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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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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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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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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92.

DUMMY

*



눈밭으로 질척이던 거리가 말끔하게 치워졌다.


제설 작업의 부단한 노력도 있었지만, 날이 풀리면서 눈들이 녹아가는 것이었다. 어느덧 날짜가 3월이었다. 봄에까지 남아 있는 눈은 많지 않았다. 어느 그늘진 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눈들의 무더기나, 얼음 조각 따위가 조금 남아 있는 듯도 했지만.


어쨌든 날씨는 풀렸고, 사람들의 옷차림 역시 한결 따뜻한 온도에 걸맞는 것들이 되었다.


민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터운 외투보다는, 조금은 가벼운 옷차림이다. 옷을 좀 껴입고 후드 짚업 하나를 둘러 쓰고 거리로 나섰다. 그는 임무가 없는 대부분의 시간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었다.


고성능의 통신기기 따위를 지니고 있어서, 거의 조금의 시차도 없이 세계 어디에서나 조직과 연락은 닿을 수 있었다. 재머로서의 능력이 필요하다거나 인력이 필요하다면, 점퍼가 중간에 경유를 해서 그를 데려가는 식이었다.


세상은 순조로웠다.


그 말은, 전 세계를 시야 범위에 넣고 일정한 의도를 가진 어떤 계획의 흐름이 순조롭다는 이야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저마다의 계획들을 꿈꾸고 일들을 벌이겠지만. 개중에는 악한 의도와 악한 행동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것들도 있을 것이다.


민서가 속한 조직, 민서가 뜻을 같이 하고 있는 공동체는 나름대로 선한 방향성의 계획들을 꾸미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보기에, 그래도 이전까지보다 평탄한 구석이었다.


어쨌거나 재머가 있는 이상 점퍼들이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다. 어느 정도 주기적으로, 재머가 재밍 능력을 발동해서 전 세계 점퍼들의 능력을 제한하는 일을 반복해주기만 해도 충분한 경고의 의미는 될 것이고.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그 재밍에 대해서 점퍼들은 저항할 수가 없었다.


민서의 재밍 능력은 그 범위를 키워가면서 약간의 고성능의 것이 되어갔다. 특질의 능력, 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 스스로가 점프를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는 반대급부인지, 재밍 능력은 다른 종류의 점퍼들보다도 훨씬 더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 범위를 둔 레이더망 따위가 그 첫번째였고, 두번째는 그 범위 내에서 점프를 사용하는 점퍼들을 모조리 개개의 식별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일정 조건에 따라서 분류를 한 뒤 원하는 이들만 점프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민서가 사용하는 조건은 그가 잘 알고 친숙한 이들, 점퍼 조직의 점퍼들만이 점프를 사용 가능케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도 점프는 가능하다. 그러나 재밍 능력을 사용하고 있을 때 겹쳐서 사용한다면 민서의 곁으로 이동하게 될 뿐이다.


물론, 민서 역시 아직까지 재밍과 점프 유도에 대해서 완벽한 해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백여 명의 인원들에 대해서 마구잡이식으로 불러들인다면, 그들 모두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었다. 충분한 대비나, 원만한 대화에 관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넓은 공간과 충분한 백업, 그리고 든든하게 장탄된 권총같은 것 말이다.


누구라도 멋대로 불러들이면 기분이야 나빠할 것이다. 다만 점프라는 것이 특수한 능력이고, 일반적인 삶에 대해서 전혀 터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이 조금 다른 변명거리였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의 제한은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나 점프를 통해서 이곳저곳에서 난리를 피운다면, 결국 그것을 수습하고 통제하기 위해 인력과 자원의 낭비가 될 수 밖에 없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모두가 일원화된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그들의 자유 의사대로 특수한 능력을 사회에 이바지하는 쪽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라는 말처럼. 특이한 능력에는 특수한 책임이 따른다. 물론 점퍼 역시 사람이기에 강요를 할 수 없고, 희생을 강요한다는 건 문장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적어도, 도의적으로. 자신에게는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는 잠깐의 일이었으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간절한 순간들이 있을 수 있었다. 전 세계적인 범위로 보자면, 그런 일들은 깨나 되었다. 완벽하게 고립되어서 탈출하지 못하는 조난 상황에서, 점퍼가 있다면 별다른 체력의 소모나 생명의 위협도 없이 곧바로 구출이 가능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전에도 조직은 이와 마찬가지의 방향성을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점퍼들을 대상으로 계속해서 회유를 반복하며, 적어도 그들이 일정 시간과 약간의 정력을 할애해서 점퍼 조직의 일을 도와주는 정도의 협조는 얻기를 바라왔다.


20여 명의 점퍼들이 있으나, 그들이 가진 JE의 총량으로는 여전히 모자란 것이 사실이었고, 적어도 그런 식으로 협조를 하면서 뒤에서 다른 꿍꿍이를 꾸미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조직의 시선이 분할되지 않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상황의 연출이었으니 말이다.


민서가 처음에 그러했듯,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 혹은 외부인으로서 조력하는 개념으로라도 떳떳하고 건전한 방향성으로 그 점프 능력이 사용되기를 바라왔다. 조직의 수뇌부들은 말이다.


이전까지는 그만한 통제 능력이 없어서 일순간에 실현할 수 없던 일이었지만, 민서가 존재하는 순간부터 그럴싸한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통제에 대한 자원이 절약될수록, 조직의 활동 역시 활성화되었다. 이전까지보다 더욱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수뇌부들과 협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건 점퍼 조직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더 커졌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슬슬 ‘점퍼’라는 이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국 소수의 통제된 자원이라는 것은 영 좋지 못한 꼴을 보게 마련이었다. 자원에 비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으니. 그러나 지금까지처럼만, 한다고 하더라도 대충의 정리는 가능했다. 한정된 JE를 그래도 최대한 잘 분배해서 지구촌 사회의 이바지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만 전달이 된다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비밀스럽게 되기 위해서 써야 했던 신경들이 사라지며 임무 환경이 나아질 수도 있었다.


민서가 알고 있는 점퍼 조직과, 그에 관련된 정세와 환경은 이런 식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그는 주도적으로 움직이거나 상황을 만들어내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그의 능력을 기점으로 움직이는 변화들이기는 했다.


“푸후.”


별 의미없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김민서는 3월 3일, 금요일. 수정을 만나러 가기 위해 별다름 없이 걸어가는 중이었다. 평소에도 늘 똑같이 걸어 다니는 길은 그에게 안정감을 주고는 했다. 일상적인 거리의 풍경. 바뀌는 것도 있었지만, 바뀌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소란스러운 전쟁터를 지나다 보면 이런 일상적인 풍경만으로도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고는 한다.


전쟁터와는 다른 거리를 지나, 늘 만나는 인도로 이루어진 사거리의 광장 같은 공간. 대학교 근처의 거리라 젊은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십 대의 중고등학생들도 가방을 멘 채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놀러 다니는 곳.


개중에 민서와 같은 주민들도 겸사겸사 거리를 채우고 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가나 값싼 오락실이니, 노래방이니, 스티커 사진방이니 하는 종류의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


쭉 뻗은 길로 걸어가다 보면 저 뒤까지 시야가 뚫려있어서 나름대로 청명감이 들기도 하는 자리이다.


민서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제대로 걸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나름대로 근육이 붙은 편이었으나, 의식적으로 굴지 않으면 예전의 자세가 나오고는 했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생각을 해서라도 떳떳한 자세를 하고 아무것도 아닐 지라도 걷다 보면 기분이 제법 괜찮았다. 사람이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내면의 기분도 자주 달라지는 생물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길목을 그렇게 지나자 사실은, 아까 전부터 그 행색이 보여서 이미 온 것을 알고 있었던 수정의 모습이 더 자세하게 보여온다. 말을 걸어도 닿을 듯한 거리가 되자 민서가 가볍게 인사를 했다.


“요.”


인기척을 내자 이쪽을 돌아보는 모습이었고, 웃는 모습이 적잖이 예뻐 보였다. 괜한 웃음기가 전염이 돼서 가까이 다가선 뒤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쳤고, 수정은 가끔 느끼지만 은근한 운동신경 따위가 있어서 날카로운 반격으로 민서를 쳤다.


“억.”


도리어 그 팔꿈치에 옆구리를 맞은 민서가 헛숨을 내뱉었고, 수정이 말했다. 그녀 역시 겨울철에 껴입던 두터운 패딩보다는 조금 가벼운 차림이었다. 그래 보아야 여전히 패딩 외투였지만. 조금 얇고 작은 종류. 자주 입는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차림이다.


“갈까. 영화 재밌는 거 있던가.”

“응, 뭐. 요새 평점 좋은게 몰아서 나왔다고 했으니까. 아무거나 봐도 좋아.”


지나치게 깐깐한 편은 아니었다. 수정의 영화에 대한 기준은 말이다. 민서는 사실 조금 깐깐한 편이었지만, 누군가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보는 영화에는 기준은 없었다. 도저히 볼 수 없는 불쾌한 내용만 아니라면야.


대학가 근처의 거리에 전철역도 가까이 있었고, 몇 정거장 지나지 않으면 상가와 영화관이 함께 들어서 있는 곳도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그곳이다. 점퍼 조직에서 일하면서, 개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결국 점프는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했다.


*


따뜻한 봄이 왔다. 조직은, 일상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었다. 대부분의 업무나 운영방식 자체가 전 세계 사회, 혹은 그 변두리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대응인 조직의 특성상 사실 루틴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는 게 어려워 보이지만, 따져보면 또 놀랍게도 그러한 종류가 있었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무작위적으로,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나 사고들 따위에도 일정한 종류나 편향성이 있어서 그것들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의 삶에도 어느 정도 규칙성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전투 요원들의 삶은 여지없이 고달프고 바빴다. 주기적으로 휴가를 가지기는 하지만 그리 길지는 못했고, 간신히 직업상의 스트레스 수치 따위를 관리하고는 있었지만 모두가 그리 푹 쉬지는 못하고 있었다.


김민서가 주기적으로 재밍을 활용하며 점퍼들을 관리하고 있었기에, 다른 점퍼로 인한 사건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악의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유용하는 점퍼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사건이 되고 말기에.


그리고 그런 관리에 들어가는 다양한 협조 자원과 인력들이 점퍼 조직의 직접적인 임무 수행 쪽으로 돌려지기에도 또 도움이 되는 면이 있었다.


‘점퍼’라는 초능력을 배제하고 나머지 일들을 민간의 것이라고 분류한다면, 일반적인 민간에서의 사건에 치중하는 나날들이었다.


그 와중에 좋은 소식들도 있었다. 한현서, 그러니까 조직의 수장인 커맨더의 딸은 리시버와 성공적인 만남을 가졌다. 서로에게 나름대로 인상적이었던 첫 만남 이후에, 주기적으로 연락을 했고 갖은 수를 써서 시간을 만들어 만났고, 또 나름대로의 호감을 느끼는데 성공했다.


최길우는 그럴 계획이나 생각은 따로 없었지만, 그게 또 나름대로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다. 호감이 가는 좋은 이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방면으로 삶의 안정감들을 느끼는 생활이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한형석이 조직의 수장으로서 조직원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혼자서 걸어가기에 너무 가파르고 고달픈 길은, 다른 이들과 힘을 모아서 같이 걸어가면 수월하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의 가장 큰 부분이 아무래도 배우자가 될 확률이 높았고.


기왕이면 행복하게 만나서 오래도록 잘 사는 것. 후세를 보는 것. 어른으로서 그가 후배들에게 권면하고 싶었던 일들이었다.


최길우, 리시버는 그렇게 연인으로서의 관계를 시작했다.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고, 더 일찍이 조직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얻어왔던 홍인수의 경우에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상대방을 스스로 찾았다.


‘옌’이라는 인물은 의외로 홍인수와 잘 맞았다. 살아온 패턴도,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의외로 옌은 홍인수와 있을 때 고분고분한 면이 있었고, 장기적인 계획을 복잡하게 세우며 살아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던 그녀는 홍인수와 함께 어떤 일들을 해나갈 때 편안함을 느꼈다.


어눌하게나마 시작했었던 한국말도 서서히 늘어가고 있었고, 그것은 홍인수와 다양한 임무를 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가속도를 얻어 더욱 능숙해졌다.


말은 아무래도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더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상대와 있을 때 아무래도 빨리 늘게 마련이다.


그리고 굳이 한국말을 쓰지 않더라도, 일단의 의사소통은 가능하기도 했다. 둘 다 영어로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


옌은 자신의 가문을 등졌고, 어느 순간부터 여행을 하듯 뛰쳐 나와 살아오던 인생이었으나 날아간 총알처럼 쉼없고 또 방향성도 주관하지 못한 채 살아가던 삶이 약간의 안정성을 얻었다. 리더, 라고 불리던 윤민혁의 팀에 속해서 일을 벌일 때도 어디까지나 건전하고 사회에 이바지 하는 종류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점퍼 조직에 헌신하며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삶은 일단 합법적인 일이었고, 안정적인 급여 또한 있었다. 나름대로 의지할 대상들도 있었고. 삶의 안정감을 찾아가자 그녀는 가족을 다시금 떠올렸다.


원래 살아가던 그 집구석이 그녀에게 충분한 만큼의 행복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시작된 모든 곳이기도 했다. 변두리, 완전하게 개발이 일어나지 않은 나라, 잘 살지 못하는 가정의 어느 한 구석. 그녀가 있던 곳이었고 또 그녀에겐 공교롭게도 지구 상의 어느 곳으로나 비용도 없이 떠날 능력이 있었지만.


긴 가출을 하다가 정신이 들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그녀는 가족들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또 이루지 못하리라, 는 막연한 생각과 그에 대한 반발심처럼 뛰쳐 나온 가출이었으나 어느 정도 목적을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녀 혼자서는 겪지 못했을 많은 일들을 겪고 또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했고,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녀로 인해서 조직에서 성공적으로 완수된 임무들도 많았고, 도움을 받은 이들도 수가 많았다.


옌은 홍인수와 앞으로도 함께 걸어가는 삶을 종종 생각하고 상상했고, 그러다 보면 자신이 놓쳐 온 많은 삶의 흔적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어느 날은 연락도 없이 오랜 시간 떠나온 집에 들러 가족들을 찾았다.


*


까무잡잡한 피부. 옌의 얼굴은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조금씩 닮았다. 체구가 그리 크지는 않았고, 아버지는 나름대로의 건장함이 있었다. 주름이 져있고 어느새 흰머리가 늘어 있는 그녀의 부모님.


봄의 계절이었지만, 태국은 여전히 햇빛이 따사롭다 못해 뜨겁고 덥다. 태국 북부의 시골. 주변으로는 농경지나 한적한 도로와, 떠도는 개들, 그리고 무성하게 자라난 풀과 갖은 나무들 따위가 즐비한 그녀의 고향 마을.


옌 쩻 티아마는 집에 불쑥 돌아왔다.


“오, 옌······! 이럴수가.”


오랜 시간 자신을 만나지 못했던 부모님의 얼굴은 약간은 야위었고, 그 눈빛에 담겨 있는 소회는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아득한 깊이감의 것이었다.


옌은 자신을 만나자마자 무너지듯 주저앉는 아버지의 무릎을 보았고, 자신을 껴안는 어머니의 손길을 느꼈다.


다소 무정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무정했다. 그녀는 마침 집에 있었던 가족들과, 언니까지 모두 만나며 많은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 그녀를 가족들이 껴안았고, 옌 역시 그 온기에 마음이 녹듯 그리고 지난 날 바깥에서 겪어왔던 다양한 두려움과 고난들이 기억이 나는지 적극적으로 손을 뻗어 가족을 껴안았다. 더듬듯이 어머니의 등께를 만지며 마지막에는 품에 얼굴을 묻었고, 낡고 오래된 시골 구석의 담장이 넘도록 소리 높여서 다 같이 울고야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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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2-4 24.05.15 9 0 13쪽
106 2-3 24.05.14 10 0 11쪽
105 2-2 24.05.14 13 1 11쪽
104 2-1 24.05.13 13 1 14쪽
103 2부. Minus. 0 24.05.13 20 1 11쪽
102 작가의 말, 후기 +2 23.01.09 91 1 3쪽
101 96. (끝) 23.01.09 82 0 17쪽
100 95. 23.01.07 53 0 21쪽
99 94. 23.01.03 49 0 22쪽
98 93. 22.12.30 46 1 14쪽
» 92. 22.12.28 48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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