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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30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0.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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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DUMMY

스탕달은 일단 몰래 침입한 여성의 신원을 파악해서 누가 일을 꾸몄는지 캐볼 생각이었다. 이미 알폰스가 추가로 조사하고 있었지만, 본인에게 듣는 게 빠를 것이다.


“담배 맛은 좀 괜찮나? 특별히 엄선한 사치품이지. 그 담배 한 개비가 평범한 과수원의 한 해 수익과 비견된다네.”


그녀는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 뱉어 이리저리 뜯어봤다. 스탕달은 마법 아티팩트를 쓰지 않고도 그녀의 생각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녀는 ‘이딴 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조용히 담배를 끄고 자신의 주머니에 챙겨 넣는 그녀가 질렸다는 듯 말했다.


“내 입에는 그냥 숯덩이를 깨문 것 같은 냄새만 나는데, 세계수 잎사귀라도 썰어 말렸나 봐? 그런데 이렇게 잡담하고 앉아있는 걸 보면 날 죽일 생각은 있는 거야? 날 죽여야 후작 가문의 사생아가 태어나지 않는 거 아닌가?”


“자네가 죽는 게 아마 계획의 일부분일 테지. 자네는 자기 죽음과 맞바꿀 중요한 무언가 붙들려있는 모양이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걸세.”


스탕달이 나무상자를 하나 꺼내 눈앞의 테이블에 올렸다. 금박을 입힌 상자는 곁눈으로 봐도 고급스러워 보였고, 상자 자체에서도 향긋한 과일 냄새가 났다. 스탕달이 그녀에게 잘 보이게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방금 피웠던 담배가 가득 들어있었다. 이런 사치품은 애호가에게 부르는 게 값이 될 것이고, 그녀가 스탕달에게 협조만 해줘도 평범한 가정의 평생 수입이 굴러들어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스탕달은 그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아깝게 만들어, 배신을 종용하는 것이었다.


또한, 스탕달은 일부러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이름을 묻지 않으니, 나중에 추적하지 않겠다는 의미기도 했다. 물론 후작이 마음만 먹는다면 아낙네의 추적이야 불가능할 이유가 없겠지만, 우선은 그녀에게 신뢰를 주는 게 중요했다.


“그래도 계속 자네라던가 당신으로 부를 순 없는 노릇이지. 임시로 부를 이름을 지어주겠네. 어디 보자······.”


스탕달은 주변에 놓인 극대본을 보고 말했다.


“······일단은 자네를 줄리엣이라 부르지.”


줄리엣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곱씹었다.


“줄리엣.”


“마음에 드는 이름인가? 결국, 비극의 여주인공이긴 하다만, 이미 줄리엣, 자네의 상황 자체가 비극 아니겠나.”


“아니, 마음에 들어. 비극의 여주인공이라니.”


그녀가 이름을 받자, 줄리엣으로부터 어둠이 내뿜어져 주변을 덮었다.


“나에게 미처 이름이 생길 줄은 몰랐어.”


스탕달이 두 사람을 덮은 암흑 탓에 당황해 일어섰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니 당연하다는 듯 그가 앉아있던 의자도 사라져 버렸다.


줄리엣은 품속에 넣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물었다. 그녀가 담배의 끝을 살짝 손가락으로 비비니 다시 담배에 불이 붙었다. 바람을 뺀 허파에 연기를 욱여넣는 줄리엣은 눈물을 찔끔 짜내며 기침을 터트렸다.


“너는 인간이 아니군.”


줄리엣은 방금 침대에 일어나 메이드가 가져온 담요만 걸치고 있던 상태였다. 그가 슬쩍 덮었던 천을 들치자 가죽 재질의 서큐버스의 옷이 나타났다.


“맞아, 보이는 대로 나는 서큐버스인걸?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이런 말린 풀 따위를 선물 받아서 기쁘다고 이름을 받는 게 아니야. 이름을 지어준 너를 내가 선택한 거라고. 알아들었어?”


“내 앞에 나타난 이유가 뭐지.”


“산책.”


스탕달이 대꾸하지 않고 줄리엣을 응시하자, 줄리엣이 정정했다.


“밥 먹으러 나온 것뿐이야. 서큐버스 들은 다 그런 거라고. 일개 마족이 섭리를 거스를 순 없지. 우리는 마계가 아닌, 인간들 틈에 섞여서 탐욕이 가득한 인간들의 꿈속에서 식사한다고. 그리고 너는 그중에서도 질 좋은 탐욕을 품고 있었지. 내가 마다할 이유가 있겠어?”


“그저 식사를 하기 위해 내 꿈을 탐냈다면, 아침에 내가 일어날 때까지 내 곁에 있을 이유는 없지. 속마음을 바른대로 답하지 못하는군.”


“대답하기 싫다면 어찌할 건데?”


“내가 마족의 계약을 모르는 줄 아는가. 초대 마왕의 이름 마법. 너희 마족들은 그 마법에 자유로운 자가 없지. 이래 봬도 정보를 다루는 비밀단체의 수장이라서 말이지. 자네는 내가 무슨 계약을 걸지 알고는 있나.”


줄리엣은 가벼운 콧소리를 냈다. 스탕달은 마족을 싫어할지언정, 그녀는 그런 인간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족의 계약으로 협박하는 그를 혀가 저릴 만큼 달콤한 디저트를 내려다보듯 했다.


“우리 후작은 현 국왕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나는 현 마왕에게 복수를 원해. 그래서 내가 선택한 인간이 당신인 거야. 한마디로 말해서 쿠데타를 일으키자구. 서로를 위해. 당신은 용사를 만들고, 나는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의 정보를 흘려주지.”


그녀가 황금빛의 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분명히 왕성 대대로 내려오던 보검임이 틀림없었다. 어째서 그녀가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이었지만,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금고지기를 문책할 일이 생겼군. 줄리엣, 당신은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말했잖아? 복수라고.”


줄리엣이 연기를 내뿜으며 웃었다.


“현 마왕은 온건한 무인이라고 들었지. 그가 원한을 살만한 위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스탕달이 알기로는 현 마왕은 마계의 재정비와 마족 간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들었다. 더 나아가 인간과의 화합까지 노리고 있노라며 정보가 올라온 상태였다.


그런 스탕달의 질문에 줄리엣이 깔깔 웃으며 답했다.


“그 꼬맹이가 정말로 마왕이라고 생각해? 현 마왕은 여전히 오비디언이야. 그는 지금 유희를 쫓으러 마족을 버리고 도망갔어.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야. 그런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그가 아껴 마다하지 않는 마계를 망가트릴 거야.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르는 그의 눈앞에서.”


스탕달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군. 솔직하니 얼마나 좋은가.”


스탕달은 천천히 걸어와 허리를 숙여 손을 내밀었다. 춤을 신청한다는 뜻이었다.


줄리엣은 피우던 담배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그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줄리엣은 오비디언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군요. 그 이유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나요?”


크리스티안이 스탕달에게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 후로 나는 줄리엣을 아내로 맞았고, 뒤를 캐지 않았네. 비록 마족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는 예외지.”


“단단히 홀리셨군요.”


크리스티안이 감흥 없이 정리했다.





줄리엣은 그날 이후로 매일 밤 오비디언 분신들의 꿈속에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꿈을 엿본 오비디언의 가슴에 작은 흉터를 새겼다. 일종의 인증표시쯤 되는 모양인지, 새로운 아침이 뜰 때마다 표식이 생긴 분신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남은 분신은 알폰스를 포함해 네 명뿐이었다.


오비디언 들을 정렬시킨 줄리엣은 표시가 없는 분신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표시가 없는 분신들을 하나하나 톡톡 건들며 주변을 맴돌며 말했다.


“아무리 겉을 똑같이 따라 한다 해도, 꿈을 바꿀 수 없는 법이야. 얼마나 버틸 거라 생각해? 이틀? 최대 사흘이 지나면 모든 게 명백해지겠지. 내가 너를 찾을 때 무슨 짓을 할지 기대되지 않아?”


줄리엣은 후후 웃으며 오비디언 들이 바라보는 마을을 가리켰다. 그들은 이미 그래스호퍼에서 출발해 바로 옆 마을인 모스를 거치고, 시비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을과 길을 부수며 지난 것은 물론이다.


당연히 줄리엣이 시비스터를 향해 가리켰다는 의미는 망가트리란 뜻이었다. 그녀의 군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알폰스도 그 틈에 섞여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알폰스에게 다행인 것은 시비스터는 이미 그의 손바닥 안이라는 점이다.





“쏴라!”


미리 설치한 발리스타에서 밧줄 묶은 작살이 날아와 오비디언의 살점에 박혀 들어갔고, 시비스터의 사람들은 밧줄을 잡아당겨 그를 넘어트리는 데 성공했다.


시비스터가 전쟁과 개척에 심드렁한 이유는 약해서가 아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류 몇 장만 있다면, 평범한 농부가 깜짝 놀랄 정도의 수익을 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그 서류 몇 장을 받았다. 발신인은 알폰스였다. 알폰스는 모스 마을에서 몰래 서신을 흘리는 데 성공했고, 각지에 뻗은 연합의 연락망을 따라 시비스터에 정보가 들어갔다.


내용은 주로 오비디언에 관한 내용이었고, 인류의 화합과 안녕을 바라는 글이었다. 상인들에게 막대한 이득을 약속하는 내용도 물론 적혀있었다. 편지형식이었지만 명백한 계약서였다.


파격적인 거래 내용이든,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날만큼은 반목하던 상인과 예술가의 경계 없이 재앙과 맞서 싸운 날이었다.


“모두 잡아당겨!”


그들은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오비디언 분신들이 마을에 산개해 퍼져있는 동안, 알폰스는 자연스럽게 강의 상류의 폐허로 향했다. 보는 사람 없는 외진 곳이니 그는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폐허에 남아있을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그가 알기로는 줄리엣의 부하인 벨라가 결정석을 녹이는 법을 연구 중이었다.


이렇게 다시 찾아올 줄 알았다면 현장 보존을 했을 테지만, 그때는 스탕달 님의 흔적을 지우느라 열심이었다.


저번에 왔을 땐 해가 까무룩 내려앉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시내에서는 한창 전투 중인지,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함성이 울리고 있었다. 알폰스는 한시라도 더 빨리 줄리엣의 약점을 찾아야 했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줄리엣이 마왕 오비디언을 조작 및 복제를 할 수 있으나, 운용하는 복제 마왕들이 겨우 몇 명에 그쳤기에 그 능력에 대한 제약이 있는 모양이었다. 또한, 명령 또한 ‘이리로 가.’ 나 ‘부숴.’ 같은 간단한 명령뿐이었다.


그리고 약초담배에 대해 뒤늦게 떠오른 사실이 있었는데, 몇 년 전 스탕달 님의 침소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여인에게 준 것과 같은 제품이었다. 스탕달 후작이 직접 의뢰해 제조했으니 시장에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후작님은 그녀를 불문율에 부쳐 조용히 처리했다고 통보하셨지만, 그 무렵 손등에 생긴 마족의 문양 탓에 예술가 협회의 간부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한참을 폐허 속을 부스럭대며 일말의 단서라도 찾기 위해 뒤적이던 알폰스가 냅다 들고 있던 나무판자를 내동댕이쳤다.


‘스탕달 님께 충성에 바친 것에 대해 대가를 바란 적이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을 신용해주기라도 하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 알폰스가 차마 내뱉지 못 할 말을 속으로 삭였다.


스탕달은 결국 자신의 선택대로 한다. 알폰스가 아무리 정보를 물어다 올려도, 그는 자신의 정보를 참고 그 이하로 깔보는 것 같았다.


알폰스는 바들대는 눈꺼풀을 질끈 감았다. 그때 머릿속에 괜히 엘라이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난로 앞에서 불을 쬐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얼마나 몰입했는지, 장작이 타는 소리와 냄새도 나는 듯했다.


그녀는 아마 자신의 꼭두각시와 함께 저 멀리 남쪽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차라리 잘된 일이지.’ 덕분에 그래스호퍼에서 일어난 난리 통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 알폰스는 스탕달에 대한 충심이 흔들리는 지금, 괜히 엘라이자에게 마음이 쓰였다.


알폰스가 한숨을 내뱉고 던졌던 나무판자를 치웠을 때, 그는 발밑에서 울리는 느낌이 이질적임을 느꼈다.


거대한 결정석이 세워있던 바닥에는 낡은 넝마가 깔려있었는데, 발을 굴러보니 빈 곳이 있는지 울리는 소리가 났다. 알폰스는 넝마를 치웠다. 비밀통로, 내지는 비밀창고가 있을 법한 다락문이 나타났다.


“흐음. 기껏 도망친다는 곳이 여기야? 무덤으로 쓰기에도 볼품없어.”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 인기척에 알폰스가 돌아보았고, 줄리엣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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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0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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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8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6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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