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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17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2.20 13:11
조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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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DUMMY

끝없이 미끄러져 내려갈 것만 같았던 내리막도 끝나고, 게일이 바닥에 발을 디뎠다. 게일은 눈앞에 아이가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출구가 있어, 아이는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구별할 수 있는 길쭉한 귀로 그가 엘프임을 알 수 있었다.


“오스먼드?”


게일은 확신치 못했지만, 그가 동료인 아크리치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바닥을 찍던 돌을 내려놓았다. 아이가 돌아봤지만, 역광 탓에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게일은 폴암을 쥐고 언제든 반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벨라가 그토록 경고했기도 했고, 이곳에 불려왔다는 건 듀라한으로서 쓸모가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너, 오스먼드의 꿈속 인물이 아니구나?”


아이의 목소리가 일그러지는 듯하더니, 게일이 두려워하는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앳된 피부가 푸르게 변색하고, 몸집도 곱절은 커지며 뭉툭한 모서리를 만들었다. 특히, 라벤더 향이 나기 시작했다.


비누였다.


게일이 화들짝 놀라, 공포에 질려버렸다. 비누는 허공에서 수분을 끌어모아 거품을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시, 싫어! 난 깨끗해지고 싶지 않아! 난 더러운 게 좋단 말이다! 이제야 겨우 때가 타기 시작했는데!”


게일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벽에 가로막혀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온수와 비누가 그를 향해 마수를 뻗었다.





듀라한의 비명이 들리는 걸 보니 벨라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오스먼드가 왜 아이를 무서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도, 게일이 무서워하는 것은 청결이었기에 이왕이면 게일이 대신 악몽에 사로잡혀 있는 게 훨씬 수월했다.


한편 벨라의 조사는 진척이 없었다. 그녀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마법적인 지식에 이해는 고사하고 읽는 것조차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포탈 마법과 투명 마법, 그리고 세계수 마법을 추려내고 남은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문제였다.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던 벨라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 때문에 그녀의 뒤로 다가오는 그림자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벨라, 제가 읽지 말라고 했잖아요.”


벨라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를 부른 것은 오스먼드의 목소리였지만, 그녀가 알던 아크리치가 아니었다. 말쑥한 전통복을 차려입은 그는 엘프였던 시절의 모습인 듯했다. 단풍색의 긴 머리에 초록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그는 아크리치다운 유쾌함이 없었고,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읽었으니 별수 없군요, 벨라. 앞으로 당신은 꿈 밖으로 나가선 안 됩니다.”


“오스먼드, 제가 서큐버스란 건 알고 있죠? 꿈속에서 절 이길 사람은 없어요.”


“그건 당신이 평범한 인간들의 꿈속에 들어갔을 때의 얘기지요.”


갑자기 오스먼드가 자세를 낮춰 돌진했다. 벨라가 마력을 끌어모아 벽을 세웠지만, 돌진하던 그의 모습은 물에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벨라가 말했다.


“예상했어요.”


벨라가 마력으로 세운 벽을 부수고, 그 파편을 자신의 등 뒤로 쏘았다. 서큐버스의 뒤를 노리려던 오스먼드는 몸에 마력탄이 연달아 박히며 뒤로 미끄러졌다. 하지만 살갗에 무색투명한 탄환이 박힌 그는 똑바로 벨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뻗은 오른팔에는 손이 달리지 않았다.


“이것도 예상한 건가?”


“으, 큭!”


그의 떨어진 오른손은 벨라의 목을 쥐고 있었다. 곧 오스먼드의 피부와 머리카락이 사라지며 해골인 아크리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떨어진 오른손 뼈는 벨라의 목을 더더욱 강하게 죄어 비틀고 있었다.


아크리치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벨라, 꿈속이라고 해서 당신만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미안하지만 여기까지군요.”


벨라는 숨이 막히며 눈앞이 하얘졌다. 꿈속에서 죽게 되면 두 번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아마도 꿈속 어딘가 아크리치가 죽을 때까지 갇히게 될 것이다. 오스먼드의 손아귀에 저항하던 힘도 빠지고 벨라가 정신을 잃으려 할 때였다.


“나는 가려운 감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단 말이야! 저리 비켜! 떨어지라고!”


게일이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들러붙으려는 온천수와 비누를 얼리며 등장했다. 그것들은 비록 얼릴 때마다 금세 빙결이 깨지며 쫓아왔지만, 게일이 벨라를 향해 도망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침내 게일이 벨라의 목을 조르는 오스먼드를 보자, 쫓아오던 비누도 잊어버리고 분노하며 외쳤다.


“오스먼드! 난 그래도 여태껏 네가 우리와 한 식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게일이 한기를 내뿜으며 공기를 얼려버렸다. 뿌옇게 동굴 안을 덮은 냉기가 오스먼드를 향해 덮쳤고, 이어서 갈비뼈 사이사이를 꿰뚫는 얼음 창이 바닥에서 솟았다. 덕분에 벨라의 목을 조르던 손아귀가 풀렸고, 벨라가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게일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폴암을 내려찍는 그는 얼음에 꿰뚫린 오스먼드의 허리뼈를 부숴버리고, 이어서 그의 두개골을 박살 냈다.


겨우 몸을 추스른 벨라가 말했다. 그녀는 바깥으로 나가는 꿈 포탈을 만들어 열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


“벌써 오스먼드의 마법을 풀어낼 방법을 찾은 거야?”


“그래요. 아니, 어쩌면 풀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말이야?”


벨라가 애써 정리한 정보를 흩어버렸다.


“마법이 변질되었어요. 오스먼드가 모은 제물 중에 잘못된 재료가 있었다구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가 되게 설명해봐.”


게일이 재촉하자, 벨라가 소리쳤다.


“마법이 변질된 탓에 모든 사람이 스켈레톤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글자 그대로 사라져 버릴거라구요!”





게일과 벨라가 꿈 밖으로 빠져나갔고, 아크리치는 뼈가 재생되었다. 뼛조각을 하나하나 조립하며 모습을 되찾은 오스먼드의 앞에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악몽이 오스먼드가 가장 두려워하는 걸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역광 탓에 게일은 보지 못했지만, 아이의 얼굴은 돌에 맞아 상처투성이였다. 아이는 그저 내려다보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오스먼드는 긴장하며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했다.


“이미 몇백 년 전 일이죠. 머리카락 색이 다르다고 괴롭히던 그 친구들을 잊어버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구요. 그런데도 제가 용서하지 못해 잊지 않았던 건······.”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특별히 오스먼드를 나무라거나 안타까워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불행을 소비하려는 저 자신이었죠. 스스로 불행의 나락으로 빠트리면 동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줄 알았으니까요. 아픈 건 싫은데,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오스먼드는 닫혀버린 꿈 포탈을 보고 이어 말했다.


“잘못된 제물을 섞어놓으면 예상치 못한 쪽으로 마법이 폭주할 거란 것도 알고 있었죠. 당신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낼 수 있을까요.”





거츠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그가 볼 수 있는 건 나무 한 그루와 슬라임 하나뿐이었다. 그 외에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고,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허공에 걷는 느낌만 들었을 뿐, 아무것도 그의 팔다리에 닿는 것이 없었다. 슬라임이 말했다.


“일어나셨네요. 나무랑은 말이 통하지 않아서 갑갑하던 차였어요.”


말을 하는 슬라임과 빛을 내는 나무. 거츠는 자신도 수은이 흐르는 골렘이란 것도 잊고, 그것들이 괴이하게 느껴졌다.


슬라임은 큰 나무와 바닥을 가리켰다.


“간간이 저 큰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는데, 밑으로 얼마 내려가지 않아 멈추는 걸 보면 바닥이 있는 모양이에요.”


과연 거츠가 바닥을 내려다보니, 얼마 내려가지 않아 나뭇잎이 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거츠는 곧 자신들이 허공에 묶여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말이 없는 거츠 탓에 슬라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부터 말이 없으신데, 설마 저 큰나무와 마찬가지로 말을 하실 수 없는 건 아니죠? 통성명이라도 하고 싶지만, 저도 저 자신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정이 있거든요. 편한 대로 슬라임이라고 부르세요. 그래도 말 상대는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거츠는 예상 밖의 인격체에 경탄하며 슬라임을 다시 보았다.


“아, 실례했습니다. ······예의 바른 슬라임이시군요. 저는 거츠입니다. 테스널 왕국의 국왕이지요.”


둘은 멋쩍어 그 다음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허공에 묶여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으니, ‘날씨가 좋네요.’ 같은 허울뿐인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애초에 이곳에 기후란 게 있긴 한 걸까. 유일하게 떨어지는 건 나뭇잎뿐인데, ‘오늘은 나뭇잎이 내리는 날씨군요.’ 같은 말도 이상했다.


거츠는 실크가 피투성이가 되어 집무실에 떨어졌을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엘프들의 신목, 인간들의 유일한 왕, 그리고 이름 마법의 주인인 초대마왕을 가지고 종족 단위의 마법을 펼치려 한다고 말했었다. 슬라임이 엘프들이 가꾸는 신목일 리 없으니, 그는 마족들의 초대마왕인 게 분명했다.


“저희가 이렇게 모여있는 걸 보니 오스먼드라는 마법사의 계략이 완성되었군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슬라임은 추론하기 시작했다. 알고 있는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빈 부분은 직감으로 때려 맞추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첫 번째론, 제물인 우리가 아직 죽지 않았어요. 그렇죠? 그 말은 아직 마법이 발동 중이거나, 무슨 이유가 되었든 마법이 지연되고 있다는 뜻이에요. 둘째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마법을 중지시키고 우리를 꺼내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죠. 마법으로 아크리치를 능가할 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어요. 어쩌면 저희가 살아있는 게 아크리치의 의도일지도 모르죠. 마지막으로 오스먼드가 몇십 년, 어쩌면 몇백 년을 공들여 세운 계획인데 너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어요. 저라면 어느 외딴 조용한 곳에서 몰래 해치워버렸을 거예요. 이것들을 정리하자면 답은 한가지에요.”


“그 답이란 건?”


“오스먼드가 일부러 마법을 뒤틀어 놓았다는 것이죠. 보란 듯이 말이에요.”


“그래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었던 걸까요? 무슨 이득이 있어서?”


“그거야 본인이 아니고서 알 수 있는 게 아니겠지만, 시험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누구를 시험한다는 거죠?”


거기까지 와서야 슬라임도 입을 다물었다. 누구를 위한 시험일까? 마왕인 실크? 노목의 제자인 자신? 그것도 아니면 오스먼드 스스로에 대한 시험일까?


그때 열릴 것 같지 않았던 아공간이 열렸다. 갑자기 쏟아지는 붉은 화염에 슬라임도, 거츠도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공간의 출입구 너머로 호박색의 커다란 눈동자가 비췄다.


레드드래곤인 우르슬라였다. 그녀는 같이 있던 챠오에게 말했다.


“챠오, 네 말이 맞다. 아주 고약한 마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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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89화 이름은 곧 운명을 뜻하는 것이다. 20.01.01 39 1 12쪽
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29 1 11쪽
»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3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0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4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4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7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6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5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2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4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4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7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4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6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4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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