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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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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5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1.0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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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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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6화 건들면 문다.

DUMMY

“흐음. 기껏 도망쳤다는 곳이 여기야? 무덤으로 쓰기 딱 좋겠어.”


알폰스의 등 뒤에서 줄리엣이 말했다. 알폰스는 의연하게 두 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죽였더니, 사실 쥐나 개였다는 건 아니겠지?”


줄리엣은 일전에 그가 마법을 부려 오비디언을 알폰스의 모습으로 둔갑시킨걸 말하는 것이었다.


“그랬다면 좋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쉽게도 당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알폰스 본인이지.”


“정말 아쉽네,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 쥐랑, 개가.”


“그런 쥐와 개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아는가?”


“그래봤자 짐승이지.”


“맞아. 짐승이지. 짐승이지만, 건들면 문다.”


알폰스가 팔을 튕기자 소매에서 곱게 접은 종이가 튀어나왔고, 그는 스케치를 입으로 물어 찢었다.


종이에 그려져 있던 것은 이미 멸종해버렸다고 알려진 드래곤의 재현도였다. 재현한 그림일 뿐이라 근육과 뼈 같은 구조에 불확실한 부분이 있어 움직임이 어색하겠지만, 당장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는 이것뿐이라 알폰스는 믿었다.


선대 마왕을 제압해 수족으로 부리는 서큐버스니 도박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알폰스가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림이 불완전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가 없는 알폰스는 그제야 자신이 줄리엣의 꿈 마법에 걸려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아마도 폐허에 도착했을 때, 이미 줄리엣의 손아귀에 빠져버렸을 것이다.


당황해하는 알폰스를 보고 줄리엣이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녀는 허공에서 종이 한 장을 만들어냈다. 꿈속에서만큼은 그녀는 전지전능했다.


“이거 찾는 거야? 험악하게도 생겼네. 드래곤이란 거.”


문득 알폰스의 머릿속에 벨라를 시켜 카그라의 부하, 시비스터 조합장의 꿈을 뒤져본 일이 떠올랐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알폰스가 약초담배를 시작으로 추적을 한 것과, 먼 옛날에 스탕달의 침소에 나타났던 여자를 조사했던 것까지 억지로 끄집어내듯이 떠오르고 있었다. 서큐버스는 전투를 하지 않지만, 이런 정보전에서는 마족 중 으뜸이었다.


‘조사당하는 게 이렇게 더러운 기분인 일이었던가.’ 알폰스는 생각했다. 그 생각마저도 줄리엣이 읽고 있을 게 뻔했다.


줄리엣은 느긋하게 드래곤의 재현도를 보고 있었다.


“어서 죽여라.”


더는 기다리지 못한 알폰스가 줄리엣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줄리엣은 그의 꿈을 잡아먹는 것보다, 가지고 장난치는 게 더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줄리엣은 그림을 아무렇게나 구겨 뒤로 던졌다. 커다란 강이 바로 옆에 흐르고 있는 폐허라, 던져진 종이는 그대로 강 밑으로 녹아버릴 듯이 쓸려 내려가 버렸다.


“그건 그렇고 이 지하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내가 하도 지하에서 살다 보니, 지하만 보면 궁금해지더라고.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말이야. 여기가 벨라의 연구실이었단 말이지?”


알폰스의 기억을 읽어낸 줄리엣이 바닥의 다락문을 발로 두들겼다.





르댕고트와 테일코트는 시비스터에서 느닷없이 전투가 발발하자, 일찌감치 인적이 드문 폐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동생인 테일코트의 마법으로 남매의 몸을 투명하게 만든 것은 당연했다.


절대로 남매가 현장을 엿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남성을 덮친 서큐버스가 그대로 빨려 들어가듯 남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걸 목격하고 말았다. 그는 한동안 멀뚱히 바닥을 보고 있다가, 숨겨진 다락문을 열고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끔 생각하면 우리의 팔자가 어떻게 이렇게 꼬일 수가 있나 싶어.”


누나가 신세 한탄하며 내뱉은 말이었다. 테일코트도 그 말에 동의했다.


만약 그들이 투명 마법을 쓸 수 없었다면, 남매들도 저 딱한 남자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동생이 말했다.


“저 남자를 구하러 갈 거야?”


“미쳤어? 지금 시비스터도 무너지고 있는데 어서 여길 떠야지!”


“혹시 누나, 내 코를 믿을 수 있겠어?”


동생의 그 말은 돈 냄새가 난다는 뜻이었다. 가끔 테일코트에겐 기묘할 정도로 예리한 육감을 발휘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의 동생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멍청하고 의미 없고 무모한 선택일지라도 큰 소득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아.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 마지않던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게다가 시비스터가 이렇게 무너졌으니, 유일하게 멀리 창고를 지어놓은 우리가 물건을 가장 비싸게 팔 수 있어. 우리는 이제 돈만 걷으면 되는 거야.”


“······알고 있어.”


검은 정복을 입은 테일코트는 진지했다. 누나는 혀를 찼다.


“······알았어. 어차피 창고의 물건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위험해질 것 같으면 바로 도망가는 거야. 알겠지?”


테일코트가 빙긋 웃었다.


“물론이지.”


다락문은 닫혀있지 않았다. 문은 되려 활짝 열려있었고 내려다보니 어둠 속으로 삼켜지는 돌계단만 있었을 뿐이었다. 적어도 미미하지만 바람이 통하는 것을 보니, 어디론가 출구는 뚫려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강이 있는 탓인지 매우 습했고, 비린내가 나고 있었다.


남매는 조심스럽게 남자를 뒤쫓아갔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당장 비켜!”


발리스타에 창을 끼우던 상인이 고함쳤다. 하필 발사해야 하는 궤적에 어설픈 풋내기가 떡하고 버티고 서있으니 여간 방해가 아녔다.


그는 바들거리는 턱을 주체하지 못하고, 협회원들이 미리 대사를 적어준 종이를 보며 말했다.


“시, 시. 시비스터의 시민들이여! 걱정하지 마, 말아라! 나! 넫, 네드······! 으큭!”


네드가 어찌나 목소리가 작고 불안정한 숨으로 대사를 치르는지, 그만 자기 혀를 깨물어버리고 말았다.


“비키란 말이야! 귀라도 먹은 거야! 당장 꺼지라고!”


그리고 상인들은 네드의 촌극을 기다려 주지 않을 성난 관객들이었다.


네드는 높은 건물의 지붕 위에 올라가 서 있었는데, 드센 겨울바람이 건물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 탓에 대사가 적힌 종이가 바람에 쓸려 가버리고, 동시에 네드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네드가 선발대의 사람들과 모험을 하면서, 각자 하나하나의 재능이 있는 그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주목을 받는 상황이 되니, 그는 그저 후들거리는 다리로 칼을 배낭으로 받아냈던 뜨내기였을 뿐이었다. 물론 그때와 다르게 바지를 적시진 않았다. 바지가 낑긴 덕분이었다.


여전히 뒤로는 상인들의 고함이 들렸고, 앞에는 거대한 마족이 종탑을 부수고 네드를 발견해 다가오는 참이었다. 그가 걷는 걸음마다 바닥에 닦아놓은 길과 깔아놓은 좌판 따위는 뒤집어 들썩였고, 그가 휘적거리는 팔에 건물들이 무너졌다.


“저런 게 연극일 리 없어, 망할 예술가 녀석들!”


네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공격은 양털로 덮어버려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지만, 워낙 덮어야 하는 면적이 크니 여러 번 손바닥으로 접촉해야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리저드맨의 마을에서 억지로 떼를 부려서 검이라도 쥘 걸 그랬다. 하지만 네드의 팔목에는 작은 단검으로 변하는 팔찌뿐이었다.


오비디언이 네드를 향해 바위같이 거대한 주먹을 날렸다.





“저 녀석! 방해하더니 죽어버렸어!”


“아니 잘 봐! 저 녀석 아직 쓰러지지 않았어!”


과연 네드는 자신에게 양털을 두껍게 둘러서 공격을 막아내고, 오비디언의 주먹에서 어깨까지 덮어버리는 양털을 만들었다. 물론 딱 거기까지가 네드의 한계였지만, 그는 여러 번 같은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하면 리저드맨을 제압한 것과 같이 이 거인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드의 입꼬리가 조금 들렸다. 희망이 보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얀 털이 자랐을 뿐이라 오비디언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솜방망이처럼 보여도, 내용물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걸 본 시비스터의 상인들이 한가지 묘수를 떠올렸다.


“기름! 기름을 가져와! 최대한 많이!”


저 청년이 마족의 겉을 양털로 덮어버린 뒤, 불을 질러버리면 제아무리 강철 골렘이라 할지라도 녹아버릴 게 틀림없었다. 심지어 적어도 괴수는 강철도 아니었다.


활로를 엿본 상인은 다시 네드에게 소리쳐 말했다.


“이봐! 거기 총각!”


네드가 돌아보자, 상인이 다시 외쳤다.


“잘하고 있어! 계속 괴물들에게 털을 만들고 있어! 해치울 방법이 생겼으니까!”


네드는 자신이 활약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 등골이 찌르르하게 울리는 걸 느꼈다. 다시 한번 오비디언의 주먹이 네드를 내려찍으려 하고 있었다.


네드는 더 나아가 양털 뭉치를 여러 개 만들어 그사이를 잘도 피해 다녔다. 덕분에 눈앞의 녀석은 상반신이 양털로 덮어버렸지만, 네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괴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네드가 겨우 털북숭이가 된 녀석을 따돌리자, 모퉁이 넘어서 똑같은 놈이 나타났다.


쿠광!


또 다른 오비디언은 네드가 미처 방어하기도 전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예술가 협회원들에게 네드가 엉거주춤 마을 안으로 떠밀리고, 거츠는 마을 안에서 굉음이 들리자 그들을 닦달했다.


“어떻게 저게 연극입니까? 누가 보든 습격당하는 마을이잖아요?”


벽화공이 변명했다.


“그만큼 예산을 들이부어서, 화려하게 등장하라는 뜻이죠. 바로 국왕님을 위해서 말이죠.”


“지금 얘기하고도 억지로 꾸며 쓴 대본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차기 국왕이 될 거츠가 쏘아붙이자, 결국 테너 가수가 실토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렇게 규모가 큰 연극은 절대 연극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저희가 어떻게 저런 걸 막을 수 있겠어요! 어찌 됐든 용사님이 달려가셨으니······!”


모인 협회원들이 열 명가량 되었지만, 그들은 입을 모아 회피하기 바빴다. 거츠는 한심한 그들을 내려보다가, 질렸다는 얼굴을 하고 네드가 갔던 길을 따라 시비스터 안으로 달려갔다.


“앗! 국왕님! 기다려 주세요!”


알폰스가 무슨 일이 있어도 거츠를 지키라고 한 명령이 있으니, 협회원들은 거츠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네드는 스텝을 밟아 가까스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선발대가 짬짬이 서로의 기술을 가르쳐준 덕분이었다. 가르쳐줄 때는 어지럽기만 했던 미겔의 보법이 제법 쓸모 있었다.


다시 자신보다 큰 양털 뭉치를 키운 네드는 오비디언의 공격을 기다렸다. 오비디언은 줄리엣의 ‘부수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양털 뭉치를 내리쳤다. 하지만 네드는 그곳에 없었다.


네드는 하수구를 통해 오비디언의 뒤에서 나타났다. 이것은 엘렌이 가르쳐준 것이었다. 비록 도시에서 써먹어 본 적 없었다지만, 그녀는 하수구를 보고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네드는 실크처럼 폭발적인 점프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신 실크는 곁에서 양털 마법의 응용법을 함께 고민해주었다. 네드는 집채만 한 오비디언의 등을 타고 올라갔다. 그가 손을 뻗는 곳마다 양털이 자라나 잡혔고, 오비디언의 머리까지 올라간 네드는 풍성한 털로 그의 시야를 가렸다.


마침 거츠와 함께 예술가 연합이 도착해, 벌써 마족 둘을 제압한 네드를 올려다보았다. 멀리 쓰러져 있는 녀석은 마을 사람들이 기름을 뿌려 불을 지르는 탓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네드가 알기로는 거츠는 평범하게 사과를 가꾸던 과수 원장이며, 협회원들은 연극으로 유랑하며 정보를 모으던 사람들이었다. 전투에 한해서는 네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매튜가 가르쳐준 것 중에선 전투에 무지한 사람들을 꾸려 마족을 무찌른 사례가 있었다. 분명 지금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드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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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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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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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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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8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1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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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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