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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34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2.04 12:1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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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DUMMY

미겔이란 사람을 찾기 위해 호세가 레오나를 안내한 곳은 화방이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마을에 식품도 건축자재도 아닌 웬 종이와 페인트인가 하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마을에서 차지한 규모가 꽤 컸다.


“왜 이런 곳에 들어오는 거야?”


루가루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 망토를 눌러 쓴 레오나가 호세에게 물어도, 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후후······. 잠자코 보고만 있어요.”


화방의 주인은 토시를 끼고 있는 말쑥한 차림의 신사였는데, 호세가 동전을 계산대에 올리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특별 주문을 하고 싶은데요.”


외알안경을 끼고 나이프로 나무를 깎던 주인장이 호세를 흘긋 보더니,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리폰의 꽁지깃은 주문하신 뒤 약 두 달 후에 찾으실 수 있습니다. 괜찮으신지요.”


그리폰의 꽁지깃은 절묘한 탄력과 질긴 내구성 덕분에 필기용 깃펜으로 주목받는 사치품이었다. 물론 얼마 전 병사를 그만둔 호세에게 사치품의 대금을 치를 수 있는 금화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귀스타프 자작 앞으로 달아주시죠.”


탁.


주인장이 깎던 나무를 내려놓았다. 그는 다른 손에 조각도를 쥐고 있었다.


호세가 이름을 꺼낸 귀스타프 자작은 사실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듣고 싶은 대답을 들은 주인장은 다른 손에 쥐었던 조각도도 마저 놓았다.


“······이쪽으로.”


주인장은 계산대를 열어 가게의 뒤쪽으로 향하는 창고로 안내했다. 상품들이 즐비한 길쭉한 통로를 지나, 바닥을 덮은 큼직한 액자 틀을 치우니 눈에 띄지 않는 바닥문이 나타났다.


세 사람은 그 문을 열고 사다리로 내려갔다. 종이와 책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나타났는데, 그 지하시설은 마치 종이가 자라는 숲 같았다.


앞서가던 주인장이 가볍게 인사하며 두 사람을 환영했다.


“예술가 협회에 어서 오십시오.”


그가 방문 용건을 묻자, 호세가 답했다.


“미겔이라는 사람의 현 위치를 알고 싶습니다.”


호세는 미겔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저 호세가 이름을 말했을 뿐이었는데, 눈을 감고 종이의 숲속을 둘러보던 주인장이 어느 방향인가 고개를 고정했다. 천천히 눈을 뜬 그는 점잖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겠습니까.”


주인장이 마구잡이로 쌓인 종이 더미를 헤치며 사라지자, 레오나가 말했다.


“여긴, 정보 길드구나. 용케 이런 곳과 연이 닿아있었어.”


호세는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비밀에 부치겠다는 뜻이었다.


“암구호는 매번 바뀌니까, 방금 내용으로 접선 시도하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암호가 틀리면 당분간 고생 좀 하실 테니까요.”


호세가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이어 말했다.


“실례지만 미겔이란 분은 누구고, 왜 용사님이 루가루의 모습으로 변해버리신 거죠? 당신은 우리 인간들의 영웅이었다고요! 저도 병사일 적에 당신과 가까이에서 싸운 적이 있었어요. 황금빛으로 빛나는 검을 쥐고 돌격하시는 모습. 정말 멋있으셨어요.”


호세가 말을 꺼내자마자, 레오나가 깊게 눌러쓴 후드 속에서 안광을 비췄다. 고양잇과 특유의 눈동자가 가늘게 좁혀졌다. 그녀의 침묵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더는 말하지 마.”라는 뜻이었다.


“실례했습니다.”


종이들 더미에서 한 폭의 그림을 가져온 주인장이 그들 앞에서 그 내용을 펼쳤다. 도화지 위에는 설원 위에서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미겔과 테스널 왕국의 병사 한 명이 그려져 있었다.


레오나는 미겔이 향한 곳이 루가루의 숲임을 단번에 알아보았고, 호세는 병사의 정체가 알프레도임을 알아차렸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 데려와 줘서 고마워.”


급히 레오나가 떠나려 하자, 호세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의 소매를 잡고 나서 실수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잡은 손을 돌이킬 순 없었다.


“뒤에서 따라가는 병사는 제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예요! 저도 따라가게 해주세요!”


레오나는 붙임성 있는 그가 반갑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받은 상황에 대놓고 꺼지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편 레오나의 목소리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주인장이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손님. 손님은 혹시 용사 레오나님이 아니십니까.”


레오나의 다문 입은 곧 긍정이었다.


“실은 말입니다. 새로운 용사가 나타났단 소식이 시비스터에서부터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레오나님이 사망했다는 거짓 정보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될 줄 몰랐군요. 정말 영광입니다. 저희 사촌 동생이 마계 전쟁에서 가고일에게 죽을 뻔한 걸 용사님이 구해주셨다지요. 인제 와서 염치 불고하고 정말로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주인장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정보는 틀리지 않았어요. 이제 용사 레오나는 죽은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깊은 후드를 벗지 않은 그녀는 서둘러 화방을 빠져나왔다. 호세가 진탕된 눈길을 걷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으아아아악!”


새롭게 용사의 호칭을 얻게 된 네드는 눈앞에 메테오가 떨어지며 불길이 치솟는 걸 보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 상황에서 긍정적인 면을 억지로 찾아보자면, 다행히 바지에 지리지는 않은 것뿐이었다.


한편 르댕고트는 욕지기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기껏 오비디언에게 따낸 아티팩트 반지가 딱 한 번 써먹었을 뿐이었는데 부서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메테오 같은 강력한 마법을 고작 반지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몇 번이든 발동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누가 마법을 배우겠냐 싶을 것이다. 하지만 팔려고 했던 아티팩트가 부서졌으니, 그 누구에게도 값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단 의미였다. 르댕고트는 오비디언이란 녀석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르댕고트가 오비디언의 복제가 기어 나오는 지하구덩이 속으로 메테오를 떨궜지만, 순식간에 구덩이를 덮는 결정석 탓에 생각보다 많은 오비디언이 밖으로 나와버리게 되었다.


특히 결정석을 거두며 나타난 줄리엣은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사건건 나를 방해하려 들다니! 내가 특별히 관객을 허락하는 특혜를 허락했는데 말이지!”


줄리엣은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결정석은 소비 마력이 적은 대신, 줄리엣의 응용력 덕분에 빛을 받는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스스로 몸에 두르며 그 몸집을 거대하게 키우고 있었다.


발톱을 땅에 찍고 고개를 드는 줄리엣은 커다란 턱과 뿔을 가지고 있어 위용을 과시했다. 마치 드래곤 같았다. 비록 마법으로 모양을 흉내를 냈을지언정, 수정 칼날이 비늘처럼 박혀있어 드래곤에 못지않게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게다가 개미 떼처럼 까맣게 몰려나오는 오비디언 복제들도 그에 못지않게 두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서러브레드 남매는 더는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이젠 빛이고 뭐고 남매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 눈빛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읽은 남매는 투명 마법과 무게 조작 마법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만큼 네드의 눈치도 대단한 것이어서 남매들의 마법에 끼어들었다.


“도망치려거든 저도 같이 가요!”


네드는 테일코트의 바짓가랑이와 자신의 팔을 양털로 얽어놓아, 떨어지지 않게 꽉 붙들어 맸다.


알폰스도 솔개로 모습을 바꾸며 도망가는 남매들을 따라갔다.


“이렇게 된 이상 왕성으로 간다! 왕성에 저 괴물을 막아낼 방법이 있으니까! 최대한 마을을 피해가며 왕성에 도착해야 한다!”


“당신 말을 들었다가, 성공한 게 단 한 가지도 없었잖아!”


참다못해 울화통이 터진 테일코트가 소리쳤다. 자신한테 들러붙은 네드도, 젠체하며 대장 노릇을 하는 알폰스도 꼴불견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결정석 드래곤은 남매에게 다른 선택권을 허락하지 않았다. 맹렬하게 따라붙는 줄리엣이 날개를 퍼덕이며 수정 칼날을 날렸지만, 네드가 구름 같은 양털을 꺼내며 막아주는 탓에 그를 내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을 집요하게 따라오니 알폰스의 그 잘난 ‘괴물을 막아낼 방법’이라도 시도해봐야 했다.


“젠장!”


남매가 소리쳤다.





설리반이 당장 해야 하는 것은 눈앞에 쓰러진 하이페리온을 구하는 것이었다. 하이페리온은 복부가 꿰뚫려 이미 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에게 숨이 붙어있는 걸 보니 아직 희망은 있었다.


문제는 희망만 있다는 것이다. 상처의 입구는 설리반의 능력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손상된 장기와 부족한 혈액을 보충하는 건 전혀 다른 능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설리반은 그동안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 중, 누가 회복능력이 있었던가 기억 속을 뒤졌다. 하지만 설리반이 아는 한, 그 누구도 회복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이페리온을 엘프들의 마을로 데려가야 했다. 그러면 신목의 힘으로 치유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엘프 왕국으로 넘어간 아크리치를 필연적으로 만나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재판관을 아무런 피해 없이 보호할 수 있을까?


하이페리온은 자신의 상처를 막고 있는 설리반의 손을 내렸다.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아직도 설리반이 어린 학생으로 보이는 그는 숙제를 빠트린 걸 나무라는 듯 말했다.


“후······. 영생에 가까운 장수를 누리는 엘프이니만큼, 죽음을 가르치기 쉽지 않았죠. 설리반, 아무리 오래 사는 엘프라고 할지라도 언젠간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에요. 마침 좋은 교보재가 학생의 눈앞에 있군요. 엘프는 죽으면 나무가 된답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하이페리온은 스스로 한 줌의 씨앗을 삼켰다. 그의 몸에서 잔가지가 자라나며, 그를 점점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렸다. 하이페리온의 창백한 피부는 두꺼운 나무껍질을 둘렀고, 푸릇한 잎을 돋아내며 자라는 나무는 벌써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며 하늘 가까운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설리반이 그 나무를 올려보고 있자, 그녀의 머리 위로 솔방울이 떨어졌다. 분명 얼른 떠나지 않고 뭐하냐며 채근하는 선생님의 호통 소리와 다름없었다.


설리반은 소매로 얼굴을 쓸었다. 아직 설리반이 울기에는 이른 때였다. 대신 그녀는 오스먼드를 막아낼 가장 빠른 길을 선택했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날리는 속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오스먼드는 실크를 이용해 인간들의 왕과 군대를 무력화시켜, 자신이 카그라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왕이 되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실크를 해치우는 장면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봐야 했다.


그곳이 어디인가. 그녀는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 시비스터로 향했다. 시비스터는 해양 교역의 도시라 해양 국가인 휘시스와 필연적 이어지며, 사막 국가인 렙틸리아와 국경을 둔 곳이다.


틀림없이 오스먼드는 그곳으로 올 것이 분명했다.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설리반은 오랜 친구를 막아낼 것이다. 아니, 막아내야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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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89화 이름은 곧 운명을 뜻하는 것이다. 20.01.01 39 1 12쪽
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1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5 1 11쪽
»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8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6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8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7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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