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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44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1.01 13:37
조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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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DUMMY

“아폴은 힘이 세구나.”


알프레도가 하얀 천 안에서 고개를 빼꼼 들고 면목 없다는 듯이 말했다. 결국, 알프레도는 용수철들과 함께 짐짝이 되어 천에 둘러싸여 끌려가고 있었다.


“태생이 전사인 리저드맨에게 이정도야 아무렇지 않죠.”


아폴은 의젓하게 어깻죽지에 짊어진 천 보따리를 추켜 맸다. 어린 리저드맨은 알프레도의 목소리를 흉내를 내서 말했다.


“하루, 하루면 족해.”


알프레도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찌할 줄 몰랐다.


“아악! 그만해, 미안해! 내가 오기를 부렸어!”


“정말, 멋있는 말은 혼자 다 해놓고서 본인이 쓰러지면 어떡해요.”


“대신 해가 지면 내가 밤을 새워서 보초를 서줄게.”


“됐어요. 밤이 되기 전에 사막 벌레나 잔뜩 잡아 올 준비나 해요.”


아폴은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응.”


알프레도와 고철 더미를 감싼 천은 질겼지만, 그저 짐짝처럼 끌려가는 것뿐이었기에 퍽 편한 운송수단은 아니었다. 그래도 뭉툭한 용수철 끝이 자꾸 알프레도를 옆구리와 겨드랑이를 찔러도 그는 불평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아폴이 말을 걸었다.


“있잖아요. 인간. 아니 알프레도.”


“응?”


“당신에게 그 서큐버스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길래······.”


“만난 건 길어야 이삼일쯤 되었을걸?”


알프레도가 고개를 꺾어 날짜를 세다가 말했다. 인간 병사의 대답을 듣고 아폴이 반박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구하려 하는 거예요? 이상하잖아요?”


“그게 옳다고 믿으니까. 내가 강하건 약하건 상관없어. 결국, 옳다고 생각한걸 관철해야 해. 나는 기사야. 나만의 신념이 있는 법이라고.”


“신념······.”


그 말을 듣고 아폴은 생각에 잠겼다. 그가 알에서 깨어나 주름진 얼굴을 세상 밖으로 들이밀고 눈을 떴을 때, 부모가 아닌 슈네트가 있었다. 아폴은 부모님 없이 할머니의 슬하에서 대장일을 배우며 자랐지만, 그래도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다만 집을 떠났던 할아버지가 의식을 잃은 채로 돌아오신 뒤로 아폴의 어깨가 무거워진 게 그의 고민이었다.


아마 드래곤의 뿔을 꺾으러 떠난 자들은 십중팔구 퀘스트에 실패할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 투스는 영영 눈을 뜨시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도 그 후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를 따라 눈을 감으실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폴 자신이 족장을 물려받을 것이다.


아폴은 족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


벌써 마을 어른들이 아폴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리저드맨 어른들은 아폴의 근육이라던가 창을 잡는 모습을 하나하나 고쳐주고 싶어 했다. 결국, 아폴은 그들의 눈에서 도망쳐 창고에 틀어박혀 조잡한 기계장치를 만지러 갔지만, 매번 어른들을 피하고만 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사실 일부러 불완전한 비행 장치로 멀리 나간 것도 일부러 그런 것이었고, 결국 사고가 나서 장치가 망가졌을 때 내심 안심도 했다. 어쩌다 알프레도를 만나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아폴은 리저드맨의 마을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면 그 거대한 바위들 위에서 무거운 시선이 아폴에게 내려꽂힐 테니까.


알프레도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있지, 저 바위 아까 본 것 같은데?”


“차, 착각이야.”


“난 더위에 쓰러질지언정 길치는 아니라고, 난 바다 한군데에 떨어져도 길을 찾을 수 있어. 헤엄은 못 치지만.”


아폴은 주둥이를 앙다물었다. 세로로 날렵한 눈동자가 가늘어지고, 꼬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무리에서 쫓겨난 거야?”


“읏, 인간 따위가 리저드맨의 일에 참견하지 마!”


“아폴. 잠깐 멈춰줘.”


알프레도는 어린 리저드맨을 불러세워 그의 앞에 마주 섰다. 불볕더위 탓에 금방 알프레도의 얼굴이 벌게지고 땀이 비 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중갑옷도 고열에 달아올라 맨살에 닿는 부분은 그대로 익을 정도였다. 그는 아폴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난 네 능력이 필요해. 그러니 네가 어떤 고민 탓에 망설인다면 나는 그 고민을 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어. 얘기해줘, 네가 지금 고통스러워 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인간이지만, 긍지 높은 기사야.”


아폴의 귀에 알프레도의 마지막 말이 리저드맨의 말버릇인 ‘긍지 높은 창잡이’와 겹쳐져 들렸다. 그는 꼬리를 바닥에 탁탁 두들기며 망설였다.


두 사람을 발견한 리저드맨 정찰대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찾았다, 아폴! 할머니가 걱정하셨다! 너를 많이!”


그리고 그들은 곁에 멀뚱히 서 있는 알프레도를 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도시락인가, 아폴의?”





실크의 등장에 엘프들이 허를 찔렸다 해도, 그들이 기가 죽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이 수적으로 우세했으니 한 사람당 다섯이 달라붙으면 쉽게 이길 게 당연했으니까.


절벽 위에 있던 엘프 둘은 활시위를 그대로 실크에게 돌렸고, 나머지 셋은 칼을 잡았다. 모닥불을 감싼 엘프 다섯은 미겔을 향해 칼을 쥐었다.


“날이 춥다. 가만히 있으면 잠이 오는 법이지만, 덕분에 몸을 움직일 수 있겠군.”


실크는 대검을 휘둘러 가장 끝에 있는 엘프를 향해 세로로 그었다. 엘프들의 발놀림이 잽싼 탓에 실크의 공격은 그저 얼어버린 땅을 찍어버리고 말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노림수라는 듯 실크는 재차 같은 위치를 찍어 갈겼다.


문제는 실크가 한자리에 너무 오래 서 있었다는 것이다. 활을 든 엘프가 쏜 두 발의 화살이 날아와 실크의 어깨에 박혔고, 그는 신음을 삼켜 고통을 버텨야 했다.


“뭐 하는 짓이지? 싸우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인가! 잘 생각했다. 우리 또한 너희들을 죽일 생각은 없다. 그러니 얌전히 포로가 되는 게 좋을 것이다!”


활을 쏜 엘프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이 자와 절벽 아래에 있는 해골은 바로 프로메테우스가 주목하는 자들이니 무언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대면하고 보니 별거 없는 뜨내기임이 분명했다.


그 말을 듣자 실크는 어금니가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포기하라고 말한 건가? 하하하! 감히 이 몸에게 항복을 하라니 신선한 충격이다.”


실크의 말과 함께 쩌저적 하는 굉음이 설산에 울리며 실크가 검으로 내려친 절벽이 무너졌다. 무너진 절벽은 그대로 미겔과 대치하고 있던 엘프들을 덮쳤다. 낙석보다 떨어지는 눈이 많아 절벽 밑 엘프들의 목숨은 부지하겠지만, 당분간 쉽게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실크는 절벽 밑에서 울리는 미겔의 욕지기를 무시하고 엘프들에게 진득한 마력을 과시하며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우리를 생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다. 그러니 항복할 생각이라면 지금 하는 게 좋다. 우리는 너흴 포로로 삼을 이유가 없으니, 저항하면 죽을 것이다.”


낮은 목 울림과 함께 실크는 어깨에 박힌 화살을 단번에 뽑아내 버렸다.


“고작 화살이라니.”


실크는 다시 대검을 쥐어 내려찍었다. 이번에는 재빠른 엘프를 놓치지 않았다.


“크악!”


활을 집었던 두 엘프는 어설프게 피하려다 각각 옆구리와 허벅지를 베이고 쓰러지고 말았다. 칼을 가볍게 휘둘러 피를 털어내던 실크는 사소한걸 잊고 있다가 뒤늦게 생각난 양 가볍게 말했다.


“아. 한 명은 살려둬서 사정을 들어야 하는 걸 잊고 있었다. 하지만 절벽 아래에 살아남은 엘프가 있을 테니 적어도 너희들이 살아남을 일은 없을 것이다.”


“으, 으읏! 이거나 받아라!”


남은 엘프들이 검으로 안되는걸 깨달았는지, 씨앗 한 줌씩 꺼내 쥐었다.


엘프들이 세계수를 잘 다루려면 오랫동안 수련이 필요한 법인데, 그중에서 세세한 식물의 구성요소를 조합하기 위해선 타고난 재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섬세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은 결코 남은 엘프들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들은 씨앗의 성장을 원하는 대로 조작하지 못하기에 한 방 한 방이 강한 공격을 집중적으로 수련했다. 응용이 떨어지더라도 공격력만큼은 설리반과 비견될 만했다.


곧 엘프들의 품에서 쏟아져나온 가시덩굴은 직선으로 꿰뚫어 버릴 듯이 뻗었고, 뻗은 덩굴에서 또 다른 덩굴이 다른 각도로 찌르며 자랐다. 만약 처음의 일격을 당했더라면, 몸속에서 수십 개의 가시덩굴이 자라는 탓에 그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공격이었다.


실크가 미겔에서 배웠던 보법이 여기서 유용하게 쓰였다. 뛰는 듯 걷는 듯 빙글빙글 돌다가 어느새 바닥에 칼을 찍고 크게 도약하는 발걸음을 예측하기도 어렵거니와, 예측을 한다 해도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없는 엘프들은 고역을 겪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형이 매우 불리했다. 식물은 매서운 냉기가 살을 에는 설산에서 자라기 힘든 것이 당연했다. 죽음을 예감한 엘프들이 격차를 넘을 수 없는 마왕의 앞에서 주저앉았다.


“우리는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재판관님······.”


실크의 검이 엘프들의 목을 겨누고 휘둘러질 때, 거대한 소나무가 발치에서 갑자기 실크의 공격을 막으며 급성장했다.


“제가 뭐라고 했던가요. 굳이 맞설 필요 없고, 미행만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재판관님!”


하이페리온은 급하게 왔는지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아무튼, 늦지 않아 다행이군요. 나머지는?”


“절벽 밑에 있습니다.”


“알겠어요. 여기서부턴 제가 맡죠.”


하이페리온이 실크의 앞을 막으며 자세를 잡았다. 실크가 잘 알고 있는 무술이었다. 미겔이 딱 저렇게 자세를 잡고 공격을 기다렸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미겔이 실크에게 한소리를 하려고 눈사태를 뚫고 절벽을 타고 올라온 참이었다. 그는 실크가 떨군 눈사태 탓에 아티팩트 반지의 변장도 풀려버린 상태였다.


“실크! 너! 내가 아무리 뼈다귀만 남았다고 해도! 해선 안 될 게 있는 법······. 음?”


미겔도 하이페리온의 자세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곧 진지하게 말했다.


“실크. 내가 싸우게 해줘.”


미겔은 실크의 앞을 막고 눈앞의 엘프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하이페리온도 이런 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썹이 기울었지만,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겔이 조심스레 말했다.


“노목을 알고 있나?”


“노목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예상이 가는군요. 저도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만······.”


슬며시 눈을 감은 재판관은 갖은 이름을 바꿔 살아온 프로메테우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그는 해골만 남은 리치였고, 자신의 눈앞에 엘프의 전통 무술을 다루는 녀석도 비슷한 스켈레톤이었다. 이 녀석이 소생의 오브의 행방의 단서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무리한 억측인 걸까?


결국, 하이페리온이 끝을 흐리며 얼버무린 말의 마무리를 지었다.


“서로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 보이니, 저로선 엄중한 집행 절차를 밟아야겠습니다.”


“나도 바라던 바다.”


미겔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도저히 실크가 끼어들 수는 없었다. 그는 뒤로 몇 발짝 물러서서 둘의 전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치를 하고 있던 두 사람 중 하이페리온이 먼저 땅을 딛고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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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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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1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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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7 1 11쪽
»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1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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