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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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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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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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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3

DUMMY

*


김일수는 도경이 꺼내든 물건을 살펴보았다.


‘자료’는 종이다발로 되어 있었다. 가죽 주머니 안에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 그 내부에 얇은 금속판이 있었고, 철판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제법 많은 양의 문서들은 불어와 영어가 혼용된 듯한 느낌이었고.

주요한 부분들은 알 수 없는 암호의 나열로 적혀 있었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한 부분들도, 사실은 암어暗語의 조합일지 몰랐다. 이런 식이라면 아마 관계가 없는 놈들은 정보에 대해서 모를 테였다.


자료를 빼돌린, 죽은 순간이동자 역시 그랬을 거고.


결과적으로 기밀을 얻었던 영국 측이라면 모르겠다. 프랑스도 대단한 열강列强 중 하나였지만. 영제국은 더하지 않는가. 프랑스, 불란서와의 정보전을 벌이면서 해당국의 암호들 몇 종 정도는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쨌든, 요는 불란서 황실의 입장에서. 기밀 자료가 바깥에 있는 것이 찜찜하다는 이야기였다. 그 때문에 일수와 도경이 파견된 것이었고.


자료에서 읽을 수 있는 부분에는 대단한 것이 적힌 게 없었다. 프랑스 왕실 내 관리들의 조직도가 적혀 있었는데. 관직 명과 이름 따위가 있었지만 그게 사실이라고만 볼 수도 없었고. 큰 의미가 있는가, 싶은 정보였다.

그 외 황실에서 주관하는 여러가지 제의祭儀, 행사에 대한 정보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일단 얻기는 했다. 달리 기밀이라고 할만한 자료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주인장에게 돌려주고 나면, 알아서 하겠지.

만일 이게 아니라고 한다면 다시 마을들을 뒤져야 할 것 같았지만. 하는 만큼만 하면 될 일이었다. 없는 문서를 가져오라고 하는 거라면 일수로서도 별 수가 없었고.

타국의 황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맹목적인 충성을 보일 이유도 없었다. 심지어 자국을 위해서도 말이다.


맹목적 믿음이란 멍청한 짓이었다.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을만한 확실한 근거나, 뚜렷한 신뢰가 이미 존재한다면 모를까.


알 수 없는 걸 안다고 말하는 건 허풍이고. 그대로 걸어가는 것은 만용이다.


일수로서는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기도 했다.

그가 걷는 길은 지도가 달리 있지 않았으니까. 혼란스런 시대에서는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더라도 큰 일인 법이었다.


“···이 곳···은 어찌합니까.”

“글쎄다.”


도경의 물음에 일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일단 얻을 건 얻었다.


다행히 천운이 따라 쉽게.


바깥에 있는 작자들과 드잡이질을 했어야 했다면 골치가 아팠을텐데. 다행히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벌컥-.


바깥으로 통하는 오두막의 문을 바라보며 그리 생각을 했는데, 그게 열렸다.


두 사람은 건드리지 않았고. 바깥에서 안으로.


“เฮ้ ชาวเกาหลี ถึงเวลากะแล้ว(어이, 한국인, 교대 시간이다-.).”


알 수 없는 꼬부랑 말을 지껄이며 들어온 것이 한 사내였다. 허리춤에는 투박한 곡도. 등허리에는 총포가 하나 매달려 있었다.


하.


일수는 도경을 슬쩍 쳐다보았다.


도경도 일수를 보았고


“อะไร!(뭐야)"


라는 소리를 치는 놈이 황급히 총을 빗겨 풀며 들었는데.


총구가 낯선 두 사내를 향하기 전, 일수의 모습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도경도 곧장 바로였다.


우웅.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두 사내의 신형이 감쪽같이 오두막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들고 있던 문서들도 마찬가지였다.


”······.”


태국인 사내. 람트랑은 귀신에라도 씌인 것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듣던’ 것과 실제로 보는 일은 많이 달랐으니까 말이다.


혹시나 그럴 지도 모른다며,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지체없이 총을 쏘라는 명령과 훈련을 받은 그였다.

다른 사내들도 마찬가지였고.


방아쇠를 채 당기기 전에 일이 이미 끝나버렸고.


갑작스런 소란에 다른 경계병들이 오두막으로 몰려들었다.


*


“그래서 놈은 어떻게 됐수?”


도경의 물음에 일수는 슬쩍 옆을 처다보았다. 존댓말을 하지 않는 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전 상황에서 꼬장을 부리지만 않으면 된다.


한가로이, 어느 언덕에 앉아 바람을 맞던 일수는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뭐, 만식이?”

“어··· 예. 동포 말이우.”

“···보내줬지.”

“저세상으로?”

“이 새끼야.”

“아니···.”


당연히 그 말인줄 알았지, 하는 표정으로 도경이 항변을 했다.


그들의 위로 푸른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


프랑스 남부 지방에 있는 어느 들판과 언덕이었다.


기후의 변화가 뚜렷하고, 그리 메마르지도 않은 땅의 바람이었다. 풀들이 가지런히 누웠다가 섰다가를 반복한다. 멀리 보이는 건 어느 포도밭의 어귀이기도 했고.


호사豪奢라고 생각했다. 김일수는. 이런 경치를 누리는 게 말이다. 확실히 그럴 테였다. 한반도에 있는 동포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험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누릴 수 있었으니까. 순간이동이라는 건 그리 강력한 힘이다.


옆에 있는 멍청한 놈은 그걸 제대로 자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살고싶다 하길래 조선땅에 풀어주었다.”

“어이구.”


어째서 그러셨소, 하는 물음이었다. 도경의 군소리는. 그러나 굳이 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불살不殺을 지향하는 게 이들의 목적이기도 했다. 뭐, 어디까지나 ‘어지간’할 때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서도 그런 논리를 내세우지는 않았다.


“이제는 한국, 대한제국이지 않소?”

“그래, 한국 땅 이 새끼야.”


일수는 핀잔을 주듯 건드리는 도경에게 발길질을 하고 싶었으나. 조금 떨어져 앉아 있었으므로 관두었다. 그깟 일에 궁둥짝을 떼는 것도 번거로웠고. 순간이동의 횟수를 하나 사용하는 건 더 사치스런 일이었다.


“···황실에서는 뭐라오?”


불란서 황실. 프랑스의 고관과 직접 이야기를 나눈 건 결국 김일수였다. 도경은 얼굴을 비추기는 했으나 곧 바깥으로 빠졌고.

열강의 황실이라는 건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별다른 절차적 문제가 없더라도. 이야기를 듣는 건 최소 인원이 되기를 원하곤 했다. 직접 황제의 얼굴을 보는 건 어려웠고. 그 아래에 있는 실무자와 길게 이야기를 덕분에, 나누고 온 김일수였다.


두 사람은 전근대 조선 땅에서 태어나 자란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격동의 시기를 거쳐서인지. 천성이 그런 편인지. 혹은 갖고 있는 순간이동의 능력이 워낙 괴랄해서 그런지. 어딘가 비뚤어진 구석들이 있었다. 품성에.

일반적으로 사대부라고 하는 양반들이 보기에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적인 감각으로 보자면. 두 인간은 진보한 사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을 사상이라고 따로 정립하지는 않았으되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단신單身 꼴로 세계를 누비지도. 또 그러다가 타국의 황가나 왕가에 대해 쉽게 말하고 생각하지도 않거나 못했으리라.


세상을 우습게 보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다만, ‘옳게 본다’고 믿고 있었다.

천주天主의 사상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모두 동등한 법이었다. 서양 어느 곳에서부터 시작이 된 건지. 기어코 조선 땅에까지 흘러 들어온 종교적인 가르침을 건너 들은 김일수였다. 그에 영향을 받은 민도경이었고, 또.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런 사상에서 보았을 때. 이전까지 전근대적 사상으로 일컫던 ‘왕’의 개념은 많이 누그러진 게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타국 황실의 인간들은 어디까지나 협상의 대상이었지. 신비롭고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들이 아니었다.


“뭐라긴. 뭐··· 맞게 가져왔다고는 하더라.”


김일수는 발라당, 뒤로 누워버렸다.


손깎지를 끼고 뒤통수를 받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편안하다. 안락하다.


바람은 딱 좋은 정도의 선선함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두 조선인, 한국인 사내는 꿈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이국 땅에 디비 누워 풍광을 즐겼다.


“아무튼 일은 이걸로 끝이고. 자세한 사정에 얽힐 건 없으니 말이야···. 알려주지도 않을 셈들일 테고···.

우리야 입장을 내세워서 신용을 벌고···. 또 여러모로 행동을 하면 그걸로 족할 뿐이다.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도 말고, 이룰 생각도 말어야지···.”


김일수는 풀밭에 드러누운 채로 자조적인 말을 중얼거렸다.


순간이동자瞬間移動者.


점프Jump라고도 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은 분명히 대단한 존재들이었다. 아니, 그 존재가 대단하다기보단. 단순히 그 능력의 대단함이다.

그러나 그 능력이 담긴 그릇은 범상한 인간에 불과했다.


김일수와 민도경은, 그래서 죽도록 단련을 하기도 했다. 평범한 몸뚱아리로 다양한 일을 겪어내는데 어려움이 있으니.

다행히 타고난 체격과 힘을 살려서 다양한 무술을 수련했고. 여러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내성을 길렀다. 덕분에 김만식을 괴롭힐 때처럼 무수하게 많이 순간이동을 하면서 혼을 빼놓을 수도 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가졌고, 단련 여하에 따라서 여럿을 압도할 수도 있었지만.

세계世界라는 건 너무나도 거대한 판이었다.


고작해야 몇 명의 초능력자들이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김일수와 민도경은 늘 고민이 많았다. 개중에서도 김일수는 더욱.


조선, 한반도. 한국 땅에 모여 있는 순간이동자는 셋이었다. 그들 외에도 더 있을 수는 있었지만. 어찌저찌. 우연히 모여든 초능력자는 셋에 불과하다.

둘은 김일수와 민도경, 한국인이었고. 한 놈은 양놈이었다.


김일수는 나름대로 수완이 있는 사내였고. 순간이동 능력자 셋과 그들의 일을 좀 도와주는 민간인들 몇을 더해 그럭저럭 품위는 있는 조직 구성을 만들어 두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저 혼자 살겠다고 지나친 주책을 부리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도움은 될 것이다. 시대적인 사명에도.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 순간이동자가 대단한 일을 할 수는 없어도. 나름의 역할 정도는 있을 테였다. 김일수는 그리 생각하며 모든 일을 했다. 이곳저곳, 열강의 황실, 조정, 정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신뢰를 쌓는 것 역시.


언젠가는 나라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


“다음 일은 언제입니까?”

“글쎄다-.”


김일수는 떠가는 구름을 보며 한탄처럼 답했다.


앞 날은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순간이동을 한다지만. 그들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공간 뿐이었다. 시간時間과 시간 사이를 옮겨 다닐 수는 없는 게 순간이동자의 한계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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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1 24.05.13 13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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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96. (끝) 23.01.09 83 0 17쪽
100 95. 23.01.07 54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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