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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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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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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02화

DUMMY

“토비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우에스기 중위가 투덜거린다. 그는 바싹 마른 입술에 연신 침을 발라 가며 초조해하고 있다.


아오야기 중위도 긴장한 얼굴이다. 후지무라 중위가 빨리 저 대좌가 가짜라고 밝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객실을 떠난지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헌병과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아무리 우리가 관동군 참모부 소속이라지만 갑자기 헌병사령부 조사실 대좌가 진짜 대좌인지 확인해 달라고 하면, 저쪽에서도 곤란해 할 것 같은데.”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우에스기 중위는 잠시 끙끙 고민하더니, 결국 못 참고 일어난다.


“내가 지나가는 헌병 아무나 잡고 좀 알아봐야겠다. 상부와 연락이 닿고 있는지 물어보면 알려주겠지.”


그러며 자기 짐가방을 꺼내든다. 그 안에서 사적으로 구매한 콜트 자동권총이 들려 나온다. 제식 권총인 남부식 권총이 아무리 국산 무기라도 너무 신뢰성이 낮아서 웃돈을 주고서라도 암시장에서 구입한 권총이었다. 아오야기는 깜짝 놀라 “뭘 어쩌려고?”라고 묻는다.


“이상하게 예감이 좋지 않아. 돌아다닐 때 이거라도 있어야 좀 안심이 되지.”


“그럴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돈 잘 지켜줘. 알아보고 올게.”


우에스기 중위가 그러며 차양을 걷고 객실을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어딜 가나, 중위?”


굵고 낮은 목소리 하나가 뒤에서 울려퍼진다. 우에스기 중위는 헉 하고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계속되는 긴장상태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 무시무시한 눈빛의 헌병대좌가 바로 등 뒤에 있는 것이다.


“모······ 몸이 좀 뻐근해서 말입니다.”


우에스기 중위는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대답한다. 그의 목줄기에 땀이 삐질 배어나온다.


“쿠스노기 모토스케 중위에 대한 조사가 끝났네. 나온 김에 귀관이 다음 조사를 받았으면 하네만.”


“예···.. 예······ 알겠습니다.”


우에스기 중위는 뻣뻣해진 몸을 뒤로 돌아 자세로 휙 돌린다. 헌병대좌의 안광을 정면으로 대한 순간 가슴이 콩알만해 진다는 비유가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낀다. 육군사관학교 시절 선배 생도들이 별 시덥잖은 이유 가지고 뒷마당으로 집합시켜 마구 윽박지르며 기합을 주던 때와 차원이 달랐다.


우에스기 중위는 대단히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한 아오야기 중위와 잠깐 얼굴을 마주치고, 대좌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때, 대좌가 등을 돌려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을 그때,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자를 추궁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만약 가짜라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분명 있을 터이다. 만약 진짜 대좌라면 어쩔 수 없이 심문을 받으면 되는 것이고, 신원이 불분명하다면 이 권총을 꺼내 제압하면 된다. 설령 제압 후 진짜 대좌임이 밝혀지더라도 상부에 충분히 수상하게 보낼 개연성이 있어서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의견을 피력하면 된다.


밑져야 본전이다.


우에스기 중위는 걸음을 턱 멈추고, 코트 오른손 주머니 속의 콜트를 잡았다.


“대좌님. 잠시 뭣 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그 물음에, “뭔가?”하는 굵은 목소리가 들린다.


“헌병대 참모장 각하께서 몇주 전에 후처를 들이셨습니다. 그 사모님의 성함, 알고 계십니까?”


이것은 우에스기 중위가 사관학교 동기며 육군성에서 파견된 연락장교와 노가리를 까다가 들은 얘기였다. 헌병사령부 참모장이 유곽에 자주 드나들다가 한 게이샤와 눈이 맞아서 조강지처와 강제로 이혼하고 그 게이샤를 안주인으로 들였다는 추문이었다. 이름이 아오이 소라인가 아카이 소라인가 그랬을 것이다. 육군성에서는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질문에, 이 헌병대좌는 멈칫 걸음을 멈춘다. 그가 눈을 섬짓하게 번뜩이며 고개를 돌린다.


“본관이 그런 걸 왜 알아야 하나?”


우에스기 중위는 그 눈빛을 보고 심장에서 긴장감이 치고 올라와 목구멍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오른손에 콜트를 잡고 있는 걸 자각하고 다시 용기를 낸다.


“그저 여쭙는 겁니다. 비록 사생활이라지만 참모장 각하께서 혼사를 치르셨을 것이고, 대좌님 정도 되시는 분이라면 청첩장을 받으셨을 터인데 사모님 성함을 모르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게 본관의 임무에 중요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대좌가 쏘아보는 안광이 강도가 한층 강해졌다. 우에스기 중위는 순간 착각이 들었다. 그가 자기보다 훨씬 큰 거인처럼, 열차 복도를 꽉 채운 거인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귀관이 본관을 의심한다는 것인가?”


“그···.. 그저 대답 한 마디면 되지 않습니까!”


우에스기 중위가 몰려오는 공포를 이기기 위해 소리를 확 질렀다.


“그래도 사모님 성함을 모르는 게 말이 됩니까? 다른 분도 아닌 참모장 각하 사모님입니다!”


대좌는 그 말에 무거운 침묵만 유지한다. 그에게 몸을 돌린 대좌가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한다.


우에스기 중위는 바로 판단을 내린다. 저놈은 가짜다! 사칭범이다! 헌병사령부 조사실 소속을 가장한 사칭범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놈의 머리통에 콜트를 들이밀어야 한다. 놈이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서 먼저 뽑으면 그만이다!


중위의 머리 속에 광경 하나가 재빠르게 그려진다. 그가 번개같이 콜트를 빼어들고 저 괴인의 머리통을 조준하는 광경이. 중위는 그 그림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 바로 행동한다. 그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콜트가 확 하고 뽑혀져 나온다.


그러나 중위는,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콜트를 뽑아들고 자세를 잡으려던 그 순간, 우에스기 사부로는 그 자리에 엉거주춤하게 멈춰 버렸다.


“시도는 좋았네, 중위.”


저 헌병대좌, 아니 정체모를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더 빨랐어야지.”


우에스기 중위는 어찌하지도 못한 채, 상대를 겨누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권총을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지도 못한 채 표정이 납빛이 되었다. 그의 바로 옆 객실에서 누군가 튀어나와 권총 총구를 그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있던 것이었다. 바로 몇 센티미터 옆에서.


“총 넘겨주게. 일을 시끄럽게 만들고 싶진 않으니.”


우에스기 중위는 자기에게 총을 겨눈 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가, 굉음과 함께 이 세상과 하직하게 될 터이니. 우에스기 중위는 굴욕감에 몸을 떨며 빼들었던 콜트를 그대로 줄 수 밖에 없었다.


넘겨진 콜트는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원래 주인을 상대로 45구경 총탄을 발사할 준비를 한다,


“들어가 얘기좀 합세.”


자칭 헌병대좌는 그 사람을 압도하는 안광은 거두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유만만해 보이는 태도를 보이며 우에스기 중위가 한층 더 굴욕감을 느끼게끔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옆 객실로 떠밀리듯 들어가고 말았다. 그제서야 자기 머리에 총을 겨누었던 자가 우스꽝스럽게 생긴 가면을 쓰고 있어서 인상착의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우에스기 중위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객실 좌석에는, 다름아닌 쿠스노기 모토스케 중위가 눈을 감은 채 창가에 몸을 기대고 있는 게 아닌가!


“무······ 무슨 짓을 한거요!”


친구가 미동조차 하지 않자, 그는 자신이 생명의 위협에 처했다는 것도 순간 잊어버리고 말았다.


“진정하게, 중위. 깊이 자고 있는 것 뿐이니.”


이 자칭 헌병대좌는 콜트를 겨눈 채 좌석에 걸터앉는다.


“못 빋겠으면 맥이라도 짚어 보던가.”


그 말에 우에스기 중위의 손가락이 친구의 목덜미에 닿았다. 그의 손끝으로 약동하는 맥박이 느껴진다. 쿠스노기 중위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안심이었다. 안심할 것이 그것밖에 없는다는 건 더 큰 문제지만.


“앉지 그러나? 불편하게 서 있을 필요 있나?”


우에스기 중위는 대놓고 권총을 겨누고 있는 상대가 자기 불편한 걸 염려해 주다니 참 고맙다고 쏘아붙이고 싶은 심정을 겨우 참는다.


중위는 그래도 할 말은 하고 싶었다.


“당신. 장교 아니지?”


이 질문의 대답은, “그건 딱히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네.”였다.


“중요한 것은, 자네들이 우리가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거고. 그것들은 앞으로 얼마 안가 우리 것이 될 걸세. 나는 딱히 무력을 선호하는 쪽이 아니라서, 꽤 평화적인 방법으로 그것들을 가져가길 원하네. 그래서 그러니, 협조를 부탁하겠네.”


그러나 우에스기 중위에겐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


“당신네들 정체가 대체 뭐야! 우리가 송금하는 건 어떻게 알고 있어?”


그러나 이 자칭 헌병장교의 답변은 매몰차다.


“유감스러운 말이네만, 그건 자네가 알 바가 아니네.”


그 말투가 우에스기 사부로의 속을 박박 긁어놓는다. 대체 이놈은 뭐 하는 놈인가? 꼭 자기 머리 꼭대기 위에서 노는 것처럼 굴고 있지 않는가?


괴인은 등받이에 여유롭게 등을 기대고는 왼손을 주머니 속에 넣는다. 작은 함을 하나 꺼내져 나온다. 괴인은 왼손 손가락만으로 함을 열고 중위 앞에 들이민다. 새까만 환약 하나가 그 안에 들어 있다.


“드시게나. 하나 먹으면 근심도 걱정도 모두 잊은 채 푹 쉴 수 있지.”


우에스기 중위는 그걸 본 순간, 왜 자기 옆에서 쿠스노기 중위가 엎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는 지 알수 있었다.


“내가 안 먹는다면?”


우에스기 중위는 마지막 남은 기개라도 보이려 하였으나,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될 걸세. 머리에 구멍이 뻥 뚫린 채로.”


그 태도에 이가 갈렸지만, 45구경 총탄이 머리에 박혀 절명하는 것은 절대 사절이었다. 환약을 집어든 중위였지만, 그래도 말로나마 반항을 하고 싶었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관동군 전체가 네놈들을 끝까지 노릴 것이다!”


그 말에도 괴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 전에 귀관은 잘못된 명령을 자발적으로 수행한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징계위원회와 군법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조리 있게 자기를 변호하길 기대하겠네. 미리 앞서서 전역을 축하하도록 하지. 불명예제대가 되겠지만 말일세.”


망할 자식! 우에스기 중위의 등이 떨려온다. 머리털 나고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 떼강도로 예상되는 놈들에게 잡혀 임무를 처참하게 실패하게 되었다. 후지무라 중위는 계속 보이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놈들 계략에 넘어간 것 같았다.아오야기 혼자 저 돈을지켜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출세는 완전히 날아갔다. 이시와라 간지 중좌의 지시를 따르며 육군대학 추천을 받아 엘리트 코스를 밟으리라는 구상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그 와중에 면전에서 저 강도 두목 사칭범에게 대놓고 조롱까지 당하고 있다.


“서둘러서 먹는 게 좋을 걸세. 나는 인내심이 많지만, 한도가 없는 건 아닐세.”


괴인의 은근한 협박에, 결국 우에스기 중위는 몰려오는 심화 속에서 환약을 씹었다. 효과는 얼마 가지 않아 드러났다. 그의 눈꺼풀이 무겁게 감기고 의식이 멀어진다. 깊은 수면 상태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각한 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들이닥칠 악몽을 무슨 수로 견디어 내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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