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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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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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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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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62. 알현

DUMMY

*


왕은 손님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먼 여정 고생이 많았다.”

“따스한 말씀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들은 다소 특이한 복색이었는데. 그것이 그들의 정복이자 예복이었다. 산슈카 왕국의 분위기와는 많이 다른 면이 있는 곳에서 온 자들이었다. 그리 먼 곳은 아니다. 낯선 땅도 아니고.


벨베르Belber는 예전의 역사를 따지자면, 산슈카 왕국의 일부이기도 했던 곳이다. 고대 제국기의 시절에 분리되었던 곳으로, 산슈카가 왕국으로 몰락하던 혼란기에 떨어져나간 ‘제후’의 땅이 곧 나라가 된 곳이었다.


지금의 공화국은 당시 만들어진 벨베르와도 또 다른 풍토와 문화, 정치적 체제를 가진 땅이라 아예 다른 나라라고 보는 것이 옳기는 했다만. 고리타분한 정통주의자들은 아직도 산슈카와 벨베르의 관계를 종속적이거나, 혹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무언가로 보곤 한다.


벨베르의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 않은 역사적 관점이다. 그럼에도, 산슈카에 왔으니 제왕을 뜻하는 폐하陛下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도리이리라.


싸우고자 온 바는 아니었다. 의중을 묻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러 온 것이었지.


산슈카에서 보낸 사절단보다 미리 출발을 했던 벨베르의 사신단은 왕궁, 사르삿 중심부에 있는 건물에 미리 닿았다.


벨케임 7세에게 언질이 닿았고, 왕은 보좌관들을 대동한 채 사신단을 만나고 있는 자리였다. 붉은색의 카펫 위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들. 개들 중 단장의 위치에 있는 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고 편히 말하라’고, 벨케임 왕이 미리 언질을 준 뒤의 일이었다.


공화국에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총통에게 보이는 예법보다도 더 과한 것을 상대국의 수장에게 보이고 있는 것이긴 했지만. 어차피 작금의 시대는 공화국보단 왕정 체제가 더 흔한 때였다. 콘란드 대륙에서는 말이다.

외국과 여러모로 교류할 일이 많다면, 왕정에서의 예식도 그리 생소한 건 아니다.


벨베르 국의 군인복. 짙은 녹색빛이 도는 옷을 입은 이, 가장 앞서서 무릎을 꿇었던 이의 이야기다.


“폐하. 저는 벨베르 북부 국경수비대장 대리를 맡고 있는··· 마굴라 누엘 장군의 보좌관 ‘말리 제퍼’라고 합니다.”


왕, 벨케임 7세는 호인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슬쩍, 손짓을 했다. 계속 말하라는 뜻이었다. 은은한 웃음기가 어려 있는 표정이다. 평상시의 표정이 얼굴에 묻어나는 듯도 했다. 왕정의 리스크risk라고 한다면 국왕이 미쳐있는 경우다.


홀로 서는 절대자의 손에 의해서 나라가 돌아가고. 그 절대자의 정신적 컨디션에 의해서 국정이 어지럽혀질 수도, 잘 운영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말리는 벨케임 7세가 제법 괜찮은 왕이라고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입 밖에 꺼내놓는 멍청한 짓거리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말리의 뒤쪽에 시립해 있는 자는 하급 지휘관, ‘제뉴엘’이라는 간부였다. 본디 지휘관은 보좌관들보다 앞서는 직책이기는 하지만. 제뉴엘이 말단이며, 말리가 연차가 오래되었고 또한 총대장 대리인 ‘마굴라’의 직속 보좌관이었기에 이런 경우에 서열이 조금 더 높게 된다. 아마 말리가 몇 단계만 진급을 해도 말리보다 윗선이었을 텐데.


아무튼 그들 뒤에는, 벨베르의 초인들이 다시 서 있었다. 세 명이다. 기력술사 둘에, 초상술사 하나. 말리는 가져온 이야기를 산슈카의 국왕 앞에서 털어놓는다.


“지난 7일···. 벨베르 북부 국경 근처의 기지 세 곳에 의문의 폭발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기지 시설이 전소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허어.”


국왕의 옆에 있던 신하 하나가 입을 열어 탄식처럼 소리를 냈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다. 왕의 근처에서 멋대로 입을 여는 것도 사실 심기를 거스르는 짓일 수 있었으나. 벨케임 7세는 사소한 것에 그리 마음을 두는 인물은 아니었다.


“벨베르의 국경 수비대 소관인 기지 시설들이었고···. 그 규모로 말하자면 산슈카의 어느 소도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벨케임 사슈나 7세. 흑발에 가까운, 짙은 갈색 머리를 가진 사내였다. 약간 투실한 볼에 두툼한 체격이었고. 왕답잖게 피부가 거칠었고. 또한 눈은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허허, 거리면서 웃고 있는 와중에도 무언가를 꿰뚫어보는 듯한 안광이 눈앞의 말리나 제뉴엘, 사신단으로 온 이들을 살짝 압도한다.


그들이 가져온 소식 자체는 벨케임 사슈나 7세로서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산슈카와 벨베르의 국경 사이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좌시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산슈카국의 국왕으로서 미리 알아채지 못한 것이 어이가 없을 따름이기도 했고. 누가 그런 일을 벌인단, 말인가. 벨베르쪽을 통해서 온 모종의 테러리스트가 폭파의 주범이라고 한다면. 산슈카 쪽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산슈카 쪽의 경로를 통하여 벨베르에 침입을 하고, 그 다음에 테러를 벌였다면?


벨베르 쪽에서 산슈카 국을 향해 지탄을 하더라도 뭐라고 할 말이 딱히 없었다.


그렇다고 산슈카 쪽의 국경이 그리 허술한 편도 아니었다. 이슈칼이나 안단 쪽에 있는 변경백처럼, 대단한 인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벨베르의 국경수비대마냥 산슈카 쪽의 병력들이 포진해 있었다. 몇 명의 자작과 남작들이 분포되어서 각자의 영지를 지키고 있었고, 그 영지로 주욱 이어지는 국경 근처의 경계선이 있어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남부에 있는 인사들 중 ‘그레이’ 자작에게는 특히 남부군 사령관이라는 직책까지 주어서 벨베르와의 외교 상에 어떤 문제가 없도록 해두었었는데.


그레이 자작이 어느 파벌의 인물이었더라.


국왕, 벨케임 7세는 홀로 잠시 생각에 빠졌다.


“흠.”


미하일이 옆에서 헛기침을 했다.


벨케임 7세가 벨베르의 사신단을 맞이하기 위해서 함께 있어주길 청했던 신하들 중에는, 대신관 또한 있었다. 노구를 이끌고 왕좌보다 한 계단 아래에 앉아 있었다. 사실 옥좌 바로 아래에 앉아있는 것 또한 다소의 결례라고 할 수 있었으나.


그 대신관의 업적과 입지. 그리고 노환과 건강 상태를 생각해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국왕과 말은 통해야지 않겠는가. 너무 멀면 노구로 큰 소리를 내며 대답을 하거나, 왕의 말을 듣는 게 힘겨울 수도 있었고.


대문관이자 왕가의 스승으로서 일해왔던 전력을 따져 미하일 요겐이라는 인물은 확실히 별격의 위치에 있었다. ‘존경’이라는 건 사람들을 스스로 따라오게 할 수 있는 힘이었고, 미하일에게는 그런 점이 있었다.


미하일의 헛기침에 벨베르의 사신단들이 그를 처다보았다. 흰 빛이 도는 깔끔한 신관복을 입은 미하일이다. 모르는 자가 보더라도 범상찮은 직위라고 알 수 있을 법하다. 왕의 예복은 붉은색과 금색, 그리고 검은색을 합쳐두어 묵직하고, 위압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배색이 온전하고, 그것을 다룬 자수 장인이나 직물 장인이 마스터라고 불리는 자들이었기에. 옷만 보더라도 남다른 기품이나 기풍이 느껴질 정도이다.


“귀국의 일에 개인적으로 유감을 표하오. 허면, 정확히 어쩐 연유로 산슈카를 방문들 하였나?”


미하일이 대화를 이끌어갔다. 왕, 벨케임 7세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어 잠깐 다른 논리를 펼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왕이 입을 다물고 침묵이 이어지던 것을 미하일이 메웠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여기는 눈치였다.


산슈카 국, 왕실의 분위기는 이러하다.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하고 직책이나 입장이 왔다갔다 할 수도 있었다. 서로 간의 최소한 신뢰가 유지되기에 가능한 분위기이기도 했다.


날 선 것처럼 예리한 인간 사이의 관계가 왕실의 그것이었다고 한다면. 이처럼 자유롭지는 못했으리라. 벨케임 왕의 카리스마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온화하게 주변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 역시, 분명 카리스마의 일종이다.


그리고 그 카리스마는 미하일로부터 배운 게 틀림이 없었다. 노신老臣의 물음에 사신단을 이끌고 있는 입장의 간부, 말리가 대답했다.


“···벨베르 국의 입장은 칙서로 전달된 바이나 다시 말씀을 드리오면···.

공화국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무수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죽은 자의 숫자만 하더라도 가히 세기 어려울 정도이고···. 일시적으로 생겨난 북부 경계 구역의 공백 또한 막대한 국력의 손실입니다.

벨베르 공화국은 반드시 이러한 사건을 벌인 범인을 찾아 그 책임을 물을 생각이며···. 가장 가까운 주변국이자 또 사건이 벌어진 국경선 근처의 인접국으로서··· 산슈카에게 도의상 적절한 협조를 청하는 바입니다···.


만일 벨베르에 심대한 위해를 끼친 테러리스트가 산슈카로부터 나왔다고 한다면, 벨베르 국은 그 범죄자에 대한 신병 인도권을 바라고···. 산슈카의 법보다 벨베르의 국법으로 형량을 매길 것을 청하나이다.


또한 이에 대한 수사에 관하여 본 궁의 행정관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바이니 이에 대한 허許하심이 필요합니다.”


말리가 깔끔하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미하일은 고분고분하게 듣고만 있었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그의 왼쪽 윗단. 옥좌에 앉은 벨케임 7세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중년, 혹은 장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장한 사내이다. 어릴 적에 그가 가르쳤던 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장성한 모습이었다.


미하일은 자식이 없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왕과 현 왕의 자녀들, 왕자와 공주들을 자식처럼 여기고 있기는 했다. 그만큼 선대 왕, 벨케임 6세와의 교우 관계가 두터웠기도 했고.


미하일의 시선을 받은 자.

산슈카를 이끌고 있는 왕은 입술을 뗀다. 두터운 입술이었다. 갈색 수염이 그 근처를 뒤덮고 있기도 했고. 옥좌의 팔걸이 끝 즈음을 두드리는 손가락은 두텁고, 거칠다. 왕은 아직까지도 매일 검을 잡고 단련을 쉬지 않았다. 노년의 나이에 올라서더라도, 초상력에 눈을 뜨고 기사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다면 좋은 일이었다. 단련과 공부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셈이었다.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최우선이 되어야겠지만은 말이다.


“음···.”


툭.


벨케임 왕은 굵은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듯 소리를 냈다. 팔걸이의 소재는 제법 단단했다. 실제로 부수기 위해서는 느껴지는 바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가해져야 손상시킬 수 있었고. 산슈카의 초상공학의 정수가 들어간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왕국기 초창기에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며, 그 또한 이미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벨케임 왕은 상념을 끝냈다.


그레이 자작은 정통파의 일좌였으나, 정치적 알력 다툼에 크게 신경을 쓰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중도적이며 유한 인물이기에 남부 사령관 직을 직책 상으로나마 맡긴 것이기도 했고.


‘남부 사령관’이라고는 했지만 변경백이나 대장군처럼 막대한 군권을 가진 것도 딱히 아니었다. 산슈카 남부에 위치한 나열된 귀족가의 각 사병들을 비상시에 소집할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산슈카의 국경을 타국이나 어떤 위협물이 침범한 사태가 아니라면 그 군권은 발휘할 수도 없는 것이었고. 그러나 남부 국경에서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능히 변경백 수준의 군사를 다루는 병권이기는 하다.


만일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레이 자작이 잠시 군권을 쥐고 있는 동안 대장군이 파견을 나가거나, 병부兵部의 장군급이 가서 최종적으로 통제를 맡겠지만.


벨베르 공화국과의 외교에 있어서, 특별한 일이 없다고 판단되었기에 그렇게 임시직을 맡겨둔 셈이었다. 만일 산슈카의 여러 곳에서 동시에 전쟁이 벌어진다고 한다면. 그대로 남부의 군권을 가진 그레이 자작이 병사들을 죽 이끌긴 하리라.


그레이 자작의 휘하, 라고 할 수 있는. 그 근처에 있는 다른 귀족들은 정통파와 신진파가 섞여 있는 꼴이었다. 다소 멀기는 하지만,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로멜리아 가문’도 그 근처에 있기는 했다. 전선의 확대됨에 따라 다르겠으나 거기까지 전쟁의 화마가 미친다고 하면, 그 또한 그레이 자작의 지휘 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레이 자작은 각 파벌로 인해서 근처의 귀족들을 홀대하거나, 우대할 작자는 아니었다. 또한 나름대로 벨케임 왕이 신뢰하고 있는 신하이기도 했고.


그러나 그레이 자작이 국경선 전부를 완벽하게 감시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우리라. 애초에 국경선 부근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그들의 영지가 있었고, 영지병들을 일정 수 차출하여 주기적으로 경계 근무를 서거나, 순찰을 도는 정도이지. 24시간 틈이 전혀 없는 방비는 아니었다.


그 근처에는 긴 숲, 몬스터들이 배회하고 있는 원시림 또한 있기도 했고. 그 속까지 파고들어 국경 지역을 원천 봉쇄하라는 건 그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누군가 산슈카를 통해서 벨베르 쪽으로 넘어갔다고 한다면, 그레이 자작의 국경 경계선을 일단 헤쳐나가야 했고. 또한 긴 숲이나 협곡, 강줄기 따위로 이루어진 원시의 땅을 넘어야 했다. 몬스터들은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 죽이기 위해 다가오는 괴수들을 해치워야 했을 것이고.


계획을 세우는 이의 머리가 상식적인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최소한 기사나 초상술사 수준의, 초능력자들이 국경을 넘는 일을 맡았으리라.

그만한 존재들은 각 귀족가의 사병들, 기사들이나 워메이지들이 있었다. 아티피서들도 없지 않으나 기사나 초상술사의 부류에 편입하여 생각하면 될 정도로 수가 크지 않다.


벨베르에 일을 벌일만한 자라···.


“벨베르는 상황을 어찌 보고 있는가.”


두터운 입술 너머로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근엄하게 울렸다.


붉은 카펫을 밟고 선 사신단 일행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말리가 역시 대표하여 말한다.


“저희는··· 인접국에 거하고 있는 인물의 소행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라진 기지 세 곳은 마리, 루브, 토헨이라는 곳으로···. 말씀드렸듯 어지간한 도시와 비교해도 작지않은 규모입니다.

그만한 도시를 한 번에 폭발시키는 폭발력이라는 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께서 생각하시기에··· 과연 가능한 이가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흐음···.”


말리는 사신단의 주장이었고, 곧 벨베르의 의지를 산슈카에 전달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가져온 서류, 칙서는 총통의 직인과 북부 사령관 대리인 마굴라의 직인이 들어 있는 것이었고.


타국의 왕 앞에서라고는 하지만 자신들이 생각한 바를 모두 똑똑히 말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뜻이었다. 말리의 물음에 산슈카의 왕은 가볍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쉽지 않겠지.

본국의 왕궁 술사단이나 전술사단···. 혹은 대형 술사 길드···. 대귀족, 영주들···. 그리고 귀국의 인사들이 있을 것 같네.”


타국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지금 논의하기엔 너무 무수한 가능성이기에 말이다. 말리가 긍정했다.


“예. 저희도 그 정도로 보고 있었습니다. 본국의 인사들에 관하여는··· 벨베르의 조사팀이 모두 파악한 바가 있습니다. 대개는 알리바이가 있기도 하고···. 그럴만한 동기도 불충분합니다.

폭발한 기지들은 정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전소되었고, 생존자도 그다지 없는 수준입니다.


그 정도의 대폭발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초상술사라 할 지라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벨베르 초상술 학회의 의견이었습니다.


검은 탑의 마스터··· 혹은 아릿시안의 그랜드 마스터가 움직이지 않는 한 막대한 자원과 노력, 인적 자원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게 결론이지요.

······.

최근 모험가 길드, 용병 길드 따위에 가입한 외지인들이 늘어나고. 유례없는 여행객들의 호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본국의 엘리트 능력자에 준하거나··· 아, 그러니까 기사급에 준하거나···.

혹은 그보다 높은 경지의 인물들도 더러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물들이 일을 계획하고 저지르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수 년, 에서 십 수년 정도는 치밀하게 준비를 해 온 초상술사의 범행이라 여겨지는데···.


벨베르 측의 인사들에 관한 조사는 저희가 할 수 있으니···. 산슈카 쪽에 의심이 가는 자가 없는가 살펴볼 수 있도록 해주십사 온 것입니다.”


“흐음.”


벨케임 왕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벨베르와는 사이가 좋지.”

“······.”


말리를 비롯해서 다른 사신단의 인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벨케임 왕이 뒷말을 남겨둔 기색이었기에.


“인접국의 불행은 곧 산슈카의 염려도 될 수 있으니.

모른 체 할 수 없고···. 원하는대로 하시게들. 마음이 풀리도록 말이야. 협조를 원하는 바가 있으면 다시 행정관들을 통하여 전언하고···.

얼마나 머물다가들 가시려나?”

“아··· 일단 최소한 한 달 여 정도 일정을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 될 지도···.”

“알겠네. 다만 우리쪽,”


그렇게 말하며 벨케임 국왕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행정관 하나와 동행을 하시게. 그래도 아는 사람이 하나 정도 있는 게 좋을 테지. 일을 하려면.”


근처에 있던 고위 행정관료, 사자궁의 인사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오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사자궁 내에서는 입지가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왕의 앞에서는 그게 올바른 자세이리라.


행정관이 답했다.


“적절한 관리 하나를 추리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말리 일행은 대화가 서서히 끝나갈 즈음이 되었을 때, 깊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벨케임 왕은 허허, 웃음지으며 손짓을 했다.


“아무튼 여독이 많이 쌓였을테니. 별궁에서 휴식을 좀 취하다가들 가시게.”

“예, 폐하.”


예, 폐하라고 말리 일행과 함께 옆에 있던 신하들도 답을 했다. 왕이 결정을 내리면 신하들은 움직일 준비를 한다. 관련한 처리를 하기 위해서 근처에 있던 자들도 머리를 굴렸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벨베르의 사신단이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물론 외교상의 일로,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 올 수야 있었지만.

가져 온 소식이 심상치 않았다. 은연중에 알음알음, 퍼져가던 소문이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벨베르에 큰 변고가 생겼다. 갑작스러운 폭발 사건이라니.


짐작도 가지 않는 일이었다.


대체 어느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벌인단 말인가. 벨베르의 군사력이 아주 만만한 수준도 아니고. 일국을 적으로 삼는 행위는, 그만한 배짱과 세력의 규모를 가진 인간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기지를 날려먹은 폭발 자체가 그 ‘누군가’의 정체를 약간이나마 증거하기도 한다. 아무나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으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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