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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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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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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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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5

DUMMY

"여긴, 어인 일이오."


무겁게 뇌까리는 자는 이용소라고 하는 인간이었다.


어둔 방 안.


주인의 마음마냥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었다.


그 안의 가구라거나, 내장재들은 모두 아름다운 것으로 지어진 방이었다. 한옥의 내부였으나. 양식 가구들 따위로 채워져 있었고. 마치 양옥을 동경하는 양 그런 구조와 배치로 되어 있었다.


본디 좌식 생활이 자연스러운 옥내외 구조였으나. 바닥에는 양모 깔개를 넓게 깔고. 양식으로 깎아 만든 탁상과 의자 따위를 놓았다.


사람이 사는 방보다는 넓은 궐의 느낌이기도 했다. 그렇게 꾸며놓으니 말이다.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는 한성의 어느 저택 안이었다.


저택의 주인인 사내는 아직 중년이라 하기에는 조금 젊은 나이였고. 청년기를 지나고 있는 무렵이었다.


가문의 위세를 이른 나이에 얻은 사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평범한 방식으로는 젊은 나이에 얻기 힘든 정도의 가세였으니.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리라.


혹은 나라의 영웅이 되어서 조정으로부터 하사를 받았을 수도 있기는 하다.


작금은 난세였고, 영웅이 되기는 지극히 어려운 때였다.

그러나 그 사이를 비집고, 존재감을 키우는 이들은 또 있다.


눈치 빠른 자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조선, 대한제국은 이곳저곳이 부실하고 무너진 배였다. 그간 지내온 세월이 길기에 한 번에 무너지거나 전복될 수는 없는 땅이며 국민들이었지만. 살아날 방도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라의 안위는 신경쓰지 않은 채.


거짓된 가면을 쓰고 자기의 잇속만 챙기는 작자들이 더러 있었고.


영웅은 못되었으나 모략가 정도는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것이 개중 이용소였다.


양식으로 차려입은 천옷에 단정하게 자른 머리칼과 수염.


서양에서 가져온 등을 켜서 불을 밝히고 있었고.


고즈넉한 양식 원목 책상 앞에서 누군가를 마주하고 있었다.


30대 후반 정도의 인상으로 보이는 이용소와 대담을 나누는 건, 나이를 다소 많이 먹은 양반이었다.


한복을 걸쳐입고 돌아다니는 양반네들의 모습은 아직까지 흔한 것이었다.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는 와중이라고 하더라도. 꼿꼿한 모습을 하고 부러지지 않으려 하는 이들의 절개, 혹은 고집은 여전했고.


또한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양식을 모조리 바꾸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박우선이라 하는 인간이었다. 이용소의 앞에 앉은 장년인은.


덥수룩한 수염을 길렀고. 갓을 쓰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그 눈빛은 형형하다. 안색은 다소 퀭한 구석이 있었고. 거칠고 주름진 피부가 조금 더 날카로운 인상으로 보이게끔 한다.


본디 조정에서 일을 하던 양반이었고. 대한 제국으로 국호가 바뀌며 다소 강등이 된 인물이다. 이용소는 젊은 나이에 해외 열강과의 외교적 소통에 공을 세웠다는 명목으로 외부(외교부) 높은 자리에 올라 있었고.


못해도 정3품 위, 당상관堂上官의 자리에는 있을 궁내부 쪽의 영감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한직으로 밀려나 궐에 있는 낡은 창고 건물 몇이나 맡고 있는 처지였다.


나라가 어수선하니 쓸데없는 관직들은 줄이게끔 되어 있었고. 새로운 문화, 문물, 기술들을 가져올 이들에 대한 우대가 컸다.

그렇게 조선, 아니 대한제국과 황실에 갖가지 문물들을 들여오겠다는 작자들 중에서. 사기꾼이 아닌 이들을 걸러내야 하는 게 관건이기는 했으나.


대한제국을 선포한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자 초대 황제는 눈이 어두웠다.


젊은 나이인 이용소를 외교부의 협판協辦(장관 아래, 차관직)으로 세운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 이용소가 나름대로 재기 넘치는 젊은이이고 양반가의 자손이자. 일본 제국 쪽에 연이 닿아 있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직위는 협판이었으나 실질적으로 궁내에서 입김을 미치는 것은 그 이상이었다. 그가 주도하는 세력이 제법 컸고. 그는 나름대로, 대한제국의 변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상당한 무리들을 규합할 수 있는 작자였다.


그의 단순한 직책보다도, 뿌려대는 사상의 급진성이 그리 만들었다.


실질적으로 이용소가 하는 말은. 파고들어보면 대한제국의 멸망을 암시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결코 그런 생각을 직접적으로 뱉지는 않지만. 그가 어울리는 자들의 생각과 사상을 보노라면 그러했다.


조선은 저물어가는 별이자, 파선한 배라고 보고 있었고. 그것은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바뀐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이용소는 단호하게 생각을 했다.


빨리 어느 열강이든 동앗줄을 잡아서 기생해야 한다는 투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고. 고종高宗의 바람이나 꿈과는 정반대의 의견을 늘 내놓는 인물이었다.


사실 고종 황제조차도,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거라 여기진 않을 듯했다. 이용소가 보기에는 말이다.


제각기 살 길을 찾아야 하는 난세이다. 이용소는 누구보다도 그런 움직임에 밝았고.

자신만만한 간웅의 아래에, 몹쓸 것들이 자연스레 모이고는 했다.


어려운 얼굴로 이용소를 찾은 박우선은 애매한 작자였다.


가문의 위세는 아직 남아 있고 재산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궁내부라 할 수 있는, 궁 안의 살림을 돌보는 곳에서 나름대로 입김을 내던 작자였고. 그가 관직을 하는 세월동안 남몰래 축적했을 재물도 꽤 있으리라.


권력의 변화된 구도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기는 했으나. 뽑아먹을 것은 있다.

그러나 함께 재기 넘치는 얼굴로 난세를 헤쳐나가기에는 의문스런 구석이 많다. 그 파도를 제대로 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저런 얼굴과 표정을 한 이들은, 대개 끝이 좋지 못했다. 이용소는 그리 생각을 했고. 자신의 생각이 높은 확률로 맞다고 여기고 살고 있었다.


그 감 하나로 어린 나이에 이렇게 넓은 저택에 살고 있지 않은가.


아비를 잃고 홀어머니 하나 모시고 있고. 아내와 자녀, 그리고 가신들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 책임이 과연 어디까지 갈런지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이용소는 스스로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여기는 중이었다.


파선하는 배에서 도망쳐나온, 작은 구명선.


이용소는 자신을 그리 보았다.


그 구명선에 탈만한 인물들은 한정적이어야 했다. 크기가 좁은 곳에 너무 과밀한 인원을 채우면 결국 모두 다 죽는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다 살리는 방법 따위. 이용소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내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왔네만···.”

“왔네?”

“아, 협판 어른께 말이 짧았구먼···.”

“크흠.”


이용소는 답잖은 소리를 내면서 어르신을 겁박했다. 자신보다 열 몇 살은 더 많을만한 장년인이었지만.


난국에 기세를 타고 오르는 중인 청년은 거칠 바가 없었다. 당장 외부에서 대신大臣직을 지내는 대감에게조차 눈치를 별로 보지 않는 인물이었으니.


외부대신이 자리를 비울 때는 곧장 그가 대신 이상으로 활개를 치기도 한다. 그러라고 있는 자리가 협판이기는 했으나. 보통 돌아올 상관의 눈치 정도는 보는 법이 일반적인데.


이용소를 비롯한 식민植民론자들은 은연중에는 황제까지 무시를 했다. 결코 티는 내지 않았으나. 아주 내밀하게 세어나오는 태도가 있기는 하다.


심지어 궁 내에서도 말이다.


타닥.


등잔 위의 불꽃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는 바람이 분다.


원래 한옥으로 지어진 협판, 이전의 관직명으로 참판의 집이었으나 이용소가 여기저기 손을 보았다.


양식洋式의 등과 재래식의 등잔불이 함께 있었고. 내부 가구들은 서양풍이나 저택의 외견과 바깥 구조는 결국 변치 않는 한옥이었다. 여전히.


문을 조금 보강해두었으나 그 너머로 바람 부는 소리가 잘 들렸다.


창문을 다 닫아두었는데. 오늘은 밤이 밝은 날이었다. 보름은 아니어도 그 근처로 찬 달빛이 어둠을 조금이나마 지우는.


협판이 일을 보는 방 근처에는 시종들이 잘 오고가지도 않았다. 특별히 부르기 전까지는.


바람 소리만이 있는 고요함 가운데서 어렵사리, 장년인이 말을 붙였다.


“내 이렇게 부탁함세···.”


형형한 눈빛. 마른 체격. 이전에는 나름대로 위세를 떨쳤을 양반이었으나. 그 표정에 비굴함마저 깃들었다.


그는 자신이 살 방도를 찾기 위해서 어린 고관을 찾아온 것이다.


양반가의 법도, 유교적인 도리로 보자면 어울리지 않는 짓거리였으나.


박우선에게도 식솔들이 있었다. 그 또한 멍청한 인물은 아니었고.


나름대로 고심을 했고.


현 황실 내에서 가장 유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 알아본 것이다.


물론 관직 상으로나, 혹은 대놓고는 이용소가 난리를 치지 못하지만.


그가 대한제국의 각종 관직 체제니 뭐니 하는 것들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용소는 양반가의 자제로서 개혁론자였고. 그를 위시하며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이 늘 황제에게 진상을 올리기도 하며. 지난 조선 말부터 시작해서 무수한 입김을 내뱉어 실제로 이루어낸 바가 많았다.


나라는 넘어지려는 자세를 계속해서 바로 가다듬어 서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위를 차지하고 있는 관리들의 눈은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당장 황제의 시야조차도.


어디로 가야 진정 살 수 있을까. 이 조선 땅을, 대한제국을 살릴 수 있을까. 생로生路가 과연 있기는 한가.


그런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면 캄캄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차라리 아양을 떨듯 굴어 좋은 식민이 되자,


는 식의 괴팍한 논리마저 국정 운영의 회의 중에 나오기까지 하는 형국이 작금이었다.


협판이 직접 입으로 내뱉지는 않으나 대신들의 입에서 간혹, 돌려서 나오는 그런 망할 소리들의 출처가.


이용소라는 인물의 사상임을 당장 박우선도 눈치를 챘고.


“혹시 큰 나랏일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을지 살펴보고···. 나를 좀 기억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협판 영감.”


박우선은 차라리 노골적으로 나왔다.


그의 한복 품에서 나온 것이 작은 주머니였는데.


곱게 수놓인 비단 주머니 속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보석류가 아닐까 싶었다. 잘 세공을 한 가락지라거나.


“허, 참.”


이용소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눈꼬리는 조금 휘었다.


박우선은 몸을 구부리지는 않았으나.


거진 굽신거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태도로 어린 협판 앞에서 아양을 떨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밤이 깊어지도록 쓰잘데기 없는 담화가 함께 무르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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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판타지 소설로,


실제 역사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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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4. 23.01.03 49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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