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548
추천수 :
219
글자수 :
908,591

작성
23.01.07 11:27
조회
53
추천
0
글자
21쪽

95.

DUMMY

*


4월 29일은 나름대로 특별한 날이었다.


토요일. 주말의 시작.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국제 사회가 굴렀다.


금리는 계속해서 인상을 하고 있었고, 유럽의 끄트머리에서 발발했던 전쟁은 이후로도 세계 정세에 적잖은 부담과 영향을 주었다.


공존하지 못하는 삶의 발버둥은 때로는 최악의 수로 구성원들 전체에게 어려움을 선사하고는 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일찍이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미래를 도모해 보았다면 더 좋았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정치라는 것을 해보았다면.


거대한 몸뚱이를 가진 개발도상, 그리고 빈국의 기로에 놓인 국가의 몸부림은 세계적인 여파를 미쳤다.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전 세계적으로 실은 비슷한 고민거리를 떠안은 나라들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발전은 결국 균형 발전의 형태를 띄어야 한다.


물이 아래로 내려가고 그 수위가 맞게 되듯이. 기술- 발전- 혜택과 복지, 필수적인 자원들은 결국 다른 이들에게도 그 효용이 돌아가야 한다.


단순히 그것을 사용하고 누리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그 다음 과정의 개발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그렇다. 어떤 분야의 최첨단의 각성과 개발은, 결국 그 분야 전체적인 저변의 크기와 다양성에서 나오게 마련이었다.


100명 중 1명의 천재보다 10,000명 중 한 명의 엘리트가 더 뛰어날 수 있는 것처럼. 전반적인 사회의 수준이 올라가고, 혜택이 돌아 갔을 때 전 세계적이고 또 지구적인 이익을 끼칠 수 있는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이전 세대, 19-20세기의 어마어마하고 또 거대한 변혁과 연구 개발의 바람은 결국 그다음 세기 사회들의 전체적인 수준 향상을 만들어내었다. 한 사람이 만들어 낸 좋은 이득은 꼭 다른 모든 이들의 삶에 유익을 주어야만, 그 기술의 최대 실현 가치를 만들어내며 역사의 걸음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게 되는 것이다.


그래, 그런 면에서.


JE라는 에너지의 발견과 사용 역시 어느 정도 그렇게 쓰여야 할 지 모른다.


누구라도 그것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필요가 있었다.


JE의 본질이 점퍼라는 사람에 속한 것이니만큼, 무분별하게 나누어지고 남용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것에 대한 앎과 논의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질 때 다음 세대를 위한 발전에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의 아이디어란 그야말로 사람이 재단할 수 없는 면이 있으니까. 사람의 창조성이란 것은 결국 개인이 이 세상을 지으신 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더듬어 깨닫고 알게 될 때 빛이 나게 발현이 되는 것이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는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없고 다만 이미 만들어진 법칙의 발견자가 될 수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진리 앞에서의 능력의 한계를 깨달을 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 낮아질 때 높아지는 것. 어떤 분야의 정점에 오르려면 결국 가장 겸손해야 한다는, 어떤 기독교적 교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결국 세상의 법칙이었다.


그래 어쨌든.


4월 말의 하루는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해머를 내리치듯 큰 충격을 준 날이었다.


각국의 가장 신용도 높은 거대한 공영 미디어들이 하나같이 사실을 전달했다. ‘점퍼’. ‘점프’. ‘순간이동’. ‘점프 에너지’. ‘점퍼 조직’.


가장 극한의 상황을 오가는 사회의 뒷면에서, 그야말로 딱- 성실하고 헌신적인 소방관이나 경찰, 사회 전반에서 직접적인 구조 활동을 펼치는 직업인들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왔던 이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점퍼 조직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조직이 드러나면서 그것의 내부 사정 자체가 훤히 알려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그 대략적인 규모와 활동의 방식 정도.


조직이 일을 하는 것이 이전까지와 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점퍼 조직에 관해서 알고 있던 이들이 꽤 있었고, 그들과 협업을 하던 방식을 이어나갔다. 소수의 특별한 재화인 점퍼들에 대한 운용과 관리는 결국 그리 많지 않은 수의 직접 논의자들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했다.


지나치게 방대한 규모의 조직과 논의자들은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 뿐인, 의미 없는 비대화였다.


그러나 그 직접 논의자들의 그룹에 참여가, 어떤 국가라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 있었다. 필요하다면 이전보다 훨씬 개방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나 협조를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점퍼 조직이 잘 알고 또 연을 가져온 국가의 수뇌부나 조직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도움을 구했다면.


일정 위치 이상의 조직, 그러니까 나라로 인정받는 집단의 수뇌부나 그에 준하는 연결 조직들은 점퍼 조직에 모두 직접 협조를 구할 수 있게끔 통신 라인을 오픈한 것이다.


약간의 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어차피 점퍼 조직이라는 조직의 공고함이나 단결력이 유지된다면 JE가 함부로 남용되거나 사용처를 혼동하는 일은 대부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재머가 필요했고, 민서의 능력이 그런 정세적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이전에 한 번 예방 접종으로 열을 앓듯이, 테러로 인해 비공식적으로 순간 이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웅성대고 있었는데, 그날을 기점으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 많은 동요를 보였다.


점퍼 조직이 처리를 해야 하는 어떤 거대하고, 반사회적인 종류의 급진적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단적으로 인터넷 통신망이 잘 갖추어진 나라들의 디지털 공간에서는 한동안 온통, 현존하는 공간이동자들에 대한 키워드와 이야기로 모든 서버가 가득 차게 되었다.


*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


민서는 인터넷도 하지 않고 한가롭게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주변의 소란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걷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온다. 번화가를 지나가는데, 모두가 마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대중문화 스타가 놀라운 행보를 보였다는 것처럼, 모두가 유행을 따르듯이 연관된 주제를 가지고 시끄럽게 떠든다. 거대한 도시 사회에서 그런 일을 경험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지간히 유명하지 않고서야. 또 어지간히 놀라운 행보를 보이고 영향력을 떨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러나 점퍼 조직의 존재는 다양한 사람들의 분화된 관심사를 하나로 모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또 이질적인 것이었다.


모든 점퍼들은 조직의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이 지나친 행동을 벌이지만 않는다면 별다른 통제가 있지는 않았다. 그들이 갖고 있는 힘에 비례해 다소 협조를 강권하기는 했지만.


점프를 쓰는 것이 사람인만큼 사람의 체력의 한계에 따라, 어느 정도를 지켜야 할 일이었다. 점퍼들의 임무라는 것도.


민서는 계속해서 조직에서 임무를 맡는다. 젊은 날의 체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인양, 여전히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세계의 다양한 사건 사고의 현장에 찾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도왔다.


‘재머’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는 건 전 세계 어디에 있든 가능한 일이었고 그 자신은 도약 능력이 없었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현장을 뛰는 건 여전히 가능했다.


의외로, 몸을 움직이고 구르는 데도 나름의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굼벵이는 아니었지만, 민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져 갔다. 점퍼 조직에서 훈련시키는 다양한 육체적 트레이닝과 전투법에 말이다.


수많은 실전은 젊은이를 베테랑으로 만든다. 그는 점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제법 쓸만한 조직의 현장 요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점퍼 조직에 있어서 현장과 개인의 관점에서 그는 미약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조직과 정세 전체로 보았을 때는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능력을 가진 요원이었다, 재머는.


그런 중요도에 따라 지나치게 현장에서 구르는 것도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어쨌든 나름의 규율과 가이드 라인 내에서 그는 일 다운 일들을 해나갔다.


나름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조직은.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그의 인생에 어찌 되었든 할 일을 주었고, 또 마침 그 일들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종류라면 망설임없이 열정을 쏟아낼 수 있으니 바람직했다.


끝까지 해볼만한 일이었고 또 장소였다. 점퍼 조직이라는 단체에서 일을 하는 것은.


4월 30일은, 주일(기독교회의 성일, Lord's Day, 일요일)이어서 수정을 만나고 교회에 다녀 왔다.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 대신, 수정의 부모님과 더 자주 만나는 것도 같았다.


그녀의 집에서 대접해주시는 식사를 먹고, 집에 돌아와 잠시 쉬고 또 호출을 받아 간단한 임무에 참여했다.


조직에 새롭게 참여한 신참 점퍼 요원들에 대한 훈련이었다. 그가 그런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받은 만큼, 연습법을 알려줄 수는 있었다. 홍인수나 코치에게 배운 것의 아주 일부를 아직 제대로 운동을 해보지 않은 참여자들한테 알려주었다.


그렇게 점퍼 조직에서 밤을 지내고, 5월 1일이 되어서 한국에 돌아와 거리를 걷던 참이었다. 그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날 동안 언론을 통해 공개가 되었던 점퍼 조직과 다양한 사실들은 사람들의 거대한 흥미를 끌었고 모두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거리를 걸으면서도 요즘 시대의 유행과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만큼, 눈에 띄도록 웅성댄다. 사람들은.


점퍼는 무엇일까.


결국 아무도 아는 자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과학도처럼 파고 든다면. 과학적인 최첨단에 선 연구자들도 그 근원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과학적인 최소 단위 이전의 무언가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과학의 한계를 벗어난 사념의 영역이었다.


그렇게 바라본다면 점프, 나 순간이동 또한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인지도 모른다.


4월이 지나고 5월이 왔다. 이전 계절의 추위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어딘가에 나들이라도 떠나기 좋은 날씨였다.


민서는 이제, 다음의 할 일들을 떠올렸다.


생각을 정리할 때 거리를 무작정 걷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어쨌거나 사람들을 보고 또 외부 자극을 받으면서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무질서하게 난립한 아이디어들은, 적당히 걷고 또 땀을 빼면서 쓸데없는 것들이 가라앉고 더 깊이 파볼만한 것들이 남기도 하고 그러는 일이다.


띠리리, 하고 걷고 있는 바지춤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조직의 연락을 받는데 사용하는 통신기였다. 기능이 많지 않은 대신에, 지독하게 튼튼하고 또 배터리도 오래가는 편이다.


민서는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꼭, 구형 피처 폰Feature phone처럼 생긴 물건이다. 기능은 제한되어 있지만, 성능은 예전에 쓰던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지구상 어디에 있던지 딜레이 없이 음성과 텍스트 통신이 가능했고 극한의 야전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다.


기계 외부로 못을 박아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고, 충전을 하지 않아도 2주일 정도는 사용이 가능했다. 태양열 충전 기능이 있어서 낮 시간에 들고 다니면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했고. 거의 노 딜레이에 가까운 조작감과 반응을 보였고, 텍스트만이라면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 저장과 전달이 가능했다.


다양한 모드가 있어 여러 전용 기기에 접속 후 리모컨으로 사용또한 가능했고.


아무튼 민서는 피처폰처럼 생긴, 조직의 통신기를 열었다. 텍스트 메시지였다.


야가미 소우타

-실험해볼 게 있어. 내일 넘어오면 연구소에서 바로 시작할듯.


-Okay.


라고 짧게 그가 텍스트를 보내며 답장했다. 무슨 일일지는 몰라도, 할 것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무료하고 목적없는 삶은 이제 충분하다. 너무 오래 그렇게 살았다.


그래 봐야, 그런 무료함을 뼈저리게 느낀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 고작 몇 년간의 일이었지만. 가장 활발하게 뛰어다니고 싶은 그때 느낀 무력감과 무료함이란 아무래도 가슴 깊이 남는 것이었다.


*


23년 5월 2일, 화요일이었다.


김민서는 언제나와 같이 조직의 본부 기지에 출근을 했다.


매일, 혹은 주5일제 따위의 법칙이 있어서 정기적인 정시 출퇴근은 아니었지만, 노동량은 대충 비슷했다.


별다른 고강도의 임무가 없다면 본부 기지에 출근을 한다. 점퍼 조직의 점퍼들 중 한 명이 서울에 들를 일이 있을 때 움직여서 그를 본부로 데려오는 식이었다.


민서의 재밍 능력은 편리하고, 또 고사양의 것이었다. 개별적으로 마크가 가능해서 그가 알고 있는 점퍼 조직의 점퍼들, 그리고 조직에서 원활한 연락을 교류하며 불법적인 일을 일삼지 않는 자들은 재밍 능력에 걸려들지 않게 체크해둔다.


그리고 그 외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점프 능력을 사용하면 임시적으로 유치장처럼 사용하고 있는 태국의 빌딩 내부로 이동하게 되어 있었다. 거기도 또한 교대로 인력이 들어가서 대기하고 언제 올 지 모르는 인원들에 대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점프 능력에 대한 온전한 통제만 본다면, 민서는 근대 문학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라는 별명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다만 약점 역시 명확했다. 그 스스로는 그렇게 강력하지 않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눈이 돌아서 양아치 몇 명만 달려들어도 쉽게 다칠 것이다.


그의 존재 자체를 비밀로 하거나, 쓸데없는 신상을 드러내지 않는 게 가장 유효한 전략이었다. 그도 아니라면 늘 근처에 점퍼 조직의 요원이 경호조로 붙는 수가 있었고.


어쨌든 최근의 일상은 별다른 일은 없다. 다만 연구소에서 그를 불렀는데, 계속해서 특이점을 드러내고 있는 재머로서의 능력 때문이었다.


재밍 능력은 막대한 범위를 자랑한다. 그리고 동시에 백 명이 넘는 점퍼들의 능력 사용에 관여를 한다. 그 스스로가 도약을 하지 못한다, 는 제약이나 한계가 그의 특질을 더욱 거대하게 만드는 지도 몰랐다.


JE2는 JE와 다른 에너지였지만, 어쨌든 미지의 에너지이며 점프에 관여한다. 그것을 다룰 수 있고 민서가 자신의 능력의 다른 사용법을 깨달으면, 보다 더 신기한 일들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민서가 다양한 임무 중에 보였던 행태와 가설, 추측들이 모여서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민서는 기지에 출근을 했다가 바로 연구소로 이동하는 점퍼의 손에 이끌려 베른 근처의 연구소로 이동했다.


서울의 아침은 베른의 밤이었다. 그러나 시차와 상관없이, 늘 연구에 매진하고는 하는 연구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민서는.


그들이 제시하는 이론은 간단한 것이었다. 거대한 역장을 설치하고 다른 이들의 능력에 관여하는 재머. 그가 다른 점퍼들이 하는 것처럼 능력 사용의 과정을 분절해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가능해질 것인가.


다양한 시도 끝에 몇 가지 유용한 사용법을 발견했다. JE2는 거대한 범위 속에서 마치 매질처럼 작용했다. 현대 물리학 기술로는 직접 관측할 수 있는 힘도 아니었고, 그것의 움직임을 증명할 방법도 제어할 힘도 없었지만 민서의 정신력에 따라 움직였고 실제 물질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공기나 물 같은, 보이지도 않고 관측도 안되지만 존재하는 거대한 매질인 그것은 다른 이들의 점프에 동시에 관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약이 아닌 그 중간 지점에서 사용하는 ‘예측’에 관해서는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여러 명의 조직의 점퍼들이 모여서 점프를 시동했다가 도중에 취소했다. 점프는 해당 위치에 도약자의 신체를 가로막을 물질이 없어야만 정상적으로 발동되므로, 그에 관한 부가적인 능력으로 해당 좌표에 어떤 물질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면이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고체류의 것이라면 해당 장소로 도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점퍼는 도약을 통해 해당 위치에 어떤 종류의 물질이 있는지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을 빠르게 반복해서 사용한다면, 아주 화질이 낮고 또 저사양의 카메라로 넓은 장소를 관찰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저화질이었고, 단순히 시각 데이터만 얻을 수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니. 과학적인 좌표 데이터만 있으면 거리를 넘어서 그곳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해당 장소의 위치 데이터는 점퍼의 뇌로 받아들인다. 한 사람의 개인 경험을 다른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으나, 점퍼 조직의 여러 선진국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최첨단 이상의 기술들에는 근미래 과학 기술에도 닿아 있는 것들이 있었다.


개중에 하나가, 사람이 머리에서 이미지를 상상하면 그것을 높은 유사도로 그려내는 모니터가 있었다.


사람의 뇌파 정보에 직접적으로 접속해서 내부 정보를 뽑아내는 출력 기계였다. 그야말로, 근미래 기술이라고 할 만한 것들 중 하나였다. 시각 정보에 제한하지만 사람의 내면을 그대로 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초현실적인 인화 장치였다.


다만 점퍼 조직이나, 그에 연관된 여러 과학자와 연구 자원 속에서도 그것을 만들어내는 건 다소 까다롭고 또 어려운 일이었다. 한 번에 운용이 가능한 건 한 대에 불과했고, 다소 비대한 크기의 물건이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통해서라도, 점퍼들을 이용자로 삼아서 볼 수 없는 장소의 정보를 얻기 원했다.


점퍼들이 예측으로 얻는 정보를 표현하자면 색깔이 없는 뿌연 시각 정보, 에 불과하고 거기다가 면적도 고작 인간 하나의 체면적 수준이다. 방대한 넓이를 관찰하는 방법으로는 택도 없는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모니터의 렌즈로 먼 우주를 관찰하려는 과학자들의 집념과 의지는 간절한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민서의 능력은 하나의 활로를 제시했다. 마치 단체 도약을 하듯 여러 명이 한꺼번에 손을 얹고 ‘예측’을 사용한다. 원래 도약이 시행된 것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예측에 대한 정보는 각 개인에게 돌아간다. JE는 점퍼 각 개인에게 적용되며 그것이 연결되어서 일을 하는 때는 점프 능력에 포함되어 있는 단체 도약이 이루어질 때 뿐이었다.


양 손에 한 명씩, 1명의 점퍼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건 자신을 포함한 세명 뿐.


이론상 그러면 단체 도약을 사용한다면 3명분의 체면적까지는 자신이 확인을 할 수 있었으나, 무언가 프로그래밍된 방화벽에 막히기라도 하는 듯 그런 식의 예측 범위의 확장은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점퍼 역시 점프 능력과 에너지의 작동 원리를 모르고 사용하는 무지한 수혜자에 불과할 뿐, 진정한 의미의 컨트롤러는 아니었기 때문에.


반면 재머는 누구와도 다른 능력을 가졌기에 혹시 다른 종류의 특질의 사용법이 있는가 궁금해졌을 뿐이다. 과학자들의 근거는 그토록 빈약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 빈약한 상상과 추론은 제법 잘 맞아떨어졌다. 그들의 상상보다도 훨씬.


원형으로 대열을 이루어서 여러 명이 서로에게 손을 얹고 단체 도약을 한다. 정확히는 시도를 하다가 취소하는, 예측을 발동한다. 원래대로라면 1명 당 자신의 몸만한 크기의 시각 정보를 얻을 뿐이었지만. 재머가 끼자 상황이 달라졌다. 재거가 그 사이에서 JE를 다른 이들의 요령처럼 조작할 때, 예측이라는 능력의 작용이 서로에게 확대되었다.


10명이서 단체 예측을 시행하자, 재머를 포함한 10명 분의 체면적이 곧 공간을 넘은 미지의 장소를 관찰 가능한 카메라가 되어 공간 너머를 관측했다.


그리고 재머가 뇌내 비쥬얼 데이터 출력 장치의 일부를 머리에 끼고 있자, 그 영상이 그대로 모니터에 출력이 되었다.


그래봐야 고작 사람 10명 분의 체면적이지만, 과학자들은 앓던 이가 빠지고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거나 이전보다는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천문학적인 데이터로 추측했던 우주 공간 너머의 행성 정보들, 추리했던 예측들을 아무런 과학적 경제적 비용 없이 확인해볼 수 있는 길이 조금 더 열린 것이다.


단순한 시각 정보만으로, 그리고 현재로서는 도달할 수도 없는 미지의 우주 너머의 정보들이 현대 과학과 물리학계, 그 외 과학 내 다양한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시너지를 낼 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미지수로 남겨두었던 정보값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과학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두움’으로 남겨두고 끙끙대며 풀어내야 했던 과학적 계산 수식에 한 줄기 빛이 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단한 육체 능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고, 단순하게 JE만 소모하면 될 일이었다. 마침 다행히도, 세계에 JE는 있지만 육체적 강도가 부족해서 재난 구조 임무 따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점퍼들이 많이 있었다.


처음에 민서가 연구소에서 실험의 대상이 되며 아르바이트 따위를 했던 것처럼, 천문학적인 연구비 지원을 받는 연구소들에서는 그런 점퍼들을 고용했다.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고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집구석에서 놀고 있는 백수가 사회에 당장 나와서는 도저히 벌기 어려운 액수의 금액들이기는 했다.


민서는 과학자들의 곁에서, 졸지에 제자리에 앉아 우주를 탐험하는 무인 카메라의 조종자가 되어 그들의 연구 과정을 한없이 지켜보는 일정이 추가가 되었다.


*

aldebaran-s-qtRF_RxCAo0-unsplash.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부. 24.05.13 20 0 -
공지 인물소개 23.06.12 46 0 -
공지 전자책을 내보았습니다. 22.12.17 104 0 -
121 2-18 24.06.21 4 0 13쪽
120 2-17 24.06.07 10 0 17쪽
119 2-16 24.05.27 12 0 14쪽
118 2-15 24.05.25 13 0 17쪽
117 2-14 24.05.25 12 0 14쪽
116 2-13 24.05.25 11 0 12쪽
115 2-12 24.05.24 9 0 16쪽
114 2-11 24.05.24 8 0 15쪽
113 2-10 24.05.23 9 0 16쪽
112 2-9 24.05.23 11 0 17쪽
111 2-8 24.05.17 8 0 13쪽
110 2-7 24.05.16 11 0 13쪽
109 2-6 24.05.16 9 0 13쪽
108 2-5 24.05.16 11 0 11쪽
107 2-4 24.05.15 10 0 13쪽
106 2-3 24.05.14 10 0 11쪽
105 2-2 24.05.14 13 1 11쪽
104 2-1 24.05.13 13 1 14쪽
103 2부. Minus. 0 24.05.13 20 1 11쪽
102 작가의 말, 후기 +2 23.01.09 91 1 3쪽
101 96. (끝) 23.01.09 82 0 17쪽
» 95. 23.01.07 54 0 21쪽
99 94. 23.01.03 50 0 22쪽
98 93. 22.12.30 46 1 14쪽
97 92. 22.12.28 48 0 16쪽
96 91. 다시, 봄 22.12.26 43 1 14쪽
95 90. 22.12.23 47 1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