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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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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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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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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상처

DUMMY

*


“안 먹었다고.”


랑그레 마누는 홀 담당 매니저로부터 이야기를 건네듣고 표정을 구긴다. 그치고는 대단한 변화였다. 미미하게 눈가가 일렁인 정도였으니까. 표정이 많지 않은 사내였다. 원래는. 주변과 잘 어우러지기 위해서 온화하거나, 밝은 표정 따위를 연습해서 짓고는 하는데.

그의 속내가 얼굴에 드러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 앙투 셰프. 혹시 뭐가 잘못된 걸까요···.”


담당 매니저는 그다지 눈치는 없는 인간이었다. 셰프 앞에서 음식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논한다는 건. 결국 셰프 탓을 하게 되는 말이니까. 아니면, 추천으로 레스토랑에 들어온 신입 셰프를 에둘러 욕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긴 한다.


어느 쪽이던 랑그레가 신경쓸 바는 아니었다. 앙투로서는 조금이라도 신경쓰는 척을 해주어야겠지만.

그의 목적은 레스토랑에 들어와서, 오래도록 건실하게 일하며 많은 손님들에게 기쁨을 주는 게 아니다. 잠깐 일을 하면서, 목표로 한 이들에게 최고의 맛을 딱 한 번 선사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최고의 맛’은 분명 마지막 맛이 되어야 할 테였고.


그런데 그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메인 디쉬를, 제대로 손도 대지 않고 떠났다고 한다. 한 남자가 몇 번 뒤적거리는 것 같더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는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고.


다섯 명의 일행 중 한 명의 음식은 조금이라도 먹은 흔적이 있었고. 나머지 넷은 한 입도 먹지 않았다.

먹은 이가 누구일까.


“먹은 사람은 봤나?”


앙투는 제법 높은 직책으로 알마티 레스토랑에 들어온 것이었다. 홀 담당 매니저라고 해도, 총괄이 아닌 이상 그보다는 하급자였다. 나이로 보자면 엇비슷할지 모르겠지만.


담당 매니저, 요삭이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예. 금발에, 붉은 눈을 한 남자였는데···. 초상술사로 보였습니다. 왜, 으레 그렇듯이 로브 자락 따위를 끌며 들어오고··· 요상한 장신구같은 걸 했거든요.”


외견만으로 누군가의 클래스에 대해서 알아내는 건 지극히 난해한 일이다. ‘그럴싸한’ 복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복장 정도야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는 법이고. 그러나 이곳 알마티는 나름 고급스런 레스토랑이었고. 제대로 된 초상술사가 여행을 다니다가, 잠시 머물러 식사를 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이 험난한 시대에 홀홀단신으로 떠돌면서, 경제적인 부유함을 누릴 수 있다는 건. 적어도 본신의 능력이 특권계층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말이리라.

로웰의 경우에는 로브 자락 안쪽으로는 나름대로 고급스런 옷감의 정장을 입고 있었긴 하지만. 매니저의 눈에는 겉을 감싼 외투나, 간간히 드러났던 악세서리들만 들어왔던 모양이다.


매니저가 본 건 딱히 틀린 바 없는 사실이었고. 로웰 드버는 실력있는 초상술사이기도 했다.


“······.”


······그래, 랑그레는 들릴 듯 말듯하게 대답을 하고는 말을 멈추었다. 홀 매니저는 조잘거리면서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떠들다가 다시 업무로 돌아갔다. 주방의 입구 근처에서 이야기를 듣던 랑그레도 결국, 다시 불 앞으로 움직여야 했다.


레스토랑은 쉬는 구간이 없다. 손님들을 계속해서 받고 있는 시간대에는 말이다. 그가 높은 직책에 한 자리에서의 조리만 담당한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고된 강도의 업무인 게 사실이었다. 요리사라는 건 모두 그렇다.


누군가에게 맛난 한 접시를 대접하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랑그레로서는, 본인의 체력에 비하자면 큰 일까지는 아니었다. 이렇듯 모습을 가리고 은밀한 수작을 부리는 부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암살자이지 않나. 대공가에 있는 여러 능력자들 사이에 끼어 있어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그였다. ‘삼색 기사단’ 수준의 압도적인 엘리트들에 비할 바는 못되었지만.


그래도 그 아래 단계 정도 되는. 능력자 무리들 만큼은 되었다. 플레이어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중수 정도 되는 레벨이었다.


대공가에는 기사단만 있지는 않았다. 당연하게도.

기사단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지역에서 인재를 발탁해와서, 양성하고 있었고. 랑그레 마누처럼 외부 인사를 들이기도 한다.


전투력으로 따지자면 주력이 될 수 없었지만 그런 이들도 분명히 초인의 한 부류들이다. 일반적인 사람에 비하자면, 압도적인 능력과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보통 그런 이들은 랑그레처럼 각지를 떠돌면서 임무를 맡거나, 본가의 병영에서 수련을 거듭한다. 시간이 쌓이고, 실력이 올라가 정식으로 기사단에 들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단원이 되는 식이었고.

아예 랑그레처럼 다른 방식으로 능력을 발전시킨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런 이들은 본가의 저택 부지 내보다는, 바깥의 임무를 계속해서 맡게 된다. 각지에 흩어져서, 자신의 임무 지역을 지키며 장기적으로 수행을 한다.

그러다가 본가의 인원들이 근처로 와서 협조를 구하면, 그에 맞춰 움직이거나 하는 식이었다.


‘초상술’과 ‘기력술’로 대표되는 초능력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그런 식으로 흩어져 있는 ‘민간’, 무능력자들이 굉장히 많았고. 그 사이에 랑그레와 같은 초보-중수급의 인원들이 또 상당수 있었다. 본가에서 무력을 담당하고 있는 중수 중 최상급이나, 고수급의 초능력자들은 대공의 직속으로, 그의 계획을 근처에서 듣고 기민하게 움직이게 된다.


단지 초능력만으로 대공가 내에서의 입지나 위계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외의 다양한 능력과 자질이 거대한 조직을 굴리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필요했으니까. 행정적인 임무를 맡아야 하는 지원직의 인재들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계大計를 이루려면 말이다.


랑그레는 어느 쪽이든, 적어도 지방에 흩어져 매니저 직職 정도는 맡음직한 인간이다.


현재는 대공령에 잠시 돌아와 있다가,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고.


콰직.


랑그레 마누, 앙투는 다시금 불을 다루는 주방의 철 화로 앞으로 돌아왔다. 허리보다 조금 위의 높이에 철 격자가 있고, 그 위에 팬을 두며 고기를 굽는 곳이다. 단열 기능이 있는 석재와 철제 기구가 견고하게 있었다. 발치에 있는 풀무 발판으로 화력을 조정할 수 있다. 불이 조금 사그라들어 있었다.

마누는 화로 윗칸, 불이 닿지 않는 가장자리에 두었던 과일 하나를 으깨어버렸다. 소스로 곁들일 물건이었고, 그 옆에 있던 냉장 기기에서 꺼내두었던 건데.


본래 조리도구로 으깨어 즙을 짠다. 손으로 한 것이니 손님 용으로는 쓰지 못하리라. 과즙이 놓아둔 팬들을 피해 화로의 구멍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칸이 큰 철 격자 아래에 촘촘한 망들이 있다. 단열 성능을 가진 금속을 섞고, 아티팩트를 만들 때처럼 스킬을 일부 부여해서 만들어진 기구였다. 고급 레스토랑이었고, 현대화된 공학 산물들의 최첨단이 이곳에 있었다.


랑그레는 여기저기를 떠돌며 이런 대도시의 레스토랑에서 일해본 전력이 상당했다. 툭, 하고 잘 쓰지 않는 팬 하나에 남은 과즙과 과육을 떨어뜨렸다. 사과만한 크기에, 토마토처럼 무른 푸른 색 과일이었다. 과육은 밝은 초록빛에, 상큼함과 단맛이 함께 난다. ‘블루블랙 프루트’라고 대충 불리는 것이었다.


중부 지방에서 잘 나는 산물이고. 음식에 단맛을 첨가할 때 주로 쓴다. 치즈 케잌과는 아주 잘 어우러지는 과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맛도 보지 않았다라.


랑그레는 짜증을 표현했다. 표현하는 건, 극히 조심해야 할 일이었으나. 또 중요하기도 했다. 랑그레 마누는 역설적으로 암살자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타인을 죽여 없애는 더러운 짓거리를 하는 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런 손을 가진 인간도, 정신성性이라는 게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흔들리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넘어진다. 그런 건 좋지 못하다.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선에서. 그저 역할극 속에 숨길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감정 표현을 하는 편이 장기 임무에서 더욱 효율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랑그레는 밀린 주문을 소화하면서, 자신이 버린 과즙으로 적당한 요리 하나를 만들어 끼니를 때울 셈을 했다.

한 놈이 먹었다는데. 인상착의를 제대로 듣고 나니, 애초의 목표물에 들어 있지도 않은 놈이었다. 일을 이따위로 하는가, 그는 여겼다.

랑그레는 ‘실행자’였고, 암살 계획을 총괄하는 ‘매니저’의 역할을 한 이가 이번에는 따로 있었는데. 아무래도 대공령 안이었으니까. 그보다 상급자들이 수두룩한 곳이기에 말이다. 잠자코 따라 일만 했는데. 영 성과가 좋지 못했다. 랑그레는 암살자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겉으로는, 요리사로서의 그것에 흠집이 난 듯 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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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243. 셰프 L 24.03.29 12 1 14쪽
243 242. 합류 24.03.28 13 1 24쪽
242 241. 하울Howl 24.03.28 12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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