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크래피의 상상극장.

내 꿈은 지구정복이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일반소설

새글

김상준.
작품등록일 :
2024.08.12 15:17
최근연재일 :
2024.09.18 11:0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7,860
추천수 :
285
글자수 :
238,884

작성
24.08.19 11:00
조회
222
추천
7
글자
13쪽

럭키가이

DUMMY

일주일이란 시간을 보냈다.

삼일을 첫날같이 새벽 7시에 출근했더니 그것이 내 출근 시간이 되어 출근도 당겨지고 퇴근도 당겨졌다.

첫날의 힘겨움도 이틀 삼일이 지나자 조금씩 익숙해졌다.

가장 힘든 건 역시 점심 타임이었고, 그것 외에는 냉동실에서 재료들 가져오거나 무거운 것들을 옮기거나 크게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잘 한다고 칭찬을 들을 땐 기뻤고 실수해서 혼날 땐 의기소침해 지기도 했지만. 결국 사회생활도 공부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내가 할 것만 제대로 해내고 있음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걸 차츰차츰 알게 되었고. 그때쯤부턴 무슨 일이 생겨도 흔들리지 않고 주방식구의 한 사람이 됐던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을 움직이고 있단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아서 어느날 문득 어떤 신체 건강한 사람들이 오더라도 자리를 뺏기지 않토록 매일매일을 보냈더니 나도 모르게 한 달이 훌쩍 지나있었다.


"우와... 이게 얼마냐. 일십백천"


그렇게 첫 월급 258만 원이 통장에 꽂혔다.

제대로 일하면 어른 월급을 준다고 했는데, 진짜로 엄마가 버는 돈 만큼을 내가 벌다니.

통장에 찍힌 돈을 보면서는 오랜만에 희망이란 걸 느꼈다.

어쩌면 정말 가능할 지도 몰라. 벌써 두 달 가까이 아무 의식도 없지만. 이런 병일수록 시간이 약이라고 하잖아.

엄마가 들어놓은 보험비에 내가 버는 월급. 그리고 저축 된 돈들을 합치면.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내 생활비는 아무리 많아봐야 2~30이면 충분할 것 같으니까. 10년이 걸려도 좋으니 한번 해볼까?

10년이 지나 어느날 엄마가 갑자기 눈을 뜨고. 다 큰 나를 보면 깜짝 놀라겠지만 나는 또 너무나 의젓한 어른이 되어있고 그런 모습을 상상해 봤다.

기분이 좋았다.

난 럭키가이니까 다 잘 풀릴거야 같은 여러 희망찬 생각에 빠지며 잠이 들었다.

황금 고깃집은 월요일에 쉬는데, 이제는 쉬는날이 되어도 반사적으로 눈이 뜨여 아침을 시작하게 된다.


"더 잘까? 쉬는 날인데."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가, 진짜 오랜만에 집에서 빈둥빈둥 아침을 보냈다.

밀렸던 빨래나 청소도 하고 이제는 몸도 완전히 주방에 익숙해진만큼 집안 살림을 하는데도 크게 어려움이 없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집 청소하는데만도 몇 시간이 걸릴 건데 이제는 10분이면 청소기에 걸레질까지 끝내니.

시간을 많이 번 만큼 오늘 하루는 마음 편하게 보내기로 작정하고 있는데.


"잠깐만. 여유도 뭔가 먹어야 여유지. 뭐가 있나?"


조금 허기짐이 느껴져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역시나 벌써 두달 째 엄마는 병원에 입원중이고 나도 딱히 가게에서 밥 먹고 오느라 집에 먹을 게 거의 없었다.

오래되어 쉰 내가 세어나오는 김치. 그보다 더 오래된 시장에서 산 깻잎들. 언제 유통기한이 끝난지도 모를 양념장들.

전에는 이런 것도 아껴야 한다며 대충 라면 하나 사다 끓여 먹고 치웠지만 오늘은 돈이 있으니까. 사치를 부리자는 게 아니야. 통조림 몇 개는 있어도 되겠다는 거지.


지갑을 들고 동네 마트를 향해 나왔다.

5월 초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하늘을 보는데, 갑자기 알바 퇴짜맞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날도 이렇게 하늘을 봤었는데. 하는 게 떠올랐다.


"그게 벌써 언제냐. 그때 비하면 지금은..."


여러 생각이 스쳐간다.

만약 그날 길조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장 대표님과의 면접에서 전 동정받기 싫어요. 같은 고집을 부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면...

가슴이 두근 거렸다. 어떤 선택을 골랐든, 결국 사는대로 살았겠지만. 지금은 먹고 살 걱정을 안 하니까. 그것만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교복을 입고 집에 가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직 점심도 안 된 시간인데 집을 간다고? 아. 시험 기간이겠구나. 5월 이때면 시기상으로 여기저기 중간고사 기간이니까.

우리 학교도 지금은 시험 기간이겠지. 만약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면 난 무엇을 목표로 공부했을까? 반에서 1등? 아니면 서울대 진학반? 그냥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교복 입은 애들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을 느낀다.

그래도 내가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나는 그냥 평범하지 못 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다른 애들보다 조금 빠르게 움직일 뿐인 거야. 아쉬울 건 없어. 이런 게 사회인의 감각이라는 거 아니겠음?

처음엔 조금 어색했던 이런 긍정적인 사고도 한 달을 내내 그러고 다니니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참치가 뭐 이렇게 비싸. 스팸은 쳐다도 못 보겠네..."


큭큭. 뭐하냐? 왜 누구 들으라는 식으로 떠들어? 미쳤어?

그래도 이런 게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니까. 괜히 혼자 돈 벌었다고 우쭐한 기분내는 게 아니라 진짜 그런 마음이 든다고.

장난은 적당히 치면서 장을 보았다.

258만원 월급을 받은만큼 평상시 먹어보고 싶었던 소세지도 몇 개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어? 네. 길조 형."

-밖이냐? 오늘 가게 쉬는 날 아니야?

"맞아요. 형네도죠?"

-우리도 월요일은 쉬지. 다른 가게들도 다 오늘 쉬는 날일 걸.


오랜만에 길조 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형 말대로 GOLDSEA 가게들은 일률적으로 월요일날 쉬니까 서로 편하게 전화라도 하려면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


-새끼. 존나 잘하고 있다며?

"어? 어떻게 아세요?"

-어제 가다가 대모님 만나서 여쭤봤지. 중길이 일 잘하냐고.

"하하! 형 그거 유정 이모가 자기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엄청 뭐라고 하던데요?"

-안 돼. 불러야 돼. 너 대표님이 그분 얼마나 어머니 같이 모시는데.

"그래요? 유 대표님이요?"

-알어? 그분 본 적 있어?

"모르죠. 하지만 저도 건너건너 이름은 듣죠."


천 사장님과 장 대표님. 그 위에 있는 진짜 GOLDSEA의 오너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있다. 유진혁 대표님인데, 젊은 나이에 엄청난 자산가로 요식업을 일궈낸 사람이다.

주방식구들에게 듣기론 우리 같은 식당들 말고도 다른 분야로도 다양한 사업을 확장하는 분이라는 것 같다.


-너 대모님이 옛날에 대표님 사장님이었던 건 아냐?

"그래요? 그건 몰랐네."

-그러니까 대모님이라고 해야 돼. 우리 사장님도 그분 앞에서 아무 말 못 하는데. 진수 형도 어려워 하고.


오오... 뭔가 아는 거랑은 또 다른... 그냥 수더분한 얼굴에 카운터 보는 아줌마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대모님이라고 해야겠구나.


"형. 그런데요. 대표님은 어디 계세요?"

-아. 왜 사람들이 말 안 해줘?

"어른들 얘기만 들었지. 딱히 대화에 참여해 본 적은 없어서요. 장 대표님도 한 번씩 식사하러 와서 보는데 그분은 통 볼 수가 없으니."

-못 보지. 감옥에 있는데.

"네???"

-하하하! 아직 감옥은 아닌가? 아무튼 재판 중이라고 알고 있어. 구치소에 있을 거야.

"왜... 왜요? 대체 뭘 잘못 하셨길래...?"

-잘못 하긴. 잘못한 거 없어. 그냥 성격이 존나 화끈한 양반이야. 미쳤어 그냥.


감옥 간 사람을 뭐 이렇게 좋게 말하나 했더니 나름의 배경이 있었다.

언젠가 황금 고깃집에 아주 큰 일이 벌어졌단다.

식당은 미성년자에게 고기는 팔 수 있지만 술은 판매 할 수 없는데, 그런 약점을 이용해 쓰레기 같은 놈들이 와서는 먹고 마시고 돈 못 내겠다고 행패를 부려댔다.


"그래서 팼어요...?"

-어. 불판으로 팼다는데, 나도 소식 듣고 가게에서 막 뛰어왔는데, 그땐 이미 사건 끝났더라고. 뉴스에도 나오고 그랬었어.

"허우..."

-아무튼, 그날 이후로 지주동에선 미자 새끼들 못 깝치지. 씨발 남자는 그런 맛이 있어야지. 안 그러냐?

"아. 그래서 그때 그렇게 내가 알바를 못 구했구나. 어쩐지. 고등학생이라면 다들 학을 때더라니..."

-하하! 근데 결국 넌 황금 고깃집에서 일하니까 된 거 아니냐?

"하긴 그렇네요. 저야 고맙죠."

-아무튼, 오늘 뭐하냐? 형이랑 그때 그 짜장면 집이나 갈래?

"좋아요. 어? 근데 형 잠시만요. 저 전화 좀 받고. 엄마 병원 같은데."

-그래. 끝나고 전화해라.


병원에서 온 전화는 무조건 받아야 한다.

혹시나 무슨 차도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 들뜨고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네. 선생님."

-아. 여기 병원이에요. 김영아 님 보호자 되시죠?

"네? 어. 네."

-원무과에요. 방금 어머니 임종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 전해드려 죄송합니다. 장례 준비하시고 병원으로 와 주세요.


요 며칠 아니 근 한 달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두근대던 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엄마가 돌아가셨단 소식에 왈칵 눈물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장례준비는 뭘 챙겨야 되지? 그런 현실적인 문제만 신경쓰였다.


"어... 예... 알겠습니다."

-저. 의료진에서 전달받기를 보호자 없이 혼자라고 들었는데. 누구 어른들 안 계시나요?

"네. 없어요."


그래. 우선 카드를 챙기자. 병원비 내야지. 엄마 카드가 있으니까. 일단 그걸로 그동안 치료받은 병원비 내고. 그리고. 그리고...


"어... 그..."

-네. 또 뭐 궁금한 거 있나요?

"아니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슨 마음인지 모르지만 괜히 교복입은 애들을 한번 돌아보았다.


"..."


좋은 것만 취할 순 없지. 새삼 현실의 무게를 느낀다.

그래도... 모르던 거 아니잖아.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자리를 잡고 했던 거니까.

일단 빨리 집으로 가서 엄마 지갑이랑 챙기고.


주섬주섬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뒤적이는데, 그 사이 길조 형에게 부재중 통화가 다섯 통이나 들어와 있었다.


"네. 형."

-야 넌 왜 이렇게 전화가 안 돼? 방금까지 통화해놓고.

"아. 그게... 엄마 병원 좀 가봐야해서."

-왜? 뭔데? 어머니 안 좋으시데?

"그게 아니라... 돌아가셨대요..."

-...어?

"그래서. 형. 저 오늘 저녁 못 먹을 거 같아요."

-아. 씨발 지금 저녁이 뭔 상관이라고... 어디냐? 형도 갈게. 어디야?

"에이 형이 왜 와요..."

-가야지!!! 왜? 어딘데? 한양대. 한양대 맞지? 너 그때 어머니 병원 근처라고 했었잖아.

"네... 맞아요."

-알았어. 울지 말고 있어. 형이 갈 테니까.


지금까진 안 울었는데, 길조 형이 울지 말라는 말에 이상하게 또르륵 눈물이 흘러내린다.

통화를 마치고 엄마 짐을 정리하며, 벽에 붙은 우리의 사진을 보았다.


"히어로가 온다네. 엄마도 한번 봤으면 좋았는데..."



* * *



"와. 정신 없어라..."

"내가 갈까?"

"아니요. 이거 가족이 해야 된다고 들어서. 갔다 올게요."

"같이 가자."


병원에 도착해 빠르게 엄마의 얼굴을 보고 몇 시 몇 분경 돌아가셨단 이야길 들었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설명을 마친 의사 선생님은 "그럼 인사나눠요." 라고 건조하게 말하고 나나고, 간호사 누나들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위로를 건네주셨다.

근데, 냉정하게 슬퍼할 겨를이 없다.

뭔가 해야 될 서류작업이 너무 많아서, 이것들을 다 해야 눈물도 편하게 나올 거 같은데.


"괜찮냐?"

"네. 돌아가실 거 알고 있었잖아요..."

"새끼. 넌 존나 멋진 놈이야. 존나 강한 놈이라고."

"하하. 형..."


엄마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사람이 태어나도 문서를 받고 죽어도 문서를 받다니 행정이란 게 이래서 있구나 싶어진다.

멍하니 서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직원 분이 물으셨다.


"장례식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

"왜? 뭔데? 형이 도와줘? 방금 얘한테 뭐라고 하셨어요?"

"네...? 아. 이분은?"

"하하... 형. 잠시만요."


길조 형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해야지. 당연히."

"아니. 그게... 꼭 해야 되나? 싶은데..."

"뭔 소리야 임마. 당연히 해야지!! 장례식을 안 하는 게 어딨어?"

"아니... 음..."


하는 건 좋은데... 누굴 부르지? 엄마 동료들? 내 친구들? 중학교 때 애들???


"그런 건 오는 손님들이 있을 때나 하는 거라고 들어서."

"누구 부를 사람 없어? 친척들?"

"저... 꼭 해야 하나요?"


내가 뭐라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 직원분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분도 적지않게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저... 다른 어른은 안 계신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꿈은 지구정복이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8 반격 NEW 29분 전 5 1 12쪽
37 반격 +1 24.09.17 52 6 16쪽
36 반격 24.09.16 62 4 12쪽
35 반격 24.09.15 69 7 13쪽
34 반격 24.09.15 80 5 15쪽
33 작용과 반작용. 24.09.14 85 6 14쪽
32 작용과 반작용. +2 24.09.13 100 8 17쪽
31 작용과 반작용. +1 24.09.12 97 7 15쪽
30 작용과 반작용. +1 24.09.11 99 7 13쪽
29 작용과 반작용. 24.09.10 109 6 14쪽
28 작용과 반작용. +1 24.09.09 117 6 13쪽
27 피가 물보다 진한 이유 24.09.08 127 7 16쪽
26 피가 물보다 진한 이유 24.09.07 135 6 14쪽
25 브라더 마이 브라더. +3 24.09.05 139 8 14쪽
24 브라더 마이 브라더. 24.09.04 120 7 14쪽
23 브라더 마이 브라더. 24.09.03 139 7 14쪽
22 브라더 마이 브라더. 24.09.02 155 6 14쪽
21 브라더 마이 브라더. 24.09.01 166 8 14쪽
20 브라더 마이 브라더. 24.08.31 182 7 14쪽
19 브라더 마이 브라더. 24.08.30 195 7 16쪽
18 변신! +1 24.08.29 204 7 15쪽
17 변신! +1 24.08.28 197 8 13쪽
16 변신! +1 24.08.27 216 8 16쪽
15 변신! +4 24.08.26 220 8 12쪽
14 유산 상속자 24.08.25 213 6 15쪽
13 유산 상속자 24.08.24 213 9 13쪽
12 유산 상속자 24.08.23 227 8 12쪽
11 유산 상속자 24.08.22 222 8 14쪽
10 유산 상속자 24.08.21 241 9 12쪽
9 럭키가이 24.08.20 208 9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