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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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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최근연재일 :
2023.08.15 19:04
연재수 :
332 회
조회수 :
107,909
추천수 :
3,801
글자수 :
2,778,318

작성
20.08.3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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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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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22쪽

192화

DUMMY

메이지마치의 3층 건물에 있는 한 사무실 문 앞에 형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흡사 용의자 취소하듯 다그치는 자세에 한 참의가 놀라서 가르쳐준 장소였다. 미쓰이-카라스마 자원개발회사라는 명패가 문 옆에 떡하니 붙어 있다.


와카마쓰 경부가 나무로 만든 문을 쾅쾅 두드린다.


“경찰이다! 문 열어!”


그러나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문 열라니까!”라고 다시 두들겨도 조용하기만 하다.


“관리인에게 열쇠 받아와!”


와카마쓰는 부하 아무나 가져오라는 듯 말하고는 권총을 뽑아 들었다.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이 불령선인들의 위장회사이자 아지트라는 확신이 모두를 지배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그때는 사무실이 비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쓰우라 순사가 허겁지겁 관리인을 붙잡고 돌아왔다. 관리인은 난데없이 사복형사들이 들이닥치자 얼이 빠진 채였다. 그의 쇤가락이 열쇠 뭉치에서 손을 덜덜 떨며 맞는 열쇠를 찾았다. 와카마쓰 경부가 눈짓을 하자, 오오이시 순사가 열쇠를 잡고 자물쇠를 조용히 딴다. 형사들은 긴장해 침을 삼키며, 총구 방향을 문으로 향했다. 상대가 저 안에 매복하고 있다가 사격한다면, 마구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며.


철컥 소리와 함께 잠긴 문이 따였다. 문이 슬쩍 열린 바로 그 때, 경부가 모범을 보이려고 앞서서 문을 걷어찼다.


“경찰이다! 꼼짝 마라!”


문이 활짝 열린 순간, 형사들은 총탄의 파열음을 예상하고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직후 바로 허탈함과 무안함을 느껴야 했다.


“뭐야, 이거. 아무도 없잖아?”


그 말대로였다. 사무실은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형사들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곧추세운 총구를 내리지 않고, 사무실 구석구석을 수색했다. 따로 칸막이가 쳐진 사장실에 마쓰우라 순사가 “꼼짝 마라!”하며 들이닥쳤지만, 역시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


오 경부보는 책상 위에 약간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쓸어 확인했다. 먼지가 쌓인 양으로 언제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사용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하루 이틀 전에 사무실을 비웠던 것 같습니다.”


“제길. 한발 늦은 건가?”


와카마쓰 경부가 욕지기를 내뱉는다. 기껏 불령선인들의 아지트를 알아낸 줄 알았는데, 이미 다 사라지고 없다니.


그런데 그때, 마쓰우라 순사가 편지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사장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겁니다.”


와카마쓰 경부는 혹시 중대한 단서일지도 모른다며 봉투를 거칠게 찟고 편지를 꺼내보았다.


-친애하는 한덕만 참의 나리에게.


유감스러운 소식 전해 드리겠소이다. 나는 일전에 분명 참의 나리에게 이렇게 말했소. 나 코지마 히데오는 가지고 싶은 회사는 다 가졌다고 말이오. 그 누구도 내 손을 피해갈 수 없고, 그 누구도 내 눈을 피해갈 수 없소. 참의 나리가 제법 돈 좀 쓴 모양인데, 그 정도로 날 막으리라 생각한 것이오? 그렇다면 아주 크게 실수한 것이오.


내가 뒷세계에 명망이 있다는 것은 그쪽도 잘 알 것이오. 내게 풍부한 것은 미쓰이-카라스마 자원개발회사를 인수할 자본금뿐만이 아니오. 제법 거칠고 실력 있는 장정들이 내 명령 한 마디에 누구든 손가락 한두 개쯤 분질러줄 준비가 되어 있소.


미쓰이 사장과 카라스마 백작은 내 수중에 있소. 내가 인수할 자금 50만 원을 제시했는데 여전히 회사를 팔지 않겠다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완력을 써야 했소.


그대가 석유재벌이 될 것이라는 미몽에 빠져 있던 걸로 아는데. 내가 그 꿈을 깨드리겠소이다. 나는 내 심기를 건드리는 자를 항상 이렇게 응징하니 말이오. 앞으로 두 공동대표를 볼 날은 없을 것이오. 내가 이 회사의 유일한 대표가 될 것이니.


그럼 이만 줄이겠소. 이미 수십만 투자금을 상실한 그대에게 행운이 있기를 빌겠소.


코지마 히데오.-


“코지마 히데오는 또 뭐 하는 놈이야?”


경부가 어이가 없어서 역정을 낸다. 들어보지도 못한 코지마 히데오라는 이름이 사건 관련자로 불쑥 나오자 머리가 더욱 아파온다. “누구 이런 이름 들어 본 사람 있나?”라고 물어도, 다들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다. 대체 코지마 히데오가 누구란 말인가?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있었다. 이 편지는 정체불명의 사람이 두 공동대표를 납치 및 감금하고 있다는 노골적인 암시를 담고 있다. 그리고 편지를 받을 대상은, 바로 오재두 경부보의 외숙부인 한 참의였다. 특히 오 경부보를 당혹스럽게 만든 부분은 편지에 언급한 “수십만 투자금” 운운이었다. 외숙부가 불령선인들의 위장회사로 의심되는 업체에 투자했다는 건가? 그 정도의 거금을?


“어음······. 아무래도······. 아무래도 자네 외숙부님을 조사해야겠네.”


와카마쓰 경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느 정도는 오 경부보의 눈치를 보는 자세였다. 중추원 참의의자 큰 부자에 오 경부보의 인척인 그를 건드리기에는 역시 조심스러운 태도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경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오 경부보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며 조사에 동의하였다.


외숙부에게 설명을 들어야 할 게 적지 않았다. 대체 왜 이 수상한 회사에 거액을 투자했단 말인가? 그들이 누군지 제대로 알기는 했던 건가? 코지마 히데오란 놈은 대체 누구인가?


경부와 경부보는 부하 형사들에게 사무실 수색을 계속 맡기고, 한 참의를 조사하기 전에 우선 종로서 자료실에 들렀다. 이들은 경시청이 배포한 중요범죄자 인명록과 요주의대상 인명록에서 코지마 히데오란 이름 넉 자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수 시간째 다른 부서 순사들 도움까지 받으며 다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코지마 히데오란 자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갑자기 지원을 오게 된 보안과 소속 순사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오 경부보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경찰의 감시를 벗어난 범죄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으니.


일단 전국적인 신원조회를 통해 코지마 히데오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겠으나, 내지 경시청에서 조회가 끝나고 관련 정보를 받으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 당장 하루하루의 수사실적이 급한 상황에서 너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일단 자네 외숙부님에게 가 보세. 코지마라는 놈의 편지가 한 참의님을 바로 노리고 있으니.”


오 경부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은 한 참의의 회사 건물로 다시 왔다. 증거품으로 보관하기 전, 코지마 히데오란 자의 편지가 한 참의 손에 들어갔다.


“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한 참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놈의 코지마 히데오가 이런 술수를 쓰다니!


“코지마 히데오가 누군지 아십니까?”


외조카의 물음에 한 참의가 마구 충격을 쏟아냈다.


“그놈은 뒷세계에서 이름 높은 기업사냥꾼이다! 이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계속 노리고 있었어! 내 앞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선언했었지!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을 납치하면서까지 회사를 가지겠다고 하다니! 이럴 수가! 그럼 내 투자금은 어찌 된단 말이냐!”


한 참의의 눈에서, 지난번 투자설명회에서 본 평원에 가득한 석유 시추시설들이 일제히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 그를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돈방석에 앉혀줄 그것들이, 자신을 내지의 경제를 뒤흔들 거물이자 세계적인 석유 재벌로 등극하게 해줄 그것들이 하루 아침에 남의 손에 넘어가게 생겼다. 20만 원이 넘는 거액의 투자금을 부었음에도!


“이! 이 코지마 히데오를 하루빨리 잡아야 합니다! 놈이 두 대표님을 납치한 게 분명해요! 빨리 찾지 않으면 두분 목숨도 위험하고, 우리 회사도 큰일이 납니다!”


“저, 참의님. 급하신 건 알겠으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와카마쓰 경부가 한 참의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 코지마 히데오라는 자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뒷세계에서 이름 높은 기업사냥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경찰의 주요범죄자 인명록이나 요주의 인명록에서 그런 이름이 없습니다.”


그 말에 한 참의는, “그······. 그럴 리가요? 뒷세계에서 유명한 놈이랬는데?”라며 당황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이 되었다.


그 말에 오 경부보가 추궁하듯이 물어본다.


“그 말은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그야······. 미쓰이 사장님에게 들었지.”


“미쓰이 사토시 씨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요?”


“코지마 히데오 본인에게서.”


“그 외는요?”


“어······. 없는데?”


그 대답에, 오 경부보의 머릿속에서 소름 끼치는 시나리오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이건 중대사항이었다. 오랫동안 그의 뒷배가 되어 준 외숙부가, 막대한 경제력을 가진 외숙부가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파멸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만큼 시급히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야 했다.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외숙부는 파멸하고 그의 뒷배가 사라질 지도 몰랐다.


오 경부보는 그 시나리오를 입증하기 전에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려 했다.


“코지마 히데오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십니까?”


“아이고. 잘 알지.”


한 참의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게 보인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처음 봤어. 나보다 연배가 위인 것 같기도 한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고 목소리가 굵게 울리는 게 분위기가 대단히 위압적이었지. 눈빛이 완전히 호랑이 눈빛이라서 눈이 마주친 순간 내가 오금을 못 폈다.”


오 경부보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었음을, 아니 현실이었음을 깨닫고 만 것이다. 옆에 있는 와카마쓰 경부도 “이런 세상에!”라며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외숙부님. 말씀드리기 정말 죄송합니다만······.”


오 경부보는 오랜만에 충격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느꼈다. 부모를 청주경찰서에 고변한 이후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사기당하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에, 무서운 침묵이 사무실을 감쌌다. 한 참의는 입을 딱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조가카 방금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정확히는, 이해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무······. 무슨 말이냐?”


한 참의의 얼굴에 식은땀이 또르르 흐른다.


“내가······. 내가 사기를 당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말해달라는 한 참의의 눈치를, 오 경부보는 무자비하게 무시했다.


“그 코지마 히데오는 우리가 추적하는 불령선인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합니다. 일명 ‘장백대호’로 통하는 천남건이란 놈과요.”


그 말에 한 참의의 얼굴이 급격히 변했다. 뒷통수를 예기치 못하게 한 방 거세게 얻어맞은 표정으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은 분명 이 천남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입니다. 그놈은 분명 합법적인 백작위 계승자이지만 조선인일 개연성이 높아요. 그것도 불령선인 단체와 관련이 있는. 그러니······.”


“자, 잠깐! 잠깐 기다리거라!”


한 참의가 급하게 손사래를 친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투였다.


“그······. 그······. 인상이 그저 비슷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 세상천지에 얼굴이 닮은 사람이 한둘이겠냐?”


오 경부보는 이건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인상착의만 따져서는 정말 그 코지마 히데오가 천남건과 동일인물인지 단정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 참의가 명백히 사기를 당했음은 확고하게 말할 수 있었다.


“좋습니다. 그건 둘째 치고, 미쓰이 사토시가 그 코지마 히데오를 뒷세계 기업사냥꾼이라고 했고, 코지마 본인도 그렇게 말했다고 했죠?”


“그······. 그랬지!”


“만약 둘이 짜고 쳤다면요?”


그 말에 한 참의는 대답을 못 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오 경부보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 둘 이외에 코지마 히데오라는 사람이 뒷세계 사람이란 걸, 아니 존재는 하는지 입증해 줄 사람이 없잖습니까?”


“네······. 네 의심이 너무 과한 방향으로 나간 거 아니냐?”


한 참의가 식은땀을 닦으며 반문한다. 그러나 와카마쓰 경부가 고개를 저으며 끼어든다.


“죄송합니다만, 오 경부보의 의심은 결코 과하지 않습니다. 이건 전형적인 사기 수법입니다.”


“뭐, 뭐라고요?”


“이건 당장 회사가 남에게 넘어갈 것 같은 연출을 해서, 단기간 내에 투자금을 받아내는 수법입니다. 내지에서도 여러 번 이런 사기 수법이 있었어요. 코지마 히데오는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요! 그러면······. 그러면 미쓰이 사장님의 말은 뭐란 말입니까?”


“미쓰이 사장과 카라스마 백작 외에 코지마 히데오가 누구인지 알려준 사람이 없다고 하셨잖습니까? 두 사람은 대단히 수상한 인물입니다. 둘이 거짓말을 하였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 코지마라는 자는 둘과 한패일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참의는 완전히 얼이 빠진 채, 입만 바보처럼 벌리고 와카마쓰 경부의 설명을 들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왜 이런 말들을 내가 듣고 있는 건가? 내게 수백 퍼센트의 수익을 올려주고 세계적 재벌에 오르게 할 사람들이, 왜 사기꾼으로 묘사되고 있는 건가?


“코지마 히데오가 이들을 납치했다는 것도 거짓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서로 짜고 치는 화투판을 벌였다고 보는 게 지금으로서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한 참의의 몸이 와들와들 떨려온다. 대체 뭔가? 난 대체 뭔 짓을 한 건가? 세계적인 석유재벌로 만들어 주겠다는 그들의 제안은 대체 뭐였나? 그렇게 믿음직스러워 보이던 사람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들과 협력한다는 미국인 기술자와 지질학자는?


“그······. 그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있었어! 미국인들이 같이 일하고 있는데, 그······. 그런 사기를 치겠느냐?”


한 참의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와카마쓰 경부의 대답은 잔인했다.


“그 미국인들이 정말 지질학자이며 기술자인지, 그리고 진짜 미국인인지 확인은 해 보셨습니까?”


그 말에 한 참의는 심장이 쾅 내려앉으며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자들이 만주에서 석유개발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거기서 파고 있다는 유정은 확인해 보셨습니까?”


“그······. 그게······. 만주국군 부대가 현지 시찰하러 갔던 우리 사원들을 가로막아서······.”

“이거 만주국 정부에까지 문의해야겠군. 그 시점에 거기 병력이 배치되었는지,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해 돌려보낸 기록이 있는지 말이야.”


와카마쓰 경부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보인다. 대체 이놈들은 사기를 얼마나 크게 쳤단 말인가?


“확실한 것은 카라스마 준이치로와 미쓰이 사토시를 서로 소환해서 심문해야만 진상을 밝힐 수 있다는 겁니다.”


오 경부보가 애처로울 정도로 벌벌 떠는 외숙부를 쳐다본다.


“내일 서로 출두해서 미쓰이 사토시와 코지마 히데오의 몽타주 그리는 데 협조해 주세요. 전국적으로 수배령을 내릴 겁니다.”


오 경부보는 이를 거세게 악물었다. 진작 놈들을 잡았어야 했다. 지난달 그 조선철도호텔 약혼식장에서 놈들을 잡았어야 했다. 놈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외숙부였다. 막대한 재산으로 그의 뒷배가 되었음에도 돈 욕심이 한량없으면서 귀가 쓸데없이 얇은 외숙부. 그리고 중추원 참의로서 총독부 시책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외숙부. 놈들이 돈을 우려낼 목표로 삼기에는 충분한 사람이었다.


이제 방법은 하나였다. 저 망할 놈들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다 붙잡고 죄상을 추궁해, 사기 쳐서 가져간 돈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한 참의가 다시 손사래를 친다.


“안 돼! 안 돼! 공개수배는 절대 안 된다!”


“뭐가 안 됩니까?”


오 경부보가 외숙부에게 역정을 낸다. 한 참의는 식은땀으로 속옷이 흥건히 젖는 걸 느끼는 와중에, 거의 정지 상태였던 뇌를 빠르게 놀리고 있었다. 만약 정말 그 사람들이 사기꾼이라면,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이 지금 드러나서는 안 되었다.


“그······. 그자들은 우리 회사 이사진 앞에서 투자설명회를 진행했어! 이사들이 그자들 얼굴을 잘 안단 말이다!”


“그게 왜요?”


“생각해 보거라! 이 투자는 내가 주도적으로 진행한 거야! 그런데 백작과 사장이 실은 사기꾼이었고, 내가 사기에 속아 투자를 했다는 것을 이사들이 알아보거라! 내가 어떻게 되겠니?”


그때 오 경부보도 속으로 아차 하였다. 그렇게 된다면, 한 참의는 분노해 그를 성토하는 이사들과 주주들에게 회사의 경영능력을 극도로 의심받게 될 것이 명약관화했다.


“난 분명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비난을 받고 사장 자리에서 끌어내려 지게 될 게다! 내가 세운 회사에서! 그리고 회사 가치와 주식은 곤두박질치고, 내게 어느 은행도 융자를 해주려 하지 않을 거야! 배임 행위라고 고발당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는 건 물론이고! 그럼 난 어떻게 되겠냐? 그리고 넌 어떻게 되겠냐?”


이런 빌어먹을! 오 경부보의 뒷목에도 식은땀이 흐른다. 그가 30대 초반의 나이에 경부보 자리에 오른 것이 자신의 능력만은 아니었음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외삼촌이 사방팔방에 돈으로 구축한 인맥 덕분이었다. 그러나 돈으로 만든 인맥은 돈이 없어지면 어느새인가 끊어지기 마련임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외숙부가 끝장나면, 그는 이 자리에서 더 올라가지 못할 것이었다. 그는 와카마쓰 경부처럼 그냥 명예 경시 계급장을 달고 정년을 채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경부, 경시, 경시정을 넘어 높은 자리에 올라 모든 걸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자기 위에 신경써야 할 사람이 최소한으로 있을 때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그런 오 경부보에게 한 참의가 조기에 몰락하는 것은 결단코 막아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참의님. 사정은 알겠습니다만, 지금은 범인 체포가 무엇보다 급합니다.”


와카마쓰 경부가 한 참의를 채근한다.


“범인을 신속히 체포해야 사기당한 자금도 빨리 회수할 수 있습니다. 수사에 협조하시는 것이 급선무······.”


“경부님!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한 참의는 와카마쓰 경부에게 거의 무릎을 꿇을 기세였다.


“사기당한 돈은 어떻게든 충당할 수 있어요! 전 신용도가 높습니다! 당장 은행에서 돈을 끌어 쓸 수 있단 말입니다! 게다가 회사에서 다른 회사 주식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고, 제 개인 재산으로 투자한 주식과 채권을 현금화할 수 있어요! 인건비 절감 조치도 취할 수 있고요! 당장 현금을 마련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당했다는 게 이사들에게 알려진다면, 그럴 수도 없어진단 말입니다!”


“나, 원 참!”


와카마쓰 경부가 뒷목을 주무른다. 한 참의의 애걸을 무시하고 공개수배를 시행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 또한 한 참의에게 한 두 푼 받아먹은 게 아니지 않은가? 한 참의가 자기 조카 좀 잘 봐달라고 용돈 명목으로 주머니에 넣어주는 돈을 잃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다.


“경부님. 일단은 비공개로 진행하셨으면 합니다.”


오 경부보도 질린 얼굴로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러야 할 수사상의 이유는 말하지 못한다.


“더 자세한 조사를 위해 회사 업무 끝나고 경찰서에 방문해 주십시오. 코지마 히데오란 놈의 몽타주도 만들어야 하니. 이걸로 최소한 천남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는 있겠군.”


와카마쓰 경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리에 얼어붙듯이 앉아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한 참의에게 나름의 위로를 건넨다.


“지금은 사기가 유력하기는 하지만, 아직 조사해 볼 것은 더 많습니다. 사기라고 확정된 것은 아니니 일단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 안정을 취하세요.”


오 경부보도 자리에서 일어나, 얼빠진 얼굴의 외숙부에게 “실례했습니다.”하고 인사하고는 사장실을 빠져나간다. 차갑게 굳은 얼굴과 달리 속은 뜨겁게 부글거리고 있었다.


카라스마 준이치로 이 사기꾼 새끼! 이걸로 날 끝장내려 하시겠다? 두고 보라지! 네놈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장에 처넣고 말겠다!


한편 형사들을 보내고 사장실에 홀로 덩그러니 앉은 한 참의는, 떨리는 심장 때문에 소파에서 일어서지를 못했다. 정말 사기를 당한 건가? 내가? 이 천하의 한덕만이가? 김성수 씨의 경성방직 다음가는 방직회사를 세운 이 한덕만이가? 중추원 참의로 당선되어 총독부 정책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이 한덕만이가? 조만간 남작위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오르는 한덕만이가? 조선팔도는 물론이고 내지를 뒤흔들 거물이 될 수 있는 이 한덕만이가?


그런 내가 사기를 당하다니? 내가 사기를 당하다니!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최근 오르기 시작한 주식들에 투자하여 재산을 훨씬 불릴 수 있는 20만 원 이상을 사기당하다니! 내 피 같은 돈을! 내 목숨 같은 돈을! 이건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된다고!


그렇게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그나마 사업가로서의 이성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경찰들에게 말한 대로 손을 빨리 써야 했다. 주식이건 채권이건 토지건 현금화할 수 있는 걸 빨리 현금화해야 한다. 일 못 하는 것들을 다 잘라서 인건비를 절약해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회계사를 강압해서라도 주주총회에서 손실이 없는 것처럼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훗날 이사회의 비난을 받더라도, 사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일은 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당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행동할 수 있을지, 갑작스러운 주식 매도의 이유를 묻는 중역들에게 합당한 이유를 긴장하지 않고 댈 수 있을지 생각해보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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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203화 +8 20.09.23 273 9 13쪽
202 202화 +8 20.09.20 278 11 12쪽
201 201화 +14 20.09.19 266 10 13쪽
200 200화 +8 20.09.16 271 10 16쪽
199 199화 +8 20.09.13 279 10 17쪽
198 198화 +6 20.09.12 268 10 16쪽
197 197화 +8 20.09.11 265 11 17쪽
196 196화 +6 20.09.07 284 9 16쪽
195 195화 +10 20.09.04 267 10 15쪽
194 194화 +10 20.09.03 264 10 20쪽
193 193화 +10 20.09.01 271 9 15쪽
» 192화 +10 20.08.31 278 10 22쪽
191 191화 +8 20.08.30 270 13 20쪽
190 190화 +12 20.08.27 280 10 17쪽
189 189화 +8 20.08.23 275 12 18쪽
188 188화 +8 20.08.20 271 9 19쪽
187 187화 +12 20.08.17 275 11 21쪽
186 186화 +8 20.08.16 289 10 15쪽
185 185화 +10 20.08.15 284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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