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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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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3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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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5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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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236. 뜬금

DUMMY

***


[간밤의 습격 -


산슈카 국의 위기,


에서 이어지는 상황을 당신은 잘 헤쳐나왔다.


간밤에 산슈카 왕국의 그늘에 존재하는 모종의 '권력자'는 당신의 목숨을 원했었다. 이전 '제냐 킴'을 노리고 이미 여러 차례 암살자가 왔던 것처럼.

'알사드 대공령'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당신을 노리는 불청객들이 밤에 찾아왔다.


'헌터즈 길드'원들의 기지와 용맹함으로, 그리고 밤 사이 경계를 늦추지 않던 당신 자신의 노력으로 무사히 위기를 넘겼지만.

아직도 산슈카에 존재하는 '적', '반역자'는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심지어 건재하다. 진정한 위기는 숨겨진 채, 여전히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산슈카 국의 평화를 흔들고자 했고.


그러나 '알사드 령'에 오자마자 이루어진 습격으로. 당신을 비롯한 헌터즈 길드원들은 산슈카의 '게으른 대공'이 '반역자'가 아닐까 조금 더 확신을 한다.


대공령에 머물며 살아남고,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믿을만한 이들과 나누라.

'반역자'가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건. 그를 제지할 수 있는 위정자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들의 조력을 얻고, 운트 작힘 백작을 물리쳤던 것처럼, '반역자'의 계략을 막아라.

또, 그의 계략이 어떤 것인지 알아내야 하리라. 계획의 전모를 모르고서 그것을 멈추는 일은 불가능할테니.]


마을간 급, 유니크 연계 퀘스트의 로그Log였다.


제법 극적인 투로, 플레이어의 행동을 종용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실하게 방향성을 정해준다는 점에서는 아주 쓸만한 문체라고 할 수 있었다. 말투라고 하는 게 옳을까.


이 방대한 게임에서, 각 플레이어에게 맞춤으로 부여되는 여러가지 문구들은, 모두 AI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적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양이기도 했고.


이전 시대의 게임들과 비추어 비교를 해보자면. 아마 21세기 초반까지 있었던 게임들의 분량들로 생각했을 때. 현재 비련시 온라인에 들어와 있는 모든 계정의 수만큼의 게임이 있는 정도였다.


억 단위의 개인용 게임 패키지가 하나로 합쳐져 있는 것이 비련시 온라인이다. 맵과 기본적인 인터페이스 따위는 공유를 하고 있었지만. 결국 플레이어 하나하나에 맞춰서 시스템이 알맞은 보상을 내려주고 있었고. 개개인이 모두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퀘스트를 경험하고 있었으니.


그 보상이나 퀘스트의 피드백은 모두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미세한 선택에 따라서 기민하게 변화하는 메커니즘이었다. 현대에 존재하는 어떤 AI로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초인공지능, 이라고 이름붙은 '만물박사'에 의해서 실현되는 중이었다.


단순히 게임의 용량으로 치더라도, 아마 그 정도 분량이 되리라. 지금의 게이머들에게는 '고대 유물'처럼 불리고 있는 수십 6-70여 년 전의 게임들 말이다. 그 게임 패키지를 억 단위로 쌓아놓으면 아마 지금의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이 갖는 소프트웨어 용량과 비슷하리라.


물론 그 용량을 개인 게이머에게 부담으로 지울 수는 없었고. 방대한 서버와 '만물박사'가 공조하여 개발진측의 빌딩에서 감당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는 이미 만들어진 거대한 게임에 초대되고만 있는 입장이었다.


물론 초대되면서 플레이어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발생하는 막대한 연산량 역시 만만치는 않았지만. 그것 역시 '비련시 온라인'을 플레이 가능한 하드웨어에 내장된 기능으로 짐을 덜어주고 있었다.


개인 컴퓨터에서 발생할 메모리 부담을, 전산망을 통해 중앙 서버 쪽으로 돌리는 식이었다.


'만물박사'는 확실히 초월적인 기능이었다.


비련시 온라인의 개발진이자 운영진이 되는 인물들 역시. 시험 가동으로 비련시 온라인을 베타 서비스하면서 끊임없이 그 성능을 재확인하고 있었으니까.

자신들이 만든 무엇이라고는 잘 믿기지 않는 물건이었다. 만물박사는. 그런고로, 정확한 성능의 한계값에 대해서 다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였고.


과학자, 기술자, 개발자로서 우연의 산물이라고밖에 말하지 못할 물건에 대해서. 개발사 태Tae의 연구자들이 갖는 태도는 겸손한 것이었다.

자신의 손이 전능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창작자 따위는 없는 법이었다. 간혹은, 정신이 나갔거나 혹은 미숙한 정신을 가진 이들이 그렇게 착각하고는 했지만.


“이 나라가 정말 위기이기는 한 거야?”


호아킨은 대뜸 물었다.


대공령의 어느 경치가 좋은, 카페 테라스에 두런두런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한낮. 인테리어가 제법 깔끔하게 되어 있다. 미적인 감각이 제법 있는 주인장이 차린 카페인 모양이었다. 가게 구조도 개방적으로 탁 트여 있었고, 어떻게 건축을 한 건지 잘 감이 안잡히는 신기한 구조이기도 했다. 기둥처럼 보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런 식의 건축에는 늘 ‘초상력’이 사용되고는 한다.


초상력을 다루는 것은 온전히 초인들의 일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다시 어떤 물건을 만들어내거나 해서. 거기에 MP를 담아두는 게 가능했다. 일반적인 사람도 손쉽게 쓸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고.


그 도구를 이용해 다시 근현대의 공장과 비슷한 시설을 만든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중세 이상을 벗어나기 어려운 기술력의 사회가 콘란드 대륙의 나라들이었지만. 그러한 초상력 기기와 시설물들은 시대를 한참 벗어나는 효력을 보여준다. 다시, 그것들이 새로운 ‘초상력적 도구’들을 양산해내는데 쓰인다.

곧 아주 특권계층이 아니더라도, MP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대와 사회인 셈이었다. 현재 대륙은.


MP라는 건 상당히 효율이 좋은 에너지 중 하나였으므로. 한 번 길을 들여놓고 아티팩트 하나에 심어두면. 그것들이 아티팩트 내부에서 터줏대감 행세를 하며 추가적으로 충전되는 SP들을 자연스럽게 길들이기도 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SP들을 이용해서 이론상 반영구적인 기구를 만드는 것 역시 가능은 했다. 아주 수준높은 초상공학자超常工學者가 있어야 하겠지만.


현존하는 NPC들 중 최상위의 능력을 가진 작자들이 모여서 힘을 합친다면 그런 기물器物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가능할 지 몰랐다.


아무튼 ‘초상력’이라는 건 굉장히 자연스럽게, 콘란드 대륙 내에서 쓰이고 있는 힘이었다. 아직 현대의 산업혁명처럼 폭발적인 변화를 일으킬만큼은 전혀 아니었지만.

과학, 공학 분야의 최선두를 달리고 있는 대도시들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기술력이다. 다시 말하면, 이 알사드 령이 손꼽을만한 최첨단 도시라는 말도 된다.


날이 아주 밝았고, 맑았다. 푸른 하늘. 흰 구름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떠다니고 있었다. 태양빛이 인자人子를 축복하듯 내리쬔다. 가상의 하늘이며 태양이었지만. 테라스 자리에서 햇볕을 받으며, 제냐는 늘 그렇듯 여기가 가상의 세계가 아닐 지도 모른다고 문득 생각할 정도로. 그 현실감을 즐기고 있었다.


조작된 현실감이었지만, 최고의 과학자들이 만든 프로그램과 기계였으므로. 어찌보면 정말 현실보다도 더욱 그럴싸한 느낌이 있었다.

현실을 살아갈 때조차. 죽은 듯이 살고, 마음이나 정신에 여유가 없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날들에 비한다면야.


“위기危機···.”


릿샤는 중얼거렸다. 제냐는 자신의 앞에 놓인 카모마일 티를 홀짝였다. 콘란드 대륙이라고 현실과 식생이 완전히 다른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현실의 지구에 있는 것들은, 대개 존재를 한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현실에 없는 것들을 식생에 추가한 것이 이곳의 생태계일 뿐이다.


헌터즈 길드원 다섯 명은 늘 그렇듯, 원탁에 둘러 앉았다. 마침 테라스 자리에 그럴싸한 테이블이 있었다. 여러 명이 함께 앉아도 넉넉한. ‘넉넉한’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호아킨이 아무래도 거구였으니까. 릿샤가 체구가 작다고 하더라도. 제냐나 최태현 역시 체격이 마냥 작은 편도 아니었다. 평균이나, 그 이상 정도는 되었으니.


부족한 자리에 어찌어찌 낑겨 앉아서 힘들게 회의를 하는 건 사절이었으므로. 어디를 가나 넓고 쾌적한 앉을 곳을 찾는 그들이었다.


한낮이다.


제각기 살고 있는 시간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한국에서, 또 남중국南中國의 어느 도시에서. 또 미대륙의 동부와 서부에서.


길드원들은 각자 시간을 내서 접속하고 있었다. 한국을 기준으로 한다면 저녁이 될까말까, 한 시간이었다.


릿샤는 이제 막 한밤을 넘어서, 새벽이 시작되는 즈음이었고. 그녀가 있는 곳의 현실 시간으로. 한, 중국의 길드원들이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 접속을 하고 있을 때면. 그녀는 연구실의 일원으로 기계처럼 팽팽 돌아가다가, 간신히 귀가를 하고 로그인을 하는 셈이었다.


딱히 더 힘들지는 않았다. 쉬는 날이 없이 24시간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익숙했으며, 그녀가 잘 하고 잘 아는 일이었으니까. 어느 정도 시간 배분이나 조정 역시 가능한 위치이기도 했다. 고작 20대 중, 후반의 나이에 연구실에서 나름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그녀가 천재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기초학문과 관련된 일이었고, 능력이 조금 뛰어나거나 열심히 일을 한다고 더 빨리 성과를 낼 수는 없는 연구들이 대개의 프로젝트들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틈을 내서 비련시 온라인을 즐기고 있었고, 현실의 업무에 큰 지장이 되지 않았다.


그건 사실은 그녀가, 일을 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구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들이 쉴 때조차, 집에 들어와서도 계속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맡은 파트 연구의 일을 되뇌이거나 하고. 심지어는 게임에 들어와 있을 때도 현실의 일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녀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비련시 온라인 자체에 목적이 있기도 했지만. 그냥 머리를 활성화시키고, 다른 방면으로 집중력을 쏟아서 현실의 업무에 활력을 더 얻기 위함도 있었다. 죽으나 사나, 한 가지 일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해도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미친 짓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그렇게 사는 삶이 여유가 있는가, 싶기도 했지만. 당장 릿샤로서는 그것이 차라리 행복했다. 무언가에 매몰될 정도로 몰두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또 반면, 호아킨은 동부에 거주하면서- 출근을 하기 전 새벽 시간을 이용해서 게임을 하고는 했다.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조금 느즈막히 출근을 할 수 있는 직장이기도 했다. 평범한 중견 기업이었다. 그의 커리어에 비해서는 좋은 직장에, 좋은 파트로 들어간 것이기도 했다. 체대를 졸업하고, 직업 군인으로 나라에 헌신했던 과거 이력을 좋게 본 사장 덕분이었다. 중견 기업의 임원 중 하나가 그와 같은 전직 군인이었어서, 알아준 셈이다.


하루종일 데스크 앞에 앉아서 PC와 전화기만 붙들고 일을 하다가. 운동을 조금 하고, 씻고, 일찍이 잠에 든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서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에 접속을 한다.

새로운 세상- 이라는 말은 호아킨이 별로 좋아하는 단어가 아니기는 했다만. 어쨌든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이 펼쳐졌다. 지구 어딘가에 있는, 그럭저럭 마음이 잘 맞는 동료들도 생겼고.


이제 총을 들고 위험 지역에서 근무를 하던 당시의 삶으로는 돌아갈 일이 없었지만. 그리고 그 때의 모험과 비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속에서 그는, 나름대로 스릴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신을 하고, 다양한 무기를 쥐고. 여러 적들을 만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지형과 경치를 구경하면서, 새의 등에 타고 날아다니기도 한다. 제법 괜찮은 경험들이었다. 방구석에 누워 있고, 감각-신경계의 신호 작용으로만 느껴지는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이토록 실감 넘치는 꿈을 유려하게 꿀 수만 있다고 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현실에서의 스트레스도 조금씩 완화되는 느낌이었고.

그가 지난 시간 동안에 받았던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는 상당히 깊은 것이었다. 실제 전쟁이라는 건 그러하다. 아드레날린이 분비가 되고. 뭐 여러가지 호르몬의 작용으로 당시에는 어찌어찌 지나왔지만.


퇴역을 하고 남들과 같은 고요한 삶의 모습으로 살기 시작하자 당시의 충격들이 메아리처럼, 계속 울리곤 했었다.

다시 전쟁터에 갈 일이 없었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평화로운 미국 본토, 어느 대도시의 도심 지역이었고. 총기 사건이야 간혹 있다지만. 당시처럼 본격적인 전장은 아니다.


다시 총을 쥐지는 못했고, 동료들을 만나지도 못한다. 그러나 열띤 그 때의 감각과 정신적 고양감. 그런 것들이 남아서 그를 괴롭게 만들었고. 상처와 얽혀 있던 당시의 기억들이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게임 내에서 아주 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여러가지 스릴들이. 그를 다시 모험의 세계로 이끌고 있었고. 아주 실재와 같지만 실제는 아닌 세상에서의 안전한 모험으로 인해. 그의 정신은 조금씩 안정감을 찾고 있었다.


지나친 공포감과 긴장감,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던 군인으로서의 생활과.

반대급부로 지나치게 조용해지고, 긴장감이 없는 삶 가운데서 괴리감을 느끼고 있던 그였는데.


간신히 그 중간 지점을 찾아서, ‘아 나는 퇴역을 했구나’라는 사실을,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받아들여가고 있는 호아킨이었다.


죽은 동료의 얼굴은,


아직도 잊지를 못하기는 하지만.


홀로 밤을 지새우면서 술병이나 까는 것보다야.


하드한 수준으로 근육을 괴롭힌 뒤에 잠에 들고. 일찍 일어나서 새벽부터 비련시 온라인에 접속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테였다.

다른 게임을 했을 때처럼, 신체적으로 어떤 부작용이 온다거나 잘못된 자세로 인해서 불균형이 생긴다거나 하지도 않았고.


캡슐 기기 내부에 몸을 뉘이고, 편안하게 반수면 상태로 시간을 보낼 따름이었다. 더군다나 게임 내에서 갖는 여러 움직임들이, 신경계를 자극해서 현실의 근육에도 반사적인 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했고.

호아킨은 비련시 온라인이 확실히 스트레칭에 효과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운동에 능숙하고, 자신의 몸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일반적인 사람보다는 예민하게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평범하게 자고 일어나거나, 혹은 한 자세로 가만히 있을 때의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그건 게임 내에서 그가 격한 전투를 치렀을 때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이기도 했다.


“맞기야 하겠지요. 퀘스트 로그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호아킨의 물음에, 조금 시간이 지나서 대답을 하는 제냐였다.


릿샤는 위기라는 단어를 제 입 안에서 굴려보고 있었다. 라이엔은 초콜렛과 크림이 잔뜩 들어간 쉐이크 따위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헌터즈 길드에서 가장 속편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었다. 라이엔 핑은. 실제 그녀의 성격도 그런 편이었고 말이다. 현실에서도.


보통 라이엔은 일이 늦게 끝나면, 태현이나 제냐보다 늦게 로그인을 할 때가 많았다. 남중국 남부에 거주하고 있었고, 시차가 한 시간 정도는 있었고.

또 그녀가 하는 일이 마냥 빨리 마쳐지는 종류의 작업도 아니었기에. 잔업이 있을 때가 더러 있었다.


아예 함께하지 못하는 날도 물론 많았다.


이처럼 길드원들이 모두 모여서, 로그인 상태로 담소를 나누는 건 매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제각기 스케쥴을 맞춰서 퀘스트 진행을 위해서 약속을 잡을 때야 물론 모이긴 하지만.


웅성거리면서 사람들이 지나간다. 제냐 일행을 보고 그러는 건 아니었다. 대공령에도 플레이어들은 물론 있었고. 그보다 NPC가 훨씬 많기는 했지만.

이곳은 플레이어들이 굳이 올만한 지역은 아니었다. 산슈카 자체도 사실은 변방에 가까웠고. 동양계, 한국 국적의 플레이어들이 필리아 대륙 중부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보니. 산슈카 인근에서 많이 활동을 하긴 하지만.


전 세계 플레이어들의 추이로 봤을 때 사람이 아주 많은 곳까진 아니었다.


거기에 몇 개 포인트들. ‘대도시’라고 할만한 거점들이 주로 플레이어들이 머무는 데였고. 이처럼 NPC들의 생활상이 담겨 있는 도시에는 퀘스트가 아니면 굳이 오질 않는다.


제냐 일행들도 결국 퀘스트에 이끌려 오지 않았는가.


어느 정도의 플레이어들이 있었고. 나머지는 대공령의 주민들이나, 혹은 다른 지역에서 이곳을 방문한 NPC들이다. 알사드 령의 도심 지역은 나름대로 활성화가 되어 있었다. 산슈카는 그리 큰 나라가 아니라곤 하지만.


대도시도 있었고. 수도의 위용은 근방 다른 어느 나라를 가도 초라하다고 하지 못할 거대함이었다. 분명히.

마냥 소국은 아니다. 아마 한국보다 더 클 수도 있지 않을까. 나라의 모양이 달라 제냐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가끔 본 산슈카의 지도나, 직접 이동하면서 체감했던 거리를 떠올리며 서원은 가늠을 해보았다.


날씨가 좋은 낮.


한쪽 벽면이 개방되어 테라스와 곧바로 이어지는 카페. 마감이 잘 된 멋들어진 원목 테이블에, 음료도 제법 맛이 있었다.


사람들은 제각기 일정을 위해서 돌아다니고 있었고. 카페 내에도 제법 사람들이 있었다. 콘란드 대륙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알게 되는 점들이 있었는데. 판타지 세상을 그려내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현실의 ‘플레이어’들을 위한 공간인 면이 있어서. 이처럼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시설물 따위가.

아무렇지 않게 도시에 있었다.


지금 그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카페 역시 현대인에게 익숙한 형식의 무언가였고.


최태현은 홍차를 시켜서 홀짝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알아보라’는 건 어떻게 알아보라는 말이야?”

“···여태까지처럼, 직접 돌아다녀야겠지요. 발로 뛰는 것 외에 수가 있겠어요.”

“흠.”


제냐가 답했다. 최태현, 개멋진나 최는 영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마땅한 포인트도 없이 다짜고짜 ‘알아보라’니···. 그게 더 현실같기는 하다만···. 이런 부분은 좀 게임같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길다란 머리를 뒤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화살을 쏘며 장발을 흩날리는 미형의 사내, 같은 이미지를 노렸던 거 같기는 한데. 미형인 지는 모르겠다. 장발이 썩 어울린다는 점에서 추남은 결코 아니었지만.


릿샤가 말을 더한다.


“그래도 뭐···. 위정자들에게 가서 협조를 구하라고 단서는 줬잖아. ‘적’은 강력한 권력자일 확률이 높지만···. 몰래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 산슈카의 다른 권력자들 눈치를 보고는 있다는 말이라고···.”


호아킨은 침음을 낮게 흘린다. 흐으으으으음. 두터운 체격을 가진 사내는 팔짱을 끼고 인상을 찡그렸다. 무언가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별로 위협은 되지 않는다. 그런 정보 없이 그냥 마주하고 있다면, 민머리의 터프한 인상을 가진 사내라 조금 무섭기도 하다.


이전에는 거진 헐벗은 느낌으로 돌아다니는 호아킨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정갈하게 옷을 다 걸쳐 입고 있었다. 깔끔하게 재단된 천옷과 가죽 갑옷을 겹쳐 입은 모양새다. 릿샤의 전투복이 그러하듯. 호아킨의 장비들 역시 때깔이 나름대로 좋았다.


고수급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본격적으로 쓸만한 장비들은 어쩔 수 없이 아티팩트 메이커의 손길을 필요로 하기에 말이다. 희귀도로 따져도 4급보다 아래인 것은 별로 없었다. 대개 희귀도도 높았고, 실질적인 성능 역시 강력하며.

값으로 따져도 높은 가격이리라. 금화를 그야말로 물처럼 쓰면서 맞춘 장비들이었다. 그걸 위한 보스몹 레이드Raid(n; 습격; 롤플레잉 게임 등에서 팀 플레이로 공략해야 하는 보스 몬스터 따위를 잡는 일을 일컬음)이기도 했고.


거기에서 나온 직접적인 재화도 있었고, 소재 아이템이나 완성형 아이템들도 여럿이었다. 써먹을 수 있는 건 모조리 사용을 했고. 사용가치가 없는 아이템들은 좋은 가격에 팔아 넘겼다. 사르삿은 그런 류의 레벨링과 스펙 업그레이드, 장비 맞추기를 하기에 용이한 도시였다. 워낙 거대한 대도시이며, 시장 역시 활성화가 되어 있었으니까.


왕실의 근처이며 최고의 실력자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상당히 고급 장비나 재료 따위라고 하더라도 구매자가 있었고, 제 값을 받고 팔아넘길 수 있었다.


거구를 감싸고 있는 천옷은 힘겨워보이지 않았고, 묵직한 빛깔을 내고 있다. 그 위에 덧대어 입은 가죽 갑옷류도 경박스러운 광택이 아닌, 고급품 특유의 색채를 품었고.


호아킨은 잘 답이 나오지 않는 표정으로 입술을 연다.

그가 말하는 건 영어였으나, 통역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는 이곳에서 각자의 언어로 맞추어 들린다.


“우리가 알 수 있는게 너무 제한적이야. 조금 더 사건의 핵심에 파고들만한 씬Scene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호아킨은 그리 말하면서 민머리를 긁적거렸다. 우스워보이는 꼴은 아니었다. 그의 체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냐는 턱끝을 매만진다.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공령으로 온 것은 분명 정답이라고 여겨졌다.


계략, 계략, 계략이라···.


제냐, 킴. 김 서원은 머리를 굴린다. 악의적인 인간이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고···. 이 나라의 누구도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로멜리아 가문의 암살건을 우연히 방해했던 자신만이 그 근처를 더듬어 만지고 있는 중이다. 전모는 커녕, 일부도 알기가 어렵다.


대공이 적인 것은 맞는 듯한데···.


왕실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현실적인 일은 아니었다. 요구되는 명예 점수는 턱없이 높았고. 연을 맺은 로멜리아 가문이나 그리턴 가문의 인사들을 통해서 우회적인 방법을 취한다고 해도. 제 때 제대로된 협조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모습을 감춘 적을 어떻게 파헤쳐야 할까.


차라리 이전에 찾아왔던 암살객들 중 몇 놈을 붙잡아 심문을 했었다면 좋았겠으나. 그 정도로 녹록한 자들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보내주어야 했다.


거기서 섣불리 더 쫓았다가는 동반 자폭 따위의 수를 썼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암살자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아마 높은 확률로 대공가家라고 생각은 든다만···.


핏기어린 눈으로 제냐 등을 노려보며 자취를 감추던 암살자들의 종적은 결국 복잡한 도심 속에서 놓치고 말았다. 애초에 상당한 경지의 은신술을 쓰던 자들이기도 했고.


모습을 감추는 일에만 집중하자, 헌터즈 길드원들의 솜씨로도 곧바로 파악하기가 어려웠었다. 그렇게 그날 밤의 퀘스트 씬은 끝이 났었다.


“어.”


고민하고 있던 제냐의 뒤통수로 목소리가 들렸다.


밝은 낮. 시내의 거리를 지나가던 어느 사내의 말소리였다. 제냐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제냐의 뒤쪽을 이미 보고 있던 다른 길드원들의 눈이 조금 커졌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릿샤와 호아킨, 개멋진나 최의 경우였다.

라이엔은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그저 멀뚱히 바라보는 낯빛이고.


“여긴 어쩐 일이오.”


그렇게 말하는 사내는, 로웰 드버Rowell dver였다.


이전에 헤어졌을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외견. 갈색 더벅머리. 요사스럽게도 보이는 붉은 눈. 튀지 않는 로브 차림에 수더분한 인상과 표정.


헌터즈 길드원들의 평균보다는 나이가 훨씬 많은 사내, 청년.


우연히 대공령에서 제냐 일행은 그를 다시금 만났다.


“어?”


제냐는 고개를 뒤로 돌렸고, 익숙한 얼굴에 괜한 소리를 한 번 내보았다.


퀘스트 씬의 진행이란 늘 정해진 것이 없는 법이었고.


여러가지 갈래 중에서, 플레이어의 선택과 난수 변화에 의해서 ‘한 가지’가 고정이 되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철칙 하나는.


‘늘 길이 있다’라는 것 뿐이었다. 어떤 캄캄한 상황에서든지, 이어질만한 구석이 있다라는 점.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늘 플레이어들에게 불친절하고, 불편을 강요하는 괴랄한 게임이었지만. ‘게임’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클리어가 가능하다, 라는 전제만큼은 항상 같다.


“엥.”


로웰 드버는 괜한 소리를 한 번 더 내면서, 제냐의 놀람을 받아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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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엥.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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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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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268. 견제 24.04.16 16 1 26쪽
268 267. 썬더 울프. 사막의 밤. 24.04.14 16 1 18쪽
267 266. 케이실라Keiseila 24.04.13 15 1 15쪽
266 265. 외유外遊 24.04.12 13 1 21쪽
265 264. 처량한 포로 24.04.12 14 1 30쪽
264 263. 세부 내용 24.04.10 23 1 13쪽
263 262. 알현 24.04.10 14 1 19쪽
262 261. 사절단의 여정 24.04.10 18 1 19쪽
261 260. 비슷한 아이디어 24.04.10 11 1 19쪽
260 259. '그 망할 새끼' That shit 24.04.09 14 1 23쪽
259 258. 잠입 24.04.09 10 1 15쪽
258 257. 납치 24.04.08 12 1 10쪽
257 256.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가볍게 검을 내리긋는다. 24.04.07 12 1 24쪽
256 255. 이쿠죠いくぞ 24.04.04 17 1 30쪽
255 254. 사막벌레 24.04.03 15 1 14쪽
254 253. 부족의 명운 24.04.02 16 1 24쪽
253 252. 이시기르스 24.04.02 14 1 17쪽
252 251. 리비아 24.04.01 14 1 19쪽
251 250. 사절단 24.03.31 18 1 15쪽
250 249. 에드버그 24.03.30 15 1 15쪽
249 248. 사담私談 24.03.30 18 1 14쪽
248 247. 자고로 다 고생하는데 뺑끼치는 새끼가 제일… 24.03.29 16 1 23쪽
247 246. 살리기 24.03.29 15 1 12쪽
246 245. 상처 24.03.29 11 1 9쪽
245 244. 전조없는 비수 24.03.29 13 1 22쪽
244 243. 셰프 L 24.03.29 14 1 14쪽
243 242. 합류 24.03.28 15 1 24쪽
242 241. 하울Howl 24.03.28 14 1 16쪽
241 240. 지팡이 하나 24.03.27 14 1 19쪽
240 239. 치즈 케잌 24.03.26 11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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