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새글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30 02:56
연재수 :
358 회
조회수 :
9,097
추천수 :
771
글자수 :
3,405,694

작성
24.03.29 18:04
조회
12
추천
1
글자
12쪽

246. 살리기

DUMMY

*


“야··· 이거. 어렵겠는데.”


제냐도 초상술을 익혔고, 심지어 마스터 마기아 수준이었다. 콘란드 대륙 전역을 탈탈 털어도 그리 많은 수를 찾지 못할 정도의 경지다. ‘마스터Master’라는 단어를 아무데나 붙이지 않는 법이었다.


릿샤를 제외한다면, 가장 폭넓게 다양한 초상술을 쓸 수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헌터즈 길드 내에서. 당연히 기초적인 힐링Healing 스킬 정도는 익히고 있었다. 솔로 플레잉의 필수가 아니던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유틸Util(ity)계열의 기술들은 말이다.


그 외에 원소별로 저항성을 높인다거나, 인간이 쉽게 처할 수 있는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 기술들 따위를 두루두루 익힌 바 있었다.

수준이 아주 높지는 않았었지만, 스킬의 유무만으로 게임 오버의 갈림길에서 살아돌아올 수 있는 법이었다.

아주 높지 않아도, 레벨과 의지력, MP 따위의 기능이 높기에 어느 정도 효력이 증폭되는 효과도 있었고.


그런데 그런 증폭된 효력으로도, 로웰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알사드의 은혜’에 돌아와 있었다. 한결같이 묵고 있는 허름한 여관이었다. 허름하기는 해도, 더럽지는 않다. 그 정도면 지내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다 초인의 육체들이었으니. 사소한 불편함으로 컨디션이 크게 떨어지지도 않는다.


안전한 곳에서 충분하게 쉴 수 있다면, 다음 여정을 위한 회복처로서 부족함이 없다. 근처에는 알사드 령을 방문하는 내빈들이 묵는 호텔도 있는 모양인데.

제냐는 오히려 드러나는 곳에 묵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일대 거리의 랜드마크처럼 높게 지어진 목조 건물의 위가 꼭 안전할 것 같지도 않았고. 차라리 적당한 골목의 숨겨진 여관에 머무르면서. 릿샤에게 부탁을 해서 결계 스킬 따위를 펼치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


지금도 릿샤는 로그아웃을 한 상태였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스킬과, 아티팩트들은 정상적으로 발동하고 있었다. 그녀가 게임에 들어와 있을 때처럼 강력하지는 못해도 충분히 경계 능력을 발휘하리라.


최태현의 방 안에 옹기종기 모인 다섯 명이었다. 소리는 바깥과 완전하게 차단되고 있었다.


로웰이 낡고 조금 푹신한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고. 라이엔은 그 끄트머리에 앉았다. 제냐는 의자를 끌어 와 로웰의 손목을 짚고 있었고. 호아킨과 최태현은 대충 바닥에 앉은 꼴이다.


날이 어둑했다. 곧 밤이다. 밤은 쫓기고 있는 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야습’이 떠오르는 시간이다. 대공령에서 많은 밤을 지새우는 건 불안한 일이었지만. 달리 수가 없었다. 일단은 로웰을 키Key로 삼아서 이 대공령에서 무언가 알아내거나, 진전이 있어야 하리라.


아마 어떤 웨이브가 오던 한 번은 배겨낼 수 있을 테였다. 또다시 말도 안 되는 급전개가 벌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레벨 200대까지는 대응을 할 수 있게끔 체급을 키워왔는데. 왕국 내에서 손꼽히는 수퍼 마스터Super Master급의 NPC가 덮쳐 온다면 곤란해질 테다.


300레벨 초반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도망은 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간 헌터즈 길드원들이 무수한 몬스터들을 협공으로 잡고, 퀘스트Quest를 같이 깨온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평소에 적은 스펙으로 능력의 한계 이상을 계속해서 보이면. 시스템이 그 캐릭터의 능력 상한을 높게 잡는다.


다이스Dice를 통해서 임시 AI가 들어올 때, 보다 양질의 전투 AI가 자리잡을 확률이 높아지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미루어보자면.


다섯이 잘 대비를 하고 로그아웃 하는 것만 반복을 한다면. 자고 일어났더니 전부 게임 오버가 되어 있었더라,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제대로 협동 플레이를 하면서 대공령에서 도망을 치고, 다른 지역에서 로그인하게 될 확률은 많았지만.


그런 사태가 벌어질지 몰라서, 로웰 드버라는 NPC에게 신경을 좀 쓴 것인데···.


이렇게 당하고야 말다니.


헌터즈 길드원들은 전투 클래스로서 능력을 계속 갈고닦아왔고, 콘란드 대륙 내의 상식으로 보자면 불가해한 정도의 성장을 이뤘다.

로웰 드버는 반면, 그렇게 많이 강해지진 않았다. 같이 다니며 퀘스트를 풀어 나가는 한, 계속해서 약점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가야 하는 것이 이 게임이 요구하는 바였지만.


“······.”


로웰은 낯빛이 아주 안좋아졌다. 이제 자신이 죽는건가, 라는 불길한 상상을 하는 모양이었다. 라이엔이 말을 얹었다.


“로웰, 이제 죽는 거에요?”


드버는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던 질문이었는데. 그리 친하지도 않은 아가씨가 스스럼없이 말을 한다. 로웰 드버 자신도 그리 평범한 성격은 아니었으나. 늘 느끼듯 제냐와 그 친구들 역시 이상한 인간들이었다.


제냐는 고개를 가로젓고 싶었지만, 무턱대고 그러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렸다.


“음···. 당장은 아니고요.”


로웰이 여기서 한 번 더 죽상을 했다. 거멓게 낯빛이 죽어간다. 호아킨은 그 변화가 다채로워서 하마터면 웃을 뻔한 것을 참았다. 아무리 NPC라고 해도. 죽겠다는 인간 앞에서 웃어댔다간 곤욕을 치르리라. NPC들은 고도의 지능을 가졌고, 그야말로 인간적으로 반응을 했으니까. 논 플레이어 캐릭터라고 함부로 대하며 세상을 떠돌다가, 뒤에서 칼을 맞고 죽어간 플레이어들이 아주 많았다.


비련시 온라인의 서비스 초창기 때는 그렇게 게임 오버를 당하는 이들이 적어도 반절 이상은 되었으리라. 지금에야 어느 정도 노하우니, 게임 공략법이니 하는 것들이 양식화되어 퍼진 다음이라 그런 일들이 줄어들었지만.


비련의 시나리오 이전의 가상현실 게임들은, NPC들이 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정밀하지 못했다. 정해진 구간 완벽한 감정 연기를 해내는 정도는 구현을 해냈는데. 정말로 만변萬變하는 인간사의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진짜’ AI를 만들지는 못한 것이다.


비련의 시나리오가 최고의 게임이라는 평을 받는 데에는, 현실에 가까운 오감 체현률도 있었지만. 분명 가상 인격들의 차원이 다른 정밀함 역시 큰 몫을 했다.


호아킨이 눈치없이 헛웃음을 터뜨렸다간. 로웰은 정말로 서운해하고, 그건 인간의 실제 반응에 한없이 가까우리라.


“이제··· 얼마나 남았나···?”


로웰이 힘없이 답했다. 제냐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있는 거지 아직 죽을 게 아니니까···. 정신 차리십쇼.”


제냐가 심지어 핀잔처럼 말했다.


“대강 진맥해봤는데···.”


진맥, 이라고 하지만 정말 맥을 짚은 건 아니었다. 그냥 회복술 계열에 있는 스킬을 썼을 뿐이지. 로웰의 체내로 MP를 흘려보냈고, 스킬에 따라 그것들이 내부 정보를 제냐에게 알려주었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졌고, 시스템이 보여주는 비쥬얼 데이터로 정보들을 받아볼 수 있었다.


만약 세계관 내 NPC가 같은 스킬을 쓴다면 머릿속에 그런 그림이 떠오르지는 않을 테다. 그냥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에 의해 그런 식으로 혼자 상상을 해보는 것일 테지.

제냐의 것은 ‘상상’이 아니라 시스템 AI가 제공하는 고정된 그림 정보였다.


“저로서는 ‘독물’이 체내에 있다는 정도만 알 뿐입니다. 딱히 조치를 취할 수가 없네요. 포이즌 큐어나 힐링같은 걸 써봐도··· 기초적인 수준이라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고···.”


“······테이밍 지원 기술도 효과가 좀 있을까?”


라이엔이 제냐에게 물었다.

사람과 펫 사이에는 아주 큰 생물학적, 또 시스템 데이터적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신체를 활성화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버프Buff 기술이라고 한다면. MP가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이엔의 생각이었다.


‘독’이 어떤 종류이냐에 따라 다를 테였다. 실제 의학적 지식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전문적으로 힐러 계열의 스킬을 얻은 이가 치료를 해얄 듯 싶었다. 제냐로서는.


“···글쎄요. 모르겠어요. 일단···. 로웰, 속이 좀 괜찮나?”

“···안좋진 않아. 사실 너희들이 말한 바가 아니면 별 문제 없다고 여길 것 같은데···.”

“으으음···. 내부를 살펴봤을 때는. 내장 기관이 조금 상한 거 같았는데 괜찮다고···. 신경독 계열인가···.”

“으억.”


로웰은 심장을 움켜쥐는 제스쳐를 취했다. 어··· 아니, 심장말고 복부 쪽. 위장 쪽. 제냐는 그렇게 정정해줄까, 떠올랐지만 말았다. 괜한 말이었다.


“힐링도 큐어Cure도 크게 쓸모가 없어. 릿샤라면 다를까 싶긴 한데···. 그녀가 지금은 자리에 없어서···. 대공령에 도착하기까지 이 독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군.”


제냐는 고개를 젓는다.


“1번,”


“1번?”


제냐의 말에 로웰이 따라 읊었다.


“알사드슈트에서 고명한 치료술사를 찾아, 회복한다. 2번.”

“2번?”

“지금 당장 사르삿으로 이동해서, 우리가 알던 회복술사에게 의뢰를 하고 치료를 받는다.”


어느 쪽이던 상관은 없었다. 방법 자체는. 문제는 시간이다. 로웰은 중독이 되었고, 이 약물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일단 비전의 아이템은 있기는 한데···. 아마 로웰이 지금 당장 죽으려는 꼴이면 사용을 하겠지만···. 다른 중요한 기로에서 키 아이템이 될 수도 있는 물건이라 그냥 냅다 써먹기에는 주저가 된다.


비정할지 모르겠으나. 제냐는 일단 대공령 내의 치유술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런 대도시에는 빠짐없이 있는 시설이 ‘병원’이나 ‘치료소’ 따위였다. 병원은 일반적인 NPC들이 이용하는 곳이었고, 플레이어들도 후유증 따위를 처리하기 위해서 들르곤 한다.


치료소, 치유소 따위라고 불리는 곳은 보통 회복 계열의 스킬을 가진 이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NPC들이 운용하는 곳도 있었고. 플레이어들이 개업한 장소들도 있었다. 어느 쪽이던, 최소한의 수준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하리라. 마스터 마기아의 스킬로도 치유가 쉽사리 안되는 지독하고 난해한 독이다보니.


그들은 난데없이, 저녁 거리를 걷게 되었다. 제냐와 호아킨이 움직여, 로웰을 데리고 갔다. 라이엔은 최태현과 함께 썬더스를 탔다.

제냐가 잘 알고 있고, 길드원들이 자주 들르던 치료소가 있었다. 마스터 급의 회복술을 자랑하는 NPC가 있는 곳이다. 고명한 장인이라 함부로 오라가라 할 수는 없었으나. 일단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독에 중독이 된 상황이다보니. 거액을 제시해서라도 초빙해서, 데려오려는 심산이었다.


번잡한 때일수록 흩어져서는 안된다. 길드원들은, 둘 셋으로 나누어져 급히 움직였다. 홀로 떨어져 있다가, 대공이 다루는 암살자에게 걸리면 그게 더 최악의 상황이 될 테니까.


“후우, 후우······.”


로웰 드버는 웃기는 양반이었다.


제 입으로 컨디션에는 별 변화가 없다고 했는데. 증세에 대해서 듣고 나서부터는 숨을 좀 가쁘게 몰아쉬었다.

스스로도 MP를 다루면서, 자신의 몸과 내장 기관들 따위를 강화하고 보호하려고 애를 써보긴 했다. 느리고 둔한 솜씨지만. 강화술의 요체 역시 기본적으로 초상술과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기력술사들처럼은 절대 못해도.


긴 시간이 걸려 스스로의 몸을 어느 정도 보호하는 효과는, 낼 수 있으리라. 미약하게라도.


로웰은 호아킨과 제냐의 손에 이끌려 대공령의 저녁 거리를 재게 걷기 시작했다.


라이엔과 최태현은, 밤하늘을 날았고.


*

eugene-chystiakov-U3pLKCu1mqM-unsplash.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9 268. 견제 24.04.16 14 1 26쪽
268 267. 썬더 울프. 사막의 밤. 24.04.14 16 1 18쪽
267 266. 케이실라Keiseila 24.04.13 15 1 15쪽
266 265. 외유外遊 24.04.12 13 1 21쪽
265 264. 처량한 포로 24.04.12 13 1 30쪽
264 263. 세부 내용 24.04.10 23 1 13쪽
263 262. 알현 24.04.10 13 1 19쪽
262 261. 사절단의 여정 24.04.10 18 1 19쪽
261 260. 비슷한 아이디어 24.04.10 11 1 19쪽
260 259. '그 망할 새끼' That shit 24.04.09 14 1 23쪽
259 258. 잠입 24.04.09 9 1 15쪽
258 257. 납치 24.04.08 11 1 10쪽
257 256.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가볍게 검을 내리긋는다. 24.04.07 11 1 24쪽
256 255. 이쿠죠いくぞ 24.04.04 16 1 30쪽
255 254. 사막벌레 24.04.03 14 1 14쪽
254 253. 부족의 명운 24.04.02 15 1 24쪽
253 252. 이시기르스 24.04.02 13 1 17쪽
252 251. 리비아 24.04.01 14 1 19쪽
251 250. 사절단 24.03.31 17 1 15쪽
250 249. 에드버그 24.03.30 13 1 15쪽
249 248. 사담私談 24.03.30 15 1 14쪽
248 247. 자고로 다 고생하는데 뺑끼치는 새끼가 제일… 24.03.29 13 1 23쪽
» 246. 살리기 24.03.29 13 1 12쪽
246 245. 상처 24.03.29 10 1 9쪽
245 244. 전조없는 비수 24.03.29 11 1 22쪽
244 243. 셰프 L 24.03.29 12 1 14쪽
243 242. 합류 24.03.28 13 1 24쪽
242 241. 하울Howl 24.03.28 12 1 16쪽
241 240. 지팡이 하나 24.03.27 10 1 19쪽
240 239. 치즈 케잌 24.03.26 10 1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