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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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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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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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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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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10화

DUMMY

“사령관님. 잠깐만요.”


나카하라 국장은 요나이 제독이 예상 외의 말을 꺼내자 당황스러웠다. 해군 예산이 횡령당해 만주로 간다고?


“경위를 조금 설명해 주십시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것이 참 기가 막힌 일입니다.


요나이 중장은 해군성에서 벌어진 예산횡령 사건을 처음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건함예산과 전력획득 예산을 다루는 주계장교과 군속 몇이 작당하고 비밀리에 예산을 빼돌리고 있었다. 그것도 벌써 3년 전부터. 이들의 교묘한 수법 때문에 예산이 새고 있는 것을 은폐할 수 있었으나, 결국 들통나고야 말았다.


그런데 이들이 횡령한 예산은 그들 계좌로 들어가거나 자택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해군 특수경찰대의 강도 높은 수사 끝에 털어놓기를, 빼돌린 돈은 그들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통해 다른 곳으로 전달되었다. 그들에게 돈을 받아 운송하게 되는 자들은 부산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와 경성에서 돈가방을 전달하게 되어 있다는 게 그들의 증언이었다. 그리고 그 돈을 수령해 만주로 옮길 예정인 자들은, 다름아닌 관동군사령부 소속 장교들이었다. 그 날짜는 바로 오늘이었다.


이것이 해군성에서 파악하여 진해요항부사령관 요나이 미쓰마사 중장에게 보낸 사건의 개요였다.


“저, 죄송합니다만······.”


나카하라 국장은 치밀어오르는 기막힘에 잠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그쪽 책임자가 돈을 횡령했고, 관동군 장교들을 통해 돈이 만주로 운송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본관은 그 돈이 관동군으로 이송될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합니다.


통화를 하고 있는 요나이 중장도 기막히다는 투다. 국장은 하도 어이가 없다.


“또 관동군입니까?”


-예? 또라뇨?


요나이 제독은 그 말을 놓치지 않는다. 국장은 말이 나온 김에, 조선 관내에서 관동군 특무기관이 지나 폭력조직들과 은밀히 손을 잡고 조선과 내지에 아편을 대량으로 유통하려 한다고 말을 흘렸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이젠 격양된다. 신년행사 때 만났던 그 부드러운 인상에서 연상하기 힘든 목소리였다.


-그 놈들, 폐하의 황군 맞습니까? 대체 뭐하는 놈들이기에 횡령 사주에 아편밀매까지 일으킨단 말입니까?


“본관도 그것이 기가 막힙니다.”


국장은 말하다가 다시 성질이 뻗친다. 대체 이놈들은 뭐하는 놈들이기에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해군 예산을 횡령하여 자기들 돈으로 쓴다고? 대체 이들의 적은 어디인가? 소련군인가, 지나군인가, 아니면 같은 황군인 제국해군인가?


“그러니까, 그 주계장교하고 군속들이 관동군에게 매수되었다거나 그래서 그 돈 빼돌려 관동군으로 보냈다, 그 말씀입니까?”


-특수경찰대도 그건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돈을 어디로 어떻게 옮기는지는 토설했으면서도, 배후가 누구인지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는군요. 수사 강도가 높아지면 그 뭐냐······ 알아듣기 힘든 주문을 외우며 버틴다고 합니다.


“무슨 신흥종교와 연관되어 있기라도 한 겁니까?”


-아직 조사 중이라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가능성이 없진 않겠죠.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소리가 들린다.


-여하튼 조선 관내에서 벌어진 일이니 이 건의 책임은 본관이 맡게 되었습니다. 중간에서 돈을 관동군 장교들에게 전달한 자들의 인상착의는 우선 전문으로 먼저 보내드리겠습니다. 해군성에서 파견된 특수경찰대도 몽타주를 소지하고 경성으로 올라갈 겁니다. 경찰에서 놈들을 체포한다면 우리 쪽에 인계해 드리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카하라 국장은 이제 요나이 중장이 조선헌병사령부에 협조를 구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육군 헌병대에 용의자들에 체포되게 되면, 해군에 인계를 해 주기나 할지 불확실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육군의 명예와 체면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일인 만큼, 이들은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은폐하려 하리라. 본인이 요나이 제독이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헌병사령부에는 알리지 마십시오. 우리 경찰은 전적으로 해군의 수사에 협조하겠습니다.”


-국장님의 협조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건으로 저도 총독 각하를 뵈러 경성으로 올라갈 생각입니다.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국장은 한 가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나저나 사령관께서는 조만간 3함대 사령관으로 영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것은 해군 내 인사이동을 알리는 관보에서 본 내용이었다. 진해는 일로전쟁 때는 제국해군의 중요한 기지였지만, 다렌과 뤼순을 비롯한 지나의 여러 항구들을 조차하게 되며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현재 진해에 설치된 해군기지가 대형함 하나 없는 요항부인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요나이 중장은 사실상 한직인 요항부사령관으로 있다가 드디어 함대사령관으로 영전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일이 터진 것이다. 관운이 없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요나이 중장은 개의치 않는다는 말투다.


-이미 해군성에 함대사령관 부임일자를 늦춰달라고 요청해 놨습니다. 이 건에 대해 알자 머리가 뜨거워 견딜 수가 있어야죠. 일을 마무리짓기 전까지는 계속 요항부에 있을 생각입니다.


국장이 보기에 그는 확실히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만나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된 후 국장은 무라타 경부보를 통해 통신실에 진해요항부에서 전문이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요항부의 수사협조 공문을 복사 및 배포하여 공문상에 있는 인상착의의 사람들을 경성에서 발견하는 대로 긴급체포해 관할경찰서에 수감한 뒤 경무국으로 바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


국장은 이 건을 지시하며 어딘가 모를 청량감을 느꼈다. 자신을 아편거래 수사에서 손떼게 하려는 관동군에 한방 먹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 망할 놈들이 만주에서 전공을 세웠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데, 한번 제대로 당해봐야 한다고 이를 가는 경무국장이었다.


그런데 지시가 끝나자마자, 손님 한 명이 찾아왔다.


“아니, 국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쭈볏거리며 들어온 사람은, 총독부 철도국장인 오무라 다쿠이치(大村卓一)였다. 조카 히로요시의 직속상관인 그 사람이었다. 벗겨진 머리에 짧은 일자콧수염을 기른 다쿠이치 국장은 망설이는 얼굴로 경무국장을 마주대한다.


“저, 그것이······. 신고 드릴게 있어서······.”


“예? 신고라뇨?”


오무라 철도국장은 계속 망설이며 입술을 뗐다 붙었다 하더니, 겨우겨우 한 마디를 건넨다.


“그게······. 우리 철도에 대한 폭파 위협이 있었습니다.”


“뭐, 뭐라고요?”


나카하라 국장은 대번에 기겁했다.


“언제입니까? 어디에서요? 혹시 벌써 폭발했습니까?”


놀란 나머지 다그치듯 묻는 경무국장에게, 철도국장은 영 쪼그라든 목소리로 말한다.


“그것이······. 오늘 오전 6시 15분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 말에 국장은 경악했다. 지금은 이미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 아닌가!


“신고를 왜 지금 하십니까!”


나카하라 국장이 못 참고 고함을 질렀다. 폭탄 테러 위협을 받자마자 신고하지 않고 6시간 가까이 방치했다니! 대체 철도국장은 무슨 생각으로 이랬단 말인가!


오무라 국장은 국장이 성이 내자 움츠러들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한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신고하면, 놈이 폭탄을 터트리겠다고 협박했단 말입니다.”


국장이 설명한 바로는 이랬다. 장춘행 열차가 경성에서 출발할 시간인 6시 15분 경, 철도국 운영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당직 중인 서기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듣는 순간 이상하게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말했다. 파주군 와석면을 지나는 경의선 철도에 폭탄을 설치했다고. 지금 폭탄을 설치한 위치에서 감시 중이니 경찰이 그 근처에 오기라도 하면 폭파하겠다. 그러니 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말라. 폭탄을 폭파할지 말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요구조건은 1시간 후에 다시 말하겠다.


그것이 협박전화의 요지였다. 기겁한 운영과 직원들은 운영과장 자택에 전화해 출근 준비중인 과장에게 보고하랴, 국장 자택에도 전화하랴 난리가 났었다. 갑작스러운 경의선 폭파 위협에 혼비백산한 국장은 급하게 출근했다. 20여분 후, 철도국 직할 직원들과의 약식회의에서 일단 파주출장소에 나가 있는 직원들을 와석면 일대의 경의선 철도로 보내 정말로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지 조사하고, 일단 궁여지책으로 이미 경성역을 출발한 장춘행 열차는 운행속도를 최저로 줄이라는 전문을 보내라고 긴급히 결정했다. 혼란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철도폭파 협박이 있었다는 정보는 하나도 주지 아니하였다.


그 때문에 아침 첫 차를 탄 승객들에게는 단지 다른 문제로 철도가 천천히 운행하는 것이라는 방송만 전파되었다.


이 협박이 그저 터무니없는 장난전화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지만, 만약 정말로 폭탄이 있다면 이를 무시한 책임은 철도국에 돌아가게 될 터였다. 그저 장난전화에 과민반응했다고 비웃음을 살 수도 있을지는 몰라도, 진짜로 테러를 당해 철도가 대폭발과 함께 파괴되고 열차가 전복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파주출장소의 직원들은 와석면 일대에 놓인 철도와 인근에서 철도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서 수상한 사람과 이상한 물체를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켰다. 철도국 직원들은 15분마다 열차의 위치를 파악하며 초조하게 범인이 다시 전화하길 기다렸다.


천만다행스럽게도 이 사건은 그저 장난전화로 매듭지어졌다. 1시간이 지나고 1시간 30분이 지나도, 그 이후에도 협박범은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고생한 출장소 직원들도 위험해 보이는 것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이렇게 이 철도 폭탄테러 협박은 철도국 내에서만 아는 일로 조용히 마무리지어지나 싶었다.


“이번에야 다행이 공갈협박에 그쳐서 망정이지, 실제상황이라면 어쩔 뻔했습니까? 아무리 협박을 그렇게 하더라도 그런 건 먼저 경찰에 신고를 하셔야죠!”


경무국장이 다그치는 소리에 철도국장은 면목없어한다.


그럼에도 “철도운영에서 혼란을 방지하려먼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고 변명을 계속한다.


그때 나카하라 국장은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라면, 신고할 것도 없는 문제가 아닙니까? 단순히 협박범이 있었다는 신고를 하러 오신 겁니까?”


그 물음을 하자, 경무국장은 철도국장이 원래 이 신고조차도 안하려고 했을지도 모름을 눈치채었다. 철도국장이 동요하는 표정이 눈에 바로 드러난 까닭이었다.


“협박범이 있었다는 신고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편 열차에서 이상한 일들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열차 차장이 개성역에 도착하고 전문으로 보고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열차 승객들이 불안해하며 열차 직원들에게 말해준 내용이었다. 원래 열차의 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헌병 분견대 병력이 통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분견대 열차로 가는 통로를 지켜야 할 헌병 병사들은 벽에 기댄 채로 졸고 있었다.


그 와중에 3등칸 1번 객차의 승객들이 창 밖으로 희안한 광경을 보았다. 느릿느릿하게 달려가는 열차 속도에 맞추어, 좌측으로 트럭 한대가 가까이 접근했다. 이 트럭으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괴인들이 큰 가방을 하나씩 들고 짐칸 위에 올라탔다. 그들이 나온 방향은 분명 열차였다. 그 직후 3여 명의 괴인이 위에서 트럭으로 뛰어내렸다. 얼굴을 가린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트럭 위로 양복 차림의 한 사내가 달려올라탔다. 그 사람은 주먹을 휘둘렀지만 가면을 쓴 이들에 붙잡혀 버렸다. 그 직후 트럭은 속도를 내며 빠르게 열차에서 멀어졌다는 것이 열차에 탄 승객들의 공통된 증언이었다.


“아무래도 그 협박 사건이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 건에 대해 신고드리면 왜 열차를 서행으로 운행했는지에 대한 추궁도 나올 것 같아서······.”


철도국장이 그러며 흐르는 땀을 닦는다. 나카하라 국장은 그 말에 순간 몸이 굳어져 버렸다. 철도국장의 신고가 어떤 의미인지, 그 가면 쓴 괴인들이 가져간게 무엇인지 대번에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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