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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37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2.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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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DUMMY

칠리가 요란하게 날뛰는 탓에 선잠에서 깬 매튜는 애마를 달래기 위해 작은 마구간으로 향했다. 매튜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찬 바람이 그를 반긴 탓에, 길게 흰 날숨을 뱉으며 양팔을 비벼야 했다. 그래스호퍼에 무너진 건물들도 수습하고 바람과 눈을 막을 지붕도 세웠지만,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는 마을은 싸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푸르릉!


칠리는 매튜가 어루만져주고, 귀리도 한 줌 먹여주어도 흥분을 가라앉히질 못했다. 평소라면 벌써 진정하고 다시 잠을 자기 위해 엎드렸을 터였다.


“이 녀석아. 꼭두새벽에 주인을 괴롭히는 말이 세상 어디에 있냐. 네가 뭐가 불만인지 글이라도 써야 하는데, 가르치지 않은 내 잘못이다. 그거냐? 푸헤취! 이 봐라. 너 때문에 감기도 도졌잖냐. 네게 무슨 돈이 있어서 피해보상을 뜯겠냐마는, 네가 이렇게 말썽을 부릴 때마다 나이 많은 아저씨의 명줄만 갉아 먹고 있다는 것만 알아다오. 불효막심한 녀석아.”


“매튜?”


결국, 엘렌마저도 눈을 뜨고 일어나 숄을 걸치고 나와서 남편을 불렀다.


“엘렌?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


“엎드려.”


엘렌은 숄 밑에 가득 달린 단검을 펼치며 매튜의 뒤에 서 있는 괴물을 향해 던졌다. 미간에 정확히 꽂힌 단검은 그대로 폭파해, 괴물이 뒤로 넘어져 버렸다.


그제야 매튜가 칠리가 두려워하던 괴물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얼마 전 올란이 알려준 마을을 습격한 거인들과 똑같은 생김새였다. 비록 그 크기가 절반 가까이 줄어있었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매튜는 즉시 마을에서 싸울 수 인원들을 추려내었다. 거인들은 맷집 하나만큼은 더럽게 좋아서, 손에 닿는 것마다 부수려 달려들었다.


방금 매튜가 그중 하나의 복부에 창을 꿰뚫어 놓았지만, 어찌나 회복력이 좋은지 스스로 창을 뽑은 자리가 벌써 아물고 있었다. 엘렌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다른 마을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해가 뜰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하늘이 밝아졌다. 아직 지평선엔 달이 있고, 별이 뜬 걸 보니 후하게 쳐주어도 초 새벽 남짓 되었을 것이었다.


빛이 떠오른 곳은 시비스터 방향이었다. 시비스터에 빛을 내는 커다란 나무가 떨어지는걸, 그래스호퍼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미겔, 실크······. 너희는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 게냐.”


하지만 매튜 부부는 이미 마을일에 벅차, 그들의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손엔 창이 잡혀있었고, 그래스호퍼를 지킬 뿐이었다.





시비스터는 이미 마을 사람들이 멀리 도망가고 난 후였다. 그런데도 타국의 피난민이 들이닥치며 거리는 북적북적했다. 그 사람들 틈에 섞인 설리반은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오스먼드가 이곳 시비스터에서 마법을 쓸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규모가 큰 마법에는 밑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가장 흔한 것은 토템을 지정한 자리에 박아두는 것부터, 신단이나 비석 같은 구조물을 세우기도 했다. 제아무리 오스먼드가 마법의 제물을 준비했다고 쳐도, 마법의 바탕이 될 구조물. 그것을 부숴버린다면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마을 안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런 흔적 따윈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법적으로 깨끗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 휘시스에서 넘어왔는지 물비린내가 나는 청년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저게 뭐야!”


하늘에서 내리던 눈 대신 흙과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내려오는 그것은 설리반이 제일 잘 아는 것이었다.


그 나무는 세계수였다. 그것도 엘프들의 신목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제물 중 하나가 이곳에 오는 거야 당연한 이야기였건만, 엘프인 그녀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심지어 신목은 땅 위가 아닌 바다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다를 향해 뛰는 그녀는 가진 세계수 씨앗을 탈탈 털어 바다를 덮는 수초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 위에 뜨거나 물속을 채우는 식물이면 뭐든 만들어 채웠다. 미역, 연꽃, 이끼, 파래 등으로 모자라서 물속에서 자라지 않는 식물들도 억지로 채워 넣었다. 장미 덩굴, 느릅나무, 소나무, 목화, 너도밤나무, 떡갈나무 그리고 세쿼이아까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쏟아내었다.


“으아아아아! 아아악!”


설리반이 악을 쓰며 신목을 받아내었지만, 뿌리는 이미 짠물에 담기고 말았다. 이대로 가다간 뿌리가 썩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녀의 뒤에서 오스먼드가 나타나며 손뼉을 치며 나타났다.


“일부러 바다 위에 꺼낸 보람이 있었네. 네가 근처에 있다면 모든 씨앗을 바쳐서까지 신목을 구할 줄 알았어.”


그는 이미 카그라의 몸을 차지한 후였다. 설리반이 그의 멱살을 잡았지만, 그 이상의 폭력은 불가능했다. 그녀도 엘프인지라 전통무술을 배워 본 적은 있었지만, 영 재능에 맞지 않아 일찌감치 포기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오스먼드는 가볍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너는 씨앗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지. 안타까운 일이야. 결국, 설리반 너도 그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야.”


“너, 너는!”


“패배한 사람은 잠자코 이긴 사람을 따르면 돼. 내가 만들 세상이 결코 나쁘기만 하진 않을 거야.”


그에겐 얼굴이 있었지만, 해골과 다름없이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레기가······.”


설리반이 발음을 다 뭉개며 잇소리로 말하는 탓에, 오스먼드가 무어라 말했는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이 망할 녀석아!”


두 사람의 주변에는 방금 하늘에서 떨어졌던 흙먼지와 나뭇잎이 눈과 함께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신목이었으니, 바닥에 고작 나뭇가지와 나뭇잎 따위만 떨어져 있을 리 없었다.


나뭇잎과 함께 흩어진 세계수의 씨앗들은 시비스터 전역에 뿌려졌다. 특히 그녀의 발밑에도 한 움큼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등 뒤에 씨앗을 품은 신목이 버티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시비스터에서 가장 강한 인물은 다름 아닌 설리반일 게 분명했다.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오스먼드가 뒷걸음질 쳤다.


“어? 친구야? 잠깐 설마······, 이게 이렇게 돼버린다고?”


“설마는 얼어 죽을! 전부 네가 자초한 거야!”


설리반이 오스먼드의 발밑에서 자라는 덩굴을 만들어 그의 관절을 꺾어버리려 했다. 오스먼드가 고통에 비명을 질러도 설리반은 덩굴을 거두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던 그는 돌연 재미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말했잖아. 패자는 승자를 얌전히 따르면 된다고.”


오스먼드도 거대한 은방울꽃 모양의 식물을 틔워냈다. 이어서 그는 그 꽃잎에서 떨어지는 수액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미끄러운 수액 덕분에 손쉽게 덩굴에서 빠져나온 아크리치가 말했다.


“너만 씨앗을 틔울 수 있는 게 아니야. 설리반. 나도 하이페리온의 수업 정도는 들었다구.”


그는 떨어진 씨앗을 하나 줍고, 마력을 흘려 넣었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나온 것은 창포 한 줌이었다.


볼품없는 꽃을 피우는 창포를 얼떨결에 쥔 설리반이 어버버 입을 쉽게 떼지 못했다.


“그리고 난 너보다 우수했어. 지금까지 내 예상대로 잘 움직여줘서 고마워 친구.”


“뭐, 뭐!”


설리반은 받은 창포를 그에게 다시 내던졌다. 하지만 재빠르게 포탈을 타고 넘어가 버린 탓에 창포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엘프들은 식물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었다. 그들은 식물 하나하나에 뜻을 지어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창포는 당신을 믿는다는 뜻이 깃들어있었다.


설리반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끝까지 날 가지고 놀리고 있어! 제기랄!”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뒤섞여 가득한 곳. 엘프 왕국에서 유일무이한 그 장소는 다름 아닌 프로메테우스의 방 안 이었다.


오랫동안 수업을 빼먹은 그를 걱정하던 설리반이 나가자마자, 이어서 하이페리온이 그의 방을 찾았다. 정리된 것을 좋아하는 그는 프로메테우스가 사는 꼴을 보고 영 마음에 들지 않았테지만, 불만을 표할 때가 아니었다.


“당신이 쓴 안건을 읽어 보았어요.”


프로메테우스는 여전히 마법진으로 인간계와 마계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물건들이 보이면 슬쩍 꺼내 자신의 등 뒤로 던졌다.


“어떠셨나요.”


“어땠느냐고요? 그게 정말로 궁금한가요? 읽고 나서 바로 폐기했을 게 당연하잖아요! 저는 인정 못 해요! 그런 문서······!”


프로메테우스는 여전히 심드렁했다.


“잘하셨어요.”


하이페리온이 바닥에서 발에 차이는 걸 집어 들었다. 손에 쥐고 보니 동그란 나무판 안에 유리로 막혀 움푹 파인 공간이 있었는데, 그 안에 바늘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아아······, 그것은 ‘나침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큼흠. 항상 북쪽이 어딘지 알려준다나요? 휘시스 왕국에 집집이 하나씩 들여놓는 모양이에요.”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건가요.”


“배웠다, 이 안에서. 언제나 보고 있으니까, 마법진 속을.”


하이페리온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리저드맨의 말투까지······.”


슬슬 설리반에 이어서 하이페리온마저도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있으니,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설마 일부러 제가 쓴 안건을 폐기했다는 걸 알려주시려고, 직접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니겠죠?”


“정말이지, 당신에겐 두 손 두 발 들었어요. 더 골치 아픈 건 제가 당신의 안건에 동의했다는 거지요. 물론 해당 내용이 엘프 원로회에 올라갔다간, 당신은 물론이고 저 또한 제 명줄에 못살 테지요. 그러니 증명하세요.”


하이페리온이 품속에서 꺼낸 것은 부활의 오브였다.


“당신이 만약 이걸 가지고 떠난다면, 저는 당신을 민족의 배교자로 낙인찍고 필사적으로 쫓을 거예요. 이는 저희 둘만이 아는 비밀이 되겠지만, 저는 철저히 모른척할 겁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망토를 두르고, 커다란 곡도를 허리춤에 차고 나침반을 쥐었다.





“물론이죠.”


오스먼드가 종탑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아수라장이었다. 모두 똑같은 난민이었지만, 벌써 파벌이 생기고 그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나고 있었다. 오스먼드가 그들을 욕구가 필요 없는 몸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면 더는 다툴 이유도 없겠지.


오스먼드는 슬라임 핵에서 생성되는 슬라임을 계속 제거하고 있었다. 벌써 마족과 엘프의 상징이 그의 수중에 들어왔고, 남은 것은 인간의 왕이 되는 것뿐 이었다. 슬슬 정신을 잃은 실크가 테스널 왕성을 뒤집어 놨다고 생각했을 때쯤, 오스먼드는 마법진으로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한데 왕성이 습격을 받은 것 치고는 깨끗했다. 애초에 습격 따위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당황한 오스먼드가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며 실크를 찾았는데, 그는 뒤늦게 마왕의 검을 정식으로 물려받아 이성을 찾은 후였다. 심지어 마왕의 곁엔 테스널의 왕과 왕비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시비스터로 향하고 있었다.


“끄응.”


오스먼드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예상외였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마왕님, 정말 기대 이상이시군요. 하지만 그래도 절 막을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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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89화 이름은 곧 운명을 뜻하는 것이다. 20.01.01 40 1 12쪽
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1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1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5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8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6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8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1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7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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