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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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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4.04 23:48
조회
746
추천
11
글자
20쪽

03화. 꿈도 희망도 없어, 내 앞날은.

DUMMY

대한민국에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1994년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전국민 서열화 프로젝트. 이름하여, ‘대학수학능력시험’. 줄여서, 수능.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9년의 의무교육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 3년. 실질적으론 전국민이 다 다니고 있는, 의무교육에 가까운 12년의 교육과정의 종착점, 수능. 어쩌면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시험이다. 그렇기에, 전국의 모든 고3들은 미친 듯이 공부해야만 하고 또 그게 당연한 것이다. ‘학생은 공부를 한다’는 명제는 늘 옳지만, 특히 고3에겐 절대적 명제가 된다. ······예·체능계열 학생은?! 특기생들은!? 모두를 획일화하지 마라! 나는 자유인이 되겠다! 프리덤!



“딴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해.”

“넵.”



멍 때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희세의 핀잔이 돌아온다. 엄마처럼 옆에서 늘 지적해주는 희세. 짤막하게 대답하곤 보고 싶지 않은 책을 들여다본다. 이렇게나 공부하기 싫은 적이 있었을까.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때에도 딱히, 공부를 하거나 하진 않았지. 시험기간에나 벼락치기로 한 정도일까. 그런 것들 가지고 무슨 공부의 기초가 쌓였는가 싶기도 한데. 그래서 그런건가, 내 수학 점수가. 당당하게 30점 대를 기록하고 있잖아.


하아. 그저 한숨만 나온다. 국어만이 유일하게 90점을 넘기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그건, 한국사람이니까. 그냥 읽어서 풀 수 있는 거니까. 나오느니 한숨이다. 답이 없다. 말 다 했다. 망했어요. 대학 가지 말까. 대한민국에서 대학 안 나오면 사람취급이 아니래요. 대학교를 안 간 나는 상상할 수도 없다. 무슨 대학 갈지 상상도 안 했지만. 오늘도 이런 잡생각을 하며,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는다.









“웅이랑 같은 반!”

“응.”

“뭐. 같은 반이네.”



3월. 보충이 끝나고 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3학년 1학기의 시작. 고3의 시작. 감회가 새로운 건 꼭 반이 바뀌고 학년이 바뀐, 늘 느끼는 그것만은 아니리라. 한 학년 올라간 게 아니라, ‘고3’이라는 특별 계급(?)이 되었다는 것에 부여되는 의미가 더 크니까.


밝게 웃으며 밝은 톤으로 말하는 리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옆자리 희세의 툴툴대는 목소리를 듣는다.


희세와 리유는 같은 반. 다른 애들은 다 다른 반. 미래는 옆반, 성빈이는 반대쪽 옆반, 유진이랑 민서는 옆옆반. 이번에는 비교적 고루 흩어진 것 같다. 뭐, 반 배치는 랜덤이라니까.



“선생님은 2반 담임을 맡은 유정자에요! 반가워요!”

“네─”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를 쓰고 싶은데. 1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던, 정자 쌤. 2년만에 보는데도, 여전히 존댓말로 애들에게 인사하신다. 뭐, 2년만에 본 건 아니지. 여전히 도덕 교과목은 정자 쌤한테 배우고, 학교에서도 늘상 봐 왔으니까. 2학년을 사감 선생님하고만 보내다가 정자 쌤의 부드러운 말투와 온화한 표정을 보니 뭔가 정화되는 기분이다.



“3학년 담임 맡아보는 건 처음인데, 선생님이 다 긴장되네요! 정말 중요한 한 해니까요, 여러분 인생이 걸린! 하핫. 공부 열~심히 해야 되요! 좋은 대학 가야, 미래의 남편 얼굴이 바뀌니까요!”

“우우우~”



선생님의 밝은 말과 대비되는, 야유를 보내는 여자애들의 반응. 선생님, 그거 성차별적인 발언 아닙니까. 아니, 성차별이 아니라 학력차별이라고 해야 하나. 저런 드립은 남녀가 상관없이 있는 거니까. 「10분 더 공부하면 미래의 남편 얼굴이 바뀐다」라거나, 「네 공부시간이 미래 와이프 얼굴을 정한다」 라던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력을 얻으면 예쁘고 잘생긴 남편·부인을 얻는 것인가. 참, 확고하고도 정확한 등식이구나.



“아, 웅도 군 있으니까 남편은 안 되겠네! 와이프 얼굴도 바뀌어요!”

“웅이 와이프 이미 있어요! 히이 예쁘니까 웅이는 이미 됐어요!”

“아하하하핫!”

“어머, 둘이 사귀어요? 부럽네~”

“······하하하.”



정자 쌤은 힐끗 나를 쳐다보며 눈을 찡긋 하신다. 마주보며 눈인사하려는데, 불청객 리유가 불쑥 끼어들어 말한다. 기습공격에 희세는 순식간에 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고, 나 또한 다른 애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에 부끄러워져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래도 남자인지라 ‘허허’ 하고 바보처럼 웃어 넘겨야할 따름이다. 에효. 내 팔자야.



“선생님은, 무엇보다 여러분이 어떤 대학을 목표로 하고, 어떤 과를 가고 싶고,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겠죠? 3월 안에 한 명 한 명 다 상담해서, 목표를 갖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어요!”

“네~”



확실히, 고3을 처음 하는 정자 쌤이라 그런지 의욕이 넘치신다. 아니, 원래 고3 담임이면 다 해주는 서비스(?)인가. 고3은 처음 해봐서 모르겠네.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잖아. 구구절절 옳은 말이잖아?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목표점과 지향점이 있어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거니까.





“웅이는 꿈 같은 거 있어?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이 없으면 안 되잖아! 멍청아.”



조례시간이 끝나고, 1교시까지의 쉬는 시간. 정자 쌤의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그’ 리유가 나에게 꿈을 물어본다. 천연덕스러운 내 대답에 리유는 ‘아핫!’ 하며 즐겁게 웃는다. 옆에서 희세가 괜히 내 어깨를 툭 치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희세는 뭐든 확실한 성격이니.



“히이는? 있엉?”

“나는, 유치원 선생님.”

“와! 어울려! 히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거 같앵!”

“······그래?”



오늘따라 말끝에 ~ㅇ을 붙여서 귀여운 느낌을 더욱 살리는 리유. 리유는 어째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리고 귀여워지는 것 같지. 리유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하는 희세. 그 차분한 대답에, 리유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살짝 기분이 좋은 듯 방긋 웃는 희세. 자신의 꿈을 인정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겠지.



“리유 너는 어떤데.”

“음~ 딱히, 솔직히 진짜, 생각한 게 없어서.”

“나도 뭐 누구한테 뭐라고 말할 처지는 못 되지. 생각한 게 없으니까.”



비단 나랑 리유만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느낌 아닐까. 전국의 고3 반절 이상은, 이런 느낌 아닐까 싶은데.



나는 장장 11년 동안, 그냥 학교를 다녔다. 가방을 메고 털레털레, 그냥 가라니까 갔다. 학교를 빠지면 혼나니까 나왔고, 개근상을 받는 게 훈장처럼 느껴져 그냥 다녔다. 중학교 때, 춤을 배우겠다고 가출하고 학교도 빠지다가 결국 자퇴한 친구가 있었다. 그 때엔 녀석이 철없고 제멋대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녀석은 꿈을 향해 전력질주를 한 것 같다. 멋있잖아.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아무 꿈도 아무 생각도 없는데.


꿈을 키울 시간도, 생각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떼울 뿐. 오늘 수업은 언제 끝나지, 퍼질러 자고. 점심 먹고, 오후 꾸벅꾸벅 졸고, 청소하고, 보충 받고, 저녁 먹고, 야자 대충 멍 때리다, 하루가 끝나고, 자고, 다음날 또 똑같이 등교. 고등학교 때가 제일 빨리 지나갔던 것 같다. 중학교 때야 뭐, 남자애들하고 신나게 축구하고 놀았으니. 말할 것도 없지.



“어렵게 생각할 거 없이. 그냥, 뭐 되고 싶은 거 없어? 어릴 때 꿈이라던가, 아니면 그냥, 이런 거 하면서 살면 괜찮겠다 싶은 거.”

“흠······.”



그런 것조차 없는 사람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딱히, 무엇이 되고자 하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냥, 적절한 아무 대학 가서, 아무 어떤 대학생활을 하고, 졸업하고, 그냥 회사원 같은 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 결혼하고, 애 낳고, 잘 살다가 죽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TV에서나 나오는 삶 같은 생각 뿐. 잘 모르겠다.



“과학자!”

“음. 지금 리유 성적으론 좀 무리지 않을까.”

“에! 히이 너무 잔인해! 헤헷. 어릴 때 꿈이었는데.”



그지. 어릴 때에 보통 그런 꿈 많이 꾸지. 과학자나, 대통령이나, UN사무총장 같은 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어렵고 힘든 꿈들. 희세의 돌직구에 충격 먹고 빼애액 툴툴대는 리유를 귀여운 눈으로 쳐다본다.



“웅도 너는, 어릴 때 꿈 뭐였어?”

“소방수.”

“그럼 소방과 같은 데 가서 소방공무원 되면 되잖아.”

“아니, 어릴 때 꿈이니까. 지금은 딱히, 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리고, 나 정도 성적으로 무슨 소방 공무원 시켜줍니까. 경쟁률이 100대 1이 넘는다는데.”

“······뭐.”



희세의 단순한 말에 나는 시니컬하게 대답한다. 객관적으로 봐야지, 미래에 대한 얘기인데.


나는 성적이 나쁘다. 냉정하게 말해서, 언어영역 빼고는 봐줄만한 성적이 마땅히 없다. 그나마 사회탐구 영역은 좀 괜찮은 것 같은데. 국·영·수 중에 제일 중요한, 영어·수학이 완전젬병이니. 영어와 수학 점수의 합이 국어 한 과목보다 낮은 것부터가 완전실패영역. 아아아.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건, 좀 그렇다. 꿈이었는데, 성적이 안 되니까,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건.”

“어쩌겠어, 그렇게 된 걸. 그리고, 소방수 꿈 아니라니까 이젠. 지금은······ 뭐, 마땅히 아무 꿈도 없지만.”



말하면 말할수록 뭔가 더욱 답답해진다. 바닷물을 마시면서 계속 갈증을 느끼는 것 같은 느낌. 희세의 안타까운 말에 나까지 더욱 기분이 안 좋아진다. 미래 일 해결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착찹함 느껴야 하는데. 게다가 내 미래라서 더욱 암울하다. 아아아아~ 모르겠다~~ 모르면 안 되는데~~~ 모르겠다.








--








오늘도, 나는 야자시간을 헛되이 보냈다. 평소와는 다르다. 2학년 때까지의, 아니 불과 몇주 전 겨울방학 때까지만 해도, 자율학습 시간에 멍때리는 나는.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영혼을 로그아웃 해 놓고 숨을 쉬며 그냥 존재한다거나, 혹은 바깥 눈치를 살짝살짝 살피며 휴대폰으로 소설을 보거나 웹툰을 보거나 영화나 애니나 만화책이나 기타 등등을 본다거나.


하지만 오늘은 그런 식으로 헛되이 보낸 게 아니다. 미래에 대한 잡생각과, 대학, 공부 그리고 진로에 대해. 2주 전 겨울방학 때까지는 피부에 와닿지 않았는데, 오늘, 고3 첫날에 첫 야자를 하니 그런 생각이 퍼뜩 든다. 더욱 심란해진 기분은 덤이고.


이 성적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그보다, 무슨 대학, 무슨 과 갈지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래가지고 공부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공부를 먼저 해야 할까, 아니면 목표를 먼저 잡아야 할까. 공부를 하자니 목표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으니 영 공부가 안 되고─그래봐야 핑계이긴 하지만─, 목표를 잡자니 12년동안 그랬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영 모르겠고, 막막하고 막연하기만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시간이었다.


어찌됐던 시간낭비는 시간낭비. 3시간동안 아무것도 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나마 자아성찰을 조금 한 게 다일까. 나는 병X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같은 씁쓸한 현실자각 정도. 좋은 게 아닌 것 같은데. 자신감만 뚝뚝 떨어지는 것 같고.



“공부······ 안 했지.”

“응······.”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희세는 넌지시 물어본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인 희세. 평소에도, 늘 옆자리에 앉아서 감시하고 잔소리하는 희세니까. 멍 때리는 내내, 희세 눈치가 보였으니까. 시선도 느껴졌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늘은, 멍하니 공부하지 않고 있는 나에게 한 마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씁쓸하게,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대답했다.



“1시간만, 딱 1시간만 공부하자, 오늘은?”

“응.”



희세가 여자친구라, 정말 다행인 것 같다. 내 기분 배려해주고, 생각해주니까. 굳건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희세에게 고맙지만, 답답한 마음은 해소되질 않는다.








열람실 앞. 희세가 먼저 열람실에 들어간다. 벌써부터 피 튀기게 공부하고 있는 여자애들. 1학년 때 열람실을 처음 봤을 때, 고3 누나들이 무서운 기세로 공부하는 걸 봤었는데. 지금은, 그 고3들이 우리학년, 친구들이다. 나도, 또한 저기 끼어서 피 튀기게 공부해야겠지.


자신이 없다. 저렇게까지 공부할 자신이 없다. 동기도 목적도 없다. 심지어 공부의 기초도 없다. 핑계가 아니라 정말. 난 저렇게 할 자신이 없다. ‘그냥 닥치고 해! 뭐 말이 많아!’ 하고 자신을 채찍질해보지만, 결과가 뻔히 보인다. 나는 지금, 열람실에 들어가면 한 시간동안 멍 때리다 나올 것이다.



“······.”

“뭐해, 안 들어오고?”



다시금 열리는 열람실 문. 의아한 표정으로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쳐다보는 희세. 잠자코, 입을 여는 나.



“1시간만, 나한테 시간 뺏겨주라. 희세야.”

“뭐······?”







“으우우, 추워. 그래서 뭐. 안에서 얘기하면 안 돼?”

“그럴까.”



괜히 분위기 잡고, 희세를 불러세운 나. 열람실 바깥 옥상 같은 데에 서서, 난간을 붙들고 시내의 불빛들을 멍하니 쳐다본다. 희세는 양 팔을 부여잡고 덜덜 떨며 말한다. 확실히, 3월은 아직 춥지. 낮에도 꽤나 쌀쌀한데, 밤인데 오죽하겠어.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열람실 앞에는 쉼터가 있다. 공부하다 지친 영혼들이 잠시 나와서 휴식하라는 의미겠지. 물론 크게 떠들어선 안 된다. 열람실까지 들릴 수 있으니까. 아무도 없는 자리, 나와 희세는 자리에 앉았다.



“상담을 좀······ 해줬으면 좋겠어.”

“아까 야자시간부터 심란하던데. 진로 때문에?”

“그렇지. 아침부터 그랬는데.”



내 말에 희세는 대강 예상하고 있었다는 투로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나. 좀 창피하기도 하고, 멋쩍고 겸연쩍기도 하다. 희세가 누나도 아니고, 동갑인 여자애인데.


하지만 어쨌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건 구해야만 한다. 부끄럽다고 말도 못 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희세는 올곧은 어른스런 눈으로,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게 앞을 보고 미래를 보고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런 애의 남자친구인 게 자랑스러울 정도로. 그래서, 정말 미안하지만, 1시간을 뺏어서라도, 깊은 상담을 해보고 싶다.



“핑계 같겠지만. 오늘 아침에, 선생님 말 들으니까 정말로 목표가 중요한 것 같아서. 근데 나,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루종일 생각해봤는데, 무슨 대학을 갈지, 뭐가 꿈인지, 뭐가 하고 싶은지. 그냥 내가 바보같고, 아무것도 못 하는 새끼인 것 같아서 기분만 안 좋아지고.”

“뭘 아무것도 못해. 바보야.”

“응, 바보 맞아.”

“그딴 식으로 얘기하지 말라니깐.”

“넵. 죄송합니다.”



희세는 자학하는 나를 날카롭게 꾸짖는다. 그건 굳이 지금이 아니라 예전부터도 싫어했다. 내 자학개그를 별로 안 좋아하는 희세니까. 희세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허세로라도 평소에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적어도 진로에 관해서는, 내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없는데 빈 껍데기인 채 허세를 부릴 수는 없다. 그것까지 허투루 할 순 없으니까.



“우선, 내 얘기는 예전에 해줬잖아. 유치원 선생님 하고 싶다고. 유아교육과 갈 거라고.”

“응. 너는 어쩌다 그런 진로를 정했니?”

“아아, 하지마, 무슨 교과서 말투로 물어봐, 이상하게.”

“아니, 각 잡고 물어보려는 건데. 어쨌든.”



희세는 퉁명스럽게 말하다 완전한 국어 교과서 같은 내 질문에 몸서리치며 말한다. 피식 웃으며 무거운 분위기를 푼다. 너무 진지하게 무게 잡고 있었나.



“별다른 큰 이유가 있던 건 아닌데. 희나랑 나이차이가 좀 나니까. 어릴 때부터 희나 돌보고, 친척들에도 동생들이 많아서.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애들 돌보는데 익숙하고. 먼 친척 애기도 맡아봤는데. 애들이랑 지내는 게 재미있고, 애들 크는 것도 좋아서. 나도 막연한 건 마찬가지지만, 유치원 선생님 하면 보람차고 좋을 것 같아. 박봉이고 스트레스 많이 받고 힘들다는 건 알지만.”

“······대단하네. 멋있네.”



희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 나. 고개를 끄덕이며, 무겁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뭔가 부럽다. 뭔가 대단하다. 뭔가 멋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같은 19년을 보냈지만, 희세는 확실히 무언가 어떤가를 생각했구나. 자신의 앞날에 대해.



“정 안 되면, 공무원 시험 같은 건 어때. 아예 빠르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무원 시험 보는 거야.”

“······무슨 우리 엄마 같은 소리를. 난 공무원 타령이 제일 싫더라. 애초에 그 몇백대 1 경쟁률에 내가 합격할 이유도 없고. 사람이 대학은 나와야지.”

“에엑. 무슨 50대 아저씨 같은 소리 한데. 요즘 대졸 대졸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는 너도 어쨌든 유아교육과로 대학교 갈 거잖아.”

“나는! 거기를 가야 유치원 선생님이 되니까!”



뭔가 말하다보니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되었다. 잠깐만, 이렇게 알콩달콩 희세랑 다투면서 정분을 나누려고 시간 뺏는 게 아닌데. 뭔가 진지하고, 진로에 도움이 되는 상담을 해야만 하는데. 어쨌든 공무원은 싫다. 공무원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미래니까.”

“응. 이게 다 근미래 때문이다. 미래니까.”

“그 미래가 그 미래가 아니잖아. 농담 그만 하고.”

“응, 미안.”



아, 내가 잘하는 거 찾았다. 드립. 프로 드리퍼(?)나 해야겠다. ······그런 걸로는 돈을 벌 수 없잖아! 아니, 인터넷 방송 보면 그런 걸로 돈 버는 사람 있던데. 인정? 어 인정? 자살각 빼박캔트 인정? (인터넷 방송 BJ : 인정합니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로 진로를 정하기는 좀 그렇다.



“그럼, 그나마 가장 현실성 있는 방법.”

“······뭔데?”



특단의 조치를 취하려는 희세.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괜히 긴장돼서 침을 꿀꺽 삼키며 묻는다.



“내 꿈하고 진로 들으니까, 좀 자극이 되는 것 같아?”

“응, 확실히.”

“그럼, 다른 애들 꿈하고 진로도 들어봐. 쉬는 시간 같은 때에. 요즘 성빈이도 공부 엄청 열심히 하고, 유진이도 그런 것 같던데. 다른 애들 진로나 생각 들어보면, 네 꿈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지 않을까?”

“······확실히.”



희세는 언제나 답을 찾는다. 계속 그래 왔듯이. 시아가 나에게 물었지, 희세 가슴 때문에 만나냐고. 부정할 수는 없지만, 난 희세가 예쁘다거나 가슴이 크다거나 해서 만나는 게 아니다. 이렇게 현명하고 똑똑하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쁘고 가슴 크기도 하니까. 우왕 이렇게나 좋은 여자애가 내 여자친구라니!



“자, 그러면, 상담은 이쯤 하고. 1시간이나 낭비할 필요 없잖아? 이제 공부하러 가자!”

“······넵.”



30분도 안 돼서 빠르게 상담을 마친 희세. 빠르게 결론짓고, 나를 열람실로 끌려가려고 한다. 이제 핑계도 명분도 없다. 하아. 솔직히 하루 종일 아무 공부도 안 하긴 했지. 수학문제를 풀어보자. 1시간이라도 집중해서, 한 번 풀어보자. 희세에게 끌려 열람실로 들어간다.


작가의말

고3때 생각 나네요.

.....그 때 글 쓰지 말고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저딴 고민 집어 치우고, 닥치고 공부했어야 했는데 ㅠㅜㅜ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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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6.11.12 16:17
    No. 1

    학생들 주인공인 소설이라지만 공부하는 내용은 겁내 지루해요~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전서리
    작성일
    18.08.19 01:09
    No. 2

    아..리유 '아핫,'하는데 정작 미래이야기 다합한것보다 마음찢어지는이유알거같다
    중학교(고작?!)때 나랑완전히 같네 웅도성격, 리유성격,완전똑같았고..아니 그때 너무 엄청나게 순수했지난..?ㅡ...
    바람 이야기는 아니지만 성격부터가 너무똑같으니 마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전서리
    작성일
    18.08.19 01:10
    No. 3

    뭐,이젠 돌아갈수도 없는 시절이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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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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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01화 - 4 +1 16.03.25 909 9 20쪽
235 01화 - 3 +3 16.03.23 1,050 10 20쪽
234 01화 - 2 +7 16.03.20 905 9 23쪽
233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4 16.03.17 899 11 20쪽
232 3부 시작은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3 16.03.15 994 10 15쪽
231 18화 - 5 +7 16.02.23 1,064 12 17쪽
230 18화 - 4 +1 16.02.22 830 9 15쪽
229 18화 - 3 +8 16.02.21 939 10 19쪽
228 18화 - 2 +8 16.02.01 909 10 22쪽
227 18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7 16.01.26 880 12 16쪽
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9 17 7쪽
225 17화 - 4 +7 16.01.06 811 16 22쪽
224 17화 - 3 +8 16.01.05 971 13 19쪽
223 17화 - 2 +8 16.01.03 944 14 19쪽
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7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3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20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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