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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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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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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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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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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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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204화

DUMMY

석장이 현란하게 휘둘러지며 원호를 그린다. 삽시간에 후지무라 중위의 정수리, 왼쪽 뺨, 오른어깨, 왼쪽 옆구리가 탈을 쓴 괴승의 공격을 받는다. 후지무라 중위도 단연 지지 않는다. 괴승이 전개한 강력한 초식들을 물러남 없이 삽시간에 받아친다. 그 속도가 빠르기 그지 없어, 금속에 비친 태양빛이 산란된다.


그 직후 후지무라 중위는 군도를 거세게 횡으로 휘두른다. 삽시간에 내질러진 검격에 괴승이 석장으로 받아치며 한발짝 물러난다. 후지무라 중위는 그 간격의 틈을 놓치지 않는다.


삽시간에 그의 장기인 수평 평찌르기가 맹렬하게 찌르고 들어온다.


“헙!”하는 기합과 함께.


그러나 평찌르기는 날카로웠지만, 괴승의 동작은 더 빨랐다. 재빠르게 치고들어오는 군도를 삽시간에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 피한다. 옷고름이 살짝 베인 정도의 피해만이 수평 평찌르기가 남긴 흔적이었다.


후지무라 중위는 찌르기가 빗나갔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횡으로 휘둘러 괴승을 벤다. 그의 빠른 도초라면 괴승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저 괴승은 한발 빠르다. 휘둘러진 도신에 다시 석장이 쨍 하고 부딪친다.


후지무라 중위는 계속 웅웅 거리며 바람을 가르고 내리쳐지는 석장을 상대하며, 이 정체불명의 승려가 보통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의 빠르고 날카로운 참격들, 그리고 갈고 닦은 수평 평찌르기도 저 승려가 현란하고도 묵직하게 휘두르는 석장에 막히거나 재빠른 동작에 빗나가고 있었다. 괴승은 석장의 길이를 이용해 그가 찔러오는 공격을 안전하게 막아내면서 동시에 동작 하나하나가 상대하기 무서울 정도의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탈 속에 보이는 괴승의 눈을 마주쳤을 때,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어디서 본 눈이었다. 그런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기억할 새도 없이 괴승의 석장이 무시무시하게 날아오고 있었으니.


상대가 저 승려 하나라면 그래도 부담은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열차 안에서 상대하된 괴인은 여전히 건재했다. 저 승려가 수평 평찌르기를 회피하고 받아친 순간, 탈쓴 괴인이 잡은 철봉이 확 휘둘러지며 여러 방향으로 치고들어온다. 둘의 협격은 서로 부딪히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한쪽이 위를 치면 다른 쪽이 아래를 치고, 한쪽이 오른쪽을 치면 다른 쪽이 오른쪽을 친다. 앞에서 괴승의 공격을 막으면 삽시간에 뒤로 돌아간 괴인이 뒤에서 철봉을 휘두른다. 후지무라 중위는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아쳐야 했다.


여기에 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다.


후지무라 중위는 전면에서 동시에 들이닥친 석장과 철봉을 막을 바로 그때, 뒤에서 쉭 하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중위는 갑작스런 살기에 손에 힘을 확 거두고 몸을 숙였다. 그의 정수리 위로 누군가가 휘두른 봉 같은 것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세 번째 괴인이 등장한 것이었다.


몸을 확 돌리며 군도를 휘두르며 거리를 벌리자, 다소 왜소한 체구에 역시 가면을 쓴 제3의 괴인이 보인다. 괴승과 두 괴인은 이제 후지무라 중위를 삼면에서 에워싸고, 그를 중심에 둔채 원을 그리며 천천히 걷는다. 동시에 공격할 기회를 찾는 것이다.


그럼에도 후지무라는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비겁도 하시군! 이 후지무라 토비자루가 그렇게 두려운가! 사나이 대 사나이끼리 맞설 자신이 없는가!”


그러나 괴인들은 말이 없다. 그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답했다.


세 괴인의 눈빛이 삽시간에 교환된 순간, 석장과 두 철봉이 한꺼번에 내리쳐진다. 후지무라 중위는 군도를 쳐들고 그 기세를 버텨내느라 다리를 굽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때, 같이 내리쳐진 철봉 하나가 위로 확 사라지나 싶더니, 어느 새 아래로 무자비하게 휘둘러진다.


“으윽!”


후지무라 중위는 격통에 이를 악물었다. 그의 오른쪽 다리에 딱 하고 무언가 거세게 부딪쳐 왔다. 그곳이 극도로 화끈거렸다.


바로 그 순간, 내려쳐진 석장과 철봉이 뒤로 물러난다. 그 느낌에 좌로 우로 휘둘러 공간을 확보했을 때, 또 으례 그 하얀 가루가 얼굴에 퍼부어진다.


“제길!”


또 다시 시야가 차단된 후지무라 중위는 석장이나 철봉이 그의 머리를 수박 으깨듯 으깨버리려고 날아들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눈이 잠깐 안보이는 사이에도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숙련된 방어자세가 취해진다.


그런데, 잡아든 군도에 아무것도 내려쳐지지 않았다.


후지무라 중위는 거칠게 눈을 닦고 확 떴다. 그의 따가운 눈에, 빠른 속도로 열차 위를 달려가는 세 괴인이 보인다. 그를 내버려 두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중위는 얼얼한 다리를 곧추세우고 힘껏 달렸다. 저 괴인들이 기회를 잡고도 도망치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열차에서 달려 봤자 도망갈 곳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리에 가해지는 격통에도, 어디가 부러진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마 멍이 시퍼렇게 들었으리라.


그럼에도 후지무라 중위는 숨을 멈추고 달려 가볍게 뛰어가는 괴인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저 앞에서 트럭 한대가 열차에 따라붙어서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에서. 평소 빠르게 달리는 열차라면 아마 대형사고를 터트릴 수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지무라 중위는 그때, 저 트럭이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있었다. 앞에서 달려나가던 괴인 셋이, 트럭 바로 옆까지 달려온 순간, 주저하지 않고 트럭으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그때, 후지무라 중위에 눈에 그가 비쳤다. 헌병대좌라고 자처했던 그 호랑이 눈의 사내가 트럭 짐칸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하마터면 그를 고꾸라지게 할 뻔한 것들도 비쳤다. 짐칸에 실려 있는 새로운 탈쓴 괴인들, 그리고 그들이 반드시 봉천까지 이송해야 했던 거액의 현금이 든 돈가방들!


빌어먹을! 후지무라 중위는 일순간 냉정을 상실한 채 분노와 경악에 가득 찬 고함을 내지를 뻔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저 가면 쓴 괴승과 두 괴인, 그리고 헌병대좌는 죄다 한패였다. 그들을 조사 명목으로 하나 하나 떨어트려 놓고 현금가방을 가져가려는 속셈이었다. 헌병 분견대 전체를 잠재운 것도 이들이 세운 계획의 일부였을 것이다.


진작 깨달았어야 했다! 진작 파악했어야 했다! 저 대좌 놈이 가짜라는 걸! 모든 게 다 계획이었다는 걸!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어디서부터 문제가 터진 것인가?


각종 후회 가득한 상념으로 머릿속이 뒤범벅된 그 순간, 결국 그는 이성을 잃고 격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죽여버리겠다! 죽여버리고 말겠다, 이 개자식들!”


괴승이 그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만, 정중하게 합장하고 있던 것이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대결이 즐거웠다는 듯, 그가 구사한 수평 평찌르기가 훌륭했다는 듯 칭찬하듯이. 그 여유만만한 자세에, 중위는 당장 저 트럭 위로 달려들어 죄다 베어버리려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찰나의 이성이 그의 격노를 제어했다. 트럭 위에 탄 탈쓴 사내들이, 일제히 뭔가 꺼내들어 그를 겨누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거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필경 권총이 분명하였다.


이가 으드득 갈리면서도, 잘못 움직였다가는 총탄이 무자비하게 날아들 것이리라.


그런데 분노가 경악으로 바뀌었다.


“테, 테츠!”


열차에 가려진 시야에서, 갑자기 사람 형체 하나가 툭 튀어나와 트럭을 덮쳤다. 그는 다름아닌 아오야기 테츠오 중위가 아닌가!


난데없이 튀어나온 아오야기 중위가 거센 주먹을 휘두르는 게 보인다. 헌병대좌를 상대로. 그들이 강탈한 돈가방을 되찾고, 그자들을 흠씬 두들겨 패주겠다는 강렬한 기세였다. 그러나 그 기세도, 무기 하나 없이 적수공권으로 달려든 상태에서는 7대 1이라는 심각한 수적 우세 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중위가 휘두른 주먹은 헌병대좌가 번개같이 올려든 손바닥에 삽시간에 막힌다. 그 직후, 괴인들이 한꺼번에 그에게 달려들어 팔을 꺾고, 다리를 걷어차 무릎꿇리고, 억세게 잡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중과부적이란 성어는 이런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후지무라 중위는 눈이 뒤집혔다.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자신의 사랑을 인정해 주고 사관학교에서 퇴학당할 위기를 막아준 친구가, 저 정체불명의 떼강도들을 막으려다가 붙잡힌 것이다. 이젠 자기 몸에 총알이 밖히건 말건 아무 상관 없게 되었다. 후지무라 중위는 완전히 머리가 뜨거워져서, 저기 뛰어들어 전부 베어버릴 기세로 달렸다. 저 망할 놈들의 목을 모조리 쳐버리고 말겠다!


그러나 결국, “젠장! 젠장!”하는 욕지기와 함께 땅을 쳐야 했다. 트럭이 왼쪽으로 방향을 휙 틀더니, 빠른 속도로 열차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거리에서 뛰어 봤자, 땅바닥을 구를 뿐이다.


한 순간에 저편으로 멀어지고 있는 트럭을 보며, 후지무라 중위는 망연자실이란 이런 것임을 느낀다. 세츠코와의 연애 때문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퇴학 논의가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완벽한 임무 실패였다. 실패 중에 대실패였다. 자칭 헌병대좌라는 자의 기세에 눌려 완벽해 속았다. 그 대가로 거금을 눈 앞에서 도난당했다. 그들이 전달해야 하는 거금을! 그리고 테츠까지 저걸 되찾으려다 납치당했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이 무슨 굴욕이란 말인가!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절망감이 더더욱 밀려온다. 이시와라 간지 중좌에게 뭐라고 보고해야 한단 말인가? 조선인 강도떼로 추정되는 자들에게 현금을 도난당했다고 말해야 하나? 그 대가는 그들에게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 이시와라 간지 중좌가 입만 열면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 그가 실패에 관대할 것이라고 안심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이건 다름아닌 해군 예산을 도둑질해 마련한 거금이다. 이 일이 드러나서 해군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시, 그들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후지무라 중위는 결국, 열차 위에서 내려올 생각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쥐고 말았다.


한편 트럭 위에서는, 수염 덥수룩한 헌병대좌, 그러니까 천남건 지부장이 냉혹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눈을 가리고 입을 틀어막아라.”


그 한 번에, 얼굴이 시뻘개진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의 입이 헝겊 조각으로 막힌다. 눈에도 마찬가지로 헝겁이 가려져 뒤에서 질끈 묶인다. 입이 막힌 중위에 입에서는 이제 힘세게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분명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최고 수위의 욕설들일 것이리라. 천 지부장의 제자들은 거센 힘을 발휘하며 몸부림치는 그를 꽉 잡은 채 단단히 결박을 짓는다. 매듭까지 싹 묵는 사람은 정우였다. 검표원 제복 차림의.


그때 운전석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재호가 얼굴을 보인다.


“무슨 일 있습니까? 좀 시끄러운데요?”


“아, 별일 아냐.”


명수의 대답이다. 방금 전까지 혜월 스님, 종팔과 함께 후지무라 중위를 상대로 격전을 치른 그는 옷이 땀에 젖어 있다.


“계획에 없던 포로 한명 잡은 거 빼곤.”


“야. 그게 뭔 별일 아니냐?”


재호가 투덜거리고는 운전에 집중한다. 천 지부장은 무릎끓은 채 결박당해 웅얼거리는 아오야기 중위를 바라본다.


“중위, 근성 하나는 대단하군. 칭찬받을 만 하네.”


천 지부장은 트럭에 오른 바로 그때, 아오야기 중위가 성난 얼굴로 확 뛰어오르자 흠칫 놀랐었다.


헌병사령부 조사실 소속 대좌임을 가장해 아오야기 등에게 더없는 불안감을 일으키고 조사를 명목으로 한명 한명 유인해서 혜월 스님의 수면제를 먹이는 것도, 육군성 군무국에서 파견된 것처럼 가장해 종팔이 위장해준 가짜 신분증명서를 가진 민호가 철도헌병 분견대 병력을 전부 잠재운 것도 계획대로 실행되었다.


가장 위험하고 날카로운 추리력을 가진 후지무라 중위가 정말 그 헌병대좌가 진짜 헌병대좌인지 확인하려고 철도헌병 분견대 열차로 갈 것도 대비하여 명수가 그를 열차 위로 유인해 혜월 스님, 종팔과 싸우게 하는 것도 계획대로 다 되었다. 숨어 있던 정우와 대석이, 그리고 합류한 민호가 네 장교 중 한명만 객차에 남으면 그 장교를 제압하고 돈을 빠짐없이 털어오는 것은 계획 이상으로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아오야기 중위가 물품을 정우에게 맡기고 나가는 예상 외의 호재가 일어난 것이었다. 이리하여 무력을 쓸 필요도 없이, 돈을 챙겨서 재호가 바로 옆에서 운전 중인 트럭으로 옮겨 타는 것도 모두 계획대로 되었다.


이 중 예상치 못하고 계획을 벗어난 것은, 저 아오야기 중위가 트럭 위에 달려들어 탄 것이었다. 어찌나 급했는지 무기 하나 챙겨오지 않고 주먹만 쥔 채.


다들 갑자기 튀어나온 그를 보자 당황했지만, 기습의 효과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천 지부장은 내질러진 주먹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막아냈다. 아오야기 테츠오 중위를 제압하는 데는 그닥 오래 걸리지 않았다.


“허나, 용기와 만용을 구별할 줄 알았어야지.”


천 지부장의 서늘한 말이, 아오야기 중위를 더욱 몸부림치게 만들었다. 저 자칭 헌병대좌가 트럭에 타는 걸 본 순간, 아오야기 테츠오는 앞뒤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는 달렸다. 2등객차 복도를 질주했다. 머릿속에는 생각 하나밖에 없었다. 저 망할 놈을 흠씬 패주고, 돈을 되찾아와야 한다. 이시와라 간지 중좌님에 기대에 절대적으로 부응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트럭이 열차에서 멀어지기 바로 직전에 뛰어올랐다. 그는 트럭 위에 탈쓴 괴인들이 여럿 타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짜고짜 주먹부터 내질렀었다. 물론 아무 소용 없는 일격이었다. 공격은 보기좋게 막히고, 우르르 달려든 가면 쓴 자들에게 붙잡혀 눈이 가려지고, 입이 막히고, 몸은 결박되었다. 일생일대 최악의 굴욕이었다.


“우읍! 우으으으읍!”


중위가 분노에 몸을 맞긴 채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이놈을 어떡할까요?”


대석의 물음에, 천 지부장은 “적당히 인적 드문 곳에 버리고 간다.” 한 마디를 한다. 계획에도 없던 포로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여러모로 비효율적이었다


이때 비포장도로를 달리느라 덜컹거리는 트럭 짐칸에 앉은 정우는, 꿇어앉은 아오야기 중위를 보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를 연적으로 여기고 질투심마저 들었던 터였다. 프록코트 세탁할 비용도 부담되던 그와 비교되는, 부와 명예와 보장된 출셋길을 가진. 주리와의 밀회를 들켜서 저자가 격노할 때는, 자신도 순간 움츠러들었었다. 하지만 그는 초라하게도 결박당한 채, 그들의 포로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에게 애석함을 느끼지만, 그걸 말로 하기는 곤란했다. 아오야기 중위는 그의 목소리를 알고 있으니. 그래서 검표원으로 변장했을 때도 상당히 조심해야 했다. 이 중위가 자신을 믿고 돈을 맡겼을 때, 좋은 기회라고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미안했다. 이시와라 간지를 광적으로 추종하는 것 외에는 모든 면에서 괜찮은 사람을, 앞으로 끝모를 불명예와 절망에 빠트리게 될 터였으니.


그러나 그럼에도, 계획 성공에서 오는 성취감은 어쩔 수 없었다. 이시와라 중좌의 계획은 완벽히 저지되었다. 그와 봉천 특무기관이 비밀리에 관계를 맺은 중국 폭력조직들은 약속한 돈을 받지 못하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시와라 중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물론이고 소련과 중국의 그 누구도 제거할 수 없을 것이고, 또 다시 음험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면 적지 않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


이제 임시정부는 진정으로 안전하다.


그것 만으로도 정우의 입에서 홀가분한 웃음이 떠오르기에는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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