지만, 그의 얼굴에 불현듯 불안감이 떠오른다.


“그런데, 제 제보로 순사들이 죽고 다치면, 제가 조사를 받지 않을까요?”


“아, 걱정 마시오. 선생은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우리와 같이 가게 될 것이오. 상하이로 말이오.”


“예? 제가 상하이로요?”


주 선생의 눈이 재차, 삼차 휘둥그래진다. 내가 상하이에 간다니?


“그렇소. 선생의 애국계몽 활동도 물론 훌륭한 것이지만, 적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의열투쟁이야말로 독립운동의 정수라 할 수 있소. 선생도 그걸 바래온 것 같고. 그리고 또 우리 일과 엮여서 계속 경찰서에 불려가며 교육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터이니, 차라리 빨리 우리와 상하이로 가는 게 좋지 않겠소? 배편은 우리가 사전에 예약해 놓을 수 있소.”


적잖이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고등보통학교 교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포기하고 험난한 길로 간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의열단원들 앞에서 그런 생각이 먼저 떠오르자 수치스러워졌다. 그러나 잠시 머뭇거린 결과, 당황한 감정을 겪은 이유는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에서 왔다고 스스로 납득한다.


“알겠습니다. 같이 상하이에 가겠습니다!”


“좋소! 약산 의백께서 선생을 아주 환영하실 것이오!”


민호의 환호하는 말에 다들 “환영하오, 선생! 아 이제 곧 우리 동지가 되시겠군!”, “주이한 동지와 나란히 싸울 수 있게 되어 영광이오!” 같은 소리가 들린다. 주 선생은 그들에게서 동지 소리를 듣자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허리가 쭉 펴진다.


“아, 그리고 말이오.”


이때 민호의 눈매가 잠깐이나마 날카로워졌다.


“내가 경찰의 우리 정보원에게 들은 바로는, 선생이 오궁섭이와 총독부 관리가 한 자리에 있었다고 제보했다고 아오.”


“아. 예. 그렇습니다. 경찰에 그렇게 말했었죠.”


“경찰 반응이 어땠소?”


그 말에 주 선생은 인상을 있는 데로 찌푸렸다.


“제가 분명 그때 본 사람의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얘기해서 몽타주를 그려오니, 제가 뭔 헛소리를 하냐며 비웃고 욕설을 퍼붓고는 유치장에 감금했었습니다. 그리고는 머지않아 풀어주더니 제대로 된 정보를 가져오라고 윽박지르더군요. 대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청년들은 이때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확실히 경찰은 히로요시를 용의선상에서 애시당초 제외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때 명수가 입을 연다.


“큰일 날 뻔하였소. 그 총독부 관리는 우리 정보원이었단 말이오.”


“예? 정말입니까?”


주 선생의 입에서 당혹감이 가득 섞인 소리가 나온다.


“그 친구는 비록 관리를 하고 있지만 실은 우리와 같은 아나키스트라오. 그 친구도 오궁섭이를 꼬여내기 위해 투입한 건데, 그게 선생 눈에 보였구려. 다시는 경찰에 그 친구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웬만하면 잘못 본 거라고 하는 게 좋겠소.”


“아이고. 그러다마다요. 제가 여러분의 일을 하마터면 망칠 뻔했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주 선생이 머리를 조아리다시피 사과한다. 민호는 괘념치 않는다는 듯 대범하게 웃는다.


“모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것이오. 여하튼 갑작스럽게 모시게 되어 많이 피곤하실 터이니, 이제 자택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소.”


“예. 감사합니다.”


주 선생이 홀가분한 기분으로 일어나려던 찰나, 대석이 나오더니 헝겊조각을 들이민다.


“아, 양해를 부탁하오. 아직 주 선생은 정식 단원이 아니니 보안에 만전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소. 우리 은신처를 나갈 때는 눈을 가려주셔야 겠습니다.”


“아,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주 선생은 아쉽다는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군말 없이 대석이 눈에 헝겊조각을 가져다 대고 머리 뒤에서 묶는 것을 받아들인다. 민호가 조용히 눈짓을 하니, 계속 뒤에서 조용히 보고 만 있던 벨릭과 클린턴이 앞으로 나선다. 이들은 주 선생을 연행하듯이 끌고 밖으로 나간다.


주 선생이 저 멀리 사라지자, 형제들은 죄다 배를 잡고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저 한심해 빠진 놈!”


재호가 벽을 탕탕 치고 기분좋게 웃는다.


“갈 곳이 상하이가 아닌 줄도 모르고!”


“제놈에게 아주 적절히 어울릴 곳으로 가게 되는 거지!”


명수가 낄낄댄다.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되었다는 기쁨이 웃음소리를 돋군다. 정우가 천 지부장의 무시무시한 질책을 받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 낸 계획이었다.


주 선생은 개화사상가와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이 그렇듯이 성리학과 옛 시대에 대한 한도없는 증오를 품고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와 더 합리적이고 오류가 적은 해석을 들려주어도 받아들이키는 커녕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기득권세력으로 낙인찍는 아집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적의 밀정을 하고 있는 그의 심리를 이용해, 오재두 경부보를 비롯한 형사들을 유인해 한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정우의 주장이었다.


이를 위해서 주 선생이 경찰과 다시 접촉하기 전에 다른 형제들이 아나키즘적 성격이 강한 의열단원을 자처하며 그에게 하루빨리 접근해야 하지만, 당장 내일 관동군의 비밀자금을 가로채는 작업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빚이 있는 코민테른의 힘을 빌려 작업을 수행하기 전에 주 선생을 납치, 확보하여야 한다.


정우의 계획은 천 지부장의 노기띈 얼굴 앞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라기에는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이로서 정우는 존경하는 사부의 노기를 가라앉히고 이 상황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할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다.


이들이 대백루로 돌아가려 방을 나섰을 때, 마침 천 지부장과 미하일 가레예프가 오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얘기는 잘 되셨습니까?”


“그래. 이트킨 총영사가 제법 싹싹하게 나오더구나. 이 친구 도움이 컸지.”


그러며 천 지부장이 가레예프를 보자, 그는 “난 그저 자네의 공적을 있는 그대로 말해줬을 뿐이라네.” 하면서도 어째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그때, 형제들의 눈에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다.


“아니, 이건 뭡니까?”


대석이 놀라 하며 천 지부장의 양복 코트 앞섶을 본다. 거기에는 보란듯이 낫과 망치를 드러내는, 소련의 붉은기 훈장이 복도 전등빛에 비춰 번쩍이고 있었다.


“총영사가 계속 달아주겠다고 하더구나. 필요 없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천 지부장은 곤란하다는 말투였다. 가레예프는 그런 친구를 보고 껄껄 웃는다.


“이 친구야. 자네는 이미 12년 전에 붉은기 훈장 수훈 대상자였어. 그때 못받은 걸 지금 받는 게지.”


분명 가레예프가 뒤에서 뭔가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물론 제자들은 한 목소리로 “축하드립니다!”라고 외친다. 비록 그들과 관계도 없고 또 사이가 나쁠 수 있는 소련에서 나온 훈장이지만, 사부가 훈장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자랑거리였다.


그런 제자들의 반응에 “괜한 소리 마라.”라고 엄격히 말하는 그였지만, 그래도 훈장을 가슴에서 뗴어 주머니에 넣으려는 기색은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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