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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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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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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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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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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13

DUMMY

“그런데, 옆에 계신 분들은 어떤······?”


남아불리가 영국령. 남부 총독인 그라스 남작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킬번에게 물었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대놓고 여인이 팔짱을 끼고 있는 통에,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저러고 있을 리가 없잖은가.


킬번 자작의 인물 됨됨이에 관해서. 요상한 짓을 벌이곤 하는 기인이라는 평이 있기는 했다만. 그래도 듣도 보도 못한 동양의 사내를 데리고 있는 건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번듯하니 생겨서. 새로 사귄 애인이라고 할 수는 있겠는데. 하필 황인종 사내를···. 이해가 가지 않는 꼴이어서, 남작은 킬번에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크흠.”

“브라이드번 백작을 통해 소개받은, 새로운 호위랍니다.”


김일수가 무어라 말하려, 성대를 가다듬는 새에 킬번이 먼저 입을 열어 말했다. 김일수나 민도경이 딱히 하급자는 아니었지만. 어디까지나 제국 바깥의 외인이었고, 더군다나 백인종도 아니었다.


이들의 서열 사회에서 아래쪽에 위치할 수 밖에 없기는 하다. 의뢰를 도맡아 하고 있으므로, 대등한 거래의 관계이지만. 굳이 여러 백인종들이 있는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를 내세울 셈은 없었다. 김일수도, 민도경도.


킬번이 알아서 하는 듯해서 김일수는 말을 말았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그들이었고. 제대로 된 나라의 취급을 받지 못하는, 약소국이나 반쯤 식민지에 가까운 국가의 인종들은. 백인들에게 변변찮은 대접을 받는 게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작태가 아주 배알이 꼴리기는 했으나.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그냥 넘어가는 편이다. 희가단의 단원들은.


어차피 세계에서 그들의 입지라는 게 그런 것이었으니까. 굳이 현실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다만, 도를 넘는다고 한다면 나름대로의 수단을 취할 수는 있었다. 소형화된 총포가 썩어나듯 생산되고 있는 시대일지라도. 순간이동자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암묵적인 계약으로 묶여있는, 열강이나 여러 나라들의 최고위층을 건드리는 일만 아니라면. 그리고 더군다나 자기 방호적인 이유라고 한다면. 점퍼들은 제 나름대로 비장의 수를 선보일 수도 있으리라.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중에서도. 실전과 훈련으로 상당한 능력을 갖춘 희가단의 세 사내라면 더욱이 그러리라.

솔직히 근접한 상황이라고 한다면. 상대 역시 어지간히 단련된 군인이나 전사가 아니라면 딱히 능력도 쓸 필요 없이 제압하는 게 가능했다.


백인종들, 열강들에게는 지배와 통치, 그리고 확장의 시대이겠지만. 사실 겉면을 몇 겹 까놓고 보면 야만의 시대나 다를 바가 없는 게 지금이었다. 법보다 가까운 게 주먹이었고.

그런 야만의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 김일수를 비롯한 이들은 주먹을 극한으로 단련해왔다.


킬번 자작 역시, 나름대로 배포를 갖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순간이동자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스스럼없이 몸에 손을 대거나 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킬번 자작은 딱히, 각국의 ‘최고위층’에 속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눈 앞의 총독 역시 애매하다. 정치적으로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수준의 최고위층, 들이 보통 순간이동자들의 습격에서 안전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건드린다면, 각국에서 고용하고 있는 희가단과 같은 순간이동자들이 모조리 그 범인을 찾기 위해서 움직이리라. 또 각국의 행정력, 군사력 역시 같은 일에 쓰일 테였고.


그러나 어느 정도 대체 가능한, 중간급 정도의 고위자라고 한다면. 그리고 킬번 자작과 같이, 딱히 일국의 행정력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 않은 재력가 정도라고 한다면.

몰래 처리를 해도 영길리와 사이가 불편해질 뿐. 절대적으로 그러면 안된다는 법 자체는 없었다.


아마 이 남아불리가 영국령 전체를 총괄하는 총리 즈음이 된다면, 그럴 수 없겠지만.


순간이동자가 이동을 할 때, 타인과 함께 이동하기 위해서는 신체적 접촉이 필요했다. 손으로 건드리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최대 인원 수는 손으로 건드리는 양 옆의 두 명까지.


이처럼 팔짱을 끼듯한 자세라고 한다면. 김일수가 크게 움직일 것도 없었다. 그대로 팔만 한 두 치 정도 움직이면 그대로 킬번에게 닿고.


김일수 정도로 단련된 순간이동자는 순식간에 원하는 위치 어디든, 정밀한 이동을 할 수 있었으니···.


그대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고공 따위로 이동을 한 뒤 홀로 빠져나오면 킬번 자작의 목숨은 없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내를 과연 어디까지 믿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궁지에 몰려 배수진을 치는 심정이기라도 한 건지.


킬번 자작의 생각을 다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단 그녀가 필사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라스 남작을 처다보며 이야기하는 내내. 별 것 아닌 잡담을 나누는 것 같지만 상당히 긴장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일수는. 바로 팔짱을 끼고 있었으니. 미세한 떨림이나 근육의 경직 따위도 쉽사리 느낄 수 있었다.


떨어져 봐서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 떨림이었는데. 그런 걸 보면 킬번 자작도 참 연기를 잘하는 여인이었다.


“호오. 호위라?”


그라스 남작은 이채를 띄었다. 수더분한 인상을 하고 있는 장년인이다. 키는 일수보다 조금 작았고.

조선인으로 태어나서 상당한 장한이고, 거구였다. 일수도 도경도. 본디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에 비해서 체격이 작은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은 민족적인 평균이었고. 개인에 한한다면 가끔 특이한 놈들도 있는 법이었다.


그라스 남작은 자연스레 일수를 살폈다. 다부진 체격과 호흡. 절도 있는 자세, 처럼 보였다. 별다른 움직임을 하지 않고 있는 일수였지만 말이다.

총독 자리에까지 오르고, 또 전쟁을 경험한 장년인은 나름대로 보는 눈이 틔어 있었다. 그만큼 무수한 꼴을 봤고, 제 손으로 직접 더러운 꼴을 만들기도 했던 장본인이다.


그라스 남작의 곁으로 영국령, 케이프 타운 행정부의 관리들이나 호위들이 여럿 있었다. 개들 중에서 덩치가 큰 군인처럼 보이는 작자들은 일수를 비롯해 사내들을 대놓고 노려보기도 했다.


일수는 껄끄러운 느낌이었으나. 굳이 상대하지는 않았다. 달리 입을 열지도 않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작자들과 총이나 칼, 주먹을 맞대어본 결과. 미리 티를 내는 놈들은 하수일 경우가 많았다. 정말로 위험한 부류들은 그들의 무기가 상대의 목젖에 닿기 직전까지. 조금의 티도 내지 않는 법이었다.


눈치 채기도 전에 위협을 당하고 있다면 제대로 되먹은 군인이나 전사인 것이다. 먼저 짖듯이 군다는 건 까놓고 보면 밑천이 그만큼 없다는 반증이니. 자신들의 실력을 알려주는 어리석은 행위가 된다.


그런 허장성세라도 부려야 할 때가 있기는 하다만.


“말은 통하오?”

“만나뵈서 영광입니다, 총독 각하.”


김일수는 그라스 남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답을 했다. 남작이 조금 놀라는 눈치를 지었다. 완벽한 동양인, 이질적인 황인종이 제법 깔끔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말투가 조금 투박하기는 했지만. 듣고 곧바로 이해하고 내뱉는데 아무런 지연이 없었다. 표현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웠고.


양복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제대로 말을 하고 나서야 남작은 일수, 를 제대로 사람으로 인식을 했다.


은근한 태도에서 사람을 깔보는 면이 있는 남자였다. 김일수 자신이라 하더라도. 대 영길리 제국의 귀족이자 식민지 총독이라고 하면 그런 태도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재수없는 태도가 재수 있어지지는 않는 법이었다. 그라스 남작에 대한 첫인상은 불쾌한 감정이었다.


“우리 말에 유창하군. 어디서 온 누구신가, 물어봐도 되나?”

“동양의, 조선··· 대한이라는 나라에서 온 객입니다. 브라이드번 각하의 의뢰를 받아 킬번 자작님의 호위를 맡게 되었죠.”

“허, 조선.”


그라스 남작은 의외로, 들어본 적이 있는 듯하다. 어지간한 양인들은 말을 해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들은 나름의 학식을 겸비해야만 하는 걸지도.


“먼 곳에서 왔군.”


그라스 남작은 그리 말하며, 김일수나 그 뒤의 민도경을 훑어본다.


시내에서 만난 그들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로변에 서서 그대로 잠시 더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헤어졌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썩 반가운 만남만은 아닌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킬번 자작의 굳은 듯한 태도가 가장 신경이 쓰인다. 이처럼 발작적으로 반응을 하고 있으면. 별다른 일이 없어도 괜스레 안좋은 인상이 생기고 만다.


일행의 기분이라는 건 전염이 되게 마련이니까.


그렇게 전염되는 감정만으로 사태를 파악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만. 완벽하게 배제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더러운 치들을 만났군.”

“······.”


김일수는 팔짱을 낀 팔을 슬며시 놓는 킬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대로변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귀가 있었는데. 총독 일행과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서 대담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킬번이라는 여인에 대해서 더 헷갈리는 듯했다. 배짱이 좋은 것도 같았고. 처세에 능한 것도 같았고. 대책이 없는 것도 같았다. 그냥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별 생각이 없는 여인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시대에 홀로 가문을 이끌고 살아남는 건 불가능하리라.


영길리의 귀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오히려 강대국의 세력가이기에 더욱 어려운 일일 거다. 갖고 있는 게 많을수록 꼬이는 벌, 파리, 뭐 그런 것들이 많은 법이었고. 지키기가 힘들어지는 게 세상의 순리였으니.


단순히 운만으로 킬번 자작이 여태까지 살아남았다고 보여지지는 않았다.


“마저 가지.”


킬번은 옆에 서 있는 김일수를 보면서 싱긋 웃었고. 장난스러운 제스쳐로 그의 팔을 슬쩍 잡아 이끌었다.


민도경은 뒤에서 군말 하지 않고 그저 따르고 있었다.


묘령의 여인, 강대국의 귀족이자 남편도 없는 부인에게 총애를 받는 것이 부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추호도 말이다.

도리어, 김일수의 신변이 조금 걱정스럽기는 했다.


앞에서 달콤한 말을 하고서 뒤로는 칼을 찌르는 이들이 널린 것이 세상이다. 킬번 자작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애시당초 의뢰를 준 브라이드번 백작부터 시작해서. 달리 그들의 믿을만한 우군같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잊지 않는 건 언제나 중요하다. 그네들은 변방의 소국.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추락해가는 어느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이었다. 가진 바 개인의 재주들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이 세상과 사회의 계급에서, 가장 밑바닥이랄 수 있는 위치였다. 조선에서야 양반가의 자제 출신이라고 하지만. 대한제국에서조차 그다지 알아주지 않는 신분을, 외국에서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주겠는가.


사태가 급변하면 언제 버려질 지 모르는 입장들이었다. 그네들은. 그래서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죽자사자 익혀 온 여러가지 잡기들이니.


민도경은 잘 차려입은 양복 품이나 소매에 다양한 암기들을 숨기고 있었다. 그의 뒤로 건장한 백인 호위와, 흑인 호위가 있었는데. 그들과 킬번 자작의 사이에서. 민도경은 계속해서 그 암기들을 의식하며 어떻게 하면 가장 편하게 던질 수 있을까, 를 생각하고 있었다.


총독과의 대화 속에서 긴장감이 치솟을수록 말이다.


따가운 땡볕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케이프 타운, 남아불리가의 햇볕은 영 적응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이전에 들렀던 동남아 지방의 왕국들에 비해서도 극심한 것 같았다.


하도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만나고 다니니 크게 놀랍지는 않지만. 삐질거리며 솟는 땀은 불편한 것이었다.


킬번 자작은 김일수가 믿음직한 사내인양 붙어서, 그를 이끌고 시내 여기저기를 들렀다.


자작 나름대로 만나야 할 인물들이 깨나 있는지. 사업 상의 동료로 보이는 이들과 안부를 묻고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그 날은 그렇게 낮의 일정이 마무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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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2-2 24.05.14 13 1 11쪽
104 2-1 24.05.13 13 1 14쪽
103 2부. Minus. 0 24.05.13 20 1 11쪽
102 작가의 말, 후기 +2 23.01.09 91 1 3쪽
101 96. (끝) 23.01.09 82 0 17쪽
100 95. 23.01.07 53 0 21쪽
99 94. 23.01.03 50 0 22쪽
98 93. 22.12.30 46 1 14쪽
97 92. 22.12.28 48 0 16쪽
96 91. 다시, 봄 22.12.26 43 1 14쪽
95 90. 22.12.23 47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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