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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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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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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6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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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37. 진행

DUMMY

*


여긴 어쩐 일이냐,


는 물음은 로웰에게 고스란히 되돌아갔다.


“호오······.”


제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로웰의 대답이 퍽 인상적이었던 탓이다.


로웰 드버. 금강Diamond급의 용병, 마물술사. 세슈칸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렸던 테이머Tamer였다.


갈색 더벅머리. 알고 지내면 더욱 친근히 보이고 독기가 빠지는 인상은 만만하게까지 느껴질 때가 있다.


로웰은 길을 걷다가, 자연스레 헌터즈 길드원들을 발견하고 원목 테이블에 합석했다. 마침 의자가 두어 개 남기도 했다. 테라스 가장 자리 즈음에 있는, 제법 넓은 좌석이었다. 그들이 앉은 곳은.


로웰은 자리에 앉아서 미주알고주알, 자신의 신변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간 나름의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세슈칸 시에서의 일로 그는 떠돌이가 되었다. 어찌보면 불가항력적으로. 일단은 의뢰를 수락한 금강급의 용병으로서 해야할 일이 있었는데. 대놓고 반대 진영이 붙었으니까 말이다.


세슈칸 시의 용병, 모험가 길드 따위를 꽉 쥐고 있던 운트 작힘 백작에게 정면으로 거스른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작힘 백은 공판을 거쳐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용병의 의뢰라는 건 또 따로 치러야 하는 값이 있는, 중요한 일이었다.

길드에서 신원을 보장해주는 이들이 제대로 의뢰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에게 믿고 일을 맡기겠는가.


확실한 규율과 처벌이 없다면, 보호자로 의뢰를 맡았던 용병이 노략꾼으로 변할 수도 있는 법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공공연하거나, 만행하지는 않는다. ‘길드Guild'의 위상은 제법 대단한 편이었고.

거기에 속한 이들이 ’범법자‘들을 토벌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 역시 상당히 효과좋은 억제력이었으니.


어찌되었든 길드는 의뢰 중의 과실過失에 대하여 철저하게 따지고, 리스크를 지우는 편이었다. 운트 작힘 백작의 위압이 상당했던, 이상한 의뢰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로웰 드버는 더 이상 세슈칸 시에서 용병으로서 일을 하기는 어려워졌었다. 여태까지 쌓았던 공적치, 길드 멤버로서 올렸던 성과들을 모조리 반납하고.

맨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을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로웰 드버는 기로에 서 있었고, 이래저래 고민을 하다가.


당시 길었던 퀘스트 과정 중에 연을 맺었던 그리턴 가로 가게 되었다.


그리턴 자작가 역시 언제나 인재에 목마른 집단이었고. 또 이미 함께 모험을 하면서 마음이 맞는 것을 확인했던 로웰이라면 환영할만한 재원이었다.


그리턴 가의 갈색 사슴 기사단이나, 혹은 워메이지들이 이미 있었긴 하지만. 산슈카 국내의 여러 영지들 중에서도 ’데슈칸 산맥‘에 위치하고 있는 자작가의 주변은 특히 병력이 필요하다. 거기다가 ’마물술사‘라고 불리는 군단 계열의 테이머를 어찌 반기지 않을 수 있을까.


로웰은 플레이어들의 구분상 중수 정도의 레벨만으로도 이미 최고위급 용병으로 일했던 전력이 있다. 재원 중에서도 특급이라고 할만하다.


여차저차해서.


로웰은 자작가에 몸담고 있는 신세이며. 프리랜서로 돌아다닐 시절보다야 녹봉이 적었지만 훨씬 안정적이고 만족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늘 대공령에 온 것 역시, 그리턴 가의 서신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겁니까?”


두서없이 이어진 로웰 드버의 사변적인 이야기는, 곧 끝을 맺었다. 한낮의 커피숍에서 듣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빠른 속도감의 사연담이었다.


요지는 하이샨 그리턴 자작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었으니.


“어, 뭐······ 그렇지. 이래뵈도 금강급 용병이었던 전력이 있으니.”


로웰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앉은 곳은 호아킨의 옆이었다. 제냐가 사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의 걱정이 새삼스럽다는 듯 여겨서 지은 표정이었다. 험난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다 큰 사내를 굳이 걱정할 게 있겠는가. 아녀자도 아니었고. 나름대로 자구책은 있으니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애초에 자작가에 ’병력‘으로서 고용된 것일진대.


그러나 제냐가 느끼는 걱정스러움은 다른 연유에서 생겨난 감정이다.


산슈카 국내 어디를 마물술사가 돌아다니던 큰 일은 아니겠지만. 여기는 어지간한 필드Field보다 더 위험한 곳이었다. 이 게임에 ‘적’은 괴물 뿐만이 아니었으니까.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고, 악의를 가진 인간만큼 위험한 것도 세상에 달리 없었다.

현실의 세계는 법과 제도가 그나마 지켜주고 있었지만. 야만의 시대에서는 그 안전망이 훨씬 엉성하다.


그리고 여긴 그런 ‘악의를 가진 인간’ 중에서 가장 위험한 놈이 군림하고 있는 영지이기도 했다. 알사드 령. 게으른 대공의 속내를 짐작하고 있는 제냐로서는, 하필 이런 도시에 일을 보러 온 로웰 드버의 처지가 안쓰러운 수준이었다.


그는 아무리 잘 쳐주어도, 고수급은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탁월한 마물술사로서 낼 수 있는 위력이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본신의 전투력은 그리 대단할 게 없는 양반이다.

지금은 달리 테이밍된 펫도 보이지 않고 있었고.


산슈카는 생각보다 더 위험한 동네였다. 플레이어들은 그저 한적하게 돌아다니면서 게임을 즐기면 그만일 일이었지만. 실제로 이 내부에서 살아가야 하는 NPC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리라. NPC들을 생명으로서 대하는 건 아니었고. 소설이나 연극에 깊이 몰입을 하듯 따라서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제냐로선.


아무튼 복잡한 인간관계의 알력다툼이 산슈카 국내에 벌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해도 여러 갈래로 파벌들이 갈라질 테다. 신진파와 정통파. 그리고, 제냐 일행이 쫓고 있는 ‘반역자’ 무리와 ‘산슈카’의 질서를 지키는 쪽의 인물들.


제냐가 이전에 맡았던 로멜리아 가의 퀘스트로 인해서 알게된 사실은. 단순히 신진파와 정통파 사이의 문제로 보였었는데. 이후에 벌어진 퀘스트 씬에 따르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신진파니 정통파니 하는 정치적 파벌 싸움을 넘어서는 이해 관계가 이 국내에 있었고. 정상적인 형식의 ‘파벌’조차 거부하는 ‘테러Terror'적 집단이 있는 모양이었다.


운트 작힘 백작이 미치광이처럼 로멜리아 가문을 노렸던 것이나. 그 뒤를 봐주었던 게으른 대공의 모습들을 보자면.


어찌되었든 현재 제냐의 시선에서 ’선악‘을 가른다고 했을 때. ’그리턴 가문‘은 공의의 편에 서서 죄없는 약자를 도와준 가문이었다. 그리턴 가의 인물은 달리 말해 ‘악적’들의 반대편 진영이라 할 수 있으리라.


단순하게 생각을 해보아도 맞았다. 반역의 의지를 품고 있는 어느 권력자가 두려워하는 건 현재 실권을 거머쥔 왕정의 시선을 사는 일이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고, 드러나길 원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리턴 가문’은 4대고가의 일문一門이며 사슈나 가문과도 연이 깊었다. 아주 단순하며 유아적인 추리 방식으로 편을 나눈다고 했을 때. ‘왕실’의 편에 설 그리턴은 곧 ‘대공’의 적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겉으로 드러나는 적대적 관계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욱 위험한 법이다. 제냐 스스로가 암살 위협에 시달렸던 것처럼. 그리턴 가의 사절로서 일을 보러 온 그는. 아마 수가 틀어지면 언제든 목이 날아가거나 하지 않을까.


제냐는 로웰의 정겨운 면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다.


제냐의 생각이 표정에 조금 묻어나온 모양이다. 로웰은 인상을 찡그리며 제냐에게 물었다.


“······뭐 초상났소? 사람 얼굴을 보고 뭐 씹은 꼴을 하고 있구만···.”


로웰은 수더분한 작자였고. 개인의 고집이 그리 센 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쉽게 길드의 위압에 넘어가 운트 작힘의 의뢰를 받고. 또 반대 진영인 제냐 일행의 편에 서기도 했겠지. 그런 유연성이 그의 목숨을 살렸다고도 할 수 있었다.

버리면 안될 걸 버려버리는 유연성은 사람의 목숨보다 귀중한 가치도 잃게 만들곤 한다. 그건 ‘비겁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대의나 명분을 따라서, 자신의 고집을 꺾을 줄 아는 유연성은 사람을 살게도 한다.


로웰 드버는 장수를 할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괴수의 아가리 근처에 와 있는 상황이었고.

제냐 역시 대공령이 안전해서 이리로 온 게 아니었다. 단서를 찾기 위해 범의 아가리로 직접 들어왔을 뿐이지.


복잡한 생각을 하며 로웰의 말에 반문을 하려다가.

제냐는 문득 달리 생각이 진행되었다.


그가 평화의 숲 옆 도시, 스타팅 포인트였던 피스 시市에서 세슈칸 시市로 이동을 하다가 로멜리아 가의 사람들과 엮인 건 우연이었다.

그러나 우연이었어도, 퀘스트는 시작이 되었고. 시스템 AI는 그를 시나리오 퀘스트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만남 역시 퀘스트 씬의 일종이 아닌가?


플레이어의 자유의사와 자체적인 난수Chaos 시스템을 이용해 다양한 이야기를 빚어내는 게 이 게임이었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변화 역시 시스템이 주관하는 씬의 연결이 아닐까 싶어졌다.


그가 가만히 있었는데 저절로 다음 씬의 키포인트가 생겨나다니. 이따위 게임 진행 방식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제냐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혼자 흘렸다.


“허.”

“허?”


로웰은 더욱 인상을 구겼다. 제냐가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 알기에 굳이 화를 내지 않을 뿐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큰소리라도 한 번 냈을법한 말과 표정들의 나열이었지만. 제냐가 악의가 없다는 걸 알기에 로웰은 그냥 표정만 찡그리고 말았다.


제냐는 헌터즈 길드원들의 면면을 처다보며 말했다.


“로웰 씨를 따라가죠.”

“엥?”


로웰은 뜬금없는 이야기에 다시 한 번 의문을 표했다.


라이엔 역시 마찬가지였고.


호아킨은 크게 놀라지 않은 기색으로 고개만 끄덕거린다. 최태현은 곰곰이 홀로 생각을 하는 듯했고. 릿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다.


“이 놈의 게임은 참.”


릿샤가 입술을 열어 말을 뱉었다. 거기까지만 말했지만. 제냐가 떠올린 생각의 과정과 비슷하거나, 같은 걸 그녀도 알았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제냐는 릿샤를 바라보며 웃었다.


로웰은 오랜만에 만난 전우, 동료들의 이야기 흐름을 쫓아가기가 어려웠다.


별 말 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긴 이야기를 토해냈으니. 이제는 반대쪽의 사연을 들을 차례였다. 로웰은 납득을 시켜달라는 듯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뭔 소리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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