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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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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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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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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40. 지팡이 하나

DUMMY

펑-.


"으억."


로웰은 갑자기 터져나가는 지팡이 대가리에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쿵, 하고 흙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면서 말이다.


여관이 있는 골목 근처에 공터가 있었다. 건물이 철거되고 남은 자리인지, 아니면 원래 비워둔 자리인지 알 수 없었다. 원래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지만. 미안하게도, 로웰과 길드원들 몇 명이서 나타나 저들끼리 뭔가를 하자 숨듯이 사라져버렸다.

현명한 선택일 지도 몰랐다.


제냐 일행은 딱히 악의가 없다지만. 으슥한 뒷골목에서 정체도 알 수 없는 어른들과 같이 있다가 봉변을 당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NPC들 사이에서도 그럴 테였고. 혹은, 정신과 진료가 좀 필요한 플레이어들도 그런 일을 벌일 지 몰랐다.


범죄를 저지른다면 패널티를 감당해야만 했다. 그건 깨나 무겁고, 무서운 종류이다. 비련시 온라인은 인생을 가르쳐주는 게임, 이라는 게 일단 개발진들의 모토였으니까.

범죄의 패널티로 인해서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통은 한 번에 즉결 처형을 당하는 것보다는. 점점 도시에서의 생활이 불가능해지거나. 혹은 감옥에 갇혀서 영영 풀려나지 못하는 상황이 더 많지만은.


결국 게임에 로그인을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면. 계정 삭제를 당하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혹자는, 철통같은 감옥 속에 최고위 억제구具를 차고 갇혀 있으면서도 플레이를 계속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절대로 길이 아닐 것 같던 곳조차 길이 될 수 있을 만큼, 이상하고 기이한 게임이 이것이라서. 어찌보면 그건 플레이어의 믿음에 달린 일이 아닐까 싶었다. 믿음이라는 건 현실에서도 중요한 요소였다. 길이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당신이 눈 먼 맹인이며, 지도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하자. 지식과 실제 길이 합치해서, 당신 앞에는 제대로 된 길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불현듯, 의심스런 생각이 들어 바로 앞의 길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을 때. 당신은 그 길을 갈 수 있겠는가.

믿음이라는 건 있는 길을 없게도 만들고, 없는 길을 있게도 만든다.


물론 ‘진짜’ 진리에 근거한 믿음일 때 사람이 바로 길을 갈 수 있으리라. 어설프고, 제대로 된 지식도 없는 믿음으로 함부로 발을 딛었다가, 정말로 의심처럼 구덩이 속에 주저앉을 수도 있기는 했다.


‘믿음’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현실적이어야 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비련의 시나리오는 이상한 게임이었고.

그건 이상한 현실을 닮게끔 지어진 이유이다.

현실에서도, 길이 ‘없다’고 여겨져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금 생각을 달리해보면. 길이 생길 수도 있는 법이었다.


아무튼.


다행스럽게도 지금 제냐 일행들은 감옥에 갈만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어린 아이들을 쫓아낸 건 미안하게 된 일이었지만. 단순히, 로웰 드버라는 인물에게 자구책을 선사해주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그게 그렇게 안돼?”


릿샤가 약간 한심하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본의는 아니었다. 원래 말투가 시니컬할 뿐이었다. 딱히 얕잡아보는 의도는 없다. 로웰은 릿샤의 성격을 앎으로 울컥하지는 않았다.


“아니 이게··· 한 번에 되면 내가 아티피서를 했지 왜 마물술사를···.”

“거 테이머도 초상술사고, 초상술사면 아티피서의 자질도 웬만큼은 있는 것 아니오.”


사실이기는 했다.


MP를 어디까지 폭넓게 다룰 수 있느냐, 하는 주제에 관하여 ‘초상술사’는 최고위의 재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었다.


초상술사, 아티피서, 기력술사의 순으로 갈수록 MP를 다룰 수 있는 활용성의 범위가 좁아진다. 대신 한 가지 기예에 특화되는 건 역순으로 나은 재능이었고. 초상술사는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반면, 세 종류의 초능력자 중에서 가장 반응이 둔하고 느린 편이었다.


애초에 신체적인 강화술에 몰두를 한 기력술사는, 수준이 올라갈수록 그야말로 초인적인 반응 속도와 순발력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아티피서도 그만큼은 아니어도, 몇 가지 정해진 스킬을 완벽하게 익혀나가다보니.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자주 있었다.


초상술사가 그만한 반사신경을 가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련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전쟁터를 오래도록 구른 워메이지들이라면 모를까.


로웰 드버는 본격적인 워메이지는 아니었다. 마물술사라는 그의 클래스Class는 전쟁에 아주 적합한 것이기는 했지만. 기형적으로 성장한 힘이었고, 로웰 본신의 능력은 크게 대단할 것이 없었다.


근력, 순발력, 지구력. 물리 계열의 스텟에 한한다면 중수 급도 되지 못하리라. 초보자, 비기너beginner 수준이나 될까. 플레이어들이 가늠하는 레벨로 따진다면, 대략 레벨 30이하의 경지였다.


지난 전투의 시간. 운트 작힘의 성城을 침공할 때는 스타일을 약간 바꾸었었다. 몇 마리의 정예한 몹Mob들을 자신의 병사로 삼아서 부렸으니까. 라이엔과 비슷한 전략이다. 엘리트 계열의 술사, 처럼 움직인 셈이다.


데슈칸 산맥의 그리턴 령으로부터 여기까지. 먼 길을 헤쳐오면서는 어찌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당시의 기술을 연마해서 산야의 몬스터 몇 마리를 끌고 호위병으로 사용을 했는지.

대공령에 들어오면서는 다시 풀어준 모양이었다. 보통 엘리트 계열 테이머들은 한 번 길들인 펫을 놓아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공들여서 길들이기에 성공한 녀석을 끝까지 데리고 플레이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플레이어, 초상술사인 테이머Tamer의 손을 탄 몹mob은 여타의 NPC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니까 말이다. 좋은 의미로. 물론 안 좋게도 바꿀 수 있었지만. 정상적인 테이밍 과정을 거쳐서, 동료가 된 몬스터는 선악 수치에 있어서도 대개 ‘선’쪽으로 기울게 된다.

본디 흉포한 정서나 본성이 누그러지고, 사람을 잘 해치지 않는 짐승이 된다. 테이머의 목줄이 없더라도.


거기에 기본적으로 종족값이라는 게 각 몬스터마다 있었는데,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까지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었다. 수준 높은 테이머, 마스터 테이머니 테이밍 마스터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고수급의 이들이라면 초보자 존Zone에 있는 나약한 몬스터를 데리고 중수, 고수급들이 상대하는 보스몹과 비견되게 키울 수도 있었다.


사람의 손에 이끌리며 훈련을 받고. 테이머의 MP를 받아들이며 여러 가지 스킬로 마사지를 받는 몬스터는 그 때부터 원래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종족 설정치들을 깨뜨리게 되는 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래 강력했던 녀석을 길들이는 게 테이머로서도 더 쉽게 강해지는 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같은 솜씨를 가지고, 노력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초보자 사냥터에 있는 슬라임 괴물과 중, 고수 급들이 다투는 보스 몹은 엄연한 격차가 있는 것이었으니. 초보자 수준의 몬스터가 한계치가 없어져서 더욱 강해질 수 있다면. 그만큼 강력한 보스 몹들은 테이머의 인도에 따라 더욱 강력해질 수 있는 법이었다.


플레이어 테이머의 능력을 곱해지는 가중치라고 뒀을 때, 기초값에 따라 최종적인 펫의 힘이 결정될 테다.


어디에나 있고, 비련시 온라인에도 있듯이. 또 괴랄한 플레이 스타일을 즐기는 자들 중에서는. 일부러 초보자 사냥터에 있는 나약한 몬스터를 잡아다가, 극한까지 키우고자 하는 테이머 부류도 있었다. 그런 작자들의 플레이는 희귀한 것이었고, 또 나름의 재미나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었으므로.

인터넷 웹web 상에서는 종종 인기를 끌기도 했다. 릿샤 역시 아는 바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숲에 사는 갈색 사슴 한 마리를 길들여서- 200레벨 근처의 강력함을 갖게 만든 어느 독일인 테이머의 플레이 영상이 있기도 했다.


예전부터 키워온 오래된 몹이란 플레이어에게 ‘정情’이라고 할만한 수치가 쌓여서, 간단하게 측정 가능한 스펙spec 이상의 힘을 내기도 하곤 했다. 이 게임은 현실의 다양한 현상들을 관찰하고, 아주 정밀하게 옮겨다 만든 가상 세계였으므로. 현실에도 종종 기적이 일어나는 것만큼. 이 속에서도 일어나고는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테이머와 펫 간間의 관계라는 건 쉽게 뗄 수 없는 무엇이다.


로웰 드버의 경우에는 정해진 소수의 몹을 오래도록 조종하는 능력치 자체가 떨어지긴 했다만. 위의 설명들은 모두 ‘대중적인’ 테이머에 관한 인식과 이야기들이었다. 엘리트 계열의 술사들. 군단을 이끄는 마물술사들은 몬스터에게 그만한 정을 주거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철저하게 도구로 볼 뿐이고. 완벽하게 길들여지지 않은 몬스터는, 그렇게 대하는 것이 옳은 방식이기도 했다.


로웰은 여행을 다닐 때 몇 마리의 몹을 넉넉하게 데리고 다니다가, 소모품을 쓰듯이 잃어버리곤 했다.

소수의 몬스터를 오래 조종하는 건 그로서는 MP를 낭비하는 일이기도 했고. 정작 중요할 때 힘을 쓰지 못할 수도 있었으므로. 가급적 최소한의 무리만을 챙겨 다니는 게 습관이었다.


산슈카에서도 이름 높은 알사드 가문의 영지에 들어왔으니. 몬스터로부터 위협을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또 치안 수준도 좋은 곳이니 훌훌, 다 떨쳐버리고 홀몸으로 들어와 지내고 있던 차다.


헌터즈 길드원들이 보기엔 영 좋지 못한 행태였으나.


그래서 지금 릿샤가, 아티팩트 하나를 쥐어주고 전투법을 익히라고 강요하듯 가르치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초상술사는 아티피서로서의 자질을 약간은 가진다. 거기서, 자신에게 잘 맞는 어떤 종류의 스킬과 아티팩트를 고른 뒤에. 긴 시간 단련을 하고 정수精髓를 취하는 건 다른 일이었지만.


짧은 시간의 하드 트레이닝만으로도, 잠깐 쓸만한 솜씨는 만들 수 있으리라. 더군다나 괜찮은, 양질의 아티팩트가 마련되어 있다면 더욱이 말이다.


릿샤가 공터에서 로웰에게 쥐어준 건, 붉은 색의 홍옥이 달린 뻣뻣한 지팡이 하나였다.


나무로 이루어졌으나 언뜻 보기엔 나무의 질감은 아니었다. 이 세계엔 신비한 목질의 수종樹種들이 참 많았다. 암석, 광물들 역시 그러하고.


특수한 재료를 배합해 만들어낸 것 같은 매끈한 외견이다. 릿샤가 다루던 흑각만큼은 아니었지만, 광택이 돌만치 균일한 표면에 적갈색의 빛깔이다.

현대의 어느 공법으로 고온 고압 공정을 거쳐 만들어 낸듯한 물건이었다. 초상공학으로도 비슷한 일이 가능은 하다만. 현대의 경우와 달리 값이 아주 비싸진다.


로웰이 쥐고 있는 건, 그런 아티팩트 공법을 거친 경우는 아니었고. 특수한 소재를 써서 남달라 보일 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중부 대륙 남부 지방에 있는 마경魔境, 어느 숲 속 괴물의 몸뚱이 조각이었다. 그야말로 거목이랄만한 크기를 가진 나무들 중에는 가끔 움직이는 놈들이 있었다. 현실의 전설을 생각하자면, 그냥 어두움과 사람의 공포심이 만들어 낸 착각에 불과하지만.


콘란드 대륙은 그런 설화를 진지하게 창조해 낸 세상이었으므로. 안타깝게도 정말 그런 괴물들이 실존했다.


워킹 트리Walking Tree라고 불리는 놈들이었고, 다루기 어려운 만큼 만일 잡는다면 제법 돈이 되는 소재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는 몬스터다. 그런 부류의 조각을 원료로 삼아, 이런저런 공법을 거쳐 만든 게 지금,


“이건 대체 누가 만든 거요?”


로웰이 쥐고 있는 지팡이다.


해가 저물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로웰은 대공 저를 방문하고, 알사드 대공을 만나러 온 길이었다. 그를 직접 만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 신하 정도는 만나서 서신을 전달해야 했다. 그리턴 가의 ‘물음’이 적혀 있는 편지였다. 그에 대한 대답을 받을 수 있다면 좋고. 아니라고 한다면 그저 몸 성히 돌아오라는 게, 하이샨 그리턴 자작의 명령이었다.


섬길 주인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런 부류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턴 자작은.


그러나 대공 가는 아무 때나, 아무나 방문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리턴 가의 전언을 전달하러 온 사신이라고 하더라도. 딱히 예정이 되어 있던 건 아니었기에 결국 기다려야 하는 게 그의 일정이다.

보통의 귀족 가라고 한다면 상대의 체면을 생각해서 오래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린스 알사드는, 나라 안에서 온갖 별명으로 불리는 괴짜, 기인이다. 자신의 책무마저 뒤로 하고 ‘게으른 대공’ 따위로 불리는 작자이니. 그 기분에 따라 한없이 임무가 지연될 수도 있었다.


당연히 로웰은 그리턴 자작의 ‘물음’의 내용은 모른다. 그저 주인이 전달하라고 하니 왔을 뿐이고. 알사드 대공과 그리턴 자작이 정확히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모른다. 친근한 동맹의 입장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으나. 정치적으로 껄끄럽거나 혹은 나아가 적일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세상이라는 건 녹록치 않은 법이었고.


이유없는 친구가 드물어져 가는 곳이었음을, 로웰도 알았으니.


“내가, 이 양반아.”

“거 쬐끄만한 아가씨가 말투 하고는-”


로웰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말했다. 끄응차, 하고 천천히 일어나 로브의 궁둥이 부근을 털었다. 공터의 흙먼지가 묻었다. 릿샤는 어른스럽게, 울컥하지는 않았다. 물론 키가 작고 지나치게 동안인 것이 그녀의 특징이자 콤플렉스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성숙한 어른이 아닌가.


누군가에게 쉽게 성을 내는 성격을 버려야, 그녀로서도 앞으로의 인생이 더욱 편안해지리라.


“······크흠. 아무튼. 감이 좀 안 와? 거기에 담겨 있는 술식이라고 해봐야 두, 세 가지 정도이고 단순한 것들인데···. 당신도 초상술사라면···.”

“음···. 테이밍Taming과는 전혀 다른 느낌인 것 같은데···.”

“그건 그냥 착각에 불과할 걸. 어차피 같은 MP를 다루는 일인데. 물론 작성자가 나니까··· 당신이 평소에 쓰던 술식과 문법이 다를 수야 있겠지만···. 결국 같은 스킬이라는 말이지···. 초상술.”

“그게 말만 듣고 곧바로 되면 내가 진즉에 원소술사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겠어.”


그건 맞는 말이기는 했다만.


로웰은 스스럼없는 성격이었다. 지팡이를 다시 쥐고 일단 집중을 해 본다. 주변에는 사람의 눈길이 없었다. 릿샤는 가볍게, ‘보호막’ 류의 스킬을 펼치기도 했다. 소리를 가리고, 주변으로부터 시각적으로도 잘 보이지 않게끔 하는 효과였다. 물리적인 공격을 막는 효과는 없었고.


은엄폐를 위한 기술이었고. 그것도, 지나치게 완벽한 가리기가 아니라 ‘적당한’ 수준이었다. 이런 도심 지역 내에서는 이 정도가 딱 알맞았다.


주변에 섞여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정도가.


공터에는 로웰, 릿샤, 최태현, 호아킨이 있었다.


제냐나 릿샤에게는 주로 편하게 말을 하는 로웰이었다. 나이가 어린 이들을 상대할 때 편한 걸지도 모른다. 두 사람 역시 로웰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하고는 했고.


제냐는 어지간해서는 말을 쉽게 놓지 않는데. 그런 성격의 인간을 구슬렸다는 건. 로웰 드버라는 NPC의 성격 설정값이 참으로 수더분하게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최태현이나 호아킨과는 어딘지 모르게 뻣뻣하게 굴었다. 하오체를 썼다가, 말았다가를 한다던가.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사내들끼리의 어떤 존중감이라도 있는지 모른다.

로웰은 NPC에 불과했지만. 그런 사회 통념이나, 성격을 가진 이들을 모티브 삼아서 만들어졌지 않겠는가.


“흐읍.”


그는 숨을 몰아쉰다.


사실 로웰 드버 정도라면, 천재라고 할 수 있다.


릿샤의 말대로 테이밍 술식 역시 초상술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 또한 정밀하게 MP를 다루어내는 초상술이다. 로웰은 수많은 몬스터 무리를 단시간 내에 장악하고, 완벽하게 통제를 해내는 인간이었다.

MP를 다루는 걸, 종종 군사들을 다루는 일에 비유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콘란드 대륙에서 NPC들 또한 그렇고, 플레이어들 역시 그러하다. 순서를 따지자면 NPC들의 비유법이 플레이어에게 전해졌으리라.


달리 말해, MP를 사용해 수많은 몬스터 군단을 다뤄본 전력이 있는 로웰 드버는. 이미 정밀하게 초상술을 발동해내는 데 있어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라는 말이다.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세슈칸 시티건 어디건. 금강Diamond 급의 용병패를 그냥 주지는 않으니까. 어떤 특화된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수준이 받쳐줘야 하는 법이었다.


릿샤가 말한 바처럼 그냥. ‘익숙치 않은’ 걸 수도 있었다. 사람의 지각이라는 게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나약한 것이라서. 같은 것도 ‘다를 거야’하는 편견 속에서 바라보면 정말 그렇게 느껴지곤 했으니까.

릿샤가 만들어낸 스킬에는 곳곳에 그녀의 성격과 기술이 묻어났다. 아티팩트를 다루는 아티피서들은, 그런 물건 내 고유의 스킬 스타일에 자신의 스타일을 맞추게 된다. A 루트가 발동 중에 막히면, 곧바로 B 루트를 뚫어 초상술을 써먹을 수 있는 메이지들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좋은 아티팩트를 만나는 것 역시 아티피서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높은 실력, 고견을 가진 아티팩트 장인의 물건을 가지고 훈련을 하고 능력 계발을 해야. 자신 역시 뛰어난 수준에 다다르기 쉬운 법이었으니까.


어눌한 실력을 가진 이가 길을 내어 놓은 곳 위에서 아무리 뛰어놀아봤자, 그 길을 전부 뜯어고칠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티피서들은 변형, 변용에 있어 약한 면이 있다.


대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티피서가, 고명한 장인의 아티팩트를 만난다면. 그는 세상 어떤 칼보다도 예리한 무기를 가진 용사勇士가 될 수도 있었다.


아티팩트에 담겨 있는 스킬 하나의 정수를 모두 파헤쳐 얻어내고. 그 장인이 직접 다루는 것보다도 더 빠르고 강하고, 혁신적으로 스킬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한 가지 길에 철저하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경지가 깊어지면 나름의 다양성을 얻을 수 있는 셈이었다.


지금 공터에 있는 건 로웰 드버, 뛰어난 초상술사, 테이머이자.

조금 어설픈 아티피서다.

그리고 그가 쥔 건 나름대로 값비싼 아티팩트였고. 릿샤는 쥐어준 지팡이의 이름을 ‘하울Howl’이라고 지었다. 증폭에 있어서 강점을 보이는 무구武具였으며. 제대로 써낸다면 이름처럼 상당한 진폭의 위력을 컨트롤할 수 있을 테였다.


“흐으으으음.”


기합으로 흡, 하고 내뱉었던 소리가 뜻대로 안되자 의문문처럼 변했다. 로웰은 맑은 적색으로 빛나는 홍옥의 내부를 주시하면서 MP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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