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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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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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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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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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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253. 부족의 명운

DUMMY

“발롭 부족과?”


토미가 물어보았다. 이시기르스는 오래도록 고민한 이야기인양, 홀로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술술 풀어놓앗다.


“음. 최근에 원로 분들의 낌새가 조금 이상하거든. 전쟁이 일어나봤자 분명 좋을 게 없는데···. 피할 수 없는 종류라고 한다면 분명 맞서싸워야겠지만···.

발롭을 쳐야만 한다는 식의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


발롭 부족은 이시기르 부족보다 규모가 큰 집단이었다. 사막의 여러 부족들 중에서도 ‘강성하다’고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부족민들의 수 역시 많은 편이었고. 개중에서 전사들의 비율, 양과 질 모두 뛰어났다.


사막 민족들 중 ‘리비아 이시기르스’ 정도 되는 전사들은 많지 않았다. 그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뿐이지, 분명 ‘대전사大戰士’라는 호칭을 받아도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대전사는 망믈이나 부족에서 으뜸이 가는 용사를 일컫는 말이었다. 장군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단어이기도 했는데.

왕국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서는 ‘왕국제일검’ 따위가 가장 정확한 번역이 될 수 있으리라. 퍼스트 소드First sword. 왕실에 있는 무수한 실력자들 가운데서 최고의 경지를 자랑하는 기력술사, 기사에게 붙는 호칭이었다.


물론 왕국의 그것과 부족의 대전사는 질적으로 차이가 조금 난다. 어쩔 수 없다. 수 백 이상으로 갈라져 있는 부족 하나에서 으뜸가는 전사가 아닌가. ‘나라’라는 단위는 사막 부족들이 전부 규합했을 때에나 나올만한 집단의 단위였다.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대단한 용사였지만. 당장 산슈카 국에 간다고 하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분명 왕립 기사단에도 들 수 있는 뛰어난 실력가인 것은 맞았으나.


부족의 용사들을 모두 지휘하는 ‘장군’의 역할을 하는 이는, 부족장의 계보가 더 가까운 의미를 가진다.

부족장이 곧 마을의 수장이며, 최종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가장 큰 사내이다. 그리고 그 휘하에 있는 자식들은 마을의 사내들을 이끄는 용맹한 지휘관이 되는 것이 수순이며.


만일 부족장이 어떤 이유로든 죽고. 그 때까지 가장 훌륭한 전적을 쌓으며 살아남은 자식이 있다면 그가 다음 대의 부족장이 되는 게 적법한 절차였다.

‘누가 가장 훌륭한’ 전적을 쌓았는가에 대한 논의는 마을의 원로들, 또 주요한 일을 담당하는 다른 어른들이 모두 모여 결정을 한다.


원로들은 부족의 미래를 결정짓는 데 있어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노인들이었다. 사내만 있지 않았고, 여성도 얼마든지 원로가 될 수 있었다.

대모大母, 혹은 대부大父.

마을의 웃어른들은 부족장의 결정에도 여러 첨언을 할 수가 있었고, 족장이 자신의 눈만으로 다 보지 못한 정보나 사실들을 원로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정책적, 정치적 방향에 있어서 큰 발언권을 지녔다고 할 수 있으리라. 육체적인 힘은 당연히 젊은 사내들만 못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과 마을들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족장이 나온다면 아마 그 때가 이시기르 부족의 마지막이 될 것이었고.


그런데, 그마만큼 주요한 발언권자인 원로들에게서 이상한 의견이 나온 것이 최근 그의 고민이었다.


발롭 부족은 이시기르에서 하룻길 정도를 달려가면 나오는 위치에 거한다. 사막에 흐르는 긴 강, ‘프토아스’의 큰 줄기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는 부족이었으며, 큰 규모로 농사를 짓기도 했다.


이시기르 역시 여러 작물들을 기르고 식량을 얻고 있지만. 결국 그 크기는 근처 수원인 우물이나 작은 오아시스 따위에서 길어올 수 있는 ‘물’로써 제한된다.


큰 강의 줄기를 끼고 있는 발롭 부족의 풍요로움에 비할 것은 못되었다. 언제나 가축들을 먹일 수 있을 만한 초지草地까지 힘들게 이동을 하고. 거기서 배부르게 양, 소, 낙타 따위의 먹이를 주고 돌아온다. 농경 재배로 만들어내는 물량만으로 가축들의 먹이를 전부 감당할 수 없기에 말이다.


초지나 근처의 작은 오아시스, 우물을 비롯한 일대는 곧 이시기르 부족의 영역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근방으로 다른 부족이 어떤 화해의 제스쳐도 없이 다가온다면 척결의 대상으로 여겨져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언제나 준전시 상태에 가까운 것이 이 일대의 실상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런 악의가 없는 것처럼 다가왔다가 후방을 노리는 식의 계략도 많이 반복되어왔다.

어지간한 전략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유를 하고 있는 바였기에, 지금의 짧은 평화기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었고.


이시기르 부족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일대一帶를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군사력이 필요했다. 주기적으로 몬스터들의 개체수를 낮춰주기 위해서 토벌, 순찰 따위를 해야 했으니.


목자牧者들이 가축을 데리러 움직이기 전후로, 혹은 같이 이동을 하며 부족의 전사들이 길을 트는 것도 늘 있는 일상이었다.


‘땅’을 소유한 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힘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안정적인 군사력. 그것이 사막 부족을 이끌 때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더 큰 땅, 더 좋은 땅은 더 많은 군사, 전사들을 필요로 한다.

발롭 부족은 근방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대를 선점한 부족이었고. 그만큼 큰 힘을 가졌다.


발롭 부족과 싸워서, 그들을 큰 피해 없이 물리칠 수 있다면 물론 좋을 것이다. 사막에서 그나마 살만한 일대를 손에 넣고, 부족민들은 이전보다 부유한 삶을 살게 될 테니.

그런 삶은 곳 부족의 부흥을 불러오리라.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전장에 설만한 사내들의 숫자도 함께 늘어나겠지.


그러나 이시기르스는 단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그게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좋기야 하겠지.


그런데 아무런 희생 없이 그러한 일이 가능하겠느냐, 는 물음이었다.


전투와 상관이 없는 입장의 부족민이라고 한다면 그저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테였다. 열 번 정도 양보를 해서 생각했을 때.

그러나 그는 실질적으로 이시기르 부족의 대전사나 다름없는 자였다. 엘리트 전사들 중에서도 뛰어난 부류였고. 몬스터와의, 혹은 타 부족과의 싸움이 벌어지면 가장 앞서 달려나가서 가장 잔혹하게 피를 흩뿌릴 사내였다.


많은 경우 리비아의 피보다는 타인의 피로 그가 가는 길이 물들 테다.


대전사에 가까운 자라는 건 그런 의미였으니까.


타부족에서도 그만한 전사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를 막기는 아주 어려웠다.


거기에 리비아는 지난 몇 해 동안 있어왔던 여러 전투와 경험들 끝에, 이전보다도 더 나은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자신하는 바였고.


그러나 타인의 피라고 해도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핏값’은 돌고 돌아 결국 누군가에게 머무르게 되어 있었다.


정당한 대의 없이, 함부로 피를 보기를 즐긴다면 대전사가 될지라도 그 이름이 퇴색되리라 확신하는 리비아다.


자신이 많은 적을 죽인다면. 그건 큰 원한을 사는 일이었고. 아무런 명예 없이 그런 전투에 끼어들어 칼부림을 한다면, 시간이 지나 자신의 삶이나 공동체에 큰 해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막에서의 삶은 거칠고 규율이 없는 듯 보이지만. 아주 냉혹했기에 평야민들의 삶보다 더 ‘규칙’과 ‘기준’을 따져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사구沙丘의 끄트머리를 지나가는 듯한 상황에서는, 더 엄정한 규칙이 필요한 법이었다.


대전사의 직책을 아직 얻지는 못했지만.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리비아 이시기르스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가질 수 있는 예민함일 지도 몰랐다.


명예도, 대의도.

부족에게 돌아올 실질적인 이득도 별로 없는 전투를 원하는 듯한 원로들의 언행을 보고 이시기르스는 ‘미친 게 아닌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원로들에게 직접적으로 발언을 할만큼 장성한 전사는 아니었다. 불만이 있더라도 당장은 속으로 삭여야 하는 입장이었지.


검은 두건과 복면을 쓴 작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런 이시기르스의 불만과 이어질 줄은 몰랐다. 안 그래도 정신 사나운 와중에 이방인들이 들락거리는 게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연관지어 생각하지는 못하던 차였는데.


눈 앞의 친우, 토미 졸탄은 놈들이 의심스럽다고 이야기를 한다.


솔직히까지 이야기를 하자면, 리비아는 극도로 짜증이 나고 화가 나 있는 상황이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다 베어버리고 말겠다’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단지 그 대상이 아직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았으니 참고 있었을 뿐이지.


그가 아직까지 마을 어른들의 주류보다 나이가 어리므로,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건 일차적인 이야기였다.

정말로 상황이 경각에 달했고, 그의 인내심이 끝났다고 한다면. 뒤를 생각지 않고 한 번쯤은 난리를 피울 수도 있었다. 그건 마을 전사들 중에서 뛰어난 자, 후의 대전사가 될 자로서의 화는 아닐 것이다.


단지 그냥, 이시기르 부족의 일원, 리비아 이시기르스 한 명으로서 내는 화와 일으키는 소란일 테지.


리비아는 부족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적이 많은 자였고. 그런 일에 망설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마을의 적이 마을 내에 있다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칼날의 방향을 안쪽으로 향할 것이다. 바깥의 적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경거망동 하지 않을 따름이다.


“미친 소리로군.”


토미 졸탄은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마을 내의 정치적 구도와는 큰 연관이 없는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리비아 이시기르스가 아무리 천재적인 솜씨와 총명함을 가진 청년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얽혀 있는 관계성으로 인해 함부로 큰 소란을 피울 수 없는 것과는 달리.


그는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원로들의 눈치도, 부족 전사단이나 그들을 이끄는 단장들과의 관계도 아무 상관이 없잖은가. 마을 사람들이 설령 토미에게 돌을 던진다고 해도, 그는 왔을 때처럼 떠나면 그만인 인간이었다.


그런 입장이 토미의 의견을 마을 중심에서 멀어지게는 하지만. 발언권과 영향력이 약한만큼, 제 좋을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은 있는 것이다.


어쨌든 리비아로서는 필요한 의견들이었다. 그는 토미를 멀리하지 않았고, 이방인으로만 보지도 않았으니. 가감없는 누군가의 생각이 절실한 입장이었다, 이시기르스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사실은.”


리비아는 고갤 끄덕인다.


야하하하하.


바깥에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조금 크게 들려왔다. 이시기르스의 천막 근처에까지 와서 놀다가 가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달리 걱정이 없다. 부모들의 표정이 물론 가정 내에서 영향을 미치기야 하겠다만. 아이들에게는 그들의 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세상을 지켜주는 게 이시기르스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좋든 싫든. 어렵든 쉽든. 갈 바는 언제나 한 가지다. 어떤 방식을 취해야 지혜로운 것인지 지독하게 고민스러울 따름이고.


“후우우우우···.”


리비아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 사내를 보면서, 토미는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린다고 여겨졌다. ‘마을의 막연한 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공감을 사고 이야기를 진행해야 할 지가 고민이었는데. 마을 제일의 실력가 리비아 이시기르스도 이미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토미는 아마 이 마을에서 리비아의 솜씨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간일 테였다. 리비아는 제법 겸손한 놈이었다. NPC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는 과정 중에서, 정감마저 느껴지는 녀석이었고.

매력적인 인간상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캐릭터임이 분명했다.


여러 싸움을 함께 하고, 사선을 같이 넘으면서 토미는 리비아의 실력을 모두 보았다. 마을의 다른 전사들은 알지 못하지만. 리비아는 평소엔 검술과 검기劍氣를 조금 숨기고 있었으니.

일반적으로는 레벨 100대 초반 정도의 고수 급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위기의 순간으로 전황이 인식되면, 갑자기 튀어 나가서 그 이상의 활약을 보이곤 했다. 검기를 이루는 MP의 밀도, 강도, 움직임의 빠르기. 지속적인 전투력을 볼 때 토미의 눈에는 확실히, 레벨 150 이상의 전투력이었다.


플레이어 레벨의 전투력 평균으로 셈한다면 170에서 180정도 선이라고 보여진다. 사막에서는 당연히 보기 어려운 수준의 전사였고. 왕국으로 간다고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은 수다. 그 이상의 실력자라고 한다면, 본격적으로 왕국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실력가들의 경지이다.


레벨 200이상, 300을 바라보는 자들.


왕립 기사단에서도 간부직을 취할 수 있으리라, 고 토미는 본다.


그러니만큼, 리비아의 협력을 얻을 수 있다면 든든하다. 일이 쉬울 것이었고.


검은 두건과 복면 따위로 얼굴을 감추고 돌아다니는 이상한 놈들. 그 자들의 기세로 보아하니, 적어도 중수급에서 최상위이거나 고수급 이상의 실력가들이 많았다.


이런 사막의 일개 부족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도모해볼 수 있는 전력이다. 그러나 리비아와 자신이 미리 알고 대비를 하며, 놈들의 뒤를 도리어 친다면. 그 역시 승산이 있는 게임이었고.


놈들의 정확한 강함이나 저력은 다 알기가 어려웠다. 단편적으로 보이는 기세로 대략적 강함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아이템이나 스킬을 전부 알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건 충분히 변수로서 작용 가능하다. 플레이어들이 NPC들에 비해 강점을 가지는 부분이기도 했고.


얼굴을 감춘 수상쩍은 놈들이 플레이어들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거대한 집단을 등에 업은 비밀 조직의 하수인들이라고 한다면. 상당한 스펙Spec의 장비들로 무장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일반적인 경우를 생각하다가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른다.


조심, 또 조심.


토미는 그리 생각했다.


“근처 국가들의 평화기가 오래 지속되었었지.”

“음.”


토미는 뻔한 이야기를 했다. 역사에 관한 말이기도 하고. 중부 대륙 북부의 제국이 소란을 일으켰다가, 잠잠해진 이후로 필리아 대륙에는 큰 전쟁이 없었다.

자유 연맹으로 똘똘 뭉친 중남부의 여러 국가들이 그만큼 악착같이 하나로 뭉친 바이기도 했고.


밸런스는 유지되고 있고. 누구 하나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 이전에 아릿시안 제국이 침략 전쟁을 활발하게 벌일 땐 화신 사막 역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오히려 더, 각 부족들이 하나로 규합되었던 시대이다.


이제는 공동의 적이 없으니, 다시금 갈라져서 반목하고 있었고.

큰 전쟁은 없이. 사막 내부에서만 작은 교전들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시대였다.


“내 생각에는, 그 평화기를 깰만한 누군가가 등장하지 않았는가 싶군.”


토미 졸탄이 받은 퀘스트는 마을간 급의 레어 퀘스트이다. 그러나 그게 정말로 ‘마을간’에서 끝나리라 여기지는 않았다. 비련시에서는 다양한 퀘스트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고, 해결되거나 해결되지 못한 채로 끝이 난다.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나는 것 또한, 나름의 결론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게임의 이름에 ‘시나리오’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처럼. 이 게임은 결론적으로 이야기를 추구하고 있었다. 씬과 씬의 유기적인 연결.

단발적으로 끝나는 퀘스트들도 아주 많기야 했지만. 보통 NPC들과 깊게 얽혀 있는 이야기를 건드릴 때면 연계 퀘스트로 발전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다.


토미 역시 그간의 경험으로 살펴 보았을 때, 지금 받은 퀘스트가 단순히 마을간 단발성 퀘스트에서 끝나리라 보지 않았다.


‘마을간’이라는 건 일개국 내에서 벌어지는, 그보다 작은 규모의 일들을 총칭한다. 마을이라는 말처럼 정말 그만한 규모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일개국의 한쪽 지방이나 도시 정도의 일들 역시 모두 마을간 급에 들어간다.


사막 부족 내에서의 일이라고 한다면. 보통은 마을간 급이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마 사막 부족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대사건 즈음 되면, 지역간으로 발전할지 모른다.


거기서 다시, 도미노가 쓰러지듯 사막 내에서의 일로 인해 필리아 대륙의 정세에 큰 영향이 미치게 된다면 한 번 더 레벨업 할지 몰랐고. 퀘스트의 규모가.


퀘스트 로그는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늘. 그래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단편적으로나마 이 중부 대륙 전체의 정세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었으니. 단순히 이시기르 부족 내에서의 일만으로 끝나지는 않게 되리라.


만약 바깥 왕국에서의 세력이 사막 민족들에게 관여를 하고 있다면. 그들이 바라는 최종적인 그림은 더욱 큰 무엇이 될 게 분명하다. 최소한 여러 부족들이 그 소용돌이에 휩싸일만한 것이고, 마지막에는 사막 바깥에서도 유의미한 일이 되겠지.


토미가 이야기한 바는 베테랑 플레이어로서 가능한, 지극히 당연한 수순의 추론이었다.


“누군가라니.”


리비아가 묻는다.


토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모르지. 나라고 눈이 바깥에 달린 건 아니니까···.

뭐···.

근데 생각해보자면···.

이 중부 대륙 전역에 영향을 끼칠만한 자라면 적어도 근처 왕국의 고관대작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흠.”


일리는 있군, 이라는 의미로 리비아가 숨소리를 냈다.


“이런 사막 한가운데 부족에 수상쩍은 놈들을 보내어 영향력을 끼칠만한 인간이라면 가진 세력도 상당할 것이고···.

아마 왕국에서 상당한 실권을 가진 이이거나··· 혹은 대영지를 소유한 대귀족일 수도 있겠군.”


리비아는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자네도 알다시피, 힘은 땅에서 나오지 않는가. 대지주, 대세력.

그런 자라면 왕국에서 필히 유명한 자일 것이며···.

아마 벨베르 공화국보다는, 안단, 이슈칼, 산슈카의 고관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공화국이라면···.”

“왕이 없는 나라를 일컫네. 대전사를 뽑을 때처럼, 적당한 기준을 두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선출하는 방식으로 지도자를 결정하지.

이런 먼 타국에까지 영향력을 미칠만큼, 자기 세력을 갖고 있는 자가 많지 않을 걸세. 공화국 전체의 의지가 반영된 거라면 모를까.”

“흐음···. 그런 나라가 있는가.”

“뭐, 생각보다 대륙 이곳저곳에 있는 방식이라네. 각 국민들의 권세가 높아지고, 삶의 질이 좀 올라갈 수 있겠지.

대신 중앙의 관리가 부패하기 시작하면 나라 전체가 망할 테고···.”

“호오.”


토미는 민주주의나, 현대의 나라들을 생각하면서 읊었다.


“왕권은 강력한 권력자들의 실권에 의해서 돌아갈 테지. 나라 전체 국민들의 의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겠고···. 기사단과 강력한 군세를 갖고 있다면 평민들의 반기도 어려울 것이며···.

임금이 썩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괜찮을 걸세.”


대신 임금이 망나니같은 인간이 된다면, 나라 전체가 휘청일 터다.


토미는 산슈카의 임금에 대해서는 조금 알았다. 안단이나 이슈칼에 대해서도. 산슈카 외의 2국에 대해서는, 인터넷 페이지로 정보를 얻은 것에 불과하긴 하다만. 사실 이 시대에 평범한 NPC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비한다면, 아주 고급의 정보를 손쉽게 얻고 있는 셈이었다.


플레이어들 간의 유대는 NPC들 간의 그것과도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고. 이 세계에서 일을 꾸미고 있는 NPC들의 계략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훨씬 위에 있는 네트워크였다.


“왕정 체계의 불안 요소라면 임금의 부패나, 혹은 그에 준할 수 있는 영주의 반역일 걸세.

산슈카, 이슈칼, 안단 세 왕국의 왕 중 하나가 미쳤거나. 혹은 그 나라의 대귀족 중 누가 일을 꾸미고 있는 거겠지.”


리비아는 잠자코 듣고 있는다. 사막 밖의 사정에 대해서라면, 그보다는 토미가 훨씬 잘 알고 있을 테다.

실제로는 아직 가본 적도 없는 세상이었다. 그런 왕국들은. 토미는 사막에 오기 전에, 산슈카에 머무르다가 왔노라 얘기했었다.


딱.


토미는 손가락을 튕겼다.


“어찌하겠나.”


어느덧, 모래 언덕의 아래에서 그를 부르던 토미의 얼굴과는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게르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할 때의 그와도 달랐고.

평상시에는 늘 헤실거리면서, 실없는 농담이나 건네고 했던 토미가 아니라. 전장에서의 표정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리비아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찌하라니, 뭘.


“아직 아무것도 모르네만. 우리가 모르게 위험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하네.

이시기르 부족의 전사로서. 그리고 이 마을의 동맹으로서.”


부족의 전사는 리비아를 이름이다.

그리고 마을의 동맹은, 토미 스스로를 설명하는 말이었다.


토미는 이시기르 부족에 나름의 애정을 갖고 있었다. 여러 전선을 함께 누비면서 생겨온 끈끈한 게 있었다. 그는 플레이어였고, 여기는 게임 속 세상이다. NPC에 불과한 이들이었지만. 작품 속 인물들에게도 애정이라는 게 생기지 않는가. 그건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토미 졸탄의 눈은 이시기르스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막 민족들의 삶을.


그러나 현실의 그, 토머스 졸탄이 바라보고 있는 건. 그의 삶에서 지나쳐 왔던 여러 친구들, 지인들. 가족들. 뭐 그런 이웃들일 지도 몰랐다. 이시기르스를 통해서 자신의 실제 삶에서 엮여왔던 이들과의 일을 다시금 상기하는 것이다.


게임은 단순한 여흥이었고. 업무가 끝나고, 어디로 놀러가기도 뭐할 때 잠깐 들어와 시간을 때우는 가상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속에서 토머스, 아니 토미가 느끼는 건 실제의 감정이다. 게임이 끝나고 다시 돌아갔을 때,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 토머스는 잠잠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러다 답을 얻기도 하고, 끝내 얻지 못하기도 하고.

로그아웃을 하곤 했다.


콘란드 대륙에 와있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세상은 감각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니었으니.


혹자들은, 유물론자라거나, 인식론자들은 그렇게 말을 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굳건한 진리가 세상의 구조를 이루고 있지 않다면 그런 논의조차도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아버지.’


가 뜬금없이, 토미는 생각이 났다.


미국 본토에 계신다.


그의 실제의 몸은 영국에 있었고.


어느 중견 기업의 회계사로서 일을 하고 있는 그였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유망한 커리어의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삶 중에 놓친 것은 없었던가.


관계성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바였고, 늘 그의 발목을 잡기도 하는데.

때로는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어쩌면 갈 길을 알려주는 건지도 모른다.


이시기르스를 상대하다가, 지난 일들에 대한 상념이 떠올라서.

그런 생각마저 하던 토미는 다시금 정신을 다잡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상대의 세력을 아는 게 중요하겠지···.

우선은 원로 분들에게 조금 이야기를 여쭙고 듣지 않겠나?

최근 마을의 정책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보가 더 필요해. 이상한 외부 압력이 없는 지도 알아봐야 하고···.

그러다가 확신이 서면···”


“서면.”


이시기르스가 친우의 끝말을 받아 중얼거렸다.


“복면 놈들 중 하나를 잡아다 족쳐보는 것도 좋겠군.”


토미는 스스로 고갤 끄덕이면서,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했다.


리비아와 토미가 힘을 잘 합친다면, 아마 어떻게든 될 것도 같았다.


리비아가 제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토미도 대개의 상황에서는 저력을 좀 숨기고 있었으니까. 그에게 퀘스트가 주어졌다는 건, 일단 해결할 가능성과 방향이 존재한다는 의미도 된다.

이 게임은 아주 어렵고, 불친절하기까지 하지만. ‘불가능’한 루트를 플레이어에게 제시하는 게임은 아니었다. 그건 게임이 게임으로 존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요구되는 점이었다.


해결 가능한 과제일 것, 말이다.


플레이어들이 어렵더라도, 깰 수 있는 무언가를 내놓아야 비로소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전’에 의의가 있는 것이니까.

애초에 잘못 설계된 도전 과제라면 아무리 다른 작품성이 충족되어도 제대로 된 물건이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리비아는 떨떠름하게 답을 한다.


“어, 어···.”


토미가 세게 나오자, 약간 당황을 했는 지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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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267. 썬더 울프. 사막의 밤. 24.04.14 15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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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265. 외유外遊 24.04.12 12 1 21쪽
265 264. 처량한 포로 24.04.12 12 1 30쪽
264 263. 세부 내용 24.04.10 22 1 13쪽
263 262. 알현 24.04.10 12 1 19쪽
262 261. 사절단의 여정 24.04.10 17 1 19쪽
261 260. 비슷한 아이디어 24.04.10 10 1 19쪽
260 259. '그 망할 새끼' That shit 24.04.09 12 1 23쪽
259 258. 잠입 24.04.09 8 1 15쪽
258 257. 납치 24.04.08 10 1 10쪽
257 256.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가볍게 검을 내리긋는다. 24.04.07 10 1 24쪽
256 255. 이쿠죠いくぞ 24.04.04 15 1 30쪽
255 254. 사막벌레 24.04.03 14 1 14쪽
» 253. 부족의 명운 24.04.02 15 1 24쪽
253 252. 이시기르스 24.04.02 13 1 17쪽
252 251. 리비아 24.04.01 13 1 19쪽
251 250. 사절단 24.03.31 16 1 15쪽
250 249. 에드버그 24.03.30 13 1 15쪽
249 248. 사담私談 24.03.30 15 1 14쪽
248 247. 자고로 다 고생하는데 뺑끼치는 새끼가 제일… 24.03.29 13 1 23쪽
247 246. 살리기 24.03.29 12 1 12쪽
246 245. 상처 24.03.29 9 1 9쪽
245 244. 전조없는 비수 24.03.29 10 1 22쪽
244 243. 셰프 L 24.03.29 11 1 14쪽
243 242. 합류 24.03.28 12 1 24쪽
242 241. 하울Howl 24.03.28 11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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