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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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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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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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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265. 외유外遊

DUMMY

*


“죽여어어어-!”


살벌한 음성이 찢어질듯 전장을 울렸다.


사막의 허공을 메우는 소리였다. 그것을 내뱉은 이의 표정은, 흉신악살이라고 해도 별 과장은 아니다.

전장에서 뒹구는 인간의 표정이란 그런 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셀 수도 없는 증오. 살아남기 위해서 죽이는 판국이다.


그런 처절함을,


토미 졸탄은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깡!


소리가 나면서 날아오는 칼을 막는다.


죽여, 라고 외쳤던 이는 토미의 시야에서는 조금 멀리 벗어난 인물이었다. 새된 고성이었기에 각종 비명과 소음으로 가득 찬 전장에서도 귀에 꽂히듯 들렸다.


토미는 길다란, 철봉을 하나 들고 있었다. 그 끝에는 날카로운 가시와 같은 형상이 있었고. 제법 묵직한 부류였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움직임에 능한 모습이었다. 토미는 그 철봉을 다루면서.

검은색, 묵색으로 칠해진 철봉은 창이라고 하기에는 짧은 길이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한 손 검보다는 긴 길이였고. 잘 다룬다면 방어용, 자구책으로 쓰기에는 아주 괜찮다.


손아귀에 쥘만한 지름을 갖고 있었고. 원심력을 이용해 휘두르면 그럭저럭, 파괴력 또한 존재한다. 무엇보다 괜찮은 점은, 철봉을 이루고 있는 소재에 초상학적으로 귀중한 보석들이 쓰였다는 부분이다.


토미가 워메이지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준비해두었던 다양한 방식의 생존 책략들이 있었는데. 개중에는 이처럼 직접 무기를 들고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는 방법 역시 있었다. 그다지 선호하는 쪽은 아니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나 선택하려 했었는데.


“어이어이어이어이.”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눈 앞에 있던 남자가 날아갔다.


토미는 자신의 앞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죽이려 하던 사내, 어느 부족의 전사가 날아간 꼴을 보고 작게 안심을 했다. 다만 아직 마음을 온전히 놓기란 어려웠다.


옆에서 토미를 구해준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전장 속에서 저토록 여유로울 수 있는 건. 그가 압도적인 실력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근처의 인간들이 휘두르는 칼 따위, 그에게 전혀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내, 까무잡잡한 피부. 핏물에 물들어 헝클어진 곱슬머리. 이글거리며 빛나는 푸른 눈동자를 가진 놈.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화려하게 등장하여 주절댄다.


“살아 있지, 아직?”

“덕분에.”


리비아는 토미를 친구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까지 데려온 참이었고 말이다.


이시기르 부족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부족을 멀찌감치 두고 외유外遊를 즐기는 일이 부적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일이 잘 풀린 뒤의 일이었다.


완벽하게 문제들이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시기르 부족의 족장, ‘카우 데 이시기르’라는 인물은 그래도 이지理智가 있는 자였다. 복면을 둘러쓰고 있는 작자들이 원로들을 충동질하고. 그와 엮여 있는 마을의 중역들이 어수선한 소리를 내는 와중에도, 먼저 나서서 침략 전쟁을 시작하는 일이 미치광이같은 짓거리라고, 분명히 알고 있었다.


걸어오는 싸움을 받아주어도 피해가 막심한 법이었는데. 먼저 명분도 없이 사막에서 싸움을 시작했다가. 그 뒤를 노리는 타부족에게 마을이 부서질 수도 있는 법이었고. 또 주전론자들이 말하는 적당한 상대인 ‘발롭’ 부족은 근방에서 가장 강성한 세를 자랑하는 집단이었다.


이시기르 부족보다 더 강한 마을을 찾자면 발롭 뿐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발롭 외에 다른 곳을 건드렸다가는, 어차피 발롭이 움직이게 되어 있었지만.

굳이 벌집을 건드리지 않고 지나가도 되는 일에 달려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원로들이 주장하는 바는, 일명 ‘평야’의 왕국에서 왔다고 하는 이들이 이시기르 족의 전투를 돕겠다고 한 확언이었다.


일종의 증서와 함께 가져온 재물, 아티팩트, 그리고 직접적으로 병력이 되어줄 수 있는 전사들. 그러한 지원을 약속하며 전쟁을 부추기는 알 수 없는 자들의 책략이 있었고.


이러한 내용은, 토미와 리비아가 개들 중 한 녀석을 붙들어 고문 비슷한 짓거리를 한 뒤에 알아낸 사실들이었다.


토미와 리비아는 검은 복면을 입은 외지인들 중 한 놈을 제압해 바깥으로 빼돌렸고, 놈에게서 이시기르 부족을 노리는 계획의 전말을 들었다.

일행 중 한명이 구금되었으니 어떤 행동이든 나올 수 있는 판국이었었는데. 다행히 카우 데 이시기르, 부족장이 강경하게 대응을 했다. 천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었다. 원로들이나 중역들, 다른 여러 부족 유지有志들이 말하는 바를 전부 거슬렀고.


정체가 애매모호한 복면인들을 모조리 추방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강의 전말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바쁘게 움직였다.


이시기르 부족을 노리는 검은 손길이 사라졌다고는 해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사막 부족간의 싸움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밀집 주택가에서, 불이 나는 것과도 비슷하다.


한 곳에서 화재가 커지면 다른 집도 결국 남의 일이라고 볼 수 없게 되는 셈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구조인 탓에,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의 집의 일에 끼어들게도 된다.


어지러운 알력 싸움의 구조도가 사막 민족들 간의 세력도 속에 펼쳐져 있었다.


지금은 ‘하룬’ 부족의 싸움터에 와 있었다.


토미 졸탄의 전투 수업을 겸하고 있다. 리비아가 보기에 토미는 부족한 구석들이 좀 있었다. 실제로 검은 복면을 쓴 작자들, 끝내 자신의 조직에 대하여는 불지 않은 인간을 제압하면서도 다칠 뻔을 했었다.


그들이 상대한 신원 미상의 인물은 기사 급의 능력자였고, 리비아의 칼 앞에서도 호기롭게 굴던 작자였다. 토미 혼자서 그를 제압하려고 했다면 다소 위험할 뻔했다. 가까운 거리를 내어준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전란을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토미 졸탄이 완성적인 워메이지가 될 필요가 있었다. 직접 냉병기를 들고 전장 안에 들어가는 건 토미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지만. 리비아의 의견은 강경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워메이지로서 일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다.


어쨌건 토미는 계획한 플레이 스타일과 다른 방식으로 싸우게 되었다. 이 놈의 게임이 참 그러하다. 플레이어의 생각이나 의견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뜻한대로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나름대로 순응을 하고 잘 받아들이는 편이기에 대단한 불만까지는 없었다.


취향상 후순위에 밀어두었을 뿐이지. 익스트림한 스포츠를 즐기는 셈치면 그다지 나쁜 기분도 아니다.


“여기서는 하룬이 이기는게 맞아. 잘 하자고.”

“내 참.”


‘구분이 되어야 말이지······.’


토미 졸탄은 속으로 궁시렁댔다. 난전 상황이었고. 사막민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서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었다. 대강의 진형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각 개인이 어느 부족에 속했는지 알아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헐거워진, 다 떨어져나간 갑옷들 따위로 분간을 하라는 말인가. 저들끼리야 나름의 기호가 있는 지도 모르겠지만. 토미의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인물들이었다.


푸른 하늘, 구름.


그런 것들과는 대비되는 인세의 지옥도가 사막 모래 위에 펼쳐지고 있었다.


휙.


토미는 들고 있는 철봉을 용케 잘 다루었다. 순식간에 앞 쪽으로 내세웠고. 당구용 봉을 다루듯이 뒤로 휙, 뺐다가 앞으로 날렸다.


그 끄트머리, 철봉의 대가리 쪽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 있다. 정확히 말하면 원뿔형의 물건이었다. 은빛이었고 지금은 모래나 핏물 따위로 더럽혀져 있었다. 플레이어인 토미의 눈에는, 흰 빛의 입자가 묻어나오고 있었고.


그의 눈에는 여기저기가 모자이크된 광경이 어지럽게 펼쳐진 곳이다. 리비아 이시기르스의 눈에는 아무런 거침이 없이, 잔혹도 그대로가 보이고 있으리라.

두 사람은 친구였으나, 한 명은 인간이었고. 한 명은 만들어진 NPC였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상황은 비슷했으나, 정말로 같은 것은 아니었다.


토미는 시동어를 읊었다.


“터져라. 작열봉.”


그대로 흰 빛의 두건을 둘둘, 말고 있는 어느 전사에게 가 닿은 봉의 끝은 폭발을 했다.


캉,


하고 전사는 자신의 넓적한 곡도로 봉의 끝, 원뿔을 막아냈지만.


은빛의 원뿔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화염과 함께 폭발성을 냈다.


쾅.


하고,


난전 속에서 멀리 떨어지면 듣기 어려운 정도의 폭음이 났다. 아주 굉장한 대음大音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상대의 곡도가 볼품없이 부러졌고. 그 파편이 목덜미같은 연약한 살에 박히기라도 했는지, 상대는 곧 컥컥대더니, 쓰러진다. 의식을 잃은 듯하다.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토미는 적당한 위치를 가늠했다. 가장 중요한 건 죽지 않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힘을 제한한 채 근접전을 수련하다가 게임 오버를 당하면, 그것만큼 멍청한 짓거리가 없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싸우고 있는만큼. 불필요하게 시선을 끌어서 좋을 게 없다. 토미는 뒤켠에 있는 어느 인형人形을 불렀다.


“제이미!”


철컥, 거리는 소리와 함께 뒤에 있던 것이 반응을 했다.


난전 속에서 사람 정도의 모습을, 크기를 하고 부지런하게 싸우던 것이었다. 그 위에는 적당한 가죽 갑옷과 두루마리 따위를 입혀놓았고. 손에는 한 손 검마저 들고 있었다. 눈 앞이 흐린 상황에서 얼핏 보면 사람인가,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자세하게 살펴보면, 돌이나 철 따위로 만들어진 석상, 혹은 철상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만 움직인다.


토미 졸탄이 연구를 한 다양한 계통의 스킬 중에는 골렘술도 있었다.


직접 작열봉, 이라고 불린 냉병기를 들고 싸우는 것. 적절한 골렘을 다루며 자신의 방위를 책임지게끔 하는 것. 그리고 몇 개체의 정령들.


그렇게 토미는 워메이지로서의 스타일을 정립해갔다.


어둔 색으로 칠해진 인간형의 골렘이 다가왔다. 빈틈없이 옷을 입혀 놓은 터라, 정말로 사람인 줄 알만한 행색이다. 두건이나 복면이 조금 흘러내린 틈으로, 묵빛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럭저럭 사내의 형상을 따라 빚은 얼굴상이다.


골렘은 눈을 빛낸다. 붉은 광채가 그 눈 부위에서 나타났다. 주인의 명령을 듣고 왔다는 반응이기도 했다. 토미가 말한다.


“반경 10미터 내를 머물면서, 계속 나를 지켜. 쓸데없는 공격이 들어오지 않도록.”


철커덕.


골렘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관절부를 나름대로 잘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그럼에도 움직일 때마다 요상한 소리가 나는 듯했다. 불필요한 기계음, 사람같지 않음은 정교한 인형을 만들고자 하는 제작자의 실수라고 볼 수 있었다.


토미 역시, 여차하면 사람으로 속일 수도 있을만큼 인간형을 닮은 물건을 만들려고 했었는데. 처음 만든 물건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이 외에 전투 때 사용하려 술식을 짜두고, 계약을 해둔 정령이 세 개체 정도 있었는데 아직 소환하지 않았다. 당장은 골렘의 원호를 받으면서, 봉술의 감각을 익히려 했다.


사막의 모래밭. 사구를 넘어 이어지는 거대한 평지에서 벌어지는 싸움이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부터 말을 타고 반나절 길 즈음 가면 하룬 부족의 마을들이 있었다.


반대 방향으로 이틀 길 정도를 달려가면, ‘멜기스’ 족이라는 부족의 영역이 나온다. 지금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북동쪽으로 이틀 길 정도를 가면 이시기르 족의 땅이었고.


이시기르 족의 전사들은 모두 카우 데 이시기르의 명령 아래 정신을 차리고, 마을을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나 모를 주변 부족의 침략에 대비해서 말이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돌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 다른 부족간의 전쟁이 벌어졌고. 혹 그 일이 이시기르 족에 어떤 해가 되지 않을까, 해서 온 게 이시기르스와 토미 졸탄이다.


물론 부족장의 허락은 받고 온 몸이다.


멜기스와 하룬의 전쟁에서는, 하룬이 이기는 편이 이시기르 입장에서는 차라리 나았다. 이시기르와 더 가까운 곳에 있는 부족이기도 했고. 굳이 따지자면 동맹까지는 아니어도, 여차한 상황에서 우군처럼 굴어줄 수 있는 곳이었다.


몇 대 전에 피를 나누었던 형제의 부족이기도 하고. 이제와서 그런 것들은 거의 의미가 없었지만. 또 풍습이라던가, 부족의 분위기나 부족장의 성격 따위가 이시기르와 잘 맞아 떨어졌다.

서로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칼을 맞댈 수 있는 사이였지만. 다른 길들이 많이 있다면. 굳이 서로를 적대하기보단 다른 부족들을 막아줄 수 있을만한 마을이다.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은 곳이다.


반면 멜기스는 조금 호전적인 부족이었고, 거리가 멀다 뿐이지 근처에 있었다면 이시기르 족과의 싸움도 얼마든지 감수했을 이들이다. 멜기스는 주변에 있는 약소 부족들을 쉽게 침략하기로 이름 높은 족속이었고.


몇 차례의 싸움 끝에 많은 것을 얻었으며, 세력적으로 보자면 이시기르 족과 비슷한 정도의 크기이다. 그들이 하룬 부족을 잡아 먹게 된다면, 많은 자원과 포로들, 그리고 영토를 얻게 되는 셈이다.


가족들을 인질로 잡힌 하룬 부족의 전사들이 그대로 이시기르 족 쪽으로 창날을 들이밀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된다면.


하룬 부족에 있어서도, 이시기르 족에 있어서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멜기스 족에게 전투에서 지는 건.


주변의 기류가 심상치 않았고, 사막 부족간의 전쟁이 본격적으로는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일어나려 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카무스 족도 주변 여러 부족과 소규모의 분쟁을 벌이는 것 같았는데. 그건 이시기르 족의 영토에서는 좀 많이 떨어져 있는 이야기였고. 건너 오는 소식으로만 들리는 말이었다.


어쨌건 이시기르로서도, 하룬을 돕는 게 올바른 선택이었다.


하지만 말했듯 민족간의 기류가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시기에. 다짜고짜 이시기르 족의 전사들을 많이 바깥으로 보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시기르스와, 토미가 직접 자원을 했다.


고작 두 사람에 불과했지만, 남다른 둘이었다. 마을의 전력에서 언제나 큰 비중을 차지해주는. 차기 대전사와, 외지인이지만 뛰어난 실력을 가진 초상술사였으니.


여태껏 쌓아온 전공이 많은 둘이었다. 부족장, 카우 데 이시기르는 두 사람을 믿어주었고. 그의 명을 받아 남하해서,


지금 사막 평야 지역에서의 전장에 있기에 이른다.


“으랴아아아아아!”


괜히,


호기롭게 토미는 기합성을 질렀다.


주변에는 토미보다 더 거대한 체격을 가진 사내들, 혹은 아주 소수의 여인들이 이미 악다구니를 질러대고 있었다.


인간의 온갖 정情이던 정精이 다 쏟아지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피나 땀. 혹은 흐를 겨를도 없었던 눈물들이, 비참하게 사라지는 곳.


분명 플레이어로서 모자이크 처리라던가, 를 받지 않았다면 트라우마가 되었을 공간이다.


사막의 미래를 위해서.


토미는 전쟁에 참여를 한다.


관련한 법 규정이, 정확하게 제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와중에 한 켠으로는 생각이 미쳤다. 이런 정도의 현실감을 기계가 만들어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장면들은 반드시 법적으로 규제가 들어간 엄선된 장면들이어야만 했다.

실제 삶의 정精이랄만한 선정적인 부분들은 모조리 모자이크 처리를 해버리고. 또 꿈결같은 신경적 상태를 만들어 로그아웃을 했을 때 기억이 희미하게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몇 종류의 방어막이 있으니 사람이 버티는 것이지. 만약 아무런 방어막 없이 이러한 현실적 전쟁 장면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없던 트라우마가 게임을 통해서 생길 수도 있을만한 기술력이었다, 이건.


“흡.”


짧게 숨을 내뱉으며, 토미는 몇 걸음 앞으로 걸었다. 채 다 걷기 전에 다른 적이 그의 눈 앞에 들어왔고.


얼굴도 모르는 사내를 향해서 은색의 원뿔을 내지른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사내는 봉, 혹은 작은 뿔창을 막으려고 들었으나 토미가 이번에는 더 빨랐다.


기력술사로서 고수급에 달한 그였다. 리비아 이시기르스와도 견줄 수 있는 수준이었고, 상당한 고레벨이다. 기력술사로만 플레이를 해온 건 아니었고. 여러 여행의 끝에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스텟들 또한 있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물리적 스텟만 따진다고 하더라도, 아주 꽝은 아니리라.


약 20에서 30정도의 스텟치를 보유하고 있었고. 운동을 제법 수준 높게 하는, 헬스 매니아의 신체적 강도와 힘에서 다시 두 배, 그리고 곱절을 더 추가한 수준의 힘들이었다.


현실에 그만한 힘을 갖고 토미가 나타난다면, 괴물이나 야수라는 별명도 부족할 수준이었다. 두 배, 혹은 네 배라는 것은 단순히 수치적인 말이었지만. 실제적으로 협응하는 다양한 근육들이 그만한 힘을 모조리 낸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동작이나 속도의 움직임 역시 가능해지기에 말이다.


상대가 초인이 아니라면 토미의 봉술 역시 상당히 쓸만한 부류였다.


이곳은 사막의 전장이었고. 왕국간의 전쟁에 기사나 초상술사가 있을 수 있듯. 여기에도 엘리트 전사가 얼마든지 있을 수는 있었다.


그런 작자들의 근처에 가는 건 확실하게 무리였다.


“으럅.”


하고, 소리를 내지른 건 토미가 아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리비아가 내뱉는 소리였지. 그는 토미의 근처에서 아주 멀어지지 않은 채, 마치 골렘이 그러하듯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 직접적인 보호는 아니었지만. 아주 넓은 지역에 이르러 벌어지고 있는 전쟁 중에서.


자신과 같은 엘리트 전사가 토미의 근처에 닿지 못하도록 미리 길을 막고 있었다. 덕분에 토미는 한결 던 부담감으로, 편하게 수련을 하듯 전쟁터를 견딜 수 있었고.


아까 내지른 토미의 뿔창을 눈 앞의 사내는 막지 못했다. 으레 사막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까무잡잡한, 탄 피부를 가지고 있는 자였다. 그의 옆구리 근처로 창이 찔러 들어갔고.


토미는 그대로 회전을 시켰다. 란, 나, 찰이라나 뭐라나. 기본적인 창, 봉법의 술수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종류를 토미는 알지 못한다. 이 무기를 다루거나, 혹은 리비아에게 검술을 배우는 와중에 기초적인 무기술 정도는 스킬로 익혀진 것 같은데.


이론을 딱히 알아본 바는 없으니 말이다. 그 외의 것들은 그저 실전에서 감각으로 익힐 뿐이었다.


회전을 시키며 상대의 옆구리를 찌른 창. 그 끝이 다시금 붉게 달아올랐다. 토미는 보지 않았지만 상대의 몸 속에 들어가 있는 창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알지 못하는 사내의 표정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불행한 일이다. 그런 표정을 보는 것 말이다.


전쟁터의 참상들을 모자이크 처리해서 플레이어에게 보여주지 않을 거면. 사실 저런 지나친 현실적인 낯빛들마저 없애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토미 졸탄은 사내의 얼굴을 보며 그리 느꼈다.


참혹한 곳에서 보이는 사람의 낯빛, 눈빛. 그런 것들이 무엇보다도 큰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지 않겠는가.


원뿔창은 붉게 달아올랐고, 곧 아까 그러했듯.


“터져라.”


작열봉, 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템답게 폭발을 일으켰다. 그의 눈앞에서 빛무리가 터져나왔고.


한 명을 없앴다. 토미는 찝찝한 기분을 가진 채로, 전쟁터로 다시금 발을 더 디밀었다.


소란스러운 곳이며, 삶이다.


유흥을 즐기기 위해서 접속한 가상의 세계에서 볼법한 풍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또한 나름의 경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엔 좋은 것만 있지는 않으니까. 꿈처럼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잊을 수 있는 장면들이라고 한다면.


그저 지금에 충실해보기로 한다.


토미는 진각을 강하게 밟으며, 모래밭을 밀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모습은 초상술사라기보다는, 영락없는 전사의 그것이었다.


하룬 족을 지킨다. 멜기스 족의 군대는 이곳에서 패퇴할 것이다.


어느 정도 전선을 유지하다가, 전황이 밀린다 싶으면 곧바로 토미 졸탄이 본 실력을 드러낼 셈이었다. 리비아 이시기르스 혼자서 왔다고 해도, 사실 어느 정도 가능할 지 몰랐다.


어차피 하룬 족과 멜기스 족의 뛰어난 전사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길항 상태의 한 가운데에. 리비아만큼 높은 수준의 기력술사 하나가 프리 롤Free role로 남게 된다면. 남은 수준 낮은 일반병들은 그저 썩은 나무조각 부서지듯. 스러지게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리비아는 토미와 달리 실력을 그다지 감추지도 않았고. 자신보다 격하의 상대들과 맞서며, 몇 합 지나지도 않아 계속해서 적을 바꾸어가고 있었다. 그의 앞을 지나는 적군 중 살아남는 이가 별로 없었다.

살아남더라도,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꼴이 되어 바닥에 눕는 게 고작이었고.


사막에서의 전쟁.


땅 위에서 인간들이 비명을 짖어대는 것과는 영 다른 창천이 펼쳐져 있는 광경이다.


이질적인 장면이 화신 사막 어느 곳의 풍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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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254. 사막벌레 24.04.03 14 1 14쪽
254 253. 부족의 명운 24.04.02 15 1 24쪽
253 252. 이시기르스 24.04.02 13 1 17쪽
252 251. 리비아 24.04.01 13 1 19쪽
251 250. 사절단 24.03.31 16 1 15쪽
250 249. 에드버그 24.03.30 13 1 15쪽
249 248. 사담私談 24.03.30 15 1 14쪽
248 247. 자고로 다 고생하는데 뺑끼치는 새끼가 제일… 24.03.29 13 1 23쪽
247 246. 살리기 24.03.29 12 1 12쪽
246 245. 상처 24.03.29 9 1 9쪽
245 244. 전조없는 비수 24.03.29 10 1 22쪽
244 243. 셰프 L 24.03.29 12 1 14쪽
243 242. 합류 24.03.28 13 1 24쪽
242 241. 하울Howl 24.03.28 11 1 16쪽
241 240. 지팡이 하나 24.03.27 10 1 19쪽
240 239. 치즈 케잌 24.03.26 10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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