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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42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1.29 12:13
조회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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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DUMMY

“그럼 뽑을게요.”


어느새 묶여있던 결정석에서 빠져나와 누나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된 테일코트가 거인의 가슴에 꽂힌 토템을 쥐었다. 하지만 워낙 깊게 꽂혀있는 데다, 근섬유가 재생하며 토템을 꽉 여물어 쥐고 있으니 보통 힘으로는 빠질 것 같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르댕고트가 토템의 무게를 이리저리 조작해보았지만, 의미 있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왕이면 나도 풀어주면 좋겠군.”


알폰스도 일어나 르댕고트에게 말했지만, 르댕고트는 그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난 당신을 알고 있어. 우리가 카그라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다면, 당신은 스탕달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지.”


르댕고트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알폰스가 딱 잘라 본론만 말했다.


“너희 남매가 짊어진 부채를 지워주겠다.”


턱을 괴고 있던 르댕고트가 고개를 들었다.


“바보 같긴! 그게 얼마인 줄 알고 네가 갚겠다는 거야! 살 수만 있다면 아무 말이나 지껄······!”


“얼마인지는 상관없어. 차용증만 없애면 해결될 문제 아닌가? 너희 남매의 빚을 대신 갚겠다고 한 적 없다. 지우겠다고 했지. 날 풀어준다면, 채무기록을 지워주겠다.”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알폰스는 품에서 스케치북을 꺼내 무언갈 그리기 시작했다.


“너희 남매들이 줄리엣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녀가 부리는 복제들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를 두고 가도 괜찮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너희는 너희를 지지할 아군이 필요해.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군.”


르댕고트가 주저하자, 알폰스는 남매를 다그쳤다.


“너희들의 신념 중 하나가 바로 ‘시간이 금’이 아니었던가? 줄리엣이 돌아오기 전에 빨리!”


르댕고트도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네가 약속을 지키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지?”


“너희 남매라면 떼인 돈을 받을 방법 따위, 잘 알고 있겠지.”


서러브레드 남매는 서로 바라보았다.


“그렇긴 하지.”


“하긴 그러네.”


남매의 뜻이 모이자, 르댕고트는 남은 용액을 알폰스의 다리를 묶은 결정석 위에 쏟아부었다. 결정석은 용액에 닿자마자 녹아내렸다.


알폰스는 결정석으로부터 풀려나자마자, 그리고 있던 스케치를 찢어버리며 의태 마법을 발동했다. 알폰스가 그리고 있던 것은 덩치가 큰 유인원, 고릴라였다. 그의 피부에 억센 털이 자라나고, 장골이 자라며 근육이 붙었다.


“이걸 뽑아야 너희들이 나를 도와줄 것 같군. 우선 어느 후작을 섬겼는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제 테스널 왕국의 이름으로 움직일 테니.”


굵은 팔뚝의 알폰스가 테일코트 대신 오비디언의 가슴에 꽂힌 토템을 움켜쥐었다. 토템이 뽑히기를 기다리던 오비디언이 물었다.


“네 녀석 이름이 뭐지?”


“알폰스. 알폰스 도하다.”


“알폰스 도하. 난 항상 나를 처치할 녀석이 누구일지 궁금했었지. 그것이 바로 너였군. 너를 기억하겠다.”


“······그러시던가.”


알폰스는 토템에 힘을 주고 뽑아 올렸다. 테일코트가 만졌을 때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지만, 알폰스가 나서자 조금씩 뽑히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오비디언도 같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뽑았다. 이제 더는 복제가 늘어날 일은 없을 테니 밖으로 탈출해요.”


테일코트가 감탄 섞인 말을 했지만, 알폰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는 저 복제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 하나라도 더 개체 수를 줄여둬야 해.”


흩어진 오비디언이 있던 자리에는 아티팩트 반지가 하나 놓여있었다. 르댕고트는 재빨리 그 반지를 품에 넣고 싫은 소리를 했다.


“우리는 이제 볼일 다 봤어. 떠날 거야.”


“그렇다면 너희의 빛을 두 배로 늘리겠다. 협박 탓에 마지못해서 했다는 것이 편하다면 말이지.”


알폰스는 줄리엣이 사라졌던 커튼 뒤로 사라졌다. 남매들은 짜증을 냈지만, 결국 그의 뒤를 따라가야 했다.





결론적으로 알폰스와 서러브레드 남매는 오비디언 복제들을 막지 못했다. 알폰스는 타조로 변해 남매를 등에 태워 지하시설 내부를 달렸고, 테일코트가 세 사람의 모습을 감추고, 르댕고트가 지하시설의 천장의 무게를 키워 무너트렸다. 하지만 고작 몇 개체가 압사된 것에 그쳤을 뿐, 오비디언 복제들이 꾸역꾸역 암반을 헤쳐 나오며 지상으로 올라오는 걸 도와준 꼴이 되었다.


겨우 무너지는 암석들을 헤치고 지하시설에서 빠져나온 세 사람은 마지막 수단으로 아티팩트에 새겨져 있던 메테오를 박아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복제들이 흩어지지 않은 지금이 기회였다. 그런데 허여멀건 한 풋내기가 근처를 얼쩡거리고 있으니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네드는 용사가 되어버린 탓에 마을 사람들에게 등을 떠밀려 현장에 나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벌써 피난준비에 들어갔으며, 네드가 시간을 끌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네드는 벌써 다리가 후들이고, 힘이 풀려 주저 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검은 쥐었으되 쓰는 법을 모르고, 마법이라고 해봤자 양털을 키우는 게 전부였다. 땅에서 꾸물대는 거인을 고작 양털로 어떻게 막는단 건가?


“마을 사람들은 대피할 테니, 용사님이 막아주시리라 믿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 항만 일꾼의 뒤꽁무니를 쳐다봤지만, 네드라고 해서 해결책이 나올 리 없었다. 그는 거츠가 경고한 대로 감당하지 못할 일에 짓눌리게 되어버린 것이다.


“저리 꺼져 멍청아!”


보다 못한 르댕고트가 투명 마법을 벗고 네드를 뒤로 물리며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엘라이자는 오랜 여정 끝에 테스널 왕국의 성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검은 면사포를 쓰고 검은 드레스를 입었는데, 그마저도 오랜 여정 탓에 헤지고 찢겨버렸다. 그러니 문지기가 기겁하며 칼자루에 손을 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요, 용건이 뭐냐! 이곳이 어디라고 찾아온 거야!”


엘라이자는 손가락을 들어 왕성의 안쪽을 가리켰다.


소름이 돋은 문지기는 즉시 원군을 부르며 저항했다.


“마, 마녀다! 마녀가 나타났다!”





왕성에 마녀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집무실의 거츠의 귀에도 전해졌다. 그는 마녀의 인상착의를 듣자마자, 그녀를 가둔 감옥에 단걸음에 쫓아갔다.


엘라이자는 철창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엘라이자.”


“······당신은 나를 잊으려고 떠났죠.”


“저는 당신이 알던 거츠가 아닙니다. 지성이 생긴 뒤로 깨달았어요. 당신은 제 생전의 남편을 사랑했을 뿐이고, 저는 그의 시체에서 태어났을 뿐이에요.”


거츠가 호위 병사들을 물렸기에 두 사람을 엿듣는 이는 없었다. 엘라이자는 고개를 돌렸지만, 여전히 검은 면사포를 들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없어서 찾아왔어요.”


“저도 잊기 위해서 떠난 게 아니라, 잊을 수 없어서 떠난 거예요. 제 기억은 제 것이 아닌 죽은 남편의 기억이니까!”


거츠가 엘라이자가 돌아가길 바라며 매정하게 말했지만, 오히려 엘라이자의 마지막 말이 거츠의 심장을 도려내 버릴 듯 날카로웠다.


“그래서 전 인간이길 포기했습니다.”


“잠깐, 뭐라고요?”


엘라이자는 가렸던 면사포를 들쳤다. 이 세상에서 오직 거츠만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거츠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두 사람을 가로막는 철창을 쥐고 힘을 주어 으스러트렸다. 그는 엘라이자의 곁을 떠난 자신을 후회하며 거듭 미안하다며 후회했다.


거츠는 육신이 부서지지 않는 한 영원히 살아가는 골렘이었다. 반면에 엘라이자는 한철을 살다가 떠날 인간일 뿐이었다. 엘라이자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자신의 모습을 영원토록 지키고자 했다. 그런 그녀의 특기는 죽은 자를 좀비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제 헤어지지 말아요, 우리.”


엘라이자의 말은 차가웠고 쓸쓸했다.





해양왕국인 휘시스는 해적과 어부들이 많은 곳이었다. 때로는 어부가 노략질을 하고 해적이 낚시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지나가는 상단들을 약탈하는 호전적인 왕국이었다. 그들은 여타 다른 국가보다 월등한 조선기술로 해양을 지배했고, 그들의 범선들을 뚫고 휘시스 왕국에 정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랬기에 그들은 해상전이 아닌, 섬 안에 있는 적을 상대하는 육지전에 취약했다. 휘시스의 호전적인 병사들은 마법진을 타고 떨어진 실크가 왕을 시해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작살과 시미터, 그리고 머스킷. 심지어 대포를 동원한 포격에도 실크는 두꺼운 가죽을 두르며 피하지도 않고 막아냈다. 이성을 잃은 그가 마왕의 검을 휘두를 때마다,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실크는 풀밭에 누워있었다. 마왕의 검을 집은 건 생각났지만, 그 이후로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고, 주변은 온통 풀과 나무뿐이었다. 실크는 식물에 대해 잘 알고 있진 않았지만, 미겔과 같이 다니며 어렴풋이 본 덕분에 주변에 있는 풀들이 모두 약초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약초들은 구획으로 나뉘어 심겨 있었다.


밭 사이에는 고랑과 좁은 길이 뻗어져 있어, 언덕 너머로 이어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향한 발걸음의 끝에는 익숙한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미겔?”


오두막의 굴뚝에선 연기가 나오고 있어 누군가가 난로를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실크는 오두막의 문을 열고 그 안에 있을 미겔을 찾았다.


“늦었군, 후배 마왕.”


오두막에는 오비디언이 있었다. 실크가 당황해서 검을 쥐려 했었지만, 허리춤에 있어야 할 마왕의 검은 없었다.


“진정하라. 이미 난 죽었고, 너는 마왕의 검을 쥐었다. 그러니 응당 인수인계가 따라붙는 법이다. 그 검에는 내 마력도 들어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검이 없자 실크는 손바닥을 들어 자세를 갖췄다. 미겔에게서 배운 격투술이었다.


“인수인계라니 무슨 뜻인가.”


“다음 마왕에게 계속 전해줘야 할, 그런 종류의 전통이다. 너도 훗날 나와 같은 자리에 앉아 다음 마왕에게 인수인계하겠지. 지금쯤 자네 육체는 마왕의 검의 마력에 미쳐서 날뛰고 있을 거야. 괜찮아, 처음엔 다 그런 법이야. 그래서 인수인계가 필요하지.”


오비디언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말린 약초 가루 따위를 넣어둔 단지들과 꽃을 꽂은 물병 따위가 눈에 띄었다. 가만 보면 물감을 만들어 벽에 그림을 그린 흔적도 보였다.


“생각보다 가정적인 면이 있었군. 그저 전사 체질인 줄 알았더니.”


“이곳은 내가 목숨을 구한 약초꾼의 집이다. 그리고 그에게서 이름을 받았지.”


“아, 그러고 보니 후임의 이름을 지어야 하는 사람이 나였군. 새 이름이 필요한가?”


실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알고 있던 오비디언의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었고, 심지어 천하 태평한 모습도 보여서 실크는 자신이 알던 그 인물이 맞나 의심했다. 하지만 그런 의심이 무색하게, 그는 복제마법으로 자신을 두 사람으로 만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마왕은 어떻게 잘 설명하던데, 나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귀찮아.”


본체의 말을 받아 분신이 이어 말했다.


“그러니 일단 한판 붙자고.”


실크는 순식간에 뒤를 잡혀 내리꽂는 주먹질에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네가 힘을 위해 어디까지 바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실크는 연이어 날아오는 주먹을 받아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고, 무방비인 그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고 말했다.


“동료를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


“생각보다 인수인계가 일찍 끝나겠군.”


오비디언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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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2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1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1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5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8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7 1 11쪽
»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3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5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9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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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1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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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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