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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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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0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1.1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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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70화 삼키라니까요!

DUMMY

거대한 민들레 홀씨 같은 식물 끝에 의자처럼 앉을 수 있는 홀씨주머니가 달려있었다. 하이페리온과 부하 엘프들, 그리고 미겔은 각각의 홀씨주머니에 앉아있었다. 그중에서도 미겔은 주머니에 덩굴로 단단히 묶여있었다.


미겔은 몸을 잠깐 들썩이며 자력으로 속박을 풀 수 있는지 가늠하려다 포기하고 말았다. 보통 밧줄이라면 조금이라도 틈이 있어 조금씩 틈새를 벌리겠지만, 덩굴에는 약간의 탄성이 있어서 일말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끌려가는 상황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낭만적이네요.”


과연 미겔이 말한 대로 악천후의 설산을 벗어나자, 저 멀리 보이는 인간 마을 위로 노을이 내려앉아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피나 그리폰에게 물려 공중을 날고 있는 게 아니라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의연한 미겔의 태도에 하이페리온이 작게 감탄했다.


“생각보다 차분하시군요. 다른 자들 같았으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날뛰는 탓에 독을 먹일 수밖에 없었거든요. 어차피 소화기관이 없으시니 독이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미겔에게 살점이 있었다면, 힘없이 웃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골의 얼굴엔 그 어떠한 감정도 표현할 수 없었다.


“차분하긴요, 설마요. 무의미하게 난동 피우는 것보다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게 훨씬 낫죠.”


“아무리 스켈레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높이에서 떨어지면 산산조각이 나서 그대로 즉사할 겁니다. 얌전히 계시는 게 좋아요.”


“늪이나 바다에 빠지면 어떻게든 살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진흙이나 젖은 모래에 파묻히실 테고, 도망가는 것보다 저희가 내려가서 쫓는 게 더 빠를 테죠.”


재판관은 한마디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미겔은 묶여있는 팔 대신 오른발을 들어 가리켰다.


“그렇다면 하피들의 습격이라면?”


미겔이 가리킨 산맥은 하피들의 둥지가 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발밑에는 그래스호퍼 사람들이 완성한 협곡 사이를 잇는 다리가 보였고, 거센 강이 흐르는 협곡을 따라 올라가면 하피들이 사는 구역이었다.


하피의 둥지라 불리는 산맥은 마계 전쟁에서도 하피와 산맥의 절묘한 궁합 덕분에 왕국의 공격을 피해갔던 곳이었다. 따라서 아직도 그곳엔 많은 하피의 무리가 살고 있었다.


미겔이 자꾸 말을 이어가는 탓에 이미 하이페리온이 식물의 비행 방향을 꺾기엔 늦은 타이밍이었다. 그들은 이대로 하피들의 둥지를 지나가야 했고 미겔이 이 순간을 놓칠 리 만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피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엘프들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법을 쓰지 않았지만, 하피들만큼 산맥의 기류를 정확히 짚어내는 자들은 없었다.


하이페리온이 뒤늦게 민들레 홀씨가 산맥을 비켜나가게 유도했지만, 하피들의 날개바람에 흔들리는 탓에 산맥 깊숙이 말려들게 되어버렸다.


하피의 발톱은 매서웠다. 그들은 홀씨를 망가트리면 떨어진다는 걸 이해하고 있어서, 떨어진 시체를 쪼아먹을 심산이었다.


“키에엑!”


“캬아악!”


몇몇 엘프들이 하피 떼를 가시넝쿨로 쫓아내려 했지만, 흔들리는 식물 위에서 날아다니는 하피들을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하이페리온이 나서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씨앗을 틔웠다. 곧 호두껍데기 모양의 두꺼운 외벽이 그들을 감쌌고, 그 탓에 무거워져 민들레 씨앗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눈이 오지 않는 하피의 산맥은 설산보다 형편이 나았지만, 더더욱 가파른 절벽과 무성한 잡목이 이동을 불편하게 했다. 마침 운 좋게 엘프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추락한 미겔은 덩굴 속박을 혼자 풀어낼 수 있었다. 사념체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미겔에게 도망치자고 채근했다.


“네 말이 맞아. 지금 아니면 도망칠 기회가 다시 없을 거야.”


‘그렇지! 드디어 마음이 맞는데! 그럼 이제 봐봐. 우린 마왕성 쪽으로 가서 실크랑 만나거나, 오기를 기다리는 거지. 어때?’


“아니. 우린 테스널 왕국으로 가야 해.”


미겔이 뜻밖의 의견을 내자, 사념체가 거세게 반발하며 거부했다.


‘뭐?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 저주받은 스켈레톤의 모습으로 인간 마을을 돌아다니자고?’


해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주인가······? 사실 스켈레톤으로 서서히 변화될 때는 사실 좀 무서웠는데, 막상 변하고 나니 편하기도 하고 나름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어.”


나른한 미겔의 말투에 반해 사념체의 어투는 완고했다.


‘나는 네 계약에서 생긴 사념체야. 그러니 널 마왕성으로 데려가야겠어.’


“오히려 인간들 틈에 숨어있는 게 안전한지도 몰라. 마왕성으로 가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야. 하지만 지금 당장 마계를 헤매고 있으면 얼마 못 가 도로 붙잡혀 버릴 거야.”


‘이 해골 몸으로 왕국에서 헤매고 있으면, 그대로 토벌되겠지. 차라리 마계의 시쳇더미 틈을 기어가는 게 안전하겠어.’


사념체의 마지막 경고였다. 가슴 한편에서 싸해지는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사념체의 기분이 영 좋지 못한 모양이었다. 미겔이 그를 매몰차게 몰아세웠다.


“넌 그래봤자, 계약에서 생긴 사념체일 뿐이잖아? 내 몸 걱정은 내가 할 거야.”


그러자 손등에 새겨져 있던 문장이 폭발하듯 빛이 나며 미겔의 정신을 쫓아 버렸다.


‘이 몸은 내 몸이야!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미겔의 외적인 변화는 없었다. 곧 정신을 차리고 멍하니 서 있던 스켈레톤은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더니, 마계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거츠가 엘라이자에게 남겨준 쪽지는 편지가 아닌 설계도였다.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는지, 낡아서 모서리가 헤지기도 하고 젖기도 해서 얼룩이 생겨있었다. 그 꼬질한 종이는 과수원 농장의 청사진이었다. 이미 완성된 엘라이자와 거츠가 같이 살던 그 과수원이었다.


거츠가 돌림병에 걸리지 않았을 적에 엘라이자에게 청혼하며 자신의 꿈을 펼치며 보여줬던 설계도는 시간이 흘러 엘라이자에게 쥐어져 있었다.


거츠의 의도는 명백했다.


자신은 엘라이자가 알고 있던 남편이 아니며, 자신을 잊으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물론 엘라이자가 남편을 잊을 리 없었다. 그를 잊을 수 있다면 남편을 좀비로 만들었을 때 망설였을 것이고, 골렘이 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토록 기뻐하지 않았을 것이다.


엘라이자는 쪽지를 돌려주기 위해 곱게 접어 품속에 넣었다. 왕성으로 가는 길은 대략적인 큰길만 외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보다도 걸어가야 하는 거리가 엘라이자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아직 남은 꼭두각시 고약으로 무언갈 부리며 움직일 수 있을 테지만, 눈에 띄는 건 바라지 않았다.


결국, 그래스호퍼 마을에 돌아가기까지는 두 다리로 걸어야 했다. 엘라이자는 숨을 들이 삼켰다, 뱉었다.





스탕달이 보기에 그래스호퍼의 남쪽으로 이어진 외진 산길은, 별다른 지명이 없다는 것에 무색하게 최근 들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듯했다.


“최근에 말발굽이나, 마차 따위가 열심히 오갔나 보군.”


크리스티안이 보기에도 마차나 발자국으로 더럽혀진 흙탕물이 얼어있어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인간들이 왕래가 잦았다는 건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니군요. 다행히 어린 슬라임들이 별다른 위험 없이 지내고 있는 모양이니, 챠오도 무사할 거예요.”


그래도 스탕달은 조급한 모양인지 애꿎은 수염만 뽑을 듯이 당기고 있었다.


“조금 더 서두르도록 하지.”


그 말은 비단 챠오를 찾기 위함 뿐만이 아니라, 하늘이 흐려져 천둥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늘에서 한바탕 눈이 쏟아질 생각인지, 검은 구름이 가득 끼어있었다.





스탕달과 크리스티안이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알이 굵은 눈송이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덩달아 몰려오는 한기에 스탕달은 목을 숨기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인간 따위가 천 옷 몇 장으로 버틸 날씨가 아닌데, 그냥 방금 지나온 마을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방해되거든요. 혼자라면 더 빨리 움직일 텐데 말이죠.”


크리스티안은 스탕달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녀가 스탕달을 무시하듯 말했지만, 정말로 스탕달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따라서 크리스티안의 무시에 요목조목 반박하던 스탕달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


“인간들이란 쓸데없이 기만 살아서······.”


결국, 두 손을 든 크리스티안이 인간의 옷을 벗어 던지고, 슬라임의 몸으로 돌아왔다.


“후우, 인간들은 어째서 이런 불편한 옷으로 스스로 속박하는지 참 영문을 모르겠어요. 어찌 되었든 마을을 떠나니 살 것 같네요. 그러면 꽉 붙잡아요. 떨어지면 난 몰라요.”


스탕달이 ‘무엇을?’ 이라 되묻기도 전에 크리스티안의 슬라임이 그를 낚아채 크게 튀어 올랐다.


부글거리는 슬라임 속은 모든 충격을 없애, 튀어 다니는 그녀의 몸속에 있는 스탕달에게 아무 데미지도 주지 않았다. 다만 땅에 튀길 때마다 하늘과 땅의 위치가 뒤바뀌니 어지러워 제정신을 못 차렸을 뿐이었다.


“잠깐, 저거······. 드래곤이죠?”


크리스티안이 높이 뛰어오르니 골리아투스 산의 꼭대기가 슬쩍슬쩍 보였는데, 아직 거리가 멀어서 한 쌍의 날개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런 모양의 날개를 가진 종족은 드래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드, 드래곤! 그들은 실재하지 않······! 읍, 구읍!”


하지만 결국 메스꺼움을 견디지 못한 스탕달이 속을 게워내려 하고 있었다.


“안돼요! 남의 몸 안에서 멋대로 토하지 말아요! 삼켜요! 참으라구요!”


크리스티안이 사색이 되어 땅에 착지하기 위해 몸을 가늘게 늘렸다. 그녀는 떨어지는 와중에 챠오와 게일 일행이 화산을 향해 걸어가는 걸 똑똑히 봤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삼키라니까요!”


크리스티안이 절규하며 소리쳤다.





갑자기 하늘에서 ‘삼키라니까요!’라는 괴성과 함께 슬라임이 떨어지니, 아무리 흑마법사인 엘라이자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떨어진 슬라임은 엘라이자가 보고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뱃속에서 인간 하나를 꺼내며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뒤늦게 엘라이자가 몸을 숨겨도 그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으읍, 그업······!”


“아아! 몸속에 토사물을 쏟은 인간은 당신이 처음일 거야! 역시 따라오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혼자 가버릴 걸 그랬어! 마왕님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녹여버렸을 텐데!”


거대한 슬라임은 울상을 지으며 몸속의 토사물을 밖으로 밀어 짜내고 있었다.


반면에 속을 다 게워낸 인간은 땅에 처박았던 고개를 들었는데, 분명히 엘라이자가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바로 테스널 왕국의 양대 후작 중 하나인 스탕달 후작이었다. 비록 꼴사나운 모습으로 엘라이자 앞에 나타났지만, 그는 바크만 왕의 뒤에서 섭정 노릇을 하던 자였다. 거츠가 자신의 곁에서 사라진 이유도 그가 배후에 있을 게 자명했다. 그러니 슬라임과 후작 본인이 제정신이 아닐 때 엘라이자가 나서야 했다.


엘라이자는 몸을 숨기고 있는 나무에 고약을 바르며 남은 양을 확인했다. 나무에만 바른다면, 오십 그루는 족히 바를 수 있을 양이었다.


하지만 엘라이자가 오십 그루나 되는 기물을 한꺼번에 움직일 순 없었기에, 딱 하나의 기물에 모든 걸 걸어야 했다.


그런 엘라이자의 눈에 띈 것이 목인형이였다. 어째서 외딴 숲에 허수아비처럼 목인형이 세워져 있는지 엘라이자는 알지 못했지만, 손때가 묻어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인형은 오두막의 옛 주인의 물건인듯했다. 엘라이자는 남은 고약을 용기의 바닥까지 긁어 목인형에 잔뜩 발랐다. 곧 고약을 흡수한 목인형은 검은빛을 띠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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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29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3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0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4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4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7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6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5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2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7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4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6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4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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