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새글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30 02:56
연재수 :
358 회
조회수 :
9,093
추천수 :
771
글자수 :
3,405,694

작성
24.04.01 01:16
조회
13
추천
1
글자
19쪽

251. 리비아

DUMMY

*


흑막은 조용히 움직이는 법이었다.


흑막, 이라는 이름에서도 곧바로 알 수 있지 않은가. 검은 베일에 가려져서 자신의 정체를 가린 이들. 검고 어둡다. 그건 비밀스러운 의지를 뜻하는데, 개중에서도 지저분하고 폭력적인 종류를 의미한다.


아무도 알아서는 안되는 의지들. 야만스럽고, 자신의 야욕을 추구하는 이들.


산슈카, 를 넘어서.


필리아 대륙 중부. 혹은 중남부. 이 일대에서 가장 그런 이름에 어울리는 의지는 대공의 것이었다.

달리 풀어 이야기를 하면, 가장 광기어린 또라이였다. 개중에서, 가장 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작자였고.


산슈카의 대공이라는 것이 문제였으리라. 차라리 다른 나라의 대공이나, 고위자였으면 문제가 덜했을 텐데. 산슈카는 긴 역사와 저력을 한 번에 갖고 있는 나라였다.

그래, 키Key가 있는 장소였다. 산슈카라는 나라는.

옛적 산슈카 제국, 고대 왕국의 시기에 찬란했던 영광의 흔적이 빛이 바랬으나 남아서.


옛적에 지배했던 그 일토를 전부 들쑤실만한 힘이 깊이 잠들어 있는 곳.


그런 힘에 누구보다도 가까이 다가가고, 연구에 진척을 보인 것이 세르게이 알사드라는 게 비극일 뿐이다.


화신 사막.


개중에서도 산슈카 국에 가까이 있는, 지역.


사막의 땅을 지나면 평야가 나온다. 처음에는 사막이나 크게 다름이 없는 황야였지만. 내륙까지 뻗어있는 물줄기가 닿인 곳들은 풍요로운 목초였다. 사막에 살아가는 이들은, 간절하게, 바랄 수 밖에 없는 지형이다.


먹을 것도, 살 곳도 부족한 땅이 화신이었다. 사막에도 오아시스는 있었고. 강줄기 따위는 길게 이어져 있었지만. 오랜 옛날 지어진 그 모래의 땅은 인간에게 극한의 삶을 요구한다.


사막을 질주하는 부족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이 아직까지 규합하며 하나의 왕국으로 발돋움하지 못한 건 많은 이유가 있으리라. 문화의 차이. 생각, 사상의 차이. 살기 어려운, 자원이 적은 땅. 척박함을 개간할 정도로 발전하지 못한 시대의 기술력의 한계.

또 플레이어들에게 '필드Field'라고 불리는,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리젠regen되는 땅. 몬스터들이 빈 곳에서 계속해서 생성된다면. 결국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런 곳이라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사냥을 반복하고, 일대의 몬스터 개체수를 기준치 이하로 낮춰간다면, 땅은 '정화'된다.

그러한 정화가 비련시 온라인 내에 있는 주요, 컨텐츠의 갈래이자 흐름이기도 했다. 몬스터와 인간의 반목, 그리고 인간 생존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애초에 지어진 바에 의해, 몬스터는 인간을 적대시한다. '귀신'이라고 불리는 악신의 존재로 인함이었다.

태초에, 조물주의 뜻에 반기를 들고 타락한 종. 천사,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지닌 영적 존재로 지어졌으나, 개중에서 타락한 개체는 귀신이 되었다.


선과 악, 신과 악마의 대립이었으나, 대등한 관계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본질적으로 귀신은 세상에 대하야, 자연계에 대하야, 우주와 그걸 지은 신에 대하야 반기를 들고 인간을 괴롭히고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예비된 감옥에 수감될 존재였다. 흔히들, '지옥'이라고 부르는 곳 말이다. 이 세상에 있는 곳은 아니었고, 사후 세계의 한 곳으로서. '천국과 지옥'으로 불리는 그 지옥.

콘란드 대륙의 주민들 역시 죽게 되어, 심판을 받은 뒤에 갈려서 흘러 들어갈 곳들이었다.


'마지막 날', 곧 '심판'의 날이 오기 전까지 귀신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리라. 정해진, 예비된 날이 오기까지 인간의 역사는 계속 흐르고. 귀신과 그 피조물들, 몬스터와 또 악의에 물든 인간들은 늘 기승을 부릴 테였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마지막 날까지 갈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지어져 있었고. 이 곳, 가상 세계. 콘란드 대륙 위에 '악마의 종'은 몬스터라는 이름으로 가시화되어 보인다.


자연의 혹독함으로 인해, 몬스터의 악독함으로 인해. 화신 사막은 어쨌건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이었다. 지금으로선 왕국이 제대로 서지 못할 정도로.


사막 위의 부족들이 전체 인구가 적다거나. 저력이 없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수십, 수백 갈래 이상으로 찢어진 것 뿐이었지. 만약에 존재하는 모든 부족들이 하나로 규합될 수 있다면 어지간한 일국 이상의 군사력을 보일 수 있으리라.


오랜 기간 규합되지 못하고 이어진 전쟁의 역사라는 건. 달리 말하면 전사들, 전쟁 기술의 역사로도 볼 수 있었으니. 그만큼 용맹한 부족의 전사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제도와 체제로 이루어진 거대한 집단들. 곧 '나라'로서 선 곳에서는 초인 병력들이 많았는데. 그에 비해 뛰어난 능력자가 적기는 했지만. 일반병들에 제한해서 비교를 해보자면 화신 사막 부족들의 모든 전사들은 분명, 대단한 군세였다.


산슈카는 직접적으로 접해 있지만 화신 사막 내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들의 일은 그들의 것.


타국의 주권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기본적 규율을 지키는 것이다.


안단이나 벨베르의 경우에는, 국경을 길게 맞닿지는 않아도 닿아 있었지만. 부족들의 정세에 관여하고자 하지만, 타국의 눈치를 보면서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화신 사막의 일에 깊이 개입해서, 그들을 우방이나 도움말로 사용한다면. 결국 그 나라의 국력이 늘어나는 일이니까.


그건 반칙에 가깝다고, 각국간의 합의를 본 셈이다.


만일 화신 사막 내의 여러 부족들이 자체적인 합의의 과정을 통해, 한 개의 공동체로 모이게 된다면. 그 때 정당한 외교적 절차가 이루어지리라.


거기까지가- 대외적인 최선이었고.


실상은 언제나 도덕이나 기준과는 조금 다른 법이었다.


알사드 대공가의 명을 따르는, 암약하는 자들. 편의상 '암부'라고 불릴만한 자들은 인접국 모두에 퍼져 있었다. 물론, 화신 사막에도.


가장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지역이라고 해도 좋았다.


적은 힘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특징이 있는 땅이었으니.


물론 대공가처럼, 초인 병력을 부릴 수 있는 이들에 한한 일이었다.


검은 늑대단 중 상당수가 화신 사막에 있기도 했다.


앙투라고 불린 사내. 랑그레 마누처럼 '기사단'에 속하지는 않지만 초인적 능력을 가진 고용인들도 많이 있었고.


대공가의 흩어진 전력을 모두 데려올 수 있다면, 진지하게 왕실의 전력과 겨루어봐도 좋을만하리라. 정규군, 일반병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초인병력들. 특수 전력들에 한해서는.


대공가 하나가 감당하는 병력과 왕국의 정규군은 아무래도 체급이 달랐다. 일반병들의 규모를 그만치 늘린다는 건, 곧 왕실의 견제를 스스로 사겠다는 의미도 되었고.


이 시대에서 각 지방 자치군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지만. 왕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과잉된 병력을 사설군으로 갖는다는 건, 그게 누구라고 해도 눈총을 살만한 일이었다.

알사드 대공으로서는 절대적으로 피할만한 일이 그것이고.


물론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기도 하다.


긴 시간 연구를 통해서 알사드 가문은 치트키Cheat key를 얻었다. 정식의 열쇠는 아니지만. 어차피 제대로 아티팩트를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에너지를 폭주시키고 폭탄처럼 써먹으려는 것이었으니.


원래의 목적과 기능대로 정밀 기동을 시키는 건 불가능하지만. 나름대로 아쉬울 것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정식의 키를 얻는 게 좋다만.


이미 계획은 시작이 되었다.


에너지의 배터리 역할을 하는 거대한, 제국기의 유물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함을 이미 확인했다.


왕실의 눈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둔하며 평화라는 덫에 빠져 멀어진 채고.


정규군의 움직임으로도 멈추기 어려운. 거력에 가까운 MP는 기어코 각 시설들에 갖다 박고, 폭발을 일으키리라.


순식간에 사태는 악화될 테였고. 한 번 흐르기 시작한 기세는 누구도 멎게 하지 못할 것이었다.


알사드의 야욕은 아주 긴 시간 이어져왔고. 오랜 시간 쌓이며 준비 되어왔다.


여러 지방 중에서 하필 필리아 대륙. 하필 산슈카 국이 품은 시한 폭탄은 타이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대륙급 퀘스트에도 닿게 될, 주요 퀘스트의 여러 갈래들 중.

한 개가 시행되는 셈이었다.


제냐, 는 여러 군데 각기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던 톱니바퀴 중에서 공교롭게도 하나에 걸리고 만 인물이고.


제냐 킴이 로멜리아 가문의 인물들과 만난 것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거기에서 제냐가 로멜리아 가문의 후계자, 두 아가씨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알사드 대공의 계획은 조금 더 빠르게 진전이 되었으리라. 급박하게 일어나는 산슈카에서의 소동이었을 테고. 그 급박한 페이스에 맞추어서, 여러 개의 퀘스트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보다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리라.


그러나 제냐는 드문 선택을 해냈다. 길거리, 골목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이들의 불행에 모른 체를 하지 않았고. 그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키를 훨씬 넘는 수준의 고비를 함께 넘어주었다. 갖은 애를 써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했더라도, 실패했을 지 모를 위험한 퀘스트의 연속이었는데. 운이 따랐는지, 어찌어찌 해결하기에 이르렀고.


덕분에 중부 대륙에서 벌어졌을 시나리오는 상당히 늦춰졌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 조기에 진압이 된 셈이었고. 알사드 대공은 계획했던 바를 조금 느리게 시행을 한다.


‘느리게’라고 해보았자 결국 1, 2년을 버티지 못했지만. 고작 수 개월 정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수 개월이 주요했다. 제냐 일행이 대공가의 캐릭터들과 적대할만한 최소한의 시간을 번 셈이었으니까.


*


서부 사막의 넓이는 광활했다. 그만한 넓이의 목초지가 있었다면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살 수 있었을텐데.

자연은 언제나 사막의 민족에게 가혹하며, 끈질긴 신념을 요구하곤 한다.


사막 부족 ‘이시기르’의 전사,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생각했다.


“······후.”


짧은 한숨을 내뱉어 보아도, 눈 앞에 펼쳐지는 대지가 바뀌진 않았다. 마치 무한하다, 고 착각을 할만큼 넓은 땅. 모래의 땅, 열사의 땅. 태양이 지나치게 사랑하는 곳.


오아시스나 강줄기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위치해 있었다. 오래 전 부족의 선조들이 파놓은 우물들도 있었고. 그러나 가장 좋은 수원이라고 할만한 강의 본류나 큰 오아시스로부터는 거리가 제법 있는 게 사실이다. 말을 타고 하루 정도는 가야 했으니까.


모래의 땅에서는 낙타나,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생긴 ‘사막 말’을 타고 다닌다. 발굽이 보통의 놈들보다 조금 더 넓고 평평하다. 편자를 달 때에도 모래에 파묻히지 않게끔 두툼하고 넓게 다는 편이었다. 초원을 다니는 놈들보다 각력이 셌고, 튼튼하다. 수분기를 몸에 저장하고 오래도록 버티는 능력이 있었으며, 적은 양의 짚으로도 장기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장 좋은 땅은, 가장 힘센 부족이 차지하는 게 상리이기는 했다. 다시 말해 ‘이시기르’는 딱 큰 강의 본류로부터 말로 하룻길 정도 떨어져 있을만큼의, 세력을 갖고 있는 부족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리비아 이시기르스.


구릿빛 피부. 영롱한 푸른 눈동자. 검은색에 가깝고, 약간 갈색과 붉은색이 섞여있는 곱슬 머리. 탄탄한 체격에 큰 키. 사막 민족의 전통 복장에, 전투를 위한 방어갑 따위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마을 앞, 모래 언덕 위에 올라 자신의 애마 ‘갈버트’와 함께 먼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은 한낮이다. 사막에서 활동을 하기에는 그리 좋은 시간이 아니었다. 머리에는 빛을 가릴만한 얇은 천을 둘러썼고, 그것만으로 모자란지 챙이 넓은 짚모자를 쓰고도 있었다. 간신히 만들어지는 작은 그늘이 얼굴에 시원함을 준다.


허리에는 특이하게 생긴, 큰 곡도가 매여 있었다. 날의 폭이 넓었고, 하단보다 소드 미들, 중단부에서 시작해 상단부 즈음이 더욱 넓은 특이한 형태였다. 마치 붓으로 갈겨 그린 듯한 곡선이, 칼날의 형태였다. 원심력을 이용해 강하게, 상대를 베어낼 수 있는 무기이기도 했고. 현란한 궤적으로 상대의 눈을 어지럽힐 수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한 손으로 다루지만 두 손으로 쥐고, 큰 폭으로 휘두르면 말의 목이라고 해도 단숨에 자를만한 파괴력이 있는, 명도였다.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그런 명도를 지닐만한 사내였다.


이시기르 부족에서 나고 자란 사내였고, 올해로 31년을 살았다. 그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전투만 하더라도 다 세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개중에는 불가피하게 당했던 전투도 있고, 그들 부족이 주도적으로 시작한 상황도 있었다.


사막에서 살아간다는 건 투쟁과도 같다. 그것도, 가장 지독한 부류의 투쟁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민족들은 언제나 다투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를 아끼기 위해서. 민족들은 늘 반목하면서, 비슷한 혈족일 지 모르는 동족들을 베어 죽인다.


이 시대, 콘란드 대륙의 정세를 그는 모른다. 태어나서 화신 사막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우물 안 개구리. 그것이 이시기르스의 처지임이다.


바깥의 소식을 아예 모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 안다’라고 말을 하는 건, 지나치게 얼척없는 허풍이리라. 건너 듣는 몇 가지 소식 뿐이었다. 그가 사막 밖의 일에 대해 인지하는 바는.


그러나 그럼에도, 화신 사막에서의 삶과 부족민들의 역사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사막에서 이어지고 있는 어떤 가르침도, 이걸 ‘사람답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견디고 버텨야 하기에 버틴 나날들에 대한 기록일 뿐이었다.

사막 민족들의 역사라는 건.


조금 더 나은 화합의 길이 있지 않을까, 전사는 전투에 늘상 임하면서도 고민을 하곤 했다. 조금 더 멀리 보고 싶어서. 이시기르스는 높은 언덕 위에 올라 근방을 살핀다. 근처 부족들의 동태를 미리 알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둘러대면, 딱히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는 부족 내에서 얼마 없는 ‘엘리트’ 군인이었다.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 말이다.


보통 건장한 사내들 일부는, 전문적인 전사로 길러져 일반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다. 보통의 일들은 다른 자들이 도맡고. 백 단위 정도 되는 이들은 계속해서 몸을 단련하며 전쟁의 기술을 익히기만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훈련된 병사이자 무구武具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집단적 전략 행위 역시 계속해서 강구를 하고 몸에 익힌다. 여러 병법을 공부하고, 실전 상황에서 그대로 움직이기 위해 반복한다.

평야의 다른 나라들, 왕국에서 말하는 ‘기사knight'와 비슷한 계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콘란드 대륙에서 말하는 기사, 라는 건 거기에서 조금 더 추가된 의미가 있지만. 기력술사를 뜻하는 말 말이다.

전문적인 직업 군인 이상으로, 어떤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기사라고 특별히 불렀다. 귀족에게 고용되어 고액의 녹봉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이들. 전쟁터에서, 인간같지 않은 활약을 보일 수 있는 이들.


화신 사막에는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부류였다. 리비아는, 그런 의미에서도 ’기사‘라고 할 수 있는 자였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 평야의 다른 왕국에 가더라도 기사단에 들 수 있는 실력자 말이다.


어쨌건 부족 내에서 수가 많지 않은 전문적 병력이기도 했고. 보통은 훈련을 하고, 주변 순찰을 한다. 적대적인 관계의 타부족만이 적이 아니라, 몬스터들 역시 부족민들을 위협하는 재앙이었으므로 토벌 역시 정기적으로 해야 했고.


그러다가 시간이 남을 때는 간혹 이렇게.


먼 곳을 바라보며 먼 미래나 대계大計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본다. 조금 더 나은 길이 있지 않을까.

그는 지도자도 아니었고, 지도자 근처에도 갈 일이 없었지만. 병력으로서 엘리트일 뿐이었지 정치적으로는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그건 ‘족장’과 그의 혈족들. 또 마을 원로들의 일이었으니까. 지금으로서 리비아는 칼을 잘 다루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리비아-!”


그런 NPC.


리비아 이시기르스를 찾는 이가 있었다. 뒤에서 부르는 먼 목소리에, 리비아는 고개를 뒤로 젖힌다.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건, 근거리에 한하는 일이다. 그는 기력술사이지 초상술사 계열의 능력은 없었다. 그런 이들은 이 사막에서 ‘마기아’라는 옛 이름으로 불리며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태생적으로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막 민족들에게. ‘원소元素’의 술법을 다루는 초상술사들이 얼마나 유용한 존재이겠는가.

허공에서 물을 만들고, 기온을 조절하고. 때로는 불을 피우기도 하고. 또한 모래나 흙을 다루는 부류는 기초적인 토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MP만 계속해서 회복이 된다고 하면 혼자서 수십, 수백, 혹은 그 이상의 노동력이나 인적 자원으로서 가치가 있는 게 초상술사들이니.


기력술사들보다도, 주민들의 삶에 있어선 훨씬 큰 도움이라 할 수 있으리라.


감지술사도 아니고, 기력술사로서의 감지력도 근접전 경우의 전장에 제한되는 그는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이미 귀로 들은 소리로서는. 익숙한 것이라 사실 짐작은 이미 했다만.


마을에 머무르고 있는 여행객, 토미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이방인이었지만 부족에 도움이 되는 인물이다. 몇 없는 초상술사이기도 했고. 그는 손을 슬쩍, 들어보이며 청년에게 화답을 한다. 모래 언덕 아래. 저 멀리에 있었다. 목청도 좋다. 상당한 거리임에도 분명하게 들리는 발성이다.


“뭐-해!”


참 속없는 친구이다. 뭘 하긴. 부족의 장래를 생각하느라 골이 빠개지는 중이지.


리비아는 말없이 녀석의 해맑은 면상을 바라보다가, 움직였다.


“이랴.”


먼저 소리를 내고, 옆에 있던 사막 말의 옆구리에 있는 등자를 밟으며 순식간에 올라탔다. 눈 깜짝할 새의 움직임이었다. 그 다음에 툭, 하고 가볍게 눈치를 주자 갈버트는 울지도 않고 걸음을 걸었다. 곧 천천히 균형을 잡던 사막 말이, 언덕을 빠르게 내려간다.


리비아는 등자에 둔 발과 하체로만 균형을 잡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소리를 지른다. 마주.


“너는 임마-!”


상념을 방해한 놈의 용건이 뭔지, 가까이 가서 들어봐야겠다.


*

derek-thomson-UG9--HwN3xI-unsplash.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9 268. 견제 24.04.16 14 1 26쪽
268 267. 썬더 울프. 사막의 밤. 24.04.14 15 1 18쪽
267 266. 케이실라Keiseila 24.04.13 15 1 15쪽
266 265. 외유外遊 24.04.12 13 1 21쪽
265 264. 처량한 포로 24.04.12 13 1 30쪽
264 263. 세부 내용 24.04.10 23 1 13쪽
263 262. 알현 24.04.10 13 1 19쪽
262 261. 사절단의 여정 24.04.10 17 1 19쪽
261 260. 비슷한 아이디어 24.04.10 11 1 19쪽
260 259. '그 망할 새끼' That shit 24.04.09 14 1 23쪽
259 258. 잠입 24.04.09 9 1 15쪽
258 257. 납치 24.04.08 11 1 10쪽
257 256.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가볍게 검을 내리긋는다. 24.04.07 11 1 24쪽
256 255. 이쿠죠いくぞ 24.04.04 16 1 30쪽
255 254. 사막벌레 24.04.03 14 1 14쪽
254 253. 부족의 명운 24.04.02 15 1 24쪽
253 252. 이시기르스 24.04.02 13 1 17쪽
» 251. 리비아 24.04.01 14 1 19쪽
251 250. 사절단 24.03.31 17 1 15쪽
250 249. 에드버그 24.03.30 13 1 15쪽
249 248. 사담私談 24.03.30 15 1 14쪽
248 247. 자고로 다 고생하는데 뺑끼치는 새끼가 제일… 24.03.29 13 1 23쪽
247 246. 살리기 24.03.29 12 1 12쪽
246 245. 상처 24.03.29 9 1 9쪽
245 244. 전조없는 비수 24.03.29 11 1 22쪽
244 243. 셰프 L 24.03.29 12 1 14쪽
243 242. 합류 24.03.28 13 1 24쪽
242 241. 하울Howl 24.03.28 12 1 16쪽
241 240. 지팡이 하나 24.03.27 10 1 19쪽
240 239. 치즈 케잌 24.03.26 10 1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