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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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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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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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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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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242. 합류

DUMMY

*


프린스 알사드를 적대한다는 건 과히 충격이기는 했다. 그가 누구인가. 대공大公이 아닌가. 공작가로서 까마득한 세월 높은 자리를 유지한 긴 가계의 후계後繼임과 동시에. 대문관으로서의 직위를 가지고 온 나라 행정관들의 위에 위치한 자이다.

물론, 그 직위만큼의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대공이 해야 할 여러 가지 업무들은 그의 충실하며 유능한 종들이 나누어서 하고 있었다. 사실, 프린스 알사드가 직접 움직일 때보다도 더 안정적으로 업무 체계가 유지되고 있기도 하다. 아무리 대문관이 뛰어나 봐야 한 명인데. 알사드 대공은 상당히 인재를 발탁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자였고. 그에게 고용되어 뛰고 있는 행정관들은 왕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늘 최고의 결과물을 내고 있었다. 언제나.


사실 왕실이 프린스 알사드에게 어떠한 적대감도 갖지 않고, 오히려 신뢰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 역시 그 휘하의 행정관들이 막대한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나라가 돌아가는데 어떤 문제를 발생시켰다면. 벨케임 사슈나 7세가 아무리 사람 좋은 호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곱게 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행정관들이 나라의 꼭대기에서 온전하게 일을 함으로써, 일단 겉보기에는 다양한 정치적 업무들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더군다나 프린스 알사드가 누구인가. 필리아 대륙의 중심지. 산슈카를 토대로 인접국과 국내의 여러 곳에서 범죄적 사업을 일삼는 뒷거리의 대부이기도 했다.


그가 처리하는 여러 범죄적 사업들과 맞물려, 협응하도록 정부의 중심지에서 대문관 행세를 하는 신하들이 손을 썼다.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굴기야 하겠다만. 때로는 일선에서 실수나 과잉 작업이 일어나 중앙으로 관련 보고가 올라올 때도 있었다. 문관들의 궁宮이라 불리는 사자궁을 비롯한 몇 개 일터에서 일하는 신하들은, 그런 보고를 받으면 대개 기각을 한다. 더 이상 수사나 수색, 관련 조치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덮고, 가리고.


혹은 중앙 정부에서 통제 가능한 지방 병력의 이동 일정을, 대공가의 암부들이 활약하기 편한 방식으로 짜서 움직일 수도 있었다.

어쨌건 요지는 ‘너무 티나지 않게’ 구는 것이었다. 대공은 늘 유능한 인재들을 부하로 삼아왔고. 그의 휘하에 있는 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그 임무를 잘 해냈다.


여태까지, 대공이 대공의 자리에 앉고서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한 지. 수십 여 년이 지나도록 사고가 나지 않고 나라가 잘 굴러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사고가 나고, 곪은 데가 터져 나오고. 나라에 있는 암적 존재의 진상을 아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이었지만. 물에 물탄 듯. 그렇게 산슈카 국의 행정 처리 일부는 이루어져 온다.


대공은 일을 하지 않았으나 유능한 부하들을 둔 덕에. 큰 과를 얻지도 않고. 약소한 공 정도를 취하며 왕실로부터 거리를 둔 채 지금까지 살아온다.


추락하지 않은 영예와 권력이라고 한다면. ‘프린스Prince’라고 불리는 권력자의 위치는 대단할 것이 분명했다.


“그게 대체 뭔 말······.”


휘이이.


릿샤가 작게 휘파람을 불며 손짓을 했다. 로브 자락이 들추어지며, 팔목 부근에 끼운 팔찌가 드러나고 그 위의 보석이 빛을 낸다. 스킬이 발동을 했고.


밤의 장막.


이라는 이름의 스킬이었다.


지금은 낮 시간이었는데.


원래 공터 부근을 가리우고 있던 결계에 덧대어져 훨씬 강한 보호막이 생겨났다. 빛은 여전히 지나다니고 있다. 대신, 그들이 선 공터 내의 소리는 골목 밖으로 조금도 새어나가지 않게 되었다. 바깥에서 그들을 인식하는 일도 어려우리라. 감지 계열의 특화된 스킬을 가진 감지술사가 아니라면 보지 않고 그들을 찾는 건 아주 힘들 테였다.


대공령의 내부에서 대공에 대한 욕을 하는 건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었다. 해서도 안되는 일이기도 했고.

도의적인 의미에서의 ‘안되는’ 일은 아니었고. 단지 대공가를 따르는 하수인들이 많은 지역이라서 말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알사트슈트 내에서도 누가 외부인의 근처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대공령은 평안하고 고요한. 그리고 정감이 가는 도시였다. 대도시에 준하는 넓이의 성도成都에, 계획적으로 지어진 첨단의 거리, 구획과 갖가지 시설물들. 거기에 사람들의 삶까지 묻어 있으니 어찌 좋은 양도良都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산슈카 내에서도 보기 드문 도시였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 뒤에 그늘진 어둠이 있었다. 분명 시민들의 삶은 진짜일 것이다. 아, 물론 데이터 상의 시민들이기는 했다만. 이 세계관 내에서 표현하자면, 진짜이리라.


그러나 그런 시민들 틈새에 대공의 간자間者들이 있을 듯했다. 아니, 아마 확실히 있으리라.


왕도, 수도 사르삿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그리 좋은 위정자가 다스리는 곳이 아니었다. 왕실의 시선에서 가려진 틈에 흉악한 계획을 꾸미고 있는 작자의 영지이며, 그 자는 강력한 사설 병단을 거느린다. 대개의 귀족들이 이미 그러하지만.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위력적이고, 많은 수를.


이미 여러번 목숨이 노려진 바가 있는 헌터즈 길드원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꼬리를 밟히지 않는 적의 음험함이랑, 교활함을 말이다.

눈에 띄지도 않고, 자취를 남기지도 않고 어디에서나 사람의 목숨을 노릴 정도의 인간이라고 한다면. 남몰래 정보를 수집할 귀를 두고 위험한 인물들을 감시할 확률 역시 높았다.


콘란드 대륙이 정말 생긴 그대로의 전근대 시대라고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곳은 생긴 것과는 다른, 초상술이 있는 세계이지 않은가. 초AI가 구현해낸 판타지 월드Fantasy world였고,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 실재하는 세계관이었으니.


이미 기사라고 하는 작자들이 뜀박질로 언덕을 뛰어넘고. 워메이지들이 불과 물을 다루며 전쟁터에서 폭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엘리트 병력들을 부리고, 아티팩트를 조금 본격적으로 쓰고 있다면. 현대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밀정들의 움직임도 구현 가능했다.


릿샤의 휘파람에는 MP가 담겼고.


그녀의 불어내는 소리와 숨, 바람에 묻은 MP가 일대를 휘돌면서 장악했다. 자연계의 SP들은 릿샤 애드윈의 MP에 의해 강압적으로 움직였다.


소리가 멎고 향기도 흩어지지 않는다. 아주 바짝 다가와서 눈을 갖다대지 않는 이상, 반경 20여 미터 정도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하는 것도 어려우리라. 아주 그늘진 곳에 있는 것처럼 시야 역시 제한될 테니까.


밤의 장막은 성공적이었고, 길드원들은 로웰 드버라는 NPC가 퀘스트의 진행을 위해서 그들에게 온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함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말인즉슨, 그들이 대공령을 찾아온 게 옳은 선택이었다는 뜻도 된다.


제대로 된 단서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퀘스트가 진행되는, 그야말로 불친절한 게임이 아닐 수 없었다. 보통의 게임이라고 한다면 플레이어들의 추리력이나, 여러 수준들을 고려해서 알기 쉽게끔 길을 만들어줄텐데. 이 놈의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길을 찾던 말던, 씬Scene이 진행되는 식이었고.


거기에서 도태되는 이들은 가차없이 게임 오버를 당하고 마는 환경이다. ‘서바이벌Survival'이 비련시 온라인이 지향하는 바에 들어있는 터라, 그렇다.


또한 자신감이기도 했다. 그 따위 불친절한 편의성의 게임 루트route를 짜고 플레이어들을 초대한다고 하더라도. 시대를 풍미할 최고의 게임이 되리라는, 기술력에서의 자신감 말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체급이 크고, 많은 이용자들을 확보한 게임 서비스이면서. 옛날 말로, 게이머들이 우습게 농담처럼 말하던 ’똥겜(game)‘ 따위의 성향을 갖고 있는 게임이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진행하다가 날선 비난이나 욕을 내뱉을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바라보게 되는 게임성을 만들고자 한 것이, 개발진의 의도였으니까.

결국 마이너minor와 메이저major의 합치점을 원한 게 이걸 만든 이들의 감수성이 최종적으로 찾는 바다.


호아킨은 차분하게, 설명을 조금 더 곁들였다.


“음, 로웰.”

“듣고있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대공을 적대한다니. 자네들··· 혹 반란이라도 저지를 셈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으엉?”


로웰은 식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농담이네.”


호아킨이 헛소리를 하자 옆에 있던 최태현, 개멋진나 최가 설명을 거들었다.


“드버.”

“최.”


로웰이 반갑게 마주 이름을 불렀다.


“우리가 함께 한 지난 세월을 기억하나? 운트 작힘 백작의 성에 처들어가고, 놈의 야욕을 저지하려고 애를 썼지.”

“사선을 몇 번 넘은 건지 도중에 세다가 포기를 했더랬지.”


로웰은 그리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지만, 아주 먼 기억을 사색하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나치게 선정적인 기억은 머릿속에서 흐려지는 법이었다. 목숨이 여러 번 끊어질 뻔했던 기억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괴로운 무엇이었다. 그래도 버젓이 살아는 남았지만.

그리고 덕분에 여러 좋은 동료들을 얻게 되었지만.


“그 이야기와 이어지는 사연이네. 우리는 그간 운트 작힘 백작의 뒤에 있던 ’누군가‘를 찾고 있었어. 산슈카는 멀쩡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단 말이지.

이곳에도 다른 꿍꿍이를 품은 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네. 도리어 없다는 게 이상한 말이지. 거기다가··· 그런 작자가 높은 위치에 있는 권력자라면 일은 더 심각하고.”

“······.”


로웰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짚이는 바가 있는 듯도 싶었다. 그 역시 세슈칸을 비롯해 산슈카 여러 곳에서 많은 모험을 치른 베테랑이었으니까. 이 나라의 정세나, 사정 따위 아는 바가 남들보다 더 있으면 있었지 적지는 않다.


“다른 꿍꿍이라면?”


로웰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맞는지 물었다.

세상은 그리 평화롭지만은 않다. 사이코같은 놈들은 실존을 하고. 세상을 그저 엎어버리기 위해서 애쓰는 작자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단순히 자신의 야욕이나 더러운 본능을 위해서. 잘 가꾸어진 세계를 부수려고 드는 이들도 계속해서 나올 수 있었고.


그런 이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건. 단순히 그 근처에 있는 억지력의 덕분이었지. 세상에 있는 모두가 선하기 때문만은 아닐 테였다.

단순한 상상이었다. 또, 가능한한 최악의 상상을 해보아도 좋았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권력자들 중 하나가, 툭 튀어나올 정도로 특이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식으로. ’반역‘이나 ’반란‘은 가장 떠올리기 쉬운 시나리오였다.

왕정, 절대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작금의 콘란드 대륙에서.


“우리도 정확히 전모를 다 알지는 못하네. 그러나 나라를 뒤엎을 계략을 누군가 꾸미고 있을 것 같다, 고 추측할 뿐이지.

정통파나 신진파, 제각기 세력 싸움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다른 이들의 목숨을 노리고, 정세를 뒤흔들려고 하는 사이코같은 작자의 존재 말이야.”

“······. 왕실에 반대하는 건 아닌 거지?”


자네들이, 라는 주어가 빠진 물음이었다. 로웰의 말에 최태현, 개멋진나 최는 고개를 덤덤하게 끄덕인다.


“그렇네. 우리가 그럴 이유는 없지. 무슨 이득을 위해서. 한낱 떠돌이에 불과한 작자들이 왕실을 적대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있을까.”


최태현의 말에 로웰도 공감을 했다. 분명 이들은 어딜 가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모험가들임이 분명했다. 어딘가의 기사단에 들어간다고 해도 융숭한 대접을 받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대단한 귀족가에 속해, 호사를 누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로웰 드버 자신 정도만 하더라도 그리턴 가에서 나름대로 좋은 대접을 받으며 지내고 있는데. 로웰은 지난 전투의 경험 속에서, 이 무리 중 그가 가장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우연히 만난 자들이었지만. 모두 천재들이었다. 로웰 드버가 느끼는 바였으니, 확실했다.


그리고 NPC들이 느끼기에, 플레이어들 중 성장 속도가 빠른 ’랭커‘급 자질의 게이머들은 분명 천재일 수 밖에 없었다.

남들이 적어도 십 년 단위가 넘는 고련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성취를, 고작해야 몇 달이나 한 두 해 정도만에 얻어내고 있었으니까. 그건 단순히 재능이 있다, 운이 좋다, 따위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로웰로서는 신의 축복이라고까지 여겨지는 성장 속도였다. 이들에게 어떠한, 혹은 분명한 사명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목표 의식이 없는 인간이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겠는가.

혹은, 로웰 드버를 등쳐먹으려고 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노련한 사기꾼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지난 날들 중에 오랜 기간 함께 먹고, 마시고, 숨 쉬며 지내오면서.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사라져 있었다. 로웰 드버는 이들을 신뢰하는 쪽에 서기로 했다.


“···지난 기간 동안. ’로멜리아 가‘의 여식들을 지킨 우리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위협받았지. 암살 시도조차 여러 번이었고. ······.

자네가 믿기 어려울 지 모르겠으나. 수도 사르삿에서 초상술로 공격을 받을 정도였어.”

“수도 내에서?”


로웰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대도시, 라고 불리며 그만한 크기와 위용을 자랑하는 몇 개의 도시들이 있었다. 그런 곳에 배치되어 있는 정규군의 규모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하다. 거기에, 단순히 거대한 성벽과 병사들이 있는 것뿐 아니라 아티팩트와 초상술식이 있을 테였다.

초상술이 실존하는 세상이었고. 그것으로 인한 공격술이 발전했다면 요격하는 기술 역시 발전을 했어야 옳다. 함부로 MP를 발현해서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그만한 대도시에는 모두 상당한 수준의 방비가 되어 있었다.


도시 내에 있는 수비대들도 엘리트 인력들이 많을 테였고. 여차했을 때, 무수하게 돌아다니는 용병이니 뭐니 하는 작자들을 제압할 수 없다면 결국 나라의 치안은 밑바닥인 셈이었다.

강력한 결계와 보안 체계를 뚫고 살상 기술을 날릴 정도라고 한다면···.


분명 산슈카의 정부와 직접 연관이 있는 작자이거나, 혹은 산슈카의 방위 체계를 뚫을 정도의 고강한 솜씨를 지닌 초상술사가 적이리라.

후자의 경우에는, 보다 더 터무니 없는 가정이었다. 이 중부 대륙에서도 손꼽을만한 실력자일 테니까. 중북부, 아릿시안 제국 내에나 조금 있을까. 그런 자들은 ’대륙적‘인 인사들로, 소국의 정치나 알력 다툼에 끼어들기엔 지나치게 큰 이름들이었다.


아마 목숨을 걸어야 할테지만. 노련하게 준비를 한다면 소국의 왕 정도는 암살 기도를 해봄직한 자들이었으니.

이 콘란드 대륙에 있어서 비대칭 전력 따위로 여겨질만한 이들이다. 강대국들의 밸런스는, 그런 능력자들이 얼마나 있고. 또 그런 이들이 만들어내는 아티팩트나 전술이 얼마나 견고하게 준비되어 있는가로 결정이 되었다.


달리 말하면 산슈카가 변방의 소국인 이유는. 나라의 규모가 작은 것도 있겠지만. 그만한 실력자가 없는 탓도 있는 것이다.

만일 전 대륙적, 광활한 콘란드 대륙 내에서 놀법한 재능과 능력의 인물이 있다고 한다면. 산슈카의 위상은 단숨에 달라지게 되리라. 아릿시안 제국을 넘볼 수는 없어도. 적어도 필리아 중남부 일대의 ’자유 연맹‘ 내에서는 맹주에 버금가는 역할을 할 지도 몰랐다.


’자유 연맹‘이 아릿시안 제국의 침공에 대항하고 있는 방법은 그리 깔끔한 것은 아니었다. 중소국들 여럿이 견고하게 힘을 합치고 하나로 뭉쳐서. 여차하면, 제국에도 쓰디쓴 피해를 입히게 해주겠다는 결사 항전의 의지로 만들어내는 평화 상태였다.


말하자면 미사일이나 핵에도 비견될 수 있는, 그만한 능력자는 자유 연맹 내에는 달리 없었다. 그에 ’준‘하는 인물들은 몇 있을 수 있겠지만.


플레이어들이 인식하는 레벨로 알기 쉽게 설명을 한다면. ’수퍼 마스터‘ 급을 넘는 인물들은 여럿 있지만. 개중에서도 레벨 400이상의 괴물 급은 없는 셈이었다. 아릿시안 제국같은 강대국에는, 400이상, 혹은 500을 넘보는 격이 다른 체급의 초능력자들이 있는 것이었고.


레벨은 거진 절대적인 강함의 표시가 되기도 한다. 플레이어들의 경우 가시적인 레벨보다 아이템, 스텟, 스킬의 구성과 그 활용력이 더 중요하기도 했지만.

전략이나 컨트롤 실력이 고만고만하다면, 레벨이 중요한 무게감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체급의 차이가 있더라도 이 게임은 ’현실적‘인 요소를 중요시한다.


급소에 심대한 타격을 받으면 즉사를 하게 되는 전투 시의 판정 시스템 역시 그러하다. 막강한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을 동시에 갖는 체급 위의 괴물들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명이 비장의 수를 쓴다거나, 한이 없는 차륜전으로 힘을 갉아먹는다면 이빨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


소수이며 강력한 힘을 가진 그런 절대자들은, 반대로 다수의 약자들에게 덜미를 잡히지 않게끔 노련하게 옮겨 다니면서 중요 전략 시설들 따위를 타격하려 움직일 테였고.


’그랜드 마스터 급‘이라고 불리는 레벨 500이상의 괴물들 중에서도 차이는 또한 있었다. 그건 플레이어들 사이에 있는 컨트롤 실력의 수준 차와도 비슷한 것이었다. 거대한 힘을 다루는 반절대적인 초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정작 전투의 솜씨는 조금 미련한 부류조차 있을 수 있었다.


힘을 쌓고 경지를 이룩하는 것과. 그것을 실전에서 세세하게 다루어내는 건 또 다른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더욱이 현대는 초상공학을 비롯해 다양한 기술력이 발전하고 있는 시기였으므로. 보다 낮은 수준의 여러 명이, 시간을 들이면 나중엔 그런 강자들을 공략할 지도 몰랐다. 지금보다 훨씬 높은 가능성으로 쉽게 말이다.


거대한 에너지를 한 개의 아티팩트 내에 쌓고, 전쟁터에서 발휘하는 식으로.


여러모로 ’기로‘에 서 있는 시대였다. 물론 중소국들이 그런 기술 발전을 해내고 있다면. 강대국에서도 똑같이 연구 개발에 힘을 쏟기야 하겠지만.


“수도에는 ’궁정술사장‘이 있을텐데···.”


로웰이 중얼거렸다.


왕실 최고의 초상술사에게 붙는 직책명이었다. 최소한 수퍼 마스터급, 플레이어들 기준으로 레벨 300 이상의 위상은 보여야 하는 위치이기도 했다.

그 외에 ’워메이지‘로서의 기량만을 평가하는 ’왕립 전술사단장‘이 있기도 했다. 이 직책은 정확한 레벨보다는, 실전에서의 전투 능력만을 따지는 편이다. 지금의 전술사단장은 레벨도, 전투 시의 노하우나 기량도 부족하지 않은 괴물이었고.


NPC들 중에서 수퍼 마스터급에 이르는 자들은 분명 극소수다. 그리고,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말이다. 레벨 300은 분명, 랭커급에 속하는 레벨이기도 했다. 최선두를 달리고 있는 그룹들은 어느새 레벨 400을 바라보고 있었고.


1위부터 10,000위位까지를 따지는 랭커의 영역이었다. 억 단위를 넘는 플레이어들 중에서 만 명이라고 한다면, 분명 한 줌 정도의 비율이었다.


그 정도가 되면 플레이어들도 도저히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달리 말하면 게이머들은 아직, 변방의 소국조차 완벽하게 점령할 수준이 못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제 게임이 서비스된 지 4년 정도가 지나는 시기였으니까. 빠르다면 빠르고, 늦다면 늦다. 게임의 레벨 제한, 보통 만렙滿Lev(el)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상한선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저 NPC들 중에서 확인된 가장 유명한 캐릭터들이 500정도의 수준을 보이기에, 그 점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을 뿐이었고.


만일 랭커의 선두군群이 그랜드 마스터급에 다다른다면 이제 다음 지경의 정보에 대해서 퍼지게 될 테였다.


어쨌든 확실하게는, 몬스터들 중에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넘는 괴수들이 있음이 대략적으로 확인된 바가 있기에. 아마 짐작하기로 레벨 상한 자체는 훨씬 높거나, 혹은 아예 없다는 쪽으로 플레이어들은 추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산슈카 정부의 고위층이 관련된 일이라는 게 유력하구먼.”


로웰은 스스로 고갤 끄덕거리며 이들이 말하는 바를 이해했다. 궁정술사장은 수퍼 마스터 급의 메이지가 맡게 된다. 궁정술사단은 워메이지보단, 연구직에 가까운 마기아Magia들이었다. 그들은 산슈카 내의 초상공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고. 또 수도의 여러 MP적 방위 체계 확립을 위한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게 아마 주 업무일 테였고.


궁정술사장이 확립한 방위 체계와 여러 방어용 아티팩트들. 또 전술적 감시 체제를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실력자가 산슈카에 찾아왔다면 그게 더 문제이기는 하다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이 소국 내에서 그렇게까지 애를 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만한 세계적인 실력자가.


더군다나, 고작해야 마스터 급에 다다른 모험가 몇을 잡기 위해서. 거기다가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하지 않은가.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은 사지가 모두 멀쩡한 모습이었다. 고민 정도는 있는 듯했지만 그리 죽을만큼은 아닌 모양이었고.


’적‘이 있어도 싸울만한 대상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했다. 왕립 방위 전술 체계를 무력화시킬 정도의 절대적 고수라면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지. 꼬리를 밟히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남다른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작자가 있는 듯 해···. 우리가 뭐 산슈카의 국내 사정에 대해서 다 아는 바는 아니네만···. 이곳에도 어려움은 있겠지.

범죄를 저지르는 위정자들도 있을 테고···.

그런 놈들 중의 거두巨頭···. 암살 부대를 다루고 수도에서 살인적인 스킬을 아무데나 날릴 수 있는 인간···.


추리를 해보자면 여럿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개중에서 가장 쉽게 떠오르고 설득력 있는 존재가 바로, 대공이라고 생각하네.”


로웰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으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게으르다‘라는 이명은 이런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이름이긴 했다. 대공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작자가 두문불출하며 어떤 외부 활동도 하지 않고 칩거만 하고 있다면. 그런 의혹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지금 보여지듯 알사드 령에는 언제나 평안함이 있었고. 또 대공 휘하의 신하들이 열심히 일을 했으며, 알사드 대공 가家가 긴 시간 신뢰를 받아온 명문가가 아니었다면 더욱 말이 나왔을 상황이다.


그는 확실히 기인이었고, 알리바이alibi가 없었다. 그 외에도 그런 수작이 가능한 고관이나 고위 귀족들이 있기는 했다만. 동기가 마땅치 않다. 알사드 대공에게는 그럼 동기가 있는가, 물을 수 있지만.

애초에 동기를 찾기 어려울만한 일이기는 했다. 느닷없이 반역이니,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일이니, 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기인奇人이라고 평을 받는 알사드는 어쩌면 적절한 인물일 지 모른다. 그들이 찾는 ’적’의 정체로서.


“대공이 그런 존재라···.”


로웰은 매끈한 턱을 두드렸다. 그는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부류는 아니었으므로. 잘 나지도 않는 편인 듯했다.


로웰 드버가 붉은 눈을 빛내며 최태현, 개멋진나 최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럼.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나?”


당장 전해야 할 서신이나, 그리턴 가의 사절로서 해야 하는 임무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현황을 더 자세히 파고들고 있는 동료들과 만나서, 일정이 조금 변하는 정도야 이해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를 고용한 셈인 마음씨 넓은 주인, 그리턴 자작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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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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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268. 견제 24.04.16 14 1 26쪽
268 267. 썬더 울프. 사막의 밤. 24.04.14 15 1 18쪽
267 266. 케이실라Keiseila 24.04.13 14 1 15쪽
266 265. 외유外遊 24.04.12 12 1 21쪽
265 264. 처량한 포로 24.04.12 12 1 30쪽
264 263. 세부 내용 24.04.10 22 1 13쪽
263 262. 알현 24.04.10 13 1 19쪽
262 261. 사절단의 여정 24.04.10 17 1 19쪽
261 260. 비슷한 아이디어 24.04.10 11 1 19쪽
260 259. '그 망할 새끼' That shit 24.04.09 13 1 23쪽
259 258. 잠입 24.04.09 9 1 15쪽
258 257. 납치 24.04.08 11 1 10쪽
257 256.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가볍게 검을 내리긋는다. 24.04.07 10 1 24쪽
256 255. 이쿠죠いくぞ 24.04.04 16 1 30쪽
255 254. 사막벌레 24.04.03 14 1 14쪽
254 253. 부족의 명운 24.04.02 15 1 24쪽
253 252. 이시기르스 24.04.02 13 1 17쪽
252 251. 리비아 24.04.01 13 1 19쪽
251 250. 사절단 24.03.31 16 1 15쪽
250 249. 에드버그 24.03.30 13 1 15쪽
249 248. 사담私談 24.03.30 15 1 14쪽
248 247. 자고로 다 고생하는데 뺑끼치는 새끼가 제일… 24.03.29 13 1 23쪽
247 246. 살리기 24.03.29 12 1 12쪽
246 245. 상처 24.03.29 9 1 9쪽
245 244. 전조없는 비수 24.03.29 10 1 22쪽
244 243. 셰프 L 24.03.29 12 1 14쪽
» 242. 합류 24.03.28 13 1 24쪽
242 241. 하울Howl 24.03.28 11 1 16쪽
241 240. 지팡이 하나 24.03.27 10 1 19쪽
240 239. 치즈 케잌 24.03.26 10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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