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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28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1.0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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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DUMMY

하이페리온이 먼저 공격한 것은 미겔에게 행운이었다. 눈 오는 설산의 환경이 환경이다 보니 해골 몸을 가져 추위에 피해가 없는 미겔이 유리했지만, 실크는 추위를 견뎌야 했기 때문이었다. 실크를 위해서라도 단기전으로 끝낼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그건 엘프 측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아마 실크보다 더 추위에 약할 것이 분명했다. 즉, 둘 다 반격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끌어서 서로 좋아질 게 없었다.


단걸음에 미겔의 앞에 다가온 하이페리온이 왼손으로 미겔의 손목을 내리쳐 오른손바닥으로 미겔의 어깻죽지를 갈겼다. 방어에는 자신만만했던 미겔이었지만, 어깨가 탈구되어 떨어지자 적잖이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걸로 미겔이 나가떨어질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미겔은 엘프를 밀쳐낸 뒤, 멱살을 잡아 다시 잡아당겨 몸의 중심을 무너트렸다. 그 후 반원을 돌아 외팔로 그의 등에 장타를 내려치자, 엘프는 그대로 앞으로 구르며 쓰러졌다.


하이페리온은 눈밭에 얼굴로 떨어져 꼴이 우스운 꼴이 되었지만, 옷매무새를 추스를 새도 없이 말했다.


“당신은 엘프였나요?”


하이페리온이 물었다. 인간의 골격이나, 엘프의 골격이나 비슷비슷한 모양이었기 때문에 스켈레톤인 미겔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뇨,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술은 누구에게 배웠죠?”


이젠 미겔도 모를 수가 없었다. 미겔은 스승인 노목이 귀를 자른 엘프이며, 도망자였음을 인정했다.


“당신이 쫓고 있는 엘프가 제 스승입니다.”


“그 멍청한 프로메테우스가 제자를 거두다니, 믿어지지 않는군.”


미겔은 그제야 노목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 턱을 달싹이며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겼다.


“그는 멍청이가 아닌, 어린 부랑아를 거둬준 은인입니다.”


이번에는 어깨에 팔을 도로 붙인 미겔이 먼저 공격했다. 좀처럼 먼저 공격하는 일이 없는 미겔이었기에 관람하는 실크도 호기심 깊게 바라봤다.


미겔은 자세를 낮춰 하이페리온의 다리를 후려쳤다. 바닥에 쌓였던 얼음 낀 눈이 튀어 바람에 다시 흩어졌지만, 하이페리온은 쓰러지지 않았다. 미겔이 후려친 곳엔 질긴 마 뿌리가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을 쓰다니, 치사하기는!”


“우리는 서로 대련을 하는 게 아니에요. 싸우는 거죠.”


하이페리온이 손가락을 까닥하자, 마 뿌리가 그대로 미겔의 발목을 옭아매었다. 미겔은 손쉽게 발목을 분리하며 속박에서 풀려났지만, 싸움에서 주춤하는 몇 초의 시간이 승패를 가르는 법이었다. 하이페리온이 미겔의 두개골 사이에 씨앗을 흘려 넣자, 금세 덩이줄기가 온몸을 얽어매며 자랐다.


하이페리온은 멀찌감치에서 보던 부하들에게 일러 말했다.


“목표물을 회수했습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죠.”


절벽 밑에서 동료들을 구하고 올라온 엘프들이 되물었다.


“목표물이라니요? 저 해골이 말입니까?”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어요. 그 프로메테우스가 평범하게 제자를 기를 이유도 없거니와, 지금까지 마왕성 외에 오랫동안 거주하는 일은 없었는데 마왕성에는 오브가 없었으니 이미 어딘가에 사용한 게 틀림없죠.”


“그래서 이 녀석이······.”


“맞아요. 프로메테우스가 오브로 소생한 녀석이 이 스켈레톤입니다. 오랫동안 제자를 가르쳤다고요? 사실은 오브로 살려낸 자를 감시할 요량이었겠지요.”


순간 미겔이 버둥거리며 외쳤다. 아니, 그는 미겔이 아닌 실크와 계약하며 생겼다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사념체였다. 그는 발버둥을 치며 옭아맨 덩굴을 풀어내며 애쓰고 있었다.


“으악! 움직일 수 없어! 이봐, 후임 마왕아! 무엇을 하는 거야? 얼른 날 구하라고!”


“이걸로 명확해졌군요. 이 새로운 인격이 오브로 부활한 자입니다.”


하이페리온이 결론을 짓고 말했다.


실크는 미겔을 존중해 전투에 한 발짝 빠져있었지만, 어느새 바뀐 인격이 구조요청을 하자 대검을 쥐고 일어섰다.


그러자 실크를 가로막은 하이페리온이 말했다.


“검을 거두시죠. 당신이 지키려는 건 미겔이라 불리는 인격이겠지요? 그의 목숨은 저희가 보장하겠습니다. 대신 저희는 부활의 오브로 되살아난 당신의 선임 마왕을 취하구요.”


초대 마왕도 질세라 외쳤다.


“아니! 저 말을 믿지 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어서 그를 해치우고 나를 구해줘!”


“원래 저희가 대대로 지켜온 보물로 되살아난 자입니다. 우리는 원래 우리 것이었던 물건을 되찾아갈 뿐이에요. 꽤 공정하고 합리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우리나라로 간다면 말이죠. 뭣하면 같이 가셔도 좋겠군요.”


강경한 하이페리온의 말에 실크는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실크는 고개를 돌려 산 너머의 마왕성을 바라봤다. 미겔과 맺은 계약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스켈레톤이 돼버린 이상 급한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무언가 몸에 과부하가 걸린다면 스켈레톤의 몸이 견디기 수월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실크의 하얀 날숨이 입꼬리를 타고 흘렀다.


“애초에 그는 그 부활의 오브인지, 무언가로 되살아 난 것이 아니다. 그는 마족의 계약에서 태어난 사념체일 뿐.”


재판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쩔 수 없군요.”


하이페리온이 손짓하자, 아까와 같은 마 뿌리가 바닥에서 실크의 발을 노리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같은 기술에 걸려들지 않는다!”


실크는 덩굴이 깔린 바닥에 대검을 던졌다.


“겨우 공격이 검을 던지는 겁니까! 마왕이라고 해봤자 수준이 이렇게 차이 나니 설득할 필요조차 없었군요!”


하지만 실크가 노린 것은 검을 투척하는 것이 아닌, 검을 밟고 도약하는 것이었다. 땅을 기는 마 뿌리 따위로는 공중을 막을 순 없었다. 실크는 곰으로 변하며 하이페리온의 위에서 떨어졌다.


푸부부북!


하지만 실크의 기대와 달리, 자신의 복부에 꽂힌 덩굴은 하이페리온의 뒤에 서 있었던 엘프 부하들의 것이었다. 미처 곰의 질긴 가죽을 뚫지 못했지만, 몸 전체를 덮어버린 덩굴은 그대로 실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오스먼드가 포탈을 타고 넘어간 곳은 눈이 내리는 설산이었다. 마왕님과 미겔을 마지막으로 본 곳이 설산의 초입 부분이었으니, 지금쯤 정상에 올라왔을 법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속인 마왕에겐 미안했지만,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불가피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이미 추위에 시들어 얼어버린 줄기 덩어리뿐, 아무것도 없었다. 오스먼드는 설산의 이곳저곳을 비춰보며 다른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아크리치는 유일한 단서인 줄기 덩어리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겉이 얼어버렸지만 속은 축축해, 딱딱한 껍질을 두른 과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오스먼드가 그 껍질을 벗기자 피투성이가 된 마왕이 굴러떨어졌다.


생각지 못한 재회에 오스먼드는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어째서 마왕 혼자 습격당해 쓰러져있는지. 오스먼드는 포탈을 열어 그를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오스먼드가 포탈을 열자 자욱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유황 냄새가 나며, 부글부글 물소리가 들리는 곳. 포탈의 건너편은 바로 키클 온천이었다.





크리스티안이 챠오가 데리고 있는 슬라임을 따라 그래스호퍼에 도착했을 때, 마을이 절반쯤 무너져 내려앉은 걸 볼 수 있었다. 크리스티안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문제였지만, 동행하던 스탕달에게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스탕달은 자신이 왕국을 떠나있는 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는 마을을 추스르던 잡부를 하나 불러세워 경위를 물어보려고 했다.


스탕달이 불러세운 잡부는 다름 아닌 그와 면식이 있던 머비스 자작이었다. 한창 마족의 무구에 정신이 팔려 퀭한 눈동자를 하고 있던 그는 이제 그 저주에서 벗어났는지 맑은 회색빛의 눈을 띄고 있었다.


“뭐요? 일하느라 바쁜 거 안보이쇼? ······어라? 어? 후, 후작님 아니십니까!”


이미 이름뿐인 남작 따위는 내팽개친 지 오래되었는지, 예법을 잊어버려 당황하던 머비스 자작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인상이 밝아졌군, 머비스. 저택에 틀어박혀 있느라 얼굴도 몇 번 본 적 없었지만 말이야.”


“송, 송구합니다!”


“뭐, 일단 자네가 왜 시비스터를 떠나 이 시골에서 평민들과 어울리며 노동을 하고 있는지는 차차 해두고 말이야. 왜 그래스호퍼가 이런 꼴이 되었지? 여긴 인접한 적국도 없지 않나. 내란이라도 일어난 건가?”


“그, 그것이······.”


남의 마을의 불행을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것이 마음에 걸린 머비스는 마을의 복구를 진두지휘하는 그레고리와 올란을 흘겨봤다. 마침 올란이 폐허가 된 그래스호퍼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에게 주목하고 있던 차라, 그가 대신 대답을 이어갔다.


“갑자기 땅밑에서 거인 마족들이 대 여섯 마리가 튀어나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오. 행색을 보아하니 높은 관직의 분이신 것 같은데, 지금껏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는지 왕성에서 병사 한 명이 내려오지 않았소. 곡식 창고도 불타버리고, 가축들도 모두 도망갔는데, 당장 먹을 거라곤 보드카뿐이라는 게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마족들은 모두 해치운 건가.”


올란은 스탕달의 곁에 서 있는 크리스티안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덮은 깊숙한 로브로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워낙 키가 커서 시선이 안 가려야 안 갈 수 없었다.


“하! 말이라도 관심을 주니 고맙다고 해야 합니까. 그들은 벌써 떠나 시비스터 방향으로 올라갔소. 그나마 마을 사람들이 개척일로 마계로 몰려간 게 천만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오.”


크리스티안이 스탕달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갔다.


“아무래도 당신은 왕성으로 올라가야겠네요. 챠오는 제가 찾아서 데리고 있을게요. 그편이 아무래도 좋겠죠?”


분명 그 말이 옳았다. 현재 국왕은 공석 상태이며, 후작 두 사람 또한 왕성을 비우고 있으니, 각종 재해에 대처하기 힘들 터였다. 알폰스가 이곳에서 거츠를 무사히 데리고 간 것은 확실하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과를 수확하던 농부가 갑자기 국무를 척척 해낼 리도 없었다.


챠오는 그 듀라한 기사와 같이 있을 테니 안전하겠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게다가 줄리엣의 뒤를 쫓지 않는다면 영영 헤어질까 봐 무서웠다.


“아니, 챠오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내 두 팔로 그를 보호할 거라네. 왕성 일이라면, 부하가 한 명 있어.”


“알폰스라는 사람 말이죠? 이것저것 하느라 참 바쁜 사람이네요.”


“믿지 못하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시키겠나.”


스탕달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스탕달은 친필편지를 부쳐 올란에게 전해주고 왕성의 자신의 집무실에 보내는 법을 알려주었다. 편지가 왕성에 닿는 즉시, 그래스호퍼와 인근 마을에 마족으로 인한 피해에 재정적인 지원이 갈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추가로 적은 한 통의 편지에는 당장 시비스터에 병사를 파견하라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스탕달과 크리스티안은 복구 중인 그래스호퍼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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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0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5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7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6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7 1 12쪽
»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6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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