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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39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1.25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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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DUMMY

서러브레드 남매는 줄리엣과 만나자마자 그녀의 마법 탓에 잠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르댕고트가 겨우 다시 눈을 떴을 땐 곁에 테일코트와 알폰스가 있었고, 그 너머에 거대한 인물이 누워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르댕고트는 겨우 상체를 들어 그 거인을 뜯어보았다.


그는 시비스터를 습격했던 괴물이었다. 다만, 그들에 비해 체구가 더 작아 보였다. 그리고 피부가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져 성한 곳이 없었다. 특히 가슴은 푹 꺼져있고, 대신 토템이 하나 박혀있었다.


“역시 네가 가장 먼저 일어날 줄 알았어. 내 마법은 여자들한테 약하더라고.”


줄리엣이 르댕고트의 턱을 잡아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녀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그보다 눈에 띄는 건 클로처럼 손톱 위로 날카로운 결정석이 박혀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손톱은 그대로 르댕고트의 목을 찌를 정도로 예리했다.


“뭐. 너희들을 살려둘 이유는 없지만, 반대로 죽일 이유도 없어서 말이야. 그래서 난 너희 셋을 관객으로 모실까 생각해봤어. 어때? 연극은 좋아하니?”


“여긴 어디지?”


“실험실. 너희가 직접 두 발로 들어와 놓고, 어디냐고 묻는 건 무슨 상황인 거야? 물론 내가 쓰던 장소는 아니고, 제자의 실험실을 잠시 빌린 거야. 시비스터에서 내 병력이 그렇게 허무하게 쓰러질 줄 몰랐거든? 그래서 다시 양산을 해야 한단 말이야. 그런데 복제를 만들면 만들수록 그 힘이 줄어드는 것 같아. 우리면 우릴수록 맛이 흐려지는 홍차 같달까.”


“시비스터를 습격한 괴물이 네가 만든 거야?”


줄리엣은 인상을 찌푸렸다.


“관객 주제에 말이 너무 많네, 에티켓을 지켜야지. 추리하는 건 좋지만, 너무 많이 까발리면 스포일러가 된단다? 스탕달은 이런 걸 어떻게 참아낸 것인지 모르겠어.”


르댕고트는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허리 밑으로 결정석이 엉겨 붙어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상태로는 걷기는커녕 꿈틀대다 바닥에 쓰러지는 게 고작이었다.


줄리엣은 그녀의 헛수고를 즐겁게 보며 말했다.


“······대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귀한 걸 보여줄게.”


줄리엣은 가려져 있었던 커튼을 걷었다. 커튼 너머에는 거대한 방이 하나 있었고, 그 안에는 시비스터를 부수던 괴수들이 가득했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누워있는 거인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 같은 그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줄리엣은 손톱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아무튼 아직은 준비 중이야. 그러니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 말한 줄리엣은 방 안으로 들어가 커튼으로 도로 가렸다.





르댕고트는 주변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직도 자는 사람들을 깨웠다. 하지만 정작 일어난 것은 거인이었다. 그는 애초에 잠에 빠져있지 않았다. 그저 움직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을 뿐이었다.


“인간 여자여. 저 서큐버스를 너무 증오하지 않았으면 한다. 보기보다 가련한 운명에 묶여있는 자이니.”


“당신은 누구지요?”


“마왕이다.”


“아······. 그러세요?”


마왕이면서 왜 인간들의 땅의 지하에서 다 죽어가는 채로 누워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적당히 어울려주기로 했다. 어찌 됐든 죽음의 문턱을 밟고 있는 분이시니, 그 정도 장단 정도야 대수랴. 하지만 남매와 덩달아 누워있는 알폰스도 죽음의 문턱을 밟고 있는 건 비슷한 처지이거니와, 자칭 마왕이란 녀석이 그녀에게 요구한 것은 더더욱 터무니없었다.


“나를 죽여라. 심장 대신 박힌 토템을 뽑으면, 나는 죽는다. 고작 인간도 능히 해낼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지.”

하지만 정작 르댕고트는 심드렁했다.


“보상은 뭐죠? 의뢰인인 당신이 죽으면 누가 그 값을 치르냐 이 말이에요.”


물론 남매는 터무니없는 의뢰도, 가격만 맞는다면 언제나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마왕 오비디언이 말했다.


“강한 힘을 원하는가?”


“아니요. 돈과 보석이 필요하죠.”


“그렇다면 마법의 이치를 통달할 금단의 지식을 원하는가?”


“아니요. 황금과 현금이 필요하죠.”


그녀의 대쪽같은 가치관에 마왕은 기운이 빠진듯했다.


“······나는 돈이 없다.”


“그러면 애써 이야기를 한 게 헛수고가 되었군요. 어차피 가만히 두어도 이승에서 하직하실 것 같은데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르댕고트는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결정석의 무게를 없애고, 콩콩 뛰어다니며 결정석을 녹일 용액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물량이 진열되어있었으니, 어쩌다 굴러다니는 용액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과 동생은 그대로 도망치면 되는 것이다. 누나는 이번에야말로 돈 냄새를 맡는 동생의 직감이 틀렸다고 확신했다.


결국, 오비디언이 두 손을 들었다.


“인간들의 탐욕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아티팩트라면 구미가 당기는가?”


아티팩트는 액세서리 등에 마법을 새긴 것인데, 귀족들에게 호신용으로 비싼 값에 팔리는 물건이었다. 특히 이렇게 세상이 뒤숭숭할 때 경매장에 내놓는다면 분명 높은 가격이 따라붙을 것이 분명했다.


“아티팩트라고 해도, 그 마법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죠. 무슨 마법이 새겨져 있죠?”


“메테오가 새겨져 있지.”


동생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거인을 향해 돌아본 르댕고트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손에는 찾고 있던 용액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용액을 가볍게 흔들었다.


“환영합니다. 고객님.”





레오나는 결국 검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손이 저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의 모피는 타오를 듯 뜨거웠고, 썩어가고 있었다.


용사의 검은 신성력에 기반해 레오나에게 축복을 부여해주는 검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마왕이 되기 위해 마족으로 타락한 시점부터 그 축복이 반대로 해를 끼치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실크의 마왕의 검을 뺏지 못한 채 무릎을 꿇었고, 폭주하는 실크의 무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 위로 마왕의 검이 휘둘려졌다.


“으윽······.”


“그만하면 됐어요. 당신은 이제 어엿한 마왕이 되었다구요.”


호세의 기억을 지워버린 오스먼드가 마왕과 용사의 사이에 마법진으로 장벽을 만들어 실크의 일격을 막았다. 실크는 이제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지성이 남지 않았지만, 오스먼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마력을 주체하지 못해 날뛰는 모습이 인상 깊군요. 이왕 이렇게 마왕이 되었으니 그 소식을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어요?”


오스먼드는 실크를 어디에서 소환할지 고민했다. 새로운 마왕의 데뷔를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각 나라의 왕성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했다.


인간의 왕국은 크게 세 국가로 쪼개져 있었다. 산과 평지가 많은 테스널 왕국과 해양 왕국인 휘시스. 그리고 끝없는 사막에 세워진 렙틸리아가 그것이었는데, 세 나라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런 이유로 각 나라 간의 육로 및 항로도 개척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지리적인 간극을 좁혀버리는 건 오스먼드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오스먼드는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려는 실크의 발밑에 마법진을 만들어 그를 포탈 너머로 보내버렸다. 포탈 너머에서는 짠 바닷내가 풍겼다.


실크가 포탈 너머로 사라지는 와중에 오스먼드가 실크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실크가 사라지자 오스먼드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곧 토벌되실 가련한 폐하.”


그리고 새로운 용사이자 왕이 될 카그라의 몸을 접수하기 위해, 오스먼드는 설리반의 위치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





여전히 레오나는 지하실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마왕과의 결투에 패배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아무 희망도 볼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단지 한 사람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미겔······. 나는 우리 고아들의 복수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어.”


레오나는 이성을 잃은 실크를 상대로 유리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을 예측하기도 힘들었고, 실크가 점점 자신의 몸집을 크게 키우며 압박해왔기에, 피할 공간도 마뜩잖았다. 레오나는 비뚤게 웃었다. 결국, 핑곗거리였다.


용사는 마왕에게 패배했다. 레오나가 아무리 부정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호세는 마을 사람들이 마왕성에서 일어난 일을 궁금해하기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지하실로 찾아왔다. 자신의 기억이 편집되었다는 걸 알지 못한 호세는 루가루가 된 용사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랐지만, 그녀는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저 처연히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호세가 어째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레오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미겔이라는 사람을 찾을 수 있겠어?”


호세는 갑자기 다가온 그녀의 위압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렇다면 찾아보자고.”


레오나는 다시 용사의 검을 쥐고 일어섰다.





미겔의 몸을 차지한 사념체는 알프레도가 나눠준 옷가지와 음식을 얻을 수 있었다.


“받고 나서 물어보는 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왜 이런걸 나눠주는 거야?”


알프레도는 그의 질문에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물건을 갖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리고 어찌 됐든 당신은 우리들의 은인이기도 하구요.”


“은인이라고?”


“루가루 숲에서 오비디언이라는 괴물을 해치우셨잖아요. 병사들은 모두 최면에 걸려서 제정신을 못 차리지, 그나마 저랑 벨라는 최면 마법에 저항한 덕분에······. 아, 이 이야기는 너무 멀리 갔군요. 아무튼, 병사인 주제에 저는 감히 싸울 생각도 못 했는데, 당신과 친구들이 그 괴물 같은 녀석을 막았잖아요? 그러니 마땅히 저희의 은인이시죠.”


“아아, 그랬지.”


사념체는 그제야 루가루 숲을 습격했던 오비디언 뒤에 병사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때는 줄리엣이 보는 앞이라 초대 마왕인 척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마을을 떠돌던 거지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바뀌신 것 같네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응? 응 물론이지. 네가 어디까지 간다고 말했었지?”


“루가루 숲이에요. 구해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아직도 그녀는 차가운 결정석 안에 잠들어 있는걸요.”


“뭐? 결정석을 녹일 방법이 있는거야?”


알프레도는 자신이 쥐고 있는 방패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어느 천재 꼬마가 만들어줬어요. 이제 여기에 희망이 걸려있는 셈이죠. 이걸로 결정석을 분해할 수 있어요.”


알프레도가 말한 것은 벨라가 갇힌 결정석이겠지만, 그 옆에는 줄리엣이 미겔의 영혼을 본인의 모습으로 위장해 가둔 결정석이 있었다.


사념체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줄리엣이 자신의 영혼을 쥐고 그동안 초대마왕 행세하라고 강요했지만, 이젠 그 명령에 따를 필요가 없어졌다.


노목에게 거둬져 유년 시기를 지내고 용사훈련소에서 도망쳐 나온 약초꾼 미겔. 그는 마계의 초대마왕이었으며, 자신의 영혼을 쫓아내고 몸을 차지한 침략자일 뿐이었다. 드디어 미겔은 자신의 영혼을 되찾아 그 침략자를 쫓아낼 수 있었다.


“일이 그렇게 된 거구나.”


잠자코 있던 초대마왕이 자기 자신을 인지하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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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2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1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1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5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8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6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5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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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8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1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7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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