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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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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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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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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18

DUMMY

*


"억."


셔벗 데이먼은 킬번 자작가에 고용된 경호원이었다. 190cm즈음 되는 키와 떡 벌어진 어깨. 그 아래로 내려오는 준수한 체격과 그걸 채우는 근육질. 흉터마저 있는 피부. 그의 외견이 모두 베테랑임을 증명한다. 표정이나 인상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갑자기 벌어진 일에는 조금 당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군인 출신이었으며, 조국을 위해서 몇 번의 전투를 치렀던 그였다. 전쟁터에서나 들릴법한 본격적인 폭음에 정신적으로 당황을 했고. 그것이 잠깐의 틈을 만들었다.


'자작을 부탁하네'라고,


동양인 경호원이 유창한 영어로 말을 했다.


그 다음에 사라졌고.


다시 나타나서,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은 뒤에-


눈 앞이 시커먼 어둠으로 변해버렸다.


일련의 흐름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이해를 했더래도 당황할 법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무슨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 새로운 경호원으로 고용이 되었다는 건 들었다.

간혹, 아주 뜬소문처럼 떠도는- 순간이동이나 뭐 그런 초능력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아주 뜬구름잡는 소문에 불과했는데.


셔벗은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쏴아아-.


하는 파도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잠깐의 텀을 두고 다시 시야가 밝아졌다.


그네들은 한적하며 아름다운 해안가에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일까. 완만하게 굽이진 해안선. 부서질듯한 바닷물, 파도, 햇빛에 비치는 백사장.


방금 전까지 밤이었다. 셔벗은 말이 안되는 상황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경악스런 신음을 뱉어도 현재 그가 느끼는 충격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았다.


“말씀드렸습니다. 잘 부탁한다고.”

“어?”


그러나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들렸을 땐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깨에 얹어진 손의 무게감이 여전히 있었다. 너무 충격적인 상황이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셔벗은 옆을 본다. 김일수의 모습이었다.


동양인, 고용된 용병. 그가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이는 둘이었는데, 하나가 셔벗이고 나머지는 킬번 자작이었다. 그녀 역시 셔벗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순간이동은 논리로 설명되고 이해되는 현상은 분명 아니었다.


벙찐 표정으로 가운데를 바라보고 있는 셔벗과 킬번 자작의 시선이, 김일수의 얼굴 부근에서 마주쳤다.

김일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동양인이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인 사내였다. 그의 낯빛은 두 서양인이 보기에도 퍽 이해하기가 쉽다. 혹은 그냥 자주, 깨나 시간을 보냈기에 나름의 정이 들고 시선이 바뀐 것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김일수가 당부했다. 대강.


"여기 조선입니다. 대한제국. 내 고향이요. 잠깐 일 치르고 올 테니 자작님을 잘 지키고 계쇼."

"뭐, 이봐. 조선이라고. 코리아... 아니 대체 무슨 소리야 지금."

"알지 않소. 자작을 노린 놈들을 족치고 데리러 오겠소. 아, 말을 안했군."


김일수가 씨익 입매를 끌어올리며 셔벗에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사실 순간이동 초능력자요. 점퍼라고 부르시오."


툭, 툭.


안구가 빠져나올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백인의 어깨를 두들기더니.


김일수는 곧 손을 떼고 반 보쯤 물러났다.


우웅.


하는 소리와 미약한 진동이 들렸다.


순간이동을 할 때는, 특수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건 물리적인 기계로 관측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후 백 여년이 더 지나도록 그러하고. 지금의 과학 기술이라면 더더욱이 계측할 수 없는 힘이다.


그러나 다만. 점프 에너지JE라고 나중에 불리게 될 힘은. 자주 겪는 이들에게 익숙해지게 되는 성질이 있었다. 점퍼, 곧 순간이동자의 근처에 있거나. 그에 의해 순간이동을 자주 겪다보면 조금 전이가 되거나. 감각이 트이는 것이다.


킬번 자작과 셔벗은 그러한 논리로, 약간의 변화를 느꼈고.


곧 김일수의 신형이 그들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철썩-. 쏴아아-.


하고 파도가 다가와 모래사장을 친다.


볕이 쨍쨍한 아름다운 백사장이었다. 인적은 없었고. 멀리 새들만이 날아다녔다.


난데없이 남겨진 두 백인은 한참이나 요상한 표정을 짓고 멀뚱히 서 있었다.


*


우웅.


하는 소리가 들린다.


김일수는 일단 주변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인다.


칼과, 리볼버. 특수하게 만들어진 합금 수갑. 얇고 길다란 와이어. 너클. 장갑.


그 정도가 김일수가 당장 가지고 있는 무기였다. 저택의 무기실에 들어가면 장총과 폭약류가 더 있기는 하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는 게 옳았다.


김일수가 킬번 자작을 옮겨 놓았으니, 저택 내에 요인은 없다. 지켜야 할 중요 인물이 없다면 그는,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격수로 돌아설 수 있었다.

폭약류를 사용한다면 저택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킬번 자작이 아니더라도 무고한 목숨은 많이 있었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심지어 제 손으로 죽이는 건, 인의를 많이 벗어난 짓거리였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저택 바깥으로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폭발이 정확하게 어느 지점에서 일어났는가. 후원後園 쪽이었다. 고용인들은 저택의 정문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고.

그렇다면 적은 어디에 있을까.


김일수는 연기, 폭음의 잔향, 사람들의 비명소리. 깨지고 부서진 건물 내의 여러 인테리어 조각들 속에서 차분하게 굴었다.


속에는 철과 강도 높은 보석을 치밀하게 짜서 만든 체인 메일을 걸쳐 입은 상태였다. 제법 무거웠으나, 방검의 효과가 있고 운이 좋다면 총기류를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말도 안되게 비싼 물건이었지만, 조직의 능력자 셋과 정형진에게는 지급을 한 물건이었다. 당연히 조선의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건 아니었고.

각지를 돌아다니다 알게 된 구라파, 유럽의 장인에게 두둑한 공임비를 주고 얻은 철갑이었다. 방어력에 비해서는 아주 가벼운 편이었고. 김일수는 보통 장사가 아니었기에 그러고도 민첩하게 움직인다.


저택 내에 철모를 두고 있었다. 그는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방 안 구석에 숨겨두었던 철모를 찾아 머리에 얹는다.


그 때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쾅!


저택의 후원쪽. 비슷하다. 김일수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뛰쳐,


나갔다.


달음박질로 뛴 건 아니었다. 순간이동자. 점퍼Jumper, 답게. 공간을 뛰어 넘었다.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사라졌고.


우웅,


하는 미약한 소리와 함께 그는 저택의 지붕 위에 올라 있었다.


폭음은 거의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들렸다.


그의 위치를 상대가 알기는 쉽지 않으리라.


한 명이 왔을까, 아니면 집단이?


자작의 저택은 그래도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경호 인력들이 나름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거기에 이 곳 도시, 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사였는데 아주 대놓고 군대를 끌고 오지는 못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시야가 회복되었다.


어둔 밤.


기가막힌, 밤이었다. 이런 밤을 상상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이라는 건 늘 상상하지 못한 순간의 연속인 법이었다.


그는 저택 후원의 전경을 한 번에 훑어보았다.


어둔 가운데 움직이는 인형이 희미하게 보인다.


한 명이었다. 일단 눈에 걸리는 것은 말이다.


무언가를 투척이라도 한 것 같았고. 굉음이 일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쪽으로 빠르게 들어온다. 저택 내로 진입하려는 것이다.


정원수의 속에 있다가 뛰쳐나온 인물은 밤의 어둠에 잘 가리워지게, 흑색의 복장을 하고 있었고. 밤중에도 더 짙은 그늘을 이용해 움직였다.


저택의 벽면을 따라 움직이다가 곧장 2층 쪽으로 무언가, 갈퀴 같은 걸 던져서 거는 모양새였다.


놈이 품에서 무언가, 굵직한 물건 하나를 더 꺼내들었다.


폭탄인 모양이다.


김일수는 인상을 찡그렸고,


저택의 지붕 위에서 다시 곧장 제 모습을 감추었다.


우웅,


하고,


잠깐의 소리가 들렸고.


폭약을 던지고 있던 암살범, 제라드 카우프는 거센 기류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인기척을 놀랍도록 예민한 감각으로 느꼈다.


지붕 위에서 순간이동의 전조음이 났고.


곧 갈퀴와 줄을 타고 저택의 벽면을 올라, 2층 테라스에 발을 올리려던 사내의 위쪽 몇 미터 허공에서, 다시금 순간이동의 효과음이 났다.


암살범은 능숙하게 다른 쪽으로 폭탄을 던졌고.


곧 강한 어깨로 던져진 폭탄이 멀리 날아가, 저택의 측면부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콰앙-!


아닌 밤중의 소란이었고, 저택 내에 있던 사람들은 더 큰 비명을 질러댄다.


암살범인지, 폭탄마인지 모를 작자였지만 카우프의 움직임은 아주 빨랐다.


최초의 폭음을 만들어낸 이후로 수십 초만에 테라스에 발을 걸친 것이었는데.


위에서 살짝 들린 순간이동의 효과음과, 인기척이 그의 불운이었다.


밤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인물은, 중력의 방향 그대로 낙하를 했다.


김일수는,


어둔 허공에 순간이동을 했고.


암살범의 움직임을 계산해 그 진행 방향의 조금 앞쪽, 위에 모습을 드러낸 참이었다.


그대로 떨어지면서 팔을 뻗어 휘저었다.


턱,


하고 손에 걸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대통大通, 이었다.


운수가 좋다. 실전에서 순간이동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하려면 이렇게 때로는, 과감하게 굴 필요가 있었다.


어둔 시야가 회복되었고.


자신의 손에 어깨가 걸린 암살범의 고개가 돌아가는 장면을 보았다.


‘제라드 카우프’는 로프를 잡고 저택의 벽면을 열심히 오르고 있던 터라 미처 반응하지 못했고.


우웅,


하는 기이한 소리를 귀로 들었다. 감이 좋은 인물이었다. 그것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김일수는 암살범의 어깨에 손이 걸리자마자 순간이동을 했다.


기이한 소음의 직후.


벽면을 오르던 암살범과 김일수는 그대로 다시,


아프리카 남부의 도시 바깥. 어느 저택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공격을 받은 여女자작도 사라졌고.

공격을 한 암살범도 같이 사라진 꼴이었다.


다만 킬번 자작은 지내기에 좋은 곳으로 이동을 시켜주었고.


암살범의 경우에는 다소 화끈한 놀이를 경험시켜줄 생각이었다.


흔한 방식이었다.


어떤 인간이던,


낙하 종단 속도에 도달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의 고도에 아무런 장비도 없이 위치하게 되면 혼이 나가게 마련이었다.


암살범과 김일수가 다음 순간에 눈을 뜨고 확인한 그네들의 위치는.


태평양 상공 이십 리쯤 되는 곳이었다.


제라드 카우프가 눈을 뜨기 전에 먼저 느낀 건, 살갗에 와닿는 지독한 한기와 기이한 흐름의 바람이었다.


어억,


하고 자신의 몸이 떨어진다, 라고 느낀 순간 눈을 떴고 그는 자신의 발 아래에 펼쳐진 광대한 광경에, 사고가 정지하고 말았다.


그의 어깨에 같이 손을 얹은 채. 능숙하게 엉겨붙어 몸을 밀착시키고 자유 낙하를 함께 하는 인물이 귓전에서 속삭였다. 김일수의 목소리였다.


자연스러운 영어였고, 아프리카 태생의 흑인인 제라드 역시 알아들었다. 그 역시 유럽 열강의 식민지령이 세워진 이후에 태어나, 영국인들과 교류하며 자라난 인물이었으므로.


지금의 행동 역시 그의 재주를 높은 값에 사 준, 어느 고위층 영국인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것이었으므로. 익숙한 언어였다. 내용은 그렇지 못했지만 말이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일단은 좀 떨어지지. 한 시간 정도 우리 같이 낙하 여행을 하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 것 같은데. 내 예상이 맞았으면 좋겠군.”


하하하.


김일수는 흘리듯 웃음 소리마저 희미하게 냈다.


휘오오오오,


하고


구름이 아득하게 멀게 보이는 고도에서, 기류 속에서 떨어지는 제라드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꿈인가,


싶었지만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낙하감은 절절한 현실로서 와닿았다.


“익.”


곧 떨어지는 속도에 가속이 줄기차게 붙었고. 그저 잇새에서 치미는 소리를 단말마처럼 내며. 그는 악몽을 현실에서 경험했다.


김일수는 그의 몸에 유술의 공격기라도 걸듯 아주 탄탄하게 얽어맸고. 여러 번 그래왔던 것처럼 능숙하게 낙하를 즐겼다.


추위와 긴장감, 압력 따위가 다소 괴로울 수도 있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다.


낙하도 계속해서 하다보면 익숙해진다. 정신을 잃으면 뭐 정말 죽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비인간적으로 단련이 된 그로서 낙하는, 좋은 고문의 도구일 뿐이었다.


일단 태평양 수면이 찰랑거리게 보일 즈음, 다시금 비슷한 위치로 올라와 떨어지고, 떨어지고.


그것을 한 식경(30분) 넘게 반복하다보면. 어지간한 인간은 혼이 빠져나가 깊은 대화를 하기에 괜찮은 마음 상태가 되곤 한다.


김일수는 거친 기류 속에서, 낙하를 즐겼다.


“이얏호.”


눈을 뜬 채로 갑자기 겪고 있는 악몽 속에서, 제라드는 자신의 곁에 있는 미친 동양인이 환호성을 내뱉는 걸 들었다.


귀로도, 촉감으로도. 눈으로도. 무엇으로도 현실감이 없는 광경이었다.


두 번째 낙하를 하는 도중 제라드는 까무러치고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많이 버틴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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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2-2 24.05.14 13 1 11쪽
104 2-1 24.05.13 13 1 14쪽
103 2부. Minus. 0 24.05.13 21 1 11쪽
102 작가의 말, 후기 +2 23.01.09 92 1 3쪽
101 96. (끝) 23.01.09 83 0 17쪽
100 95. 23.01.07 54 0 21쪽
99 94. 23.01.03 50 0 22쪽
98 93. 22.12.30 46 1 14쪽
97 92. 22.12.28 48 0 16쪽
96 91. 다시, 봄 22.12.26 43 1 14쪽
95 90. 22.12.23 47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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