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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36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20.01.0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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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89화 이름은 곧 운명을 뜻하는 것이다.

DUMMY

이제 더는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아직 나무 밑동이나 바위 그림자 속엔 눈더미가 채 녹지도 못하고 어중간하게 얼어있었다. 그나마 햇볕이 닿는 곳은 이른 싹이 올라왔지만, 찬바람에 금세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파이어 슬라임과 아이스 슬라임은 쓰러진 챠오를 추슬러 줄리엣에게서 멀어졌다. 흩어지려는 그의 정신을 한 톨도 흘리지 않겠다는 듯이 얼음과 불로 감싸고 있었다.


줄리엣은 그런 챠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부활의 오브를 삼킨 챠오를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인큐버스킹이 되살아 나는 순간이었다.


그가 눈을 뜨자, 줄리엣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신이야?”


대답 없이 멀뚱멀뚱하게 눈을 끔뻑이다, 자신의 손과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그에게 줄리엣이 재차 물었다.


“당신이냐고 묻잖아.”


초대마왕이 처음 미겔에게 심어진 때와 같이 되살아난 인큐버스킹에게도 생전의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있었다.


“나는 죽어있었던 사람이었군. 그리고 네가 그 안식을 깨트려버렸어.”


“그래, 내가 당신을 살렸어. 당신을 사랑했고, 보고 싶으니까.”


아마 생전의 인큐버스킹이었다면 그런 줄리엣이 안타까워서라도 예전처럼 품에 안아주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정작 그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내가 세상에 나와 있어야 할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나는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큐버스킹이 스스로 꿈 마법을 걸어 의식을 잃어버리려 하자, 줄리엣이 그의 꿈을 거두며 다시 깨웠다. 그녀는 역정을 내고 있었다.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살린 건데, 가만히 서서 또다시 당신이 사라지는 걸 두고만 볼 것 같아? 당신은 내 곁에서 영원히 살아야 해!”


또다시 인큐버스킹이 줄리엣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서큐버스퀸은 나를 사랑하는가?”


“당연하지!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그토록 고생하지도 않았어!”


“그렇다면 내가 살던 곳으로 안내하지.”


“뭐?”


인큐버스킹이 자신과 줄리엣에게 꿈 마법을 걸어버렸다. 두 번 다시 깨지 않을 마법에 걸린 줄리엣이 쓰러지며 소리쳤지만, 그 소리마저 희미해 꺼져가고 있었다.


“뭐? 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


그녀가 황급히 마법을 상쇄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오랫동안 지쳐있었고 인큐버스의 마력에 당해낼 수 없었다. 인큐버스가 그녀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몽마에게 어울리는 꿈을 선사해주지.”


인큐버스킹도 그녀의 곁에 앉아, 스스로 마법을 걸어 깨지 않을 잠을 자기 시작했다.


슬라임들이 다시 차오를 데려오니, 자연스럽게 챠오가 다시 자신의 자리로 찾아갔다. 몸을 되찾은 챠오가 눈을 뜨고 일어서서 줄리엣을 돌아보았다. 깨지 못할 잠을 자는 그녀를 뒤로하고, 슬라임을 챙겨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른 계절에 복수초가 피어있었다. 맹독을 가진 꽃은 뿌리도 내리지 않았는데, 눈 내린 땅을 녹이며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한편 챠오의 손엔 부활의 오브가 들려있었고, 챠오는 그 오브가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었다.





“······꿀꺽.”


네드가 벌써 성을 집어삼킨 암흑 구체를 보고 침을 삼켰다. 진득한 타르 같은 암흑은 주위에 닿는 것을 덮어버리며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저게 뭐죠······?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게 아니죠?”


네드가 마왕인 실크에게 물었지만 그라고 해서 알 도리는 없었다.


“저거 저대로 두면 계속 주변을 삼키며 커질 텐데, 막을 수 있을까요?”


실크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건 분명했다.


오스먼드가 제물 삼은 세계수와 거츠, 그리고 미겔이 아직 성안에 있을 게 분명했다. 따라서 실크는 저 구체를 막고 그들을 구해야 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인지, 구체가 커지는 부피는 일정했다. 그 말은 크기가 커지면서 체감되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의미기도 했다.


실크가 구체안으로 검집을 살짝 찔러보았다. 아무런 저항 없이 들어가는 검집은 실크가 다시 빼냈을 땐 어둠 속에 융해되어 사라진 상태였다. 검집이 절반 정도 사라진 대신, 거뭇한 마왕의 검의 모습이 나타났다.


적어도 마왕의 검은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그들의 곁에 포탈이 열리고 레오나와 미겔이 나타났다. 레오나는 포탈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병사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포탈을 깨트리며 막아버렸다. 왕정 마법사가 포탈 마법의 좌표를 알아내기까지 시간을 번 셈이었다.


반가운 얼굴을 보고 네드가 외쳤다.


“미겔 형님!”


하지만 실크가 고개를 저었다.


“네드, 저분은 미겔이 아니다. ······당신은 초대마왕님이시군요.”


미겔이 인상을 쓰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는 자신이 속인 사람들 앞에서 어디부터 해명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결국, 레오나가 나서서 정리했다.


실크는 레오나의 이야기를 듣고 마왕성이 있을 암흑 속을 뚫어봤다.


“결국, 저 안에 초대마왕이자 미겔이 있는 거군.”


“미겔은 나야! 내가 미겔이라고!”


미겔이 반박하자, 실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나를 실크라 불렀고, 나는 그를 미겔이라 불렀지. 이제 와서 바뀔 건 없다. 이미 불린 이름은 쉽게 바꿀 순 없는 것이니까. 이름은 곧 운명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어린 인큐버스가 나타났다.


“초대마왕님은 성에 안 계셔요. 이제 그 어디에도 안 계시죠.”


챠오가 뒤에서 나타났다.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그는 마왕에게 손에 쥔 것을 펴 보였다.


부활의 오브가 챠오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오브가 챠오의 손에 있다는 말은 오브로 되살아났던 초대마왕도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저것이 우르슬라가 말했던 변질하지 않은 제물을 꺼내 마법이 폭주한 결과물이에요. 우르슬라와 오스먼드가 미처 대응도 하지 못하고 마법에 삼켜진 모양이에요. 제 어머니가 한 일입니다. 제가 대신 사죄를 올립니다, 마왕님.”


심적으로 많이 지친 탓일까, 챠오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끼어있었다.


네드가 불안해서 물었다.


“그래서 안에 들어갈 거에요?”


실크는 대답 대신 마왕의 검을 휘둘러 암흑을 갈라내어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금세 암흑이 채워지며 길이 닫히려 하자, 레오나가 용사의 검으로 같은 곳을 재차 휘둘렀다. 그제야 암흑이 물러서며 길이 더는 닫히지 않았다.


“마왕이 자신의 집인 마왕성으로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


“용사는 마왕성을 정복하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다면 저도 들어가, 갈 거예요. 이래 봬도 저도 용사니까요.”


레오나가 양치기 네드의 말에 흘긋 봤다. 겁먹은 강아지처럼 두 다리를 떨고 있는 주제에 입은 발랐다.


챠오도 안으로 들어가겠노라 말하니, 남은 사람은 미겔 혼자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보니, 그가 성질을 냈다.


“레오나, 당신이 날 데려온 게 이것 때문이었지! 내가 어떻게 되찾은 몸인데······!”


레오나가 빙긋 웃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어버렸네. 네가 그래 준다면야 나는 고맙지. 이왕이면 보던 얼굴이 좋으니까.”


실크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하던 차에, 미겔이 챠오의 손에 들려있던 부활의 오브를 가로채 한입에 꿀꺽 삼켜버렸다.


“나 같은 것보다 그 녀석이 도움이 될 게 뻔하잖아. ······제기랄.”


미겔은 초대마왕을 다시 불러내 자신의 몸에 받아들였다. 미겔이 스스로 오브를 삼킨 탓인지, 이번에는 두 사람으로 갈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초대마왕이 미겔로서 기억을 쌓았던 몸으로 돌아왔기에, 기억을 잊어버리는 일도 없었다.


돌아온 그가 어색하게 말했다.


“어······, 다들 안녕.”


모두 미겔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들 반가운 마음이 컸지만, 일단 그들은 닥치는 대로 삼켜버리는 공허를 베어가며 나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왕의 검으로 자르고, 용사의 검으로 굳혀 나아가길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붉은색 비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르슬라의 것이에요.”


챠오가 자신의 얼굴만 한 비늘을 집어 들고 말했다.


“드래곤인 그녀를 무사히 꺼낼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오스먼드와 같은 패였어. 그녀를 믿을 수 있을까?”


미겔이 묻자, 챠오가 단언했다.


“애초에 우르슬라와 오스먼드는 친분이 아닌 계약으로 묶인 사이였어요. 뜻을 같이하기보다는 변이마법이나 소멸마법이 잘못될 경우, 그 재앙을 막기 위해 있었을 가능성이 커요. 정말로 오스먼드가 세계수를 없애버리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겠죠. 드래곤은 그런 일을 하니까요.”


“······잘 알고 있구나.”


“그야 저는 인큐버스니까요. 드래곤이라도 제 어깨가 필요하다면 기대게 하는 게 당연하죠. 이제부터 검을 내려치실 때 조심하시는 게 좋겠어요.”


과연 실크가 조심스럽게 암흑을 걷어내니, 챠오가 예상한 대로 레드드래곤이 쓰러져 있었다. 미겔이 오두막에서 병간호하던 기억을 살려 우르슬라의 상태를 살펴보자, 강력한 마비약에 취해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비에 취해있어. 하지만 내겐 약으로 쓸 허브들이 없어.”


챠오가 미겔의 어깨를 두드리고, 우르슬라의 뿔을 가리켰다. 그녀의 뿔을 먹이자는 의미였다.


레오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드래곤의 뿔이 만병통치제라고 해도, 자기 뿔을 갈아먹어도 효과가 있을까······? 게다가 덩치도 크니 좀 많이 필요할 텐데?”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실크가 검을 쥐었다.





“으음······.”


우르슬라가 신음을 흘리자, 다들 드래곤의 반대편으로 물러섰다. 심지어 네드는 양털로 혹시 모를 난동에 대비해 벽을 세우기도 했다.


우르슬라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며 눈을 뜨니, 머리 위의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우르슬라 자신을 둘러싼 암흑물질에 눈을 돌린 것이 그들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우르슬라가 단번에 상황을 알아보았다.


“변질한 마법이 폭주해버렸군. 마비약 따위에 절여지다니 체면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 요망한 서큐버스, 내 눈에 띄기만 하면 아주 요절을 내줄테야.”


우르슬라가 암흑 속을 헤치니, 곧 제물들이 있던 장소가 나타났다. 세계수는 벌써 수분이 말라버려 신성력이 사라지고 있었고, 거츠는 골렘인 덕분인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


“역시 골렘이라 튼튼한 줄 알았지. 분명 왕비를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그녀는 무사해. 내가 보증하지. 일단 초대마왕이 있던 자리가 비었으니 다시 메꿔야 해. 마법을 다시 원래대로 복구시킨 뒤, 상쇄해야 하니까. 세계수가 힘을 잃기 전에 빨리.”


우르슬라는 미겔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미겔이 망설이자, 우르슬라가 재촉했다.


“안 죽어, 이렇게 된 판국에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 일이 이렇게 어긋난 건 내 책임이기도 하니 바로 잡겠다는 것뿐이야.”


그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자신의 마나홀을 쥔 오스먼드가 걸어왔다. 마나홀은 반쯤 부서져 있었고, 그 탓인지 해골 몸 군데군데 뼛조각이 비어있었다. 걷는 듯 기는 듯 위태로운 걸음이었지만, 그의 두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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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마지막화 믿겠습니다. 20.01.06 60 1 13쪽
» 89화 이름은 곧 운명을 뜻하는 것이다. 20.01.01 40 1 12쪽
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1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5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8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6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8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1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7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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