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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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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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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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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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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7

DUMMY

*


스티브는 높은 허공에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후우우우···.”


가볍게 한 숨을 내쉴만한 상황은 아니기는 했다.


별다른 장치가 없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죽음의 위기 앞이 아닌가.


떨어지는 스티브의 몸에는 달려있는 게 딱히 없었다.


턱시도에에 깔끔한 넥타이. 검은 톤으로 맞춰 입은 연미복이었다. 미친듯이 펄럭거리는 옷이었다.


머리칼도 마찬가지였고.


공기의 저항을 받으면서 자유낙하를 한다.


종단속도, 라는 게 있는 법이라. 공기저항이 있는 한 무한하게 속도가 빨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독한 고속이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떨어지고 있는 자세에도 신경을 써야했고. 까딱하면 빙글거리며 돌다가 잠깐 블랙 아웃이 올 수도 있었고.


그러나 스티브는 대大자로 팔을 벌리고 자유롭게 떨어졌다.


저 아래에 태평양이 보였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자신이 언제 떨어질 지를 알고 있고. 또 그에 앞서는 해결책을 갖고 있다면.


추락이라기보단 비행으로 불러도 좋을지 모른다.


스티브 아이드는 분 단위의 비행을 즐기다가,


우우웅.


하는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허공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창공과 창해의 한 가운데서 인형이 사라졌고.


그는 턱시도 차림이 어울리는 단정한 자세로,


조선 땅 어디에 나타났다.


“오. 오셨습니까.”


점프Jump.


순간이동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에서 관성은 멎는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던 중이라고 하더라도.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결국 낙하는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스티브는 어딘가 권태롭고. 조금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반겨주는 동양인을 향해 능숙하게 조선말로 대답을 했다.


“왔수.”


심지어 사투리까지 섞인 자연스러운 발음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양인, 백인이었다. 스티브는.


미친듯이 펄럭거리다 엉망이 되어버린 차림새를 단정히 하며 그가 정형진에게 물었다.


“일수랑 도경은?”

“안에 있습니다. 식사는 하셨는지요.”

“어···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겠지만···. 출출하기는 한데. 뭐라도 좀 줘.”

“준비하겠습니다.”


스티브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다가, 잘 되지 않는지 그냥 외투를 벗어버리고 어깨에 걸치면서 움직였다.


“···어느 방?”


정형진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묻는 그에게 손짓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집의 구조는 ㅁ자 안에 ㄷ자 방들이 들어와 있는 식이었다. 점프를 통해서 들어오는 곳은 내원의 담벼락 구석 한 자리였고.


형진이 가리킨 곳을 향해 스티브는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따.”


양놈의 생김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성을 하며.

스티브는 팔자 걸음을 걸었다.


*


“왔나.”

“왔지.”

“돈은 좀 벌었나.”

“무식하게 벌었지.”


끙차.


철푸덕, 하고 자리에 앉는 스티브였다.


금발머리. 동안의 생김새를 하고 있는 멀끔한 인물이었다. 셔츠는 가만히 보면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고. 피인지 뭔지 모를 오물들이 조금 묻어 있었다.


따뜻하게 온돌이 바닥을 덥히고 있었다.


1904년 3월. 아직 봄이었지만, 추위가 다 물러가지는 않았다.


시대의 봄은 아직 시커먼 앞날이 가리고 있어 도저히 보이지 않는 때였고.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선포한 이후이기도 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대한제국은 골머리를 앓으며 중립을 선언하지만. 그런 처세가 과연 얼마나 쓸모 있을런지.


망국의 징조가 여기저기서 감돌고 있는 상황에서 돈은 그다지 쓸 데가 없는 물건일지 몰랐다. 금이나 보석류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총기를 들고 일제의 수장을 암살하는 게 낫지 않은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름대로 열강이라는 곳들에서는 ‘점퍼Jumper', 순간이동 능력자의 존재에 대해서 파악을 하고 있었지만은 말이다.


그 심처에 들어가서 고위자를 암살하는 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능력자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도 있었고 아닌 곳도 있었지만.


저마다 대비들은 하고 있었고, 갑자기 날아들 암살자의 존재에 대해서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으니.


순간이동자에 대해서 아마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건, 대한제국같은 변방의 국가들이나 그럴 테였다.


그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본 결과. 시대를 주름잡고 있는 열강들은 모두 모르는 나라가 없었으니.


“돈이라, 씨팔 돈.”


스티브는, 답잖게 찰진 욕설을 내뱉었다. 양식 양말을 대충 벗어서 둘둘 말더니, 제 양복 외투에 고이 둔다.


스티브라는 사내와 함께 있다 보면 그 사내의 국적이 어디인지 헷갈리고는 했다. 눈을 감고 듣고만 있자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발음이며, 말씨들이다.


구사하는 단어들도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어린 시절 선교사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던 것이 아마 그런 발음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이제는 장성한 사내였지만.


나이를 따지자면 민도경이 조금 어렸고. 스티브 아이드가 보다 많았다.


30과 32, 그리고 김일수가 37이었다.


먹을만치 나이들은 자신 사내들이었고.


나름대로 의기를 앞세워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디를 방향으로 잡고 키를 돌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돈, 좋지 않은가.”


허허, 김일수가 웃으면서 그리 말을 했다. 전혀 진심은 아니었다.

그깟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도 김일수가 잘 알았다.


구한말의 양반가 출신이었다. 김일수도 그렇고 도경수도 그러하고. 김일수의 집안은 나름대로 관직을 지냈던 가문이고. 한성에서 의정부에 들어 일을 하시던 아버지 아래서 자랐는데.


대한제국으로 내각이 개편되기도 전에 잘려 고생스러운 시절들을 보냈다.


아주 어린 시절은 나름대로 유복하게 지냈고. 소년기 이후부터는 다사다난한 세월들이었다.


그 즈음과 맞물려 익힌 ‘능력’은 소년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만.


가족에게 무언가 좋은 일을 해주는데는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치안이 엉망이었고.


일제의 앞잡이라고 할만한 작자들이나 혹은, 일본인들을 비롯해 외인들이 나라를 계속해서 겁박하고 어지럽히는 중이었으니.


관직도 뭣도 잃어버린 그럴싸한 양반가에 들어와 강도질을 하는 놈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김일수는 소년기의 시절에 강도에게 당해 아비를 잃었고. 당시의 사건으로 제 능력을 조금 더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어미와 여동생은 살렸으나 집안이 거덜이 나기도 했고.

계획적으로 들이닥친 강도 놈들 중 몇은 죽였으나 몇놈은 얼굴도 확인하지 못하고 놓쳤었다.


지금에서는 지방 부산 어딘가에 가족을 따로 두고, 홀로 한성 근처에 자리를 잡아 이처럼 활동하고 있다.


거리가 멀다고 해도. 순간이동이 가능한 그네들에게는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다만.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가끔이었다.


‘돈’이 있어서 먹고 사는 일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이 없기는 했다만.


돈이 있어서 불행해지는 경우 역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돈만 있고, 그것을 지킬 힘이 없을 때.


김일수의 가정이 무너졌던 건 그 가정의 범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고. 김일수가 느끼기에는 국운이 어지러운 상황이었기에 그런 듯했다.


국민들 대개가 자신만 살자고 날뛰고 있는 판국이라고 한다면. 한 둘이 스스로 정신을 차린다고 어떻게 타개할 수 있는 꼴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 백 명이 배를 곪고 있을 때. 한 집안만 재정이 넉넉하다면. 어쩔 수 없게 되는 법이었다. 인간이라는 건 고픈 배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생물이니까.


국부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부요함이 있다면 사정이 조금 달라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돈’은 조금 의미를 가질 수 있으리라.

그러나 보다 큰 거시적 관점과 세계에서.


한 나라만이 부요하고 나머지 백국百國이 가난하다면 결국 큰 규모로,


강도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리라.


“개같은 소리 집어치우시고 밥이나 드시죠.”


시간은 아침이었다.


스티브는 태평양에서 한낮에 자유 낙하를 하다가 돌아온 참이었는데.


그대로 아마 수면에 부딪혔다면 뼈도 추리기 어려웠으리라.


아무튼 뙤약볕이 쨍쨍한 날씨에서 곧장 조선땅의 아침 나절이 되었다.


끼익.


방문이 열렸다. 바깥에 있던 고용인 하나가 문을 연 참이다.


“식사입니다-.”


가내의 다양한 잡무를 처리하는 건 정형진의 일이었다. 무너져가는 한국에서 발견한 믿을만한 사내였다.


그가 여러 고용인들을 부리기도 하고. 또 밥상 따위를 봐주기도 한다. 요리를 하는 사람, 한옥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사람. 재정을 감당하고, 일간-주간-월간-연간 계획 따위를 세세하게 짜고 기록하는 사람.


여러 사람들이 조직을 이끌고 있었다.


조직의 이름은 달리 짓지 않았다.


그래도 정 누군가에 의해 불리워야 한다면, 희가단喜歌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조직의 수장이라고 할만한 김일수가 적당히 지은 이름이었다.


좆같은 세상이더라도.


즐거운 노래 하나 부르듯 헤쳐나가자는 의미에서였다.


‘좆’같음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보다도 잘 지은 이름이라고 여겼다.


힘듦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을 노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한 인생의 낙이자 순수한 의미가 될 수 있을 테다.


“감사하오.”

“오, 밥.”


스티브는 밥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소년기부터 한국에서 지내며 익숙하게 쌀밥을 먹어왔던 터다.


의료원에서 근무를 했던 의사 아버지를 두고 있었고. 아이러니하게 전염병으로 양친을 잃고 고아가 된 이력을 지닌 사내였다.


청년기부터 홀로 조선 땅을 떠돌아야했고.


그러다가 김일수와 민도경을 만났다.


본격적으로 희가단, 조직을 구성한 건 그로부터 조금 이후의 일이었고.


양식을 거하게 즐길 것 같은 양반이지만.


나물과 삶은 계란. 한식으로 구운 고기 따위를 아주 좋아했다.


숭늉과 함께 내온 밥상에 그들은 반색하면서, 덕담을 나누며 식사를 즐겼다.


“용케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오셨네.”

“형님한테 말버릇이 참으로 곱구나, 아우야.”


첫번째 이죽거림은 민도경이었고.

두번째 유창한 화술은 놀랍게도 스티브였다.


두 사내의 사이좋음에 김일수는 허허, 웃으면서 곱게 밥이나 처먹었다.


걱정거리가 많은 삶이지만. 그래도 하루를 또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사내들의 웃음 소리가 방문 너머로 흘렀다.


*


“폐하.”


폐하, 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언제부터일까.


시대는 구렁텅이로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깊은 늪에 빠져들듯. 둑이 터진 물이 아무데로나 뻗치듯.


그렇게 흐르고 있는 시대 속에서.


황제라는 말도 큰 의미가 없는 게 되어버리기는 했다.


그 ‘말’을 막고 있던 청나라가 열강들의 침략에 몸살을 겪으며 저 모양이지 않은가.


외부를 돌볼 여력은, 중화 대륙에 없었고.


나름대로 새로운 발돋움을 해보겠다며 조선의 정치 체제를 개혁하고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원년을 선포하며 황제라는 이름을 쓰고는 있었지만.


부인을 잃고. 유명무실한 군대를 가지고. 넘어질 듯한 자세로 기울어 있는 나라의 우두머리가 과연 무슨 의기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는 안색이 영 좋지 않았다.


하루이틀의 일도 아니었다.


고종을 부른 신하, 외부대신 전영직이 두루마기를 추스르며 서 있다.


고종은 궁 내에서 신하를 만나는 방에 앉아 있었다.


멋들어진 양식 탁자와 그 위의 장식들이 빛을 낸다.


그 빛의 반푼어치라도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면 좋으련만.


고종은 먼 눈으로 새 조각을 바라보았다.


전영직은 옛 예법대로 고개를 숙이며 고했다.


“편히 하시게.”


툭툭, 황제는 둘 밖에 없는 방 안에서 과한 예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자신보다 나이도 많은 노신에게는 더더욱.


그의 말에 전영직이 구부정한 허리나 고개, 자세를 펴고 말을 잇는다.


“이대로 아라사와 왜국의 전쟁이 이어지면 과연 어찌 되겠습니까.”

“어찌··· 어찌 될까라···.”


고종은 자리를 권함에도 탁상에 앉지 않는 전영직을 조금 꺼림칙한 눈으로 흘겨보았다.


“그걸 나한테 묻는가. 짐이 세상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좋았겠네만.”


안타깝게도 없네, 라는 뜻이었다.


전영직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아라사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왜국은 결국 조선에게 어금니를 들이밀 것이옵니다. 그렇다고 왜국이 크게 이득을 취한다면 그것은 더 문제가 될 터···.”

“후우.”


고종은 툭툭, 하고 다시 나무 탁상을 두드렸다.


“앉아서 이야기하시게.”


예, 곱게 대답하며 노신이 의자를 끌어 앉았다.


작가의말

음.

거듭 말하지만.

그냥 판타지입니다.

역사적 고증은 이미 저 멀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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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2-11 24.05.24 8 0 15쪽
113 2-10 24.05.23 9 0 16쪽
112 2-9 24.05.23 11 0 17쪽
111 2-8 24.05.17 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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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2-6 24.05.16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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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2-3 24.05.14 10 0 11쪽
105 2-2 24.05.14 13 1 11쪽
104 2-1 24.05.13 13 1 14쪽
103 2부. Minus. 0 24.05.13 20 1 11쪽
102 작가의 말, 후기 +2 23.01.09 91 1 3쪽
101 96. (끝) 23.01.09 82 0 17쪽
100 95. 23.01.07 53 0 21쪽
99 94. 23.01.03 50 0 22쪽
98 93. 22.12.30 46 1 14쪽
97 92. 22.12.28 48 0 16쪽
96 91. 다시, 봄 22.12.26 43 1 14쪽
95 90. 22.12.23 47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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