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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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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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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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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전조없는 비수

DUMMY

*


“음식 나왔습니다.”


웃으면서 메인 디쉬를 전달하는 서버Server는 인상이 좋은 미남이었다. 아무래도 서비스업은 사람의 외모가 중요한 걸지도.

제냐는 자신에게 오는 연어 스테이크를 받으면서 그리 생각했다.

밝게 웃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좋은 인상을 만들 수 있다지만. 타고난 본판이 탁월한 경우에, 훨씬 더 호감스런 얼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잘생긴 것도 나름대로의 복이리라. 재능이나 자질, 무언가를 갖추고 태어나서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인간들도 얼마든지 있기는 하지만은.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제냐 일행은, 조금 늦은 시간에 만나서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 건 비련시 온라인에 접속한 플레이어들이 빼놓지 않고 늘 즐기는 컨텐츠였다. 바쁘게 레벨링Leveling(게임 따위에서, Lev을 올리는 것. 보통 직관적인 강함의 척도로 숫자를 써 캐릭터들의 레벨을 정하고 알리곤 한다)을 하고, 파밍Farming을 하는 것 역시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음식은 주기적으로 계속 섭취를 해줘야 하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에는 아사餓死 또한 구현되어 있었으니까. 장기간 먹지 못하고 과도한 운동을 반복하면, 체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가지고 있는 스텟Stat에 비해서 능력이 저하되기도 하고. HP가 직접적으로 닳기도 했다.


보통 조리, 요리에 관한 스킬 따위를 갖고 필드Field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도시에 들러 음식물들을 싸들고 다니지만. 장기간 여행을 하다보면 현지 조달이 필수였다.


몬스터 사냥, 모험 따위를 길게 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하지만. 도시에 머무를 때 플레이어들은 보통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하는 편이었다. 대개의 플레이어들은 생활하는 데 돈이 부족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과 튼튼한 몸 따위를 가지고 게임 속 세계관에 던져졌고. 또 게임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팁Tip이나 노하우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즐기고 있으니.


게임 오버를 당하지만 않는다면 평범하게 플레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양의 재화를 모을 수 있었다. 레벨업 시에 받는 가상 점수(Imaginary Point)를 가지고 투자할 수 있는 사용처 중에, 직접적으로 현금을 얻는 선택지조차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몬스터를 잡고 그 사체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팔거나 하면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쨌건 남다른 능력을 지니고 목숨까지 건 뒤에 일을 하는 셈이 되니까.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더라도 콘란드 대륙 내에서 정말로 상위권이라 할만한 자리에 가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는 했다만.

가상 점수로 플레이어가 직접 얻을 수 있는, 레벨업 시의 혜택은 세 가지였다. 명예 점수를 높이거나, 현금을 벌거나. 혹은 스탯의 증가를 위한 보너스를 받거나. 셋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었고, 보통 전투 클래스를 선택한 플레이어들은 스탯 증가의 보너스를 받는다. 직접 스탯이 증가하는 건 결코 아니었으며.


‘근력’에 투자를 한다면, 투자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쉽고 빠르게 근력 스탯이 오르는 것 뿐이었다.


거기에 전투 클래스가 아니라, 콘란드 내의 여러 사회 속에 들어가서. 직접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교류를 하며 플레이를 하는 이들은 ‘명예 점수’, 혹은 ‘현금화’의 선택지를 골랐다.


고도의 기술력으로 구현된 NPC들은 그 자체로 완벽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 그들 사이에 섞여들어 정치가로서의 캐릭터 플레이를 하는 자들도 적지 않은 숫자였다. 그런 이들은 전투 클래스의 플레이어들보다 본신의 무력武力은 약할지 몰라도, 상위 레벨에 도달할 수 있다면 비교하기 어려운 영향력을 끼칠 테였다.


전투직 플레이어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NPC들이 생성하는 ‘퀘스트’를 받기만 하는 입장이라고 한다면. 정치 플레이를 하는 게이머들은 NPC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며 ‘퀘스트’를 만들어내고, 다른 독립 플레이어들의 게임 플레잉에 직접 영향을 줄 수조차 있었다.


왕이나 고관, 귀족의 의뢰를 받아 열심히 일을 하는 용병 플레이어가 있을 때.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그런 자리에 올라가 직접 돈을 걸며 의뢰를 맡기는 그림도 충분히 가능했고. 이미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었다. 아직까지 일국의 ‘왕’이 제대로 된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지만.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나 목적을 달성해, 각국의 귀족이나 나름 높은 관리직에 오른 이들은 더러 있었다.


정치적 입지, 권력 따위를 좇는 플레이어들도 그렇게 있었고. 혹자들은 물류, 상업, 거래 따위로 관심을 틀어 상인의 삶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은 명예점수보다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현금’에 가상 점수를 투자하게 되리라. 레벨이 1일 때의 가상 점수로부터 얻는 돈보다, 당연히 레벨 100일 때의 가상 점수로 얻는 돈이 훨씬 막대한 금액이었다.


상인 플레이를 하는 이들에게는 레벨업 시에 받을 수 있는 그 현금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상인으로서의 플레잉을 즐기는 이들이 다다를 수 있는 끝은, 전대륙적인 상회를 창단하고 거대한 물류 흐름을 손에 쥐는 대상인, 거상 따위가 있으리라. 금력이 초월적인 수준이라고 한다면, 권력과도 곧 결탁을 해서 대단한 위세를 부릴 수 있을 지도 몰랐고.


어쨌든 권력이든 금력이든.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직접적인 힘은 아니었기에. 그런 식으로 플레이를 하는 이들은 솜씨 좋은 전투 클래스 캐릭터들을 곁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성을 잘 파악해서, 죽지 않을 길로만 가는 탁월한 정치 감각 따위도.


이 세계의 캐릭터들은 지나칠 정도로 잘 구현이 되어있는 부분이 있어서. 관련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도 극찬을 받고 있었다. 실제 정재계에서 구르고 있는 이들이 비련시 온라인을 플레이할 때 상당한 유사성을 느꼈기에 말이다.

결국 ‘사람’을 어디까지 그럴싸하게 배껴서 표현하고 있는가, 에 관한 문제였는데. 심한 말을 하자면 세계관 내 캐릭터와 사랑에 빠질 정도로 유연한 대응을 보여주는 것이 온라인 내의 NPC들이었으니 말이다.


어설픈 데이터량을 갖고 사람을 묘사했다고 하면 불가능했을 일이었고. 또 충분히 많은 모방용 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심도 깊이 인격을 묘사할 만치 방대한 연산력이 없었다면 말이 안 되었을 텐데.


비련시 온라인을 형성하고 구동하고 있는 핵심 시스템인 ‘만물박사萬物博士’는 스펙 상 방대함과 어마어마한 빠르기의 연산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최고의 소프트웨어임과 동시에, 최선의 하드웨어를 갖고 있었고.


비련시 온라인을 개발한 개발진들의 그룹인 게임사 태Tae는 ‘소프트웨어’ 쪽의 성능과 한계에 몰두하며 조사를 하고 있었고. 그 주변에서 든든하게 지원을 해주는 다국적 기업은 ‘하드웨어’ 쪽의 남다름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만물박사의 몸을 이루고 있는 하드웨어를 양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정보화 산업 혁명이 한 차례 더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시스템을 개발한 연구자들은 떠벌리지 않으나, 하드웨어만으로 이러한 성능의 AI가 만들어졌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조심스럽게 논의를 계속하는 중이었다.

만물박사라는 시스템과 기계를 만들어놓고 곧바로 다른 여러 분야에 상용화를 하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초변화가 일어났길래 이런 괴물같은 프로그램이 탄생을 했는지, 명확하게 원인을 다 알아야 써먹을 것이 아닌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기는 했지만. 그 정확한 작용 현상들에 대해서 개발진은 아직 다 파악하지를 못했다. 좋은 쪽으로의 변화와 발견이기에 망정이지. 컨트롤 할 수 없는 요소들을 두고 각 분야에 기술을 전파했다가 훗날 오작동을 일으킨다거나 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일 수 있었다.


비련시 온라인이라는 게임은 그런 점에서, 아주 좋은 예제例題가 되어주고 있었다. 끝을 알기 어려운 기계 장치의 한계를 가늠하기 위해서. 전 세계 모든 인구를 대상으로, 세상과 비슷한 규모의 정밀한 가상현실을 보여주고 서비스한다면 대략적인 성능폭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스케일을 최대치로 잡아두고. 거기서 디테일한 랜더링, 묘사값 따위를 점점 촘촘하게 따져가는 것이다. 여기까지 묘사가 가능할까, 여기까지 될까, 각 플레이어 하나하나에게 개별적인 게임을 선사하는 수준의 경험을 서비스할 수 있을까. 모든 NPC들의 기민한 반응과 자연스러움, 또 개방적인 자유도는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을까.


비련시 온라인은 초기에 구상했던 대부분의 성능값을 만족시키며 재현하고 있었다. 개발진들은 정확하게 ‘게임’만을 만드는 이들은 아니었으나. 온라인 게임Online game에도 아주 깊이 취미를 가진 인물들이었다.


그네들이 만든 창조물의 성능 한계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게임이라는 형태는 아주 이해하기 쉽고, 직관적인 연습법이었다.


개발진 태Tae는 게임의 끝마저 정해두지 않았다. 자유도를 구현 가능한 최대한으로 해두고. 플레이어들의 선택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엔트로피 값이 계속 올라가다가 콘란드 대륙의 결말이 나도록만 설정을 해두었지.


플레이어들이 제각기 다른 자리에서 플레이를 즐기고. 퀘스트를 깨고. 레벨을 높이며 더 많은 몬스터를 해치우고, 하는 변화 값들은 모두··· 콘란드 대륙의 기록서記錄書에 담기게 된다. 우주를 관조하는 이는 곧 하늘 위에 계신 주, 신God이 되시겠지만. 콘란드 대륙 내에서는 따로 기록서를 만들어 데이터를 셈하고 있었다.


시간이 오로지 앞으로만 흘러가는 것처럼. 플레이어들이 대륙 위 세계에 많은 변화를 창조할수록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간다. 점점 더 퀘스트들은 일반에서 희귀로, 희귀에서 유일로, 유일에서 전설급으로 바뀌어 나타나게 될 테였고.


대륙 속 험지에 잠들어 있던 전설 속 괴물들이 몸을 움직일 테였다.


퀘스트의 규모 역시 마을간, 지역간, 대륙간으로 점점 커지게 되고···. 게임 서비스 초창기에 플레이어들이 겪는 콘란드 대륙과 후발주자들이 겪는 콘란드 대륙은 거진 다른 느낌이 될 터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한 개의 공동체가 되어서 콘란드 대륙이라는 기계를 돌려가는 듯한 방식이었다. 그렇게 협동적 활동을 하다가···. 누군가가 앞서서 툭, 튀어나올 테다.

플레이어 전부가 메인 스토리급의 퀘스트를 플레이할 수는 없었으니까. 거기다가 시대가 격변하면서 해일이 덮치듯 고난이 대륙 전역을 쓸어버릴 지도 몰랐고. 한 번의 게임 오버Game Over가 곧 계정 삭제로 이어지는 서바이벌 시스템도 냉혹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사라지리라.

누군가는 조연이 될 테고. 누군가는 메인 스토리를 끌어가는 주연이 되겠지.


비련시 온라인을 서비스하고 있는 이들은 그런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까지 정밀하게 변수들을 다루고, 또 그에 맞게 새로운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가, 만물박사가.

또 그런 실험의 최선두에 서서, 개발진들이 찾고자 하는 답을 줄 ‘플레이어’는 과연 누가 될까.

그런 여러 가지 기대감으로 비련시 온라인이 서비스되고 있다.


“냄새 좋은데.”


제냐 일행. 제냐 킴, 김서원을 비롯해서 다섯 명의 플레이어들도 물론, 그런 경쟁과 선택의 과정 위에 놓여 있는 후보자들이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아직 게임 오버가 되지 않은 모든 플레이어들은 전부 후보자라고 할 수도 있었고.

거기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분류를 한 번 해보자면. 그래도 레벨과 강함의 수준이라는 게 유의미한 기준이다보니, 랭커군群을 클리어에 가까운 위치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미 랭커Ranker의 위치에 든 이들도 게임 클리어적으로 봤을 때 중요한 인물들이었지만. 랭커들과 비슷한 성장세를 가진 신진 게이머들도 분명 중요한 이들이리라. 지금 당장 메인 스토리급 퀘스트가 열려서 대륙적인 격변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랭커들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건, 순위로 볼 때 랭커권 바로 뒤에 있는 이들보다도, 오히려 제냐 일행과 같은 자들일 수도 있었다. 순위권 근처, 바깥에 있는 이들은 랭커급의 성장세보다 느려서, 영영 그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이들일 수 있는 반면에.

제냐 일행과 같은 이들은 더욱 단기간의 플레이만으로 높은 레벨에 다다르며 랭커권과의 차이를 빠른 속도로 줄여가고 있었으니까.


당장의 가시적 수치보다도. 그 수치를 변화시켜가는 성장세, 가속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 ‘가속도’를 결정하는 건 곧 이 게임의 본질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 게임성에 대한 이해와, 플레이어의 ‘재능’이었다.


의지력, 스텟 활용력 따위로 플레이어들이 부르곤 하는 힘들이다.


“음. 알마티는 대공령에서 제법 평이 좋은 곳이라네.”


저녁을 먹을만한 시간이었다. 현실의 제냐는 잠을 잘 즈음의 시간이었고. 내일은 오전 수업이 공강이다.

자리하고 있는 건 제냐, 호아킨, 최태현, 라이엔, 그리고 로웰 드버였다.


동양권에 있는 제냐, 태현, 라이엔에 비해 다른 두 명의 길드원은 사실 들어오기 조금 힘든 시간이기는 했다. 릿샤는 불규칙적인 업무 환경이었는데. 굳이 시간을 내자면 밤늦게, 야심한 새벽 시간대가 가능한 편이었고.


그녀가 있을 미국 서부는 아침 시간이라. 이즈음에는 잠시 쉬거나, 혹은 이미 연구실에 출근을 해서 볼 일을 보고 있을 테였다.

호아킨은 오전 늦은 시간, 점심 근처 시간으로 미국 동부에 거주한다. 오늘은 일을 하지 않는 휴무일이었기에 길드원들과 플레이를 즐기고 있었고. 다른 동양권의 길드원들은, 내일 오전의 피로함을 조금 감수하고 플레이하는 중이다.


알마티를 소개해준 건 로웰 드버였다.


당연히 물론, 맹세코. 로웰에게는 어떠한 악의도 있지 않았다. 그저 대공령에 방문할 일이 있으면 들르곤 했던 좋은 식당을 친우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사실 로웰이 이 식당을 소개해준 게 문제는 아니었고. 어떤 식당을 가게 되었건 ‘누군가’가 따라올만한 상황이었지만.


‘누군가’.


제냐 일행은 모르지만, 새롭게 들어온 셰프가 만든 메인 디쉬가 그들 앞에 있었다.


로웰이 먼저 덥썩, 한 입을 베어 물었다.


로웰과 제냐, 태현은 연어 스테이크를 시켰다. 호아킨과 라이엔은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는 중이고. 연어 스테이크의 아래에는 밝은 톤의 스프같은 것이 소스처럼 깔려 있었다. 생선살 위에도 무언가 뿌려진 듯하긴 했고. 소스 류가.


반면 소고기 스테이크는 아래에 깔린 소스의 양이 스프처럼은 아니었고. 자작하게 블루베리 색깔의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다시 소고기의 위에 갈색의 액체가 뿌려진 상태이다.


로웰의 추천이었던 연어 스테이크다. 호아킨이나 라이엔은 추천과 별개로, 물고기보단 소나 돼지를 훨씬 좋아했기에 고른 선택지고.


“음. 맛있구먼. 저번보다 더 나아진 것도 같은데.”


로웰이 스프와 함께 연어살을 삼키곤 그리 말했다. 제냐도 연어살 위에 나이프를 댔다.


“······.”


바삭거리는 생선 껍질의 촉감이 일품이었다. 아직 먹지 않았음에도 그 맛을 알 것 같았다. 향긋하게 풍기는 냄새는, 현실에서는 잘 가지 못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그것이었다. 실제의 제냐로서는 고작해야 ‘레스토랑풍’ 음식을 먹을 뿐이었다. 구르메Gourmet니 퀴진Cuisine이니 하는 단어가 어울리는 식당은 아직 학생이 갈만한 데는 아니었다.

그런 단어를 붙이고 나온 냉동식품 정도는 종종 먹는다만.


껍질이 바스라지며 안에 있는 살까지 잘렸다. 주홍빛이 도는 연어살이다. 분홍색이라고도 할만하고. 스프의 질감과 어우러지는 게, 보기에도 좋아 보인다. 블루베리나 어린 새싹 따위를 군데군데 뿌려둔 것도 색감을 돋군다. 식욕 역시도.


“···.”


그런데 어쩐지 제냐는 군침이 전혀 돌지를 않았다.


“······.”


그리고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제냐와 함께 다양한 퀘스트를 헤쳐나온 다른 길드원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눈치같은 게 생겼다.

제냐는 ‘감각’ 계열의 패시브 스킬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만만찮게 갖고 있었는데. 특별히 ‘솔로 플레이’를 해대고, 이상한 방식으로 서바이벌 게임을 헤쳐온 전력이 있는 제냐의 그것은 조금 더 성능이 좋은 면이 있었다.


명경지수니, 사냥꾼의 감이니, 무사의 감이니, 하는 것들이었다.

동양적인 신비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듯한 이름들인데. 의외로 아주, 실전적이며 쓸만했다. 5감이나 혹은 MP의 움직임을 느끼는 감지력이 아니라. 육六감에 관한 스킬들이었으니.


쎄- 한 감각을 느끼는 건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제냐로서는.


현실에서는 그리 많이 겪지 못한 일이다. 게임 내에서는 시스템의 보정으로, 물리적으로 전달이 되는 감각이다 보니, 주기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주기적으로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았다는 말도 된다.


아마 여러 감각 계열 스킬들이 연계를 이루어서 나타내고 있는 ‘육감’에 관한 스킬이 없었다면. 제냐는 진즉에 게임 오버를 당했을 지도 모른다.


“음.”


우물거리면서 로웰은 마저 스프를 삼켰다. 다른 이들이 별로 식사를 하지 않고 있어서,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다.

메인 디쉬가 나오기 전까지의 전채들은 모두 맛있게들 먹었는데. 하이라이트 음식이 나오자 식사가 멎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또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다른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로웰은 대공령에서 얼마나 머물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여유를 가지고 지내고 있었다. 아직 직접적인 위험을 겪은 바는 없으니까.


제냐는 킁, 하고 한 번 코를 먹더니 말했다.


“이거 안 먹는게 좋겠는데요?”


제냐의 말에 다른 플레이어들도 식기를 얌전히 내려놓거나, 메인 디쉬에는 손대지 않고 먹던 전채 요리를 먹는다.


호아킨은 옆에 있던 글라스의 잔에, 물로 입을 헹구며 말한다. 그 역시 제냐의 낌새가 이상해서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육감인가.”

“음···. 예. 잘은 모르겠는데 그런 거 같은데요.”

“암살 위협에 하도 시달리다 보면 그렇게 되는군, 캐릭터가.”

“······그러게 말입니다.”


제냐의 마지막 말은 조금 처량하기까지 했다. 처음 본격적으로 스킬의 도움을 받은 건. 이전 로멜리아 가문의 퀘스트를 깨다가. 데슈칸 산맥에서 있던 일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참으로 공교롭지만. 옆자리에 위치한 로웰 드버가, 무수한 마물 부대를 이끌고 그들 일행을 습격했을 때였다.


당시에 로웰은 세슈칸 시티의 금강급 용병으로, 사이코패스 백작의 명에 따라 충실하게 그들을 덮쳤다.


그리턴 자작가의 도움이 없고, 또 호아킨과 릿샤가 마음을 바꿔먹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테였다.

그저 게임 속 이야기를 진행하면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게끔. 선악관 따위를 대입해서 플레이를 한 게이머들이었다. 릿샤나 호아킨은. 그 점이 제냐, 최태현과 잘 맞는 부분이었고. 아무리 장난에 가까운, 가상 세계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괜한 찝찝함을 남기지 않고. 삶의 종적을 예술적으로 가꿔가겠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라이엔은 복잡한 생각을 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심플한 걸 좋아했고, 대개의 경우에 ‘바른 길’, ‘정도正道’를 택하는 게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부류이긴 했다.


로웰 드버는 자기 보신에 몰두하는 캐릭터였으나. 당시 반대편의 플레이어이던 호아킨과 릿샤의 움직임으로 속한 진영이 바뀌었다. 수동적이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해악을 끼치고 싶어하는 이도 아니었다.


제냐는 눈을 가늘게 뜬다. 옆자리에 앉은 로웰을 보았다. 태평한 얼굴로 연어 스테이크를 다 씹어 삼킨 모양이다.


레스토랑 내에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축음기 따위의 기관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건 아직, 대귀족가의 저택이나 그에 준하는 곳에나 있을 물건이었다. 민간에 널리 퍼지기는 조금 무리가 있고.


넓은 1층 홀의 구석에 연주대가 있어, 그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따위를 연주하고 있었다.


라이브 연주의 음률을 들으며.

저녁 무렵의 식욕을 돋구기에 적절한, 불그스름한 조명 아래에서. 제냐는 로웰에게 뭐라고 해야할 지를 고민한다.


“음, 로웰. 이거 독 들은 거 같은데요.”

“······.”


로웰 드버는 뭐 씹은 표정이 되어 인상을 구겼다.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편이 아니라는 걸 아는 탓이다. 제냐가. 거기에 이미 들은 바 있었던, ‘대공’이 사이코에 위험한 작자일지 모른다는 말 또한 연이어 떠올랐고.


이런 맙소사.


제냐 일행이 말한 ‘위험’과 위기는 실제였다. 로웰은 속으로 그리 여기면서. 자신이 회복술을 펼칠 수 있었는가 맹렬하게 기억을 뒤졌다.

아주 옛날에, 익히려다가 실패한 ‘기초 해독술’ 스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다지 재능은 없어서 포기했었다.


로웰은 자신의 목 근처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모조리 깔끔하게, 씹어 넘긴 이후였다.


“······일단 나가죠.”


제냐는 침착하게 말했다.


이 놈의 게임은.


쉬이 밥을 먹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전조前兆라도 좀 있던가 말이지.


서바이벌 게임의 묘미라고 하면 할 수야 있겠다만.


값을 치러야 하는가, 에 대한 문제가 있기는 했는데.


굳이 드러나게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던 일행은 레스토랑에 음식값마저 지불하고서, 나왔다. 독이 든 메인 디쉬를 받은 이들치고는 아주 양호한 대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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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253. 부족의 명운 24.04.02 15 1 24쪽
253 252. 이시기르스 24.04.02 13 1 17쪽
252 251. 리비아 24.04.01 13 1 19쪽
251 250. 사절단 24.03.31 16 1 15쪽
250 249. 에드버그 24.03.30 13 1 15쪽
249 248. 사담私談 24.03.30 15 1 14쪽
248 247. 자고로 다 고생하는데 뺑끼치는 새끼가 제일… 24.03.29 13 1 23쪽
247 246. 살리기 24.03.29 12 1 12쪽
246 245. 상처 24.03.29 9 1 9쪽
» 244. 전조없는 비수 24.03.29 11 1 22쪽
244 243. 셰프 L 24.03.29 12 1 14쪽
243 242. 합류 24.03.28 13 1 24쪽
242 241. 하울Howl 24.03.28 11 1 16쪽
241 240. 지팡이 하나 24.03.27 10 1 19쪽
240 239. 치즈 케잌 24.03.26 10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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