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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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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3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2.1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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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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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DUMMY

온천수가 기분 탓인지 미적지근한 것 같았다. 키클롭스는 그런 날이면 여지없이 불길한 일이 생긴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엘렌으로부터 잘 지내냐는 편지를 받았지만, 후각이 민감한 그에게 편지지에서 탄내가 나는 걸 숨길 순 없었다. 그녀도 다크엘프인지라 감각이 예리한데 편지지에서 나는 냄새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 경황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일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마.’라니······. 쯧.”


키클롭스가 종업원인 고블린들에게 편지를 돌려주고 몸을 담그고 있던 온천에 어깨를 집어넣었다. 인중까지 탕 속에 몸을 담근 키클롭스는 콧바람에 수면이 흔들리는 걸 보고 있었다.


쿵, 쿵.


그런데 그 파문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갑자기 정문을 지키며 손님을 맞이하는 고블린이 그가 쉬고 있는 온천에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온천장님! 온천장님! 밖에, 밖에요!”


“응? 뭐야. 침착하게 말해. 인간들이냐? 인간들이 침략이라도 온 거야?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더니만.”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이에요! 그것도 레드드래곤이라구요!”


“그게 무슨 리저드맨 털 난 소리야? 보나 마나 그리폰이나 가고일 보고 호들갑을 떠는 거겠지······. 매뉴얼대로 하자고, 매뉴얼대로.”


하지만 그가 무시하기에는 진동이 너무 거셌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마그마가 고여있는 곳이니, 땅속을 울리는 진동은 너무나 위험했다. 결국, 고블린들에게 수건을 건네받은 키클롭스가 탕에서 일어섰다.





“허.”


키클롭스 자신도 작은 체구가 아니었지만, 그의 키의 세배쯤은 훌쩍 넘기는 드래곤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마법은 수증기를 짙게 깔아 시야를 차단하고 기습하기에 좋은 마법이었지만, 드래곤이 날개를 한번 퍼덕이면 사라질 허무한 것이었다.


키클롭스가 위기를 느꼈을 때, 드래곤의 등 위에서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슈네트와 크리스티안의 신경전을 잠재워준 챠오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함께 인간 둘이 있었지만, 키클롭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너는 항상 다른 이를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챠오.”


챠오는 드래곤의 등에서 내려와 지금 마계에 처한 위험을 설명했다. 챠오에게 사정을 들은 키클롭스는 단칼에 말했다.


“미안하지만, 키클 온천장은 돕지 않을 거야. 우리는 국가나 마을이 아니고, 그저 영세한 사업장일 뿐이야. 이점만큼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어.”


챠오가 실망한 기색을 비치자, 키클롭스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키클롭스 개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나 혼자 간다. 마침 인간 마을에 가서 살펴볼 친구도 있고, 덩달아 세상도 구하는데 힘 좀 보태고. 핑계 대기 좋군그래.”


그러자 고블린들이 서로 얼굴을 보다가, 몇몇이 손을 들어 따라가길 원했다. 종업원들은 전쟁 중에 그들을 거둬주어 보호해준 그가 불상사에 휘말리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 된 의견을 듣자 키클롭스가 혀를 차고 말했다.


“좋아, 따라올 녀석들은 짐을 싸라고! 그렇다고 온천을 관리하는 녀석들까지 비워두지 말고! 키클 온천, 출장영업이다!”


키클롭스가 떠나기 전에 온천수에 손을 담갔다. 기분 탓인지 물이 아주 뜨거워, 한동안 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줄리엣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세계수를 볼 수 있었다. 그 말인즉슨, 세계수가 있는 곳에 부활의 오브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줄리엣은 드래곤의 모습을 본뜨는데 모든 마력을 끌어모아 써버린 탓에 무엇보다 회복이 필요했다. 마침 시비스터는 난민들이 가득했고, 불안한 생활을 하느라 몽마 없이도 악몽을 꾸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줄리엣의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크가 손쉽게 결정석 드래곤을 없애버린 걸 보면, 그녀가 회복한다고 해도 똑같은 결과가 기다릴 것이 분명했다. 줄리엣은 그저 부수는 힘이 아닌, 다른 방식의 힘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난민들의 꿈속에서 정보를 모으다 보면 그 실마리가 생길까, 줄리엣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서큐버스는 꿈을 꾸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들의 꿈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 꿈에 잡아먹혀 서큐버스 자신의 악몽을 보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줄리엣의 앞엔 인큐버스킹이 서 있었다. 그녀가 인간의 꿈을 수확하며 식사를 할 때면 언제나 나타났지만, 그녀는 몇 번이고 무시하려 애썼다. 그는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악몽의 신기루였을 뿐이었으니, 그들에게 대꾸했다간 악몽에 휩쓸려버린다. 서큐버스가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법칙 중 하나였다.


“줄리엣.”


인큐버스가 그녀를 불렀다. 줄리엣이라는 이름은 그가 죽고 난 후, 스탕달과 만나서 받은 이름이었다. 그러니 그는 허깨비일 수밖에 없었다.

줄리엣은 난민들 한 명 한 명마다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그녀는 난민들이 각각 휘시스와 렙틸리아에서 왔음을 알았고, 각 왕국을 파멸로 이끈 이가 다름 아닌 실크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실크가 중요한 방해물인 건 맞지만, 그녀의 목표는 아니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녀의 변함없는 목표는 인큐버스킹을 되살릴 부활의 오브였다.


“줄리엣.”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그래서 나도 이렇게 노력하고 있잖······!”


계속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이름을 부르는 인큐버스킹 탓에 줄리엣이 바락 화를 터트려버렸다가, 스스로 입을 막아버렸다. 악몽에 빠진 줄리엣이 인큐버스를 돌아보았다.


인큐버스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를 공격할 줄 알았던 그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시약이 한 병 놓여있었다.


연금지식이 있는 그녀는 시약의 정체가 마비 포션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크리치라고 할지라도 잠깐은 정신을 못 차릴 강력한 물건이었다.


줄리엣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인큐버스킹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다른 인간의 꿈을 먹으러 옮겨 다녔을 때도 그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야, 이것 참 기묘한 조합이네? 왕과 마왕이 한 곳에 있다니. 그 누가 상상을 했겠어?”


실크와 거츠가 병력을 이끌고 시비스터의 초입에 다다랐을 때, 오스먼드가 포탈을 타고 실크와 거츠의 앞으로 넘어왔다. 그는 카그라의 모습을 가지고 마법진을 발판삼아 공중을 걷고 있었다. 아크리치가 쭈그려 앉아 밑을 내려다보았다.


“일단은 정식으로 마왕 승계를 받은 걸 축하드린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마왕님의 첫 번째 업무가 적국과 손을 잡는 거라니, 역대 마왕님들이 지켜보고 계신다면 통탄을 금치 못하실 거예요.”


“너에게 이해를 바란 적은 없다. 지금이라도 네가 꾸미는 것을 그만두지 않겠는가.”


실크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오스먼드는 딱히 그럴 생각이 없는지, 잡은 지팡이를 허공에 빙글빙글 돌렸다. 그 지팡이 끝에서는 마법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마법진이 만들어지는 탓에 실크는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검을 쥔 실크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며 오스먼드가 말했다.


“봐요, 마왕님. 그만두기엔 이미 멀리 왔잖아요.”


오스먼드가 마법진을 발동하자, 그 안에서는 실크가 예상했던 암석이나 마그마 따위가 아닌, 씨앗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씨앗들은 바람을 타고 넓게 퍼졌다.


“원래는 마왕님이 테스널 왕국을 마저 멸망시키셨으면, 제가 인간들의 왕이 될 계획을 짜고 있었죠. 그래서 어렵게 인간의 모습을 구하기 위해 죄 없는 친구를 희생시켰단 말예요. 그런데 제 눈앞에 유일한 왕이 있군요.”


카그라의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 자리하고 있던 서러브레드 남매와 알폰스가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테일코트의 마법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숨겼다. 하지만 눈 밭 위에서 투명 마법은 쓸모가 없었다. 일단 바닥에 눈발자국이 남았고, 눈이 내리고 있으니 투명한 몸에 눈이 부딪히며 형체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아, 나에게 그런 눈속임이 통할 리 없잖아. 내게 투명 마법을 가르쳐준 건 너희들이라구.”


오스먼드가 투명 마법을 역으로 풀어버리자, 그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자 오스먼드의 눈앞에 실크가 나타났다.


“어라?”


실크와 알폰스는 알폰스의 의태 마법으로 서로의 모습을 바꾼 채였다. 그들이 짧게 회의를 가진 결과, 거츠를 노리고 아크리치가 찾아올 테니 서로 모습을 바꿔두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실크는 르댕고트의 도움으로 오스먼드에게 빠른 속도로 쏘아 올려 졌다. 그가 휘두르는 검에 오스먼드가 서 있던 마법진이 파괴되고, 아크리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인간의 몸으로 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니 오스먼드에게 무시 못 할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 증거로 오스먼드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고 있었다. 쓰러진 그의 머리 곁에 마왕의 검이 박혔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 그만두지 않겠나.”


“저도 더는 말하지 않을 겁니다. 마왕님은 절 막을 수 없어요.”


오스먼드가 마법진으로 뿌렸던 씨앗들이 발아하며 사람들을 덮쳤다. 그중에서도 거츠를 노렸지만, 알폰스가 실크의 모습을 속이면서 국왕의 모습을 숨기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거츠의 모습을 하고 있던 볼프강 장군이 그 공격을 받아내었다. 하지만, 방패와 검을 식물에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숨바꼭질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지 않아요?”


실크를 부드럽고 질긴 덩굴로 감아올리고, 오스먼드는 눈을 털며 일어섰다. 그들은 인간 병사를 비롯한 머릿수가 많아서, 그중 누가 진짜 국왕인지 오스먼드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마력에는 한계가 있고, 모든 사람을 섞어놓았을 리 없다고 생각한 오스먼드가 공격한 곳은 딱 한사람이었다.


바로 거츠의 아내, 엘라이자였다.


창과 같이 날카로운 덩굴이 아내를 향해 날아오자, 병사의 모습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던 거츠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거츠!”


엘라이자가 소리쳤지만, 그녀의 외침은 쉽게 흩어져 버렸다.


“그럴 줄 알았어. 인간들의 행동쯤이야 예상하는 건 쉽지. 드디어 마지막 제물이 내 손에 들어왔어.”


오스먼드는 거츠를 데리고 포탈 너머로 사라졌다.





오스먼드는 신목과 거츠, 그리고 초대마왕의 슬라임 핵을 한군데에 모아두었다. 설리반은 마법의 토대가 될 장소를 찾지 못했지만, 오스먼드는 언제 파괴될지 모르는 토대를 시비스터에 설치할 이유는 없었다.


오스먼드는 이동마법의 대가였다. 그는 시비스터에 마왕성을 소환할 생각이었다. 특히 마왕성의 홀에 복잡하게 이중 삼중으로 그렸던 마법진이 설리반이 그토록 찾던 오스먼드의 초석이었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모든 사람이 타인을 해치지 않고, 욕망이 제거된 스켈레톤으로 사는 겁니다.”


슬라임 핵에서 슬라임이 생성되며 크게 요동치는 듯했으나, 오스먼드의 마법이 완성되는 것보다 빠르지 못했다.

마침내 포탈을 타고 시비스터의 얕은 바다 위에 나타난 마왕성 앞에 제물들이 바쳐지고, 오스먼드의 종족을 획일화시키는 마법이 발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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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마지막화 믿겠습니다. 20.01.06 60 1 13쪽
89 89화 이름은 곧 운명을 뜻하는 것이다. 20.01.01 39 1 12쪽
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1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5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7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6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8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7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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