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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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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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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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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8

DUMMY

끼이이,


소리가 나면서 노인은 자리에 앉았고.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종의 안색을 살폈다.


본인이 더 살핌을 받아야 할 것 같은 몰골이었는데.


고종은 그 꼴을 보고 내가 이런 이에게도 걱정을 끼칠만한 표정인가, 하고 그 안색을 거울처럼 여기며 되돌아봤다.


“중립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차라리 어느 한 쪽의 편을 듦이 옳지 않은가 사료됩니다.”

“하하하···.”


고종은 자조어린 웃음을 지었다.


그게,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고종은 참기 어렵다는 듯, 성대에서 시작되어 간신히 흘러나오는. 끅끅대는 웃음을 흘렸다.


“···.”


전영직은 가만히 고종의 말을 기다렸고.


서양식의 등이 방을 밝히고 있었다. 바깥에는 호위병 몇이 있을 뿐이었고.


이제 언제나 임금의 근처에서 모든 행적을 기록하는 사관은 없었다.


조선의 마지막을 고하면서 황제는 그 점이 조금이라도 후련했을까.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튼 고종은 기탄없이 이야기를 했다.


“클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면. 그러면 끝인가? ······.


이보시게 외부대신···. 전쟁이란 모름지기 어느 한 쪽의 승자가 있게 마련이네.


작금의 상황에서 발을 헛디뎌서···. 패자의 편에 서게 되면 이 나라의 꼴이 어찌되겠나?”


고종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안색과 얼굴로, 퀭한 눈빛으로 전영직을 보았다.


노려보듯한 안색이었으나. 황제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전영직 그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도, 더욱 큰 부담이 그에게 있으리라.


쉰이 넘은 양반이었다. 고종도.


그리고 그가 그간 겪은 무수한 고초들을 짐작하기에, 전영직은 쉽사리 입을 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도모해보아야 하기는 한다.


“···나라······. ······. 는 내 것이 아니지.”


고종은, 허심탄회하게 말을 뱉었다.


조선의 임금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달리 생각하면 임금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가장 윗자리에 앉은 작자들은 언제나 헷갈리게 마련이었으니까. 자신의 손이 닿는 이 나라 하나가, 스스로의 것인지 혹은 아닌지.


자신이 움직일 수 있다고 자신의 것은 아니다.


빌린 물건도 있지 않은가.


종從은 주인의 것인가?


고종은 깊이 생각하는 자였고. 또 지난 역사의 무수한 인물들이 뱉어온 사상들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를 한 인간이었다.


역사의 말로를 걷는 듯한. 세상에 있는 어떤 군주도 쉽사리 느껴보지 못할.

아주 한정적인 몇몇 임금들만이 느낄법한 심정과 세월을 겪으면서 고종은 나름대로 단단해졌다고 해도 좋으리라.


이 나라도, 역사도. 종묘사직의 흔적도. 지금 살아있는 국민들의 삶도.


고종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담당하고 있었을 뿐.


‘맡은’ 것이니 더 소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종이 참담한 심정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마지막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그 자신의 삶만큼이나 이 나라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천 여 만이 넘는 대한제국의 국민들의 삶을. 고작해야 한 인간이 짊어지기엔 지나치게 무거웠다. 고종은, 이명복은 그리 길고 무거운 생각의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간신히 버틸 수 있었고.

그제야 정신이 돌아오며 조금쯤, 소중하게 여기며 돌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 적어도 내 손으로 이천 만이 넘는 것들을 지옥도에 밀어넣을 수는 없네.

······.

그건···.

딸아이를 기생집에 팔아 넘기는 것보다 더하지. 고기와 꿀을 발라 굶주린 사자굴에 던지는 꼴이 될 거네.

그 짓거리를 하라고 나보고 말하는 건가.”


노신의 눈이 흔들렸다.


나라를 잃어버리는 괴로움을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누구인가. 나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인가, 혹은 가장 말단에 서서 삶을 이고 가는 하류 계층의 국민들인가.


둘 모두 같은 삶을 사는 것이었으나. 확실한 건 임금이나, 가장 위에 서는 자는 가장 아래에 있는 자들의 고통도 느껴야 한다는 법이었다.


어떤 물건이 깨어지고 부서질 때. 그 물건의 주인은 누구인가.

가장 괴로워하는 인물이 주인이지 않겠는가. 일시적으로라도 말이다.


말단 계층, 노예들은 임금의 괴로움은 느끼지 못할 테였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임금이라면, 가장 밑의 괴로움을 느낀다.

부모와 자식 간, 누가 더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도 같았다.


옳은 부모라면, 스스로 겪는 고통보다도 더 심한 아픔으로 자식의 문제를 대하곤 한다.


힘없는 장년의 사내는 나라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인물이었다.


지친 인물에게 더 힘을 내보라며 종용하는 건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전영직은 자신이 머리를 굴린 바를 내뱉는다.


멈추어서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모름지기.


“······차라리 왜에 붙는 건 어떻습니까.”

“클클클···.”


고종은 차게 웃었다.


일본 놈들의 심보를 어느 정도 겪은 바이기에 나오는 웃음이었다.


“호시탐탐 노리는 놈들에게 먼저 기어 들어가자, 이건가?”

“그것이 나은 길이 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임금 앞에서 나라를 팔아먹자고 제안을 하는군. 내가 자네 목을 베면 되겠나?”


고종은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을 했다.

농담조의 이야기였다.


“이 닫힌 땅 안에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가 있겠는가···.

옆으로는 바다로 나가지 못해 답답하고···. 위로는 청과 아라사가 버티고 있는데···.

시대가 이 대륙을 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해.”


동양, 중화, 여태까지 공고하게 이루어져 온 세계의 질서는 한 순간에 무너졌다. 고작해야 수십 여 년만에 말이다.


고종의 전대 임금, 또 그 전대였다면 과연 어땠을까.


그 때는 그 때의 질서로 인해 삶을 갈구해야만 했다.


청나라로부터 살아남아야 했고. 또 그 이전에는 왜란이 있었고.


그러나 지금 시대는 천지가 뒤집힌 게 아닌가 싶은 꼴이었다.


여태까지 질서로서 유지되던 중화 대륙이 죽은 호랑이나 같은 꼴이 아니던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대륙에서 철선이 들어오고···.


나약하고, 칼도 쥐지 못하는 가녀린 아낙네나 아이와 같은 꼴이었다. 작금의 조선은.


그런 조선을 노리고 있는 무장한 강도들이 주변에 득시글거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어디를 골라도 덫이고, 함정이다.


그나마 어디를 밟아야 가장 깔끔하게 마지막을 당할 수 있는가.


자신은 죽어도 후세나, 혹은 아녀자나 아이들이 살 수 있겠는가.


그런 걸 생각해야 했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도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들어온 전영직이란, 외부대신이란 작자는 친왜 사상을 떠들어대는 젊은 것들과 비슷한 소리를 한다.


결론적으로는 같지만, 결국 다른 이야기였다.


전역직이란 작자를 그만큼이나 신뢰한다는 뜻도 되었다.


나라를 팔아먹더라도, 그에 속한 국민들의 괴로움을 위해서 그러자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 정도 확신은 있었기에 이 밤에 만나는 것이었고.


고종은 솔직한 심정으로는, 광증을 앓기 직전이었다.


정신에 괴로움과 괴로움이 계속 쌓이고 있었으니.


그것을 건드렸다간 뒤도 보지 않고 그대로 칼을 휘두를 수도 없었다.


광기로도 헤쳐나갈 수 없는 암운이 드리운 시기이기에 드러내지 않을 뿐.


내적으로는 한계에 이미 달하고도 남았다.


전 대신이 아니라, 다른 믿지 못할 작자가 이런 야밤에 보자며


그 괴로움을 배가시켰더라면. 궁궐 내에서 정말로 칼을 썼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호위병을 부르지 않고 늙은 몸을 직접 움직여서 말이다.


“폐하···.”


그래도 살 길을 모색해보자며, 온 게 노신이었다.


고종은 신하의 충절이 갸륵해서 그 헛소리를 깊이 새기며 들어주었다.


마음과는 달리 참으로, 답이 나오질 않는 야밤의 논의요 담화였다.


*


“잡을 수 있겠나?”


중얼거리는 말은 김일수의 이야기였다.


“흠···. 힘듭니다···.”


정형진은 곤란하다는 듯 대꾸를 했고.


도쿄Tokyo.


동경東京.


그들이 있는 곳이었다.


인적이 드물다기보다, 올 수 없는 곳에 배를 깔고 누워 있는 것이 정형진이었다.


어느 높은 전각의 한쪽. 빛도 잘 닿지 않을만한 곳에 정형진은 누워 있었고.


그 옆에 김일수는 검은 옷을 걸쳐 입은 채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밤하늘에 가리워져 잘 보이지 않는 꼴이었다. 두 사람 모두.


달과 별빛. 그리고 근대 도시를 비추는 여러 전등 불빛들이 있기는 했다만. 두 사람을 찾을만큼 밝지는 않았다.


총리대신의 내각 저를 멀리서 바라보고서 하는 말이었다.


“···일단 외관은 전부 총알을 막는 철판으로 둘렀고···.”


목조의 유럽식 양택이었다. 총리 관저는 말이다. 그러나 그 주변을 두르고 있는 경계병들의 수가 수상쩍을 정도로 많았고.

또 평범한 목조가 아니라, 그들의 기지마냥 안쪽으로 철판을 덧대어 외부로부터 총탄 따위가 들이닥치지 못하게끔 해두었다.


건물의 내외부로 드나들때는 어느 방향에서든 저격을 두려워하며 호위들을 대동하고 있었고.


그들이 파악한 바로는 총리가 소총류 정도를 막을 수 있는 두꺼운 보호구를 항상 걸쳐 입고 있었다.


드러난 것은 두부頭部뿐인데. 그마저도 늘 주변의 고지대로부터 저격이 올 것을 두려워하며 엄폐물 따위를 잘 사용하고 있었고.


심지어 일제 쪽에 투신을 한 순간이동자가 있는지. 간혹은 이동을 할 때 순간이동을 사용하는 모습도 확인이 되었다.


오롯이 일본 황실을 섬기는 자인지. 단순히 잠깐 도움을 주는 자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쉽지 않네요.”


그들이 바라보며 쉽지 않다느니, 하는 것들은 총리 대신을 저격해서 죽일 수 있느냐, 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정형진은 여러모로 재능이 뛰어난 자였다. 순간이동자로서 이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들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강력한 신체와, 최신의 화기火器들을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정형진은 순간이동자는 아니었으나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본디 군부에 속했다가 나온 자이기도 했고.


화기는 그들과 함께하면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익혔다.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재능이 있는 인물의 성취는 곱절도 될 수 있는 법이다.


공교롭게도 희가단에 속한 순간이동자 셋이 모두 그러했고. 정형진 역시 그런 부류였다.


목제 라이플 하나를 시커멓게 칠해서 빛이 들지 않게끔 만들었고.


그 상태로 전각의 끄트머리에 누워서 총리대신의 관저 쪽을 바라보고 있는 정형진이었다.

그는 눈을 곱게 감고. 한 쪽으로만 바라보며 가늠을 하는데. 일제 쪽의 최상위 권력자들은 모두 방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영, 각이 나오질 않는다.


순간이동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큰 점이었다.


아예 모르고 있는 인물들이라면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볼 수 있겠는데···.


관저 내부에도 호위병들이 잔뜩 있는 듯했다. 교대로 사각死角을 두지 않게끔 근무를 서는 것 같았고.


또한 안쪽에 일제를 섬기고 있는 순간이동자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폭탄이라도 어디에서 구해와서, 관저에 숨겨놓고 도망치면 될 일이기는 하다만.


마치 벌떼처럼 몰려들어 있는 경계병들은 건물의 내외 어디에도 빈 구석을 두지 않겠다는 듯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사람의 눈에 당연히 한계가 있는 법이겠지만.


무수한 인력을 소모해가면서까지 저렇게 지키고 있는데, 본거지를 치는 건 어려워보였다.


그렇다고 상관이 없는 곳에 무력 시위를 벌일 수도 없는 것이고.


볼트 액션 소총을 애꿎게, 조작을 해보며 정형진이 이야기했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시죠. 흉흉합니다.”


일본도, 조선, 아니 대한제국도 흉흉하기 그지 없었다.


러일전쟁이 선포되었고. 한국의 항구들을 통해서 일제가 러시아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으니.


이제 곧 전쟁이 본격화될 테였고.


전쟁을 치르기 위한 일들을 각지에서도 할 것이다.


잔뜩 성이 나 있는 짐승을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군기가 바짝 든 병사들을 상대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고. 조심해서 틈을 보아야 하리라.


“······그래.”


김일수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턱.


김일수가 무릎을 꿇어앉으며, 배를 깔고 누운 정형진의 어깨를 건드렸다.


순간이동을 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손을 상대방의 몸에 닿게끔 둘 것.


순간이동자에게 당연히 양 손이 있으니, 최대 두 명까지를 한 번에 데리고 이동할 수 있었다.


이는 물리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이며 혹은 절대적인 법칙이었어서.


혹 손이 세 개로 태어난 기형자奇形者가 순간이동 능력을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두 명이 한계인 법이었다.


“흠.”


짧은 숨소리를 흘리곤.


김일수는 곧 사라졌다.


정형진과 함께였다.


*

david-edelstein-N4DbvTUDikw-unsplash.jpg


작가의말

거듭 말하듯

판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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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2-10 24.05.23 9 0 16쪽
112 2-9 24.05.23 11 0 17쪽
» 2-8 24.05.17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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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2-2 24.05.14 13 1 11쪽
104 2-1 24.05.13 14 1 14쪽
103 2부. Minus. 0 24.05.13 21 1 11쪽
102 작가의 말, 후기 +2 23.01.09 92 1 3쪽
101 96. (끝) 23.01.09 83 0 17쪽
100 95. 23.01.07 54 0 21쪽
99 94. 23.01.03 50 0 22쪽
98 93. 22.12.30 46 1 14쪽
97 92. 22.12.28 48 0 16쪽
96 91. 다시, 봄 22.12.26 43 1 14쪽
95 90. 22.12.23 48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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